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DRUMBEATS & HEARTSTRINGS
다카르의 리드미컬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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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호

 

“밤이 되면 다카르의 연주자들은 악기를 퉁겨 그들만의 운율을 만들어낸다. 이 연주자들은 재즈를 통해 세네갈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나눈다. 수도에서 남쪽으로 한참 이동하면 닿게 되는 시골 마을 카자망스Casamance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오밥나무를 배경으로 해마다 열리는 카니발이 끝없는 가면무도회 행렬을 이끌어낸다.”

 

(왼쪽부터)
더 코라 워크숍에 놓인 현악기 코라와 식수를 채워 넣은 카나리canari.
해가 질 무렵의 다카르 도심.

평온한 다카르의 밤,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졌고 한 남자가 내 마음을 온통 헤집고 있다. 그의 이름은 엘하지 아 티아레Elhadj A Tiare. 현재 베르두레 극장Theatre de Verdure에서 영혼을 담은 발라드를 부르며 관객들을 매료하고 있다. 이 도시의 공용어인 월로프어wolof가 노래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엘하지는 평범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다. 그는 매번 장르를 바꾸며 힙합, 레게, 라틴 재즈, 가스펠 등을 넘나든다. 마치 다른 가수들이 박자나 키를 바꾸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오늘 밤 그는 철테 안경을 쓰고 손수 지은 타바드tabard를 입은 채 괴짜 같은 면모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엘하지는 활동명인 애시 더 베스트Ashs The Best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55년 다카르 교외에 위치한 피킨Pikine에서 자랐으며 10대에 처음 무대에 올랐다. “제가 가수이자 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분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세네갈의 유명한 레게 밴드인 니오민카 비Niominka Bi에서 아프리카와 자메이카의 사운드를 혼합한 연주를 선보였어요. 저는 그 모습을 숭배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멋진 음악을 찾고자 세네갈에 온 것은 맞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 운이 좋을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다카르를 방문한 지 벌써 몇 해가 흘렀는데 요즘엔 제대로 된 라이브 공연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도시의 정원에 자리한 거대한 케이폭 나무 아래에서 안목 있는 청중들과 어우러져 세네갈에서 가장 유망한 뮤지션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마치 다카르에 돌아와 잠들었던 영혼을 일깨우는 느낌이다.

 

카자망스의 한 시장에 앉아 있는 여성들.

도시 봉인 해제

30년 전, 나는 오케스트라 바오밥Orchestra Baobab의 댄스곡과 바바 마알Baaba Maal의 풀라니 블루스Fulani blues, 셰이크 로Cheikh Lo의 민속 재즈, 유수 은두르Youssou NʼDour의 낮은 목소리 등 세네갈 음악과 사랑에 빠졌다. 1990년대부터 2000대까지 서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생활하고 여행하며 보낸 오랜 기간 동안 활기 넘치는 세네갈의 음악계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다. 특히 아랍, 북아프리카, 라틴을 아우르는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와 뮤지션들이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게끔 이끌었다. 

세네갈의 뮤지션들은 단순히 연예인을 넘어 각자의 기량을 소중히 여기는 잘리jali(세습을 통해 보존되는 전통 가수)다. 또한 이들은 구전 역사가이자 인권, 기후, 정의, 국제 협력을 위해 활동하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2022 UN-아프리카 연합 정상회담에서 유수 은두르는 스포츠가 그러하듯 각국을 하나로 묶는 힘이 음악에도 있음을 유창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로 음악이 모두의 모국어니까요.” 한때 현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그는 “아프리카 젊은이에게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배울 기회가 충분했다면 누구도 이 땅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자국의 교육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한편, 바바 마알은 삼림 벌채와 사막화를 막기 위해 UN과 협력하고 있다. 그와 동료들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뉴 아프리카New Africa를 강력히 외치는 중이다. 다카르는 이런 활동가 겸 음악가들의 중심지이다. 도시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매장 카운터의 라디오에서 음악이 새어 나오고, 아파트 창문에서도 음악이 흘러내리고, 낡은 택시에서도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친 뒤 현지의 많은 밴드가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게 되면서 차츰 도시에서 라이브 음악 공연장이 사라지고 있다. 그 대신 식당, 술집, 혹은 프랑스문화원 등에 뮤지션이 몰리는 추세다. 소소한 공연이 자주 개최되며 대부분 당일까지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현지인처럼 자유롭게 도시를 여행하고 여러 콘서트를 마음껏 누비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이 같은 소식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다카르의 공연을 보물찾기라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설렘이 느껴질 것이다. 공식적인 공연 안내가 없을 때에는 항상 현지인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해야 한다. 나는 다카르에 머무는 동안 현지 연락망을 구축해 누가 연주를 할 예정이고, 어떤 공연장이 제대로 된 음향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 파악하곤 했다. 

