JOURNEYS
SICILY
되살아난 시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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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호


최근 재건된 내륙 횡단 도로인 마냐 비아 프란치제나Magna Via Francigena를 따라 시칠리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성지순례를 떠나보자. 허브 향이 가득한 계곡과 오랜 세월 잊힌 마을을 지나 시칠리아만의 전통적인 환대와 고대 전설, 그리고 독특한 방식으로 보존된 다채로운 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


 

“시칠리아의 진정한 모습은 이 자리에서 볼 수 있어요.” 미리 살라모네Miri Salamone가 어딘가를 응시하며 말한다. 저 아래 계곡은 구름으로 덮여 있고 도랑도 안개가 자욱해 수테라Sutera 지방의 높다란 산봉우리조차 시야에서 모두 사라졌다. 지난 며칠 동안 시칠리아 중심부의 가시거리는 발에 치이는 돌멩이를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나 또한 섬의 내륙을 향해 걸으면서 여러 차례 발을 헛디뎠다. “이곳에 서면 에트나Etna산이 한눈에 보이고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면 팔레르모Palermo까지 볼 수 있어요.” 미리가 구름 사이로 언뜻 모습을 드러낸 마을의 최고봉인 몬테 산 파올리노Monte San Paolino 위의 종탑을 실눈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그래서 이곳을 ‘시칠리아의 발코니’라고 부르죠.” 그녀는 궂은 날씨가 미안한듯 멋쩍게 웃는다.

쾌청한 날씨라 해도 미리가 말하는 ‘진정한 시칠리아’를 보려면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축축한 습기 속에서도 이탈리아 본토와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섬이 완전히 다른 세상임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사람뿐만 아니라 시칠리아 사람조차 방문하지 않는 섬 중심부야말로 그 세상의 정점인 듯싶다. 그 이유는 티레니아해부터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고대 도로를 따라 전해진 시칠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잊힌 땅에 자리했던 옛 무역로와 순례자의 길을 따라 비잔틴 시대의 도자기 조각들이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다. 화려한 종교 행사가 열렸던 성당 옆에는 양치기 오두막이 바짝 붙어 있다. 현지인들의 기독교식 이름은 실제로는 고대 그리스에 어원을 둔다. 해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깊은 내륙에 자리한 수테라 마을의 조상은 페르시아에서 왔다고 한다. 구시가지인 라바토Rabato의 돔형 지붕에서 아랍 양식을 엿볼 수 있는데, ‘라바토’라는 이름 또한 아랍어인 라바드Rabad에서 비롯됐다.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끼어 있는 시칠리아는 수세기 동안 세계지도에서 전략적 요충지를 담당했다. 한때 정복자의 보물로 여겨졌던 이곳은 오늘날 조직 범죄에 의한 파괴와 단돈 1유로에 매매되는 폐가들로 얼룩져 있다. 이 폐가들은 이탈리아 정부의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폐해나 다름없다. 

절벽을 따라 깎아 만든 주거지역의 아담한 광장에서 십대 아이 두 명이 축구공을 차고 있다. 미리가 멈춰 서서 아이들을 가리킨다. “1년에 한두 명 정도? 이곳에서 아이들이 태어나면 곧바로 유명 인사가 돼요.” 해변의 화려한 빛이나 부유한 본토의 유혹에 이끌리기 쉬운 십대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희소하다. 지역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이 땅엔 보물이 있다고 한다. 남자 셋이 동시에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예지몽을 꿔야만 수많은 동굴로 뒤덮인 절벽 속에 숨겨진 금화를 찾을 수 있단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헛된 꿈을 꿀 시간이 없다. 수테라를 포함한 섬 북부를 가로지르는 고대 도로를 따라 자리한 십여 개의 마을들은 관광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바로 1000년에 달하는 순례자의 길을 따라 새로운 루트를 세우는 것이다. 

 

10년 전 역사학자, 고고학자, 동식물 연구가로 구성된 집단이 노르만 기록물에 적힌 십자군 기사의 설명을 찾고 이들의 행적을 시칠리아 지도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무려 1000년 전에 존재했던 이 사라진 길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성지순례 여정의 일부였다. 바로 영국 캔터베리에서 출발해 로마를 거쳐 동남쪽의 성지로 이어지는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 길이다. 그리스인, 로마인, 노르만인, 아랍인, 아라곤인은 도로, 샛길, 무역로, 방목길로 이뤄진 965km 길이의 시칠리아 구역을 걸으며 수백 년에 걸쳐 그들의 보물과 흔적을 남겼다. 

