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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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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해가 질 무렵의 북악팔각정은 서정적이다.

우리나라는 산세가 완만한 노년기 지형을 띠어 사계절 내내 등산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그중 해발고도 342m의 북악산은 여타 산들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다. 과거 이들 산의 능선을 따라 옛 서울의 성곽이 축조되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성곽을 전란을 대비하기 위해 쌓은 요새 혹은 도성의 품위를 위해 두른 울타리라고 여겼다. 그렇게 성곽 안에는 백성의 근심과 사대부의 자부심이 두루 공존했다. 그래서인지 북악산을 오르고 또 내려오는 여정은 모순되는 사색의 연속이다.

 


 

CLIMB
윗공기가 맑아야

 

북악팔각정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

북악산 능선을 따라 동북으로 뻗친 19km 길이의 가파른 도로를 달린다. 굽이굽이 이어진 도로 사이로 서울의 풍경이 휙휙 스쳐간다. 점차 고도를 높이며 드라이브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북악팔각정. 이곳은 시점에 따라 변화무쌍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특히 밤에는 600여 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성곽에 불이 훤히 밝혀진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북악팔각정 전망대에 조망 지점을 표시해둔 안내판이 있으니 이 위치에서 사진을 한 컷 남겨도 좋겠다. 직접 북악산의 단단한 땅을 밟아보고 싶다면 54년 만에 완전히 개방된 탐방로를 걸어보자. 보안상의 이유로 민간인 출입이 오랜 시간 통제되었던 터라 산림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무엇보다 지난 4월 빗장을 푼 남측 탐방로는 청정 그 자체. 성곽길부터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까지 차분히 오르며 등산의 묘미를 깨우쳐본다.

 

갖가지 돌조각들이 다양한 주제로 전시된 돌의 정원.

서울 성곽과 북악산 사이 성북동 언덕에 자리 잡은 우리옛돌박물관. 1만8000m2(5500평)에 이르는 이곳 부지에 선조들의 신념이 깃들어 있다. 먼저 환수유물관에서 바다를 건너온 돌사람들과 마주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밀반출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갔던 문인석 47점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인석은 무덤을 지키기 위해 봉분 앞에 세워졌던 조각으로 머리에는 복두나 금량관을 쓰고 손에는 홀을 들어 위신을 갖추었다. 참고로, 홀은 신하가 왕을 알현할 때 명을 받들어 기록하는 데 사용했던 판이다. 야외 전시관인 돌의 정원에서는 문인석이 가득한 문인의 길을 거닐며 운치를 더할 수 있다.

북악팔각정 서울 종로구 북악산로267
우리옛돌박물관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13길 66

 


 

SWEAT
짜지 않은 짠맛

 

(왼쪽부터) 자하손만두의 떡만둣국이 고운 빛깔을 자랑한다. 계열사의 시그너처 메뉴인 프라이드 치킨과 골뱅이 국수.

부암동 방면으로 하산하다 보면 다 떨어진 체력을 보충해줄 자하손만두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1993년 부암동 토박이인 박혜경 대표가 살던 집을 증축해 문을 열었다. 대표 메뉴인 떡만둣국은 시금치, 당근, 비트로 곱게 색을 냈으며 고상한 맛을 낸다. 이는 매년 음력 1월 충청도에서 쑨 메주를 씻어 말린 뒤 좋은 소금물을 풀어 담근 장으로 간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국립산림과학원 박사에게 영감을 얻은 엄나무순만두도 별미인데 고기를 일절 넣지 않고 엄나무순, 표고버섯, 숙주, 두부 등으로 속을 채웠다. “박사님이 엄나무순의 이로운 성분을 낱낱이 알려주셨어요. 얘네들이 겨우내 아무것도 없던 가지에서 봄 무렵 농축된 에너지를 가지고 탁 피어올라요. 그걸 채취해 만든 만두소에서는 상큼하고 쌉쌀한 향이 나죠.”(박혜경) 그녀는 딤섬, 라비올리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만두를 새로운 식재료로 다채롭게 빚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마지막으로 앵두화채를 머금으며 옛 부암동에 무성했던 앵두나무를 추억해보자.

맞은편 골목 아래에서 깨끗한 기름 냄새가 솔솔 풍긴다. 부암동 특유의 바위가 많은 지형에 자리한 계열사. 이곳은 치킨 본연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자 강원도에서 길러낸 수미감자를 큼지막하게 튀겨 함께 내놓는다. 간을 조절하는 소금 역시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데, 신안에서 간수를 빼고 6년 이상 묵힌 것을 달달 볶아 유해물질을 날린다고. 이렇게 완성한 소금은 굵은 입자가 그대로 살아 있는 데다가 짜지만 달고 고소해 치킨의 풍미를 배가시킨다. 이외에 갖은 해초류를 듬뿍 넣은 골뱅이 국수도 일품이다.