힙합과 레게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다. 이 장르에 푹 빠져들고 싶다면 역사지구 북서쪽 오우캄Ouakam에 자리한 하우스 오브 어번 컬처스House of Urban Cultures에 방문해보자. 2018년에 문을 연 이곳은 신진 음악가와 비트박서, DJ, 사진가, 거리예술가, 패션디자이너를 위한 작업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다 전통적인 음악과 재즈 연주에 환호한다면 해안도로에 위치한 코니시 웨스트Corniche Ouest를 추천한다. 또는 알마디스Almadies에 있는 해변 식당인 라 메르 아 타블르La Mer a Table나 셰 파투Chez Fatou도 운치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외에도 클럽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카사문디Casamundi, 화려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풀먼 다카르 테랑가 호텔Pullman Dakar Teranga hotel과 호텔 르 졸로프Hotel Le Djoloff, 19세기 등대에서 술집으로 탈바꿈한 파레 데스 마멜레즈Phare des Mamelles도 방문해볼 만하다. 

“저는 프랑스문화원을 정말 좋아해요. 주거지역에 위치해 공연을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거든요.” 야외 공연장인 베르두레 극장Theatre de Verdure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 프랑스인이 이야기한다. “다카르에서는 대부분 공연이 매우 늦은 밤에 열려요. 보통 새벽 3시나 4시, 심지어 5시에도 열리죠. 그래서 새벽에도 교통 체증이 심한 편이에요.” 

 

카자망스에서 파는 감귤류.

 

하지만 다카르는 현대적 건축, 실용적인 식당, 보물이 가득한 골동품 가게 등이 즐비해 낮 시간에도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모습의 현지인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리마다 땅콩 판매상, 거만한 디자이너, 깐깐한 컨설턴트 등을 마주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도시의 사회기반시설과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과감한 조치가 취해졌다. 그중에는 철도망 개선 작업 같은 대단히 실용적인 것들도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동상인 아프리칸 르네상스 마누먼트African Renaissance Monument를 지키는 프로젝트와 고레섬Ile de Goree이 해양 침식에 조금씩 갉아 먹히는 것을 방지하는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다. 고레섬은 한때 악명 높은 노예 무역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추모 장소이자 예술 공동체의 본고장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가장 탁월한 프로젝트로 손꼽히는 것은 2018년에 오픈한 뮤지엄 오브 블랙 시빌라이제이션스Museum of Black Civilisations다. 야심 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이집트 수학과 에티오피아 건축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밤바라족 가면Bambara mask과 콩고의 유물함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18년 다카르 아트 비엔날레 수상자인 레일라 아조비Laeila Adjovi의 어둡고 불가사의한 사진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이곳만의 아프리카 예술 컬렉션은 오후 내내 시간을 할애해도 아깝지 않다.

 

(왼쪽부터)
플레이스 뒤 수브니어 아프리카인에서 슈퍼 에톨레 드 다카르 밴드와 함께 라이브로 공연을 펼치는 세네갈의 전설적인 가수 유수 은두르.
뮤지엄 오브 블랙 시빌라이제이션스의 고풍스러운 밤바라 조각품들.

사자와 왕에 대하여

다카르에서는 공연 일정을 확인하기 매우 어렵지만 확실한 스케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공휴일이나 특정 행사 기간을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번 여행에서 운이 정말 좋았다.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에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Africa Cup of Nations 결승전에 진출했다. 테랑가 라이온스Teranga Lions 팀이 내일 도심에서 동쪽으로 29km 떨어진 다카르 아레나Dakar Arena에서 이집트와 맞붙을 예정이고, 나는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무대를 볼 계획이다.

프랑스문화원을 지나 코니시 웨스트를 따라 거대한 광장인 플레이스 뒤 수브니어 아프리카인Place du Souvenir Africain으로 향한다. 이곳의 동상들은 압둘라예 웨이드Abdoulaye Wade 전 대통령의 의뢰를 받아 만든 것으로 순교자, 노예제도 반대 운동가, 예술가 등 아프리카의 영웅들을 기리는 21세기 기념물이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바로 이 곳에서 테랑가 라이온스 팀의 업적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가 열린다.

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지금은 새벽 1시 20분이고, 아프리카에서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가수가 무대에 오를 참이다. 색색의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고 수십 대의 드론이 인파 위를 맴돌고 있다. 마침내 유수 은두르에게 조명이 집중되자 관중들이 큰 함성으로 그를 맞이한다. 빠른 템포의 사바르sabar 북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약 2년 동안 대규모 라이브 공연에 굶주렸던 이 도시는 오늘 밤 콘서트를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댄스곡의 일종인 ‘음바라mbalax의 왕’이라 불리는 은두르와 그의 밴드인 슈퍼 에톨레 드 다카르Le Super Etoile de Dakar는 주로 그들의 고향에서 1년에 고작 여섯 차례 정도만 라이브 공연을 한다. 은두르가 불과 일주일 전 SNS에 이번 공연 소식을 알려왔을 때 사람들은 폭발적인 저녁이 될 것이라며 환호했다. 이번 공연은 테랑가 라이온스 팀을 위한 승리의 집회이자 기세가 꺾여가는 코로나19에 대한 도전 행위나 다름없다.