이 루트를 부활시키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80곳과 교구 6곳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2017년에 이르러 그 결실을 봤다. 루트의 핵심인 180km 길이의 마냐 비아 프란치제나를 걷는 여행자들은 해안 도시 팔레르모와 아그리젠토Agrigento를 연결한 도로 곳곳에서 순례자의 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아그리젠토에 위치한 대성당에 가면 트레킹을 완주한 여행자에게 인증서도 준다. 정말이지 날씨만 따라준다면 나와 내 친구들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

나는 팔레르모 외곽에 있는 알바니안 초원에서 첫 번째 도장을 찍었다. 시칠리아의 유명한 수출품인 리코타 치즈는 이 초원에서 방목하는 양을 통해 얻는다. 잠시 후 산타 크리스티나 젤라Santa Cristina Gela 마을에 있는 유일한 카페에 도착했으나 달콤한 페이스트리 디저트는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대신, 가는 길에 먹을 파니니를 포장하고 바리스타에게서 도장을 받았다. 이 카페 또한 비아 프란치제나에 있는 여러 바와 교회, 상점, 호텔처럼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기 위해 순례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 중 하나다. 나는 야생 허브로 뒤덮인 언덕으로 향한다. 여행 가방은 오늘 저녁 묵을 호텔로 미리 보내둔 상태다. 루트 인근에서 운영 중인 몇몇 여행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다.

지금은 시칠리아의 태풍 기간이고, 우리를 제외한 하이커는 벨기에에서 온 네 명뿐이다. “저희는 매년 함께 하이킹을 하는데 주로 지중해 주변 지역을 돌아요.” 일행을 대표해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마크Mark가 알려준다. 아웃도어 반바지와 오래된 등산화로 무장한 이들이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간다. 나와 내 친구는 다년간 함께 걸으면서 익숙해진 속도로 그 뒤를 천천히 따른다. 전날 밤 빗소리에 잠을 설친 우리는 눈 밑에 백팩보다 무거운 다크서클이 있었지만 진한 에스프레소로 기운을 차리고 아직 흐린 하늘을 응시하며 걸었다.

 

곡창지대를 향해 올라가는데 또다시 하늘이 위협적으로 보인다. 야자수, 알로에, 뾰족한 선인장이 갈색 밀밭과 진흙투성이 가축 틈에서 이질적인 아열대 분위기를 풍긴다. 작은 마을 앞을 지키고 선 야생 개들이 우리를 보고 요란하게 짖으면서도 꼬리는 반갑게 흔들어댄다. 곳곳에 설치된 빨간색과 하얀색 표지판이 하이커들을 목적지로 안내한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앞쪽 흙길은 안개에 가려진 채 뿌옇기만 하다. 나무를 세차게 흔드는 바람이 불더니 곧이어 폭풍우가 몰아친다. 땅 위로 구름이 용암처럼 흐르고 방수 옷을 뚫을 기세로 비가 쏟아진다. 진흙이 무릎까지 푹푹 파이더니 기어코 신발 한 짝을 삼켜버린다. 신발을 찾아 겨우 끈을 묶었으나 강이 된 냇가를 건너기 위해 다시 벗었다.

몇 시간 내내 진흙 길을 걷는 건 나뭇가지에 눈이 찔리는 것만큼이나 아찔한 경험이었다. 나는 진흙에 젖은 신발끈을 묶으려고 고개를 숙이다 이걸 제대로 경험했다. 전보다 시야가 더 좁아진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던 나는 탈리아비아Tagliavia 성당 밖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드디어 신호가 잡힌 휴대전화는 비아 프란치제나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온 문자로 메시지함이 가득 차 있었다. GPS 앱인 유트랙스를 연결해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연락이 닿았다. 그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식사와 숙소를 제공해주었다.