자하손만두 서울 종로구 백석동길 12
계열사 서울 종로구 백석동길 7

 


 

RELAX
충만하게 비우다

 

(왼쪽부터) 싱그럽게 꾸며진 청수당 스파 내부. 자연의 속성을 기반으로 한 보디 테라피. ©글로우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삼림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울창한 숲속을 떠오르게 하는 청수당 스파의 입구가 시선을 끈다. 홀린 듯 개울을 건너자 고즈넉한 한옥이 자태를 드러낸다. 그 뒤로 고층 빌딩이 삐죽 솟아 이곳이 서울임을 상기시킨다. 청수당 스파에서는 자연에 가까운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다. 먼저 컨디션을 꼼꼼히 살피고 압력의 세기 등을 상의한다. 테라피는 크게 보디, 밸런싱, 포커싱, 페이셜로 구분된다. 그중 보디 테라피는 다시 나무, 흙, 물 등으로 나뉘는데 각각 담양 대나무, 20여 종의 유기농 허브, 엄선한 아로마 오일을 사용해 진행한다. 테라피로 승화된 자연의 속성이 긴장했던 근육을 빠르게 이완시켜준다. 잠시 안정된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마음의 균형까지 되찾아본다. 

 

흥천사에는 선조들의 얼이 서려 있다.

북악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흥천사 또한 아파트 단지와 상반된 조화를 이룬다. 흥천사가 창건되었던 곳은 덕수궁 부근이었으나 몇 번의 화재와 억불 정책을 겪고 난 후 이곳에 중건되었다. 남아 있는 불전들은 대부분 철종과 고종 대에 지어져 조선 말기 건축 양식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주불전인 극락보전은 호화로운 단청 장식, 용머리 장식, 문살 장식 등으로 당대 뛰어났던 건축 기술을 한껏 과시한다. 더불어 흥천사는 조선의 첫 번째 왕후였던 선덕왕후의 원찰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피난처까지 조선 왕실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선조들의 삶을 되돌아봤다면 이제 나의 삶을 더듬어볼 차례. 스님과 마주 앉아 차담을 나누며 응어리진 속을 천천히 풀어보자. 

 

청수당 스파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나길 31-19
흥천사 차담 서울 성북구 흥천사길 29

 


 

BREATHE
떠돌이의 시

 

커다란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종석별장.

성북동 언덕 아래 담장이 십자(十)모양으로 뚫려 바람이 쉽게 오가는 이종석별장에 닿는다. 이종석은 조선 전기에 수상 교통의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에서 새우젓을 팔며 부를 축적한 상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바깥 일각대문부터 안대문까지 징검돌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쉬이 걸음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대부호의 별장답게 안채에는 화려한 팔작기와지붕을 얹었고 추녀에는 정교한 풍경을 달았다. 우물가에 우뚝 선 소나무와 감나 무도 격조를 더한다. 이 별장은 일제강점기에 이태준, 정지용, 이효석, 이은상 등 문인들이 모여 문학 활동을 했던 곳으로도 전해진다.

 

(왼쪽부터) 41호 안에서 초록이 우거진 창밖을 감상할 수 있다. 차를 한 잔 머금기 좋은 보안스테이.

1942년부터 약 60년간 또 다른 문인들의 터전이 되어주었던 장소를 찾아가본다. 보안여관은 서정주, 김동리 등이 머물며 문학동인지를 탄생시킨 한국 문학의 산실이었다. 현재는 그 전통을 물려받아 보안1942 건물 3층과 4층에 보안스테이가 들어서 있다. 31호, 32호, 33호, 41호로 나뉜 각 방은 가장 이상적인 임시 거주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커다란 창을 내어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고 현대 디자이너들의 가구를 배치하여 심미성을 높였다. 침대에 누운 채 북악산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도 이상적. 문학 탐구를 이어가고 싶다면 보안책방이 있는 건물 2층으로 내려가보자. 책 판매 외에 종종 세미나, 공연, 워크숍, 독서모임 등을 열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웃집 식물상담소>의 저자 신혜우와 북토크를 진행했는데 그녀는 “식물이 사람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등산의 진짜 묘미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이종석별장 서울 성북구 성북로131
보안스테이 서울 종로구 효자로33

 

글. 김호경HO-KYUNG K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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