은두르의 밴드는 뛰어난 기교를 바탕으로 기타,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연주를 뒤섞으며 놀라운 기량을 선보인다. 그들의 연주를 설명하자면 ‘힘’ 그 자체다. 오늘 은두르는 그가 평소 즐겨 입는 전통 자수가 새겨진 부부 로브boubou robe가 아닌, 깔끔하게 재단한 검은색 슈트와 흰색 셔츠를 입었다. 나름대로 진지한 모습이지만 그만의 목소리와 몸동작, 환한 미소에서 숨길 수 없는 재치가 드러난다.

세 시간 내내 쉼 없이 이어지는 공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두르와 그의 밴드는 무대를 힘차게 누비고 관중은 환호성을 내지른다. 하지만 관중들의 시선은 무대를 향하고 있지 않다. 대신 그들은 무대 쪽으로 등을 돌리고 두 팔을 높이 든 채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다양한 동작을 영상으로 남기고 있다.

“놀라지 마세요!” 콘서트가 시작될 즈음 은두르의 매니저인 두두 사르Dudu Sarr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는 멋진 밤을 즐기는 세네갈만의 방식이 있어요.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지 않아요. 함께 동참하고 모든 경험을 공유하려고 하죠. 일종의 테랑가teranga입니다.” 그는 세네갈의 기본 정신이자 환대와 너그러움이라는 뜻을 지닌 ‘테랑가’라는 단어로 이 상황을 설명한다.

은두르의 공연은 VIP 행사로 진행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참석자들이 모두 깔끔하게 단장한 모습이다. 맵시 있는 면바지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남자들과 몸매가 드러나는 라이크라 원피스와 화려한 귀고리를 착용한 여자들의 걸음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들은 무대에 선 댄서들이 타마 드럼tama drum(토킹 드럼이라고도 알려져 있다)의 퉁퉁 튕기는 소리에 맞춰 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한데 어우러져 몸을 들썩인다.

그들의 자부심과 흥겨움에 덩달아 들뜬 나는 혹시나 축구 결승전의 결과가 실망감을 가져올까 싶어 두렵다.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다음 날 저녁 리버풀 FC의 스트라이커인 사디오 마네Sadio Mane가 페널티킥을 넣는 순간, 다카르는 기쁨에 휩싸였다.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불꽃이 터지고 재치 있는 소동이 벌어지는 등 즉흥적인 카니발이 도시를 몇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카자망스에 속한 어촌 엘린키네Elinkine.

 

올드 & 뉴

이제 다카르를 벗어나 감비아Gambia 강과 카자망스Casamance 강 사이 해변이 기다란 띠 모양으로 펼쳐진 남쪽 도시 카자망스로 향한다. 끝없이 이어진 모래밭, 은빛으로 반짝이는 개울, 평온한 마을, 거대한 바오밥나무 등이 이 지역에 대한 목가적인 기억을 상기시킨다. 아주 오래전 카자망스를 방문했을 때 나는 반딧불이와 직박구리가 온 사방에서 지저귀는 동안 망고나무 아래에서 낯선 이방인 친구들과 뒤섞여 담소를 나누곤 했다.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던 이곳만의 따뜻한 분위기 덕분인지 나는 카자망스를 잊지 못했다. 하지만 세네갈 남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분리주의 탓에 여행자가 극히 적은 편이다.

카자망스에서는 주로 졸라어jola를 사용하지만 간혹 만딩카어mandinka도 들을 수 있다. 감비아나 말리Mali와 함께 이곳은 재능 있는 코라폴라korafola(가죽으로 덮인 목이 긴 칼라바시 공명기를 가진 현악기인 코라의 연주자)의 본고장이다. 나는 연주를 듣고 싶은 한편, 직접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코라 클래스를 면밀히 알아보니 놀랍게도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이 세네갈 사람이나 감비아 사람이 아닌 웨일스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코라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음악에 주로 쓰이는 켈트 하프와 닮았다는 걸 알게 된 후 이내 수긍한다. 곧이어 감비아에서 잘리로 활동했던 코라 연주자인 파 보보 자바테Pa Bobo Jobarteh가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준다. “아담 도허티Adam Doughty는 웨일스 출신이지만 세네갈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장려하는 훌륭한 연주자예요.” 그리고 덧붙인다. “물론 그가 잘리는 아니죠. 어릴 때 우리의 선율을 배우지도, 연주를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도허티를 훌륭한 교사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악기를 다루는 데 어색한 사람이 코라를 접하고 기초부터 배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가장 잘 알 테니까요.”