“저희는 주로 일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구조했어요. 트레일에는 그늘이 전혀 없거든요.” 사륜구동 차를 몰고 온 자원봉사자 마리아리치아 폴라라Marialicia Pollara가 유실된 길 끝에서 알려준다. 비아 프란치제나는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철에 가장 걷기 좋은 지역이다. “야생화가 만개할 때죠. 그런데 여러분은 유난히 운이 안 좋네요.” 마리아리치아의 말에 따르면 짧게 지나가는 태풍 대신, 우리는 ‘지난 주에 차 한 대를 휩쓸어간’ 사이클론의 막바지에 하이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물이 범람하지 않는 지형 덕분에 비아 프란치제나는 1년 내내 하이킹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그래도 말이 안되는 날씨예요.” 그녀가 폭풍우 속에서 운전을 이어간다. 탈리아비아 성당의 신부가 이 날씨 속에서 도저히 텐트를 치고 노숙할 수 없는 체코 출신 순례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코를레오네Corleone의 게스트하우스 라 비치클레타 로사La Bicicletta Rossa에서 마리아리치아와 남편 카르멜로Carmelo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비에 흠뻑 젖은 순례자 두 명에게 지난 수확에서 얻은 짙은 연두색 올리브오일과 렌틸 수프와 신선한 리코타 치즈는 더없이 훌륭한 만찬이다.

 

금욕에 관한 이야기

“마피아는 코를레오네에서 생긴 게 아니에요. 이탈리아 전역에 다 있었죠.” 가이드인 페데리코 블란다Federico Blanda가 설명한다. 우리는 자갈 도로 옆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한 청년이 찍힌 사진을 보고 있다. 이 사진은 옛 코를레오네 고아원에 자리한 반 마피아 박물관인 시드마Cidma에 전시되어 있는 1970~1980년대의 범죄 현장을 기록한 여러 사진 중 하나다. “예전에는 돈 코를레오네Don Corleone의 흔적을 찾으러 온 여행자들이 너무나도 보기 싫었어요. 그는 가상 인물인데 말이죠.” 그가 회상한다.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진짜 이야기는 영화 <대부>에 등장할 법한 미화된 범죄에 관한 것이 아닌 저항에 대한 역사다. 사진가 레티치아 바탈리아Letizia Battaglia가 촬영한 가슴 아픈 사진을 모아둔 전시실 옆에는 마피아 조직원에 대한 법원 기록물이 있다. 이는 강철 같은 용기를 가진 파올로 보르셀리노Paolo Borsellino와 지오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 판사가 6년간 막시 재판Maxi Trial을 진행하며 단죄한 474명의 마피아 조직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판사, 기자, 활동가. 그들은 목숨을 바쳐 용기를 냈어요 .” 페데리코가 설명한다. 시드마 박물관은 마피아의 보복으로 살해된 쓰러진 영웅들을 기린다. “당시 코를레오네의 인구는 1만 명이었고 마피아는 극히 소수였죠. 하지만 코를레오네 주민들은 여전히 마피아라는 오명을 안고 삽니다.” 그가 웃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그래서 전설을 찾아온 여행자들이 팔코네 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문을 나설 때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여행자들이 비아 프란치제나를 따라 더 많이 오면서 코를레오네의 이야기도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었다. 정상이 평탄한 산과 깊은 계곡 사이에 가옥을 지은 이 마을은 순례자의 루트에 훌륭한 배경이 된다. 루트가 지나가는 성당과 수도원에서는 부활절이 되면 뾰족한 모자를 쓴 수도승들이 모여든다. “외지인들은 잘 모르는 우리 마을의 또 다른 이야기예요.” 이 지역의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의식은 스페인만큼이나 크고 화려하지만 여행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코를레오네의 폭포 아래로 떨어지며 한때 지역 제조소에 동력을 공급했던 산니콜로San Nicolò 강을 따라 걷는다. 이곳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인 밀 생산량은 감소했지만 그들은 관광업에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우연히 지나가지 않아요.” 언덕 마을인 프리치Prizzi에서 만난 비아 프란치제나의 또 다른 친구인 토토 그레코Totò Greco가 말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제 순례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어요.” 프리치에는 호텔이 없어서 토토는 마리아리치아를 포함한 비아 프란치제나의 여러 현지인들처럼 농가를 젊은 감성의 호스텔로 개조했다. 그는 지역 청년들이 마을에 남을 수 있도록 돕는 단체 시카나멘테Sikanamente(마을 인근의 언덕인 시카니Sicani에서 따온 이름)도 설립했다.

토토가 프리치 내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시카니 산자락에서 발굴된 기원전 5세기 유물인 로마시대 동전과 장신구를 소개한다. 3세기에 만들어진 발 모양의 도자기가 특히 눈길을 끄는데, 내가 신고 있는 등산화와 모양새가 흡사하다. 박물관에서 나와 올해 담근 와인을 맛보러 토토의 작은 식당으로 향한다. 점점 더 늘어나는 시칠리아의 청년 자영업자들처럼 오래된 마세리아masseria(시골 농장)를 포도밭으로 바꾸고 있는 토토는 와인 제조법을 배우며 토종 와인 품종을 되살리고 현지 화가들에게 라벨 디자인도 의뢰한다. “여기서는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해요.” 그의 동료 가브리엘라 로 부에Gabriella Lo Bue가 말한다. 내가 만난 사업가들처럼 그 역시 해외에서 일하다가 최근에 시칠리아로 돌아왔다. 코로나 대유행에 의한 제약 때문이기도 했지만, 순례길에서 비롯된 미래가 밝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모두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각자의 재능과 방법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고단하지만 신나는 작업이에요.”

그러나 지금의 날씨는 그들이 꿈꾸는 미래만큼 밝지 못하다. 우리가 다음에 머물 카살레 마르케리타Casale Margherita 호텔 위로 태풍이 다시 들이닥친다. 호텔을 운영하는 카르멜로Carmelo는 다음 날 아침 우리가 밖으로 나서는 것을 막았다. “강물이 불어서 둑이 터졌어요. 위험하니 다음 언덕까지 차로 데려다줄게요.” 그가 운전하는 픽업트럭을 타고 이동한 우리는 그의 배웅을 뒤로한 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수테라 등반길에 올랐다. 물이 흐르는 길에서 우리는 진지한 벨기에인 일행을 다시 만났다. 강을 피해 철길을 가로질렀다는 그들은 끊임없이 퍼붓는 빗줄기로 인해 우비를 포기하고 마을에서 구입한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중에는 하얀 레이스를 두른 하늘색 양산도 보였다. 그들은 마치 마실 나선 할머니들처럼 언덕 위를 올랐다.

 

종소리처럼 선명한


수테라에 아침이 밝아오자 언제 태풍이 왔었냐는 듯 날이 맑아졌다. 어제의 우울함을 잊게 해주는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쬔다. 사카Xacca산 사이 길게 갈라진 틈 사이로 햇빛이 통과한다. 예수님이 숨을 거둔 순간 바위가 갈라졌다는 곳이다.

“지금도 우리 마을에서는 종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요.” 다시 만난 미리가 설명을 이어간다. “성당 종소리로 하루의 흐름을 알죠.” 몬테 산 파올리노Monte San Paolino로 올라가는 순례자의 계단 중간에 종 세 개가 걸려 있다. 계단 위를 카펫처럼 덮은 솔방울에서 얻은 잣은 건포도와 함께 요리한 이 지역의 파스타를 만드는 데 쓰인다. 산 정상에 도착하니 바티칸이 선물했다는 1t 무게의 종이 보인다. 줄을 당겨 중저음의 종소리가 울리자 치아가 미세하게 떨리고 도마뱀들이 덤불 속으로 정신없이 도망친다.

신의 은총이라도 받았는지 그 이후로는 여정이 순조롭다. 구릉진 언덕을 따라 이어진 트레일 위로 햇살이 드리운다. 멀리 보이는 바다가 해안에서 해안까지 이어진 나의 순례길이 드디어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린다. “시칠리아의 모든 것은 상상의 영역이다.” 라칼무토Racalmuto에서 태어난 시칠리아의 위대한 소설가 레오나르도 시아시아Leonardo Sciascia가 남긴 말이다. 이제는 박물관이 된 그의 1930년대 아파트로 순례를 간다. 반짝이는 부티크 상점과 야자수가 드리워진 광장, 웅장한 19세기 극장이 자리한 그의 아파트는 이 마을의 하이라이트다. 미국과 독일의 지배,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정체성 사이에서 혼돈의 시기를 겪은 20세기 중반 섬의 모습을 담은 소설 <시칠리아의 숙부들>이 내 배낭에 무게를 더한다.