 

(왼쪽부터)
더 코라 워크숍에서 세네갈의 전통 음식인 티에부디엔thieboudienne을 나눠 먹는 모습.
더 코라 워크숍에서 연주자인 아담 도허티Adam Doughty가 코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카파운틴Kafountine에 자리한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더 코라 워크숍The Kora Workshop에 들어서자마자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현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음식을 비롯한 홈스테이도 제공한다. 재래식 샤워부스, 태양광 랜턴, 간단히 양념한 생선과 채소, 세네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인 티에부디엔 등. 지나치게 소소하지만 나는 이런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오렌지나무와 야자수, 상록수가 무성한 정원은 새들로 붐빈다. 황금빛 꾀꼬리가 우아한 소리를 내고, 비둘기들은 부리로 땅을 쪼아대고, 긴꼬리딱새는 숲속을 유려하게 걸어 다닌다. 아담Adam과 그의 파트너인 캐스 피커링Kath Pickering은 1년 중 6개월간 이곳에 거주하며 노동자, 장인, 음악인, 고양이 그리고 나와 같은 학생과 함께 더 코라 워크숍을 꾸려나간다.

처음 코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줄을 튕겼을 때 나는 감격했다. 코라는 근사한 만큼 연주하기가 쉽지 않아 내 마음을 초조하면서도 들뜨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남편과 결혼할 때 잘리를 초대해 연주하게 할 만큼 코라를 동경해왔던 사람이다.

전통적인 관습에 따르면 잘리 외에는 누구도 코라를 연주할 수 없고 잘리는 항상 남자였다. 이 같은 관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내게 코라를 연주할 기회가 주어질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연주 기법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긴장을 푸세요.” 아담이 말한다. “처음에는 다들 힘들어해요. 하지만 곧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가 참을성 있게 설명해준 덕분에 나는 며칠 후 초보자를 위한 대표곡인 ‘켈레파 바Kelefa Ba’의 화음을 악보 없이 천천히 연주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카파운틴 앞바다의 통나무 낚싯배에서 어획물을 옮기는 일꾼들.
다카르 연안의 고레섬에서 볼 수 있는 현지 장인들이 만든 직물 공예품들.

쉬는 시간에 캐슈너트 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진 마당에서 목각공인 마이사 은동Maissa Ndong과 도예가인 수아두 콜리Souadou Coly를 비롯한 여러 장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는 햇볕에 미지근해진 허브의 향을 들이마시며 마을의 모래 덮인 거리를 방랑하기도 했다.

여유롭게 걸으면서 지난번 여행과 이번 여행에 어떤 차이점이 생겼는지 돌이켜보았다. 빽빽했던 숲은 조금 듬성듬성해졌고 오토바이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토마토를 피라미드처럼 쌓아놓은 노점상과 막대 아이스크림, 바오밥 주스, 히비스커스 모양을 새긴 가방 등을 파는 구멍가게들은 여전했다. 해변이 인파로 더 북적거리긴 해도 낚시꾼들의 행위는 고대의 리듬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밝은색으로 칠한 통나무 배들이 앞바다에서 까딱거리고 근육질 남자들은 부서지는 파도 앞을 서둘러 지나며 어획물을 한 상자씩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모래사장으로 걸어가 방수포를 들어 올린다.

 

(왼쪽부터)
카파운틴 카니발을 위해 리허설을 하는 하마케 칼론 공연단.
카니발을 준비하는 가면무도회 참가자.

 

오후가 되자 카파운틴이 분주해진다. 휘파람 소리와 북소리, 웃음소리가 도시에 퍼져나가고 무용단인 하마케 칼론Hamake Kalone이 연습을 시작한다. 카니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가면무도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가면무도회는 전통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우스꽝스러운 쿰포kumpo 댄서들과 지푸라기를 뒤집어쓴 듯 무시무시한 칸쿠랑kankurang, 나뭇잎으로 치장한 채 마체테 칼을 휘두르는 가면 쓴 인물들이 등장을 알린다. 한때 그들의 임무는 악령을 쫓아내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카니발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시가 침묵했던 시기에도 현지인들은 칸쿠랑이 잊히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여정의 마지막 날, 가면무도회 참가자 한 쌍이 마을을 신나게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곧 이곳 카파운틴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카니발이 시작될 것이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열기와 젊은 예술가들이 한껏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세네갈 아래 역동하고 있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둥! 둥! 북이 다시 울리기 시작할 때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짜릿하다!

 

글. 엠마 그렉Emma Gregg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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