 

“시칠리아에는 정체성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그리스 신화의 영향이 아닐까요?”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그로테Grotte에 있는 카페 마르코니Caffè Marconi에서 만난 알레산드로 마르살라Alessandro Marsala가 말한다. “아니면 수많은 나라가 남긴 흔적 때문일 수도 있죠.” 카페 사장인 그녀의 아버지 카르멜로Carmelo가 덧붙인다. 마을에 있는 옛 동굴 가옥에 양치기들이 머물면서 마을 이름은 그로테가 되었다. 이제 마을은 동굴벽화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진행된 지역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 곳곳에는 현지와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들어섰고 그 결과 마을 전체가 야외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어느 2층 높이의 집 외벽에는 깊은 슬픔에 빠진 여자가 뱀으로 변했다는 시칠리아의 전설이 그려져 있다. 또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벽화도 눈길을 끈다. 그림들이 이 작은 마을에 가져온 에너지는 상상 이상이다.

공기 중에 피놀라타pignolata 냄새가 풍겨온다. 피놀라타는 그해 빚은 와인을 기념하는 성 마틴의 날(11월 11일)에 주민들이 즐겨 먹는 볶은 양파와 이탈리아식 베이컨인 판체타로 속을 채운 페이스트리다. 우리는 수제 아란치니와 현지 리코타 치즈를 넣은 카놀리가 주인공인 흥겨운 점심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나는 비가 오나 맑으나 비아 프란치제나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우리를 가족처럼 맞이해주는 따뜻함에 놀랐다. 카르멜로가 트레일 끝에서 우리를 내려준다. 차에서 내린 그는 코르베촐로corbezzolo 한 줌을 우리에게 주려고 담을 훌쩍 넘는다. 그는 붉은 보석 같은 딸기류 열매를 따면서 농부에게 팔을 흔들며 밝게 웃는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에요.”

 

양치기와 양떼 뒤를 따르면서 시칠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보물들이 보관된 아라고나Aragona로 내려간다. 이 마을의 백작이었던 루이지 나셀리Luigi Naselli의 오래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세기에 완공된 그의 성은 네덜란드 화가 굴리엘모 보레만Guglielmo Borremans의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고, 성 주변에 자리한 고딕 양식 성당들은 봉헌물과 베니스 종교 의상, 심지어 보석이 박힌 토리노 수의 일부가 전시된 기독교 박물관이다. 하지만 이곳은 해변과 멀리 떨어져 있어 여행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아라고나의 전설적인 피스타치오를 넣은 스파게티 알라라고네즈all’aragonese 한 접시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로 스페르디치오Lo Sperdicchio에 가면 지역 성자들의 얼굴이 그려진 행운의 와인통을 만질 수 있고, 순례자의 여권에 도장도 받을 수 있다.

지중해가 푸르게 빛나고 비아 프란치제나의 중세 마을이 꿈결처럼 느껴지는 아그리젠토. 그리고 나는 지금 그곳의 잠겨진 문 앞에 서 있다. 수테라의 산 정상부터 아프리카까지 조망할 수 있는 아그리젠토의 높은 성당이 보수로 인해 휴관 중인 까닭이다. 아그리젠토 주민들이 깔끔한 선데이 룩을 입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성당 앞에 멍하니 서 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비아 프란치제나의 친구들이 나를 돕는다. 성당의 돈 주세페 폰틸로Don Giuseppe Pontillo 신부가 인근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는 대로 나의 완주 인증서에 서명을 해줄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신부는 역설적이게도 비대면 의사소통으로 인한 비인간성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 인물이다. 내가 신부에게 순례를 완주해본 적이 있는지 묻자 그는 마치 ‘내가 그것을 할 시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라고 질문하듯 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세상과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말입니다.”

글. 사라 바렐SARAH BARRELL
사진. 프란체스코 라스트루치FRANCESCO LASTR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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