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RETURN TO THE WILD
영국 국립공원 모험기
FOLLOW US :
2023년 05월호

가장 높은 산봉우리부터 가장 깊은 호수까지, 다양한 생물과 호흡하는 시골부터 보물 같은 유적지에 이르기까지. 영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15개의 국립공원은 섬의 훌륭한 경관을 다양한 요소로 채우고 있다. 물론 이곳들의 지형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소로 머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험이 펼쳐지는 자연 놀이터이자 살아있는 교실이고, 인류에게 행복과 건강을 선사하는 녹지대가 되기도 한다. 최초의 국립공원 지정 후 70년 동안 이 평화로운 땅은 사람들이 빼어난 절경 속에서 몸으로 체험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장소로 진화했다. 온몸으로 뛰어들어 야생으로 돌아가는 최고의 장소들로 떠나보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따라 떠난
노섬벌랜드

2022년은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이 지어진 지 1900년 된 해였다. 일종의 방점을 찍고 난 후 지금이야말로 노섬벌랜드와 컴브리아Cumbria, 타인위어Tyne and Wear 지방을 넘나들며 길게 세워진 방벽을 따라 숨어 있는 여러 유적지의 풍부한 역사를 탐험하기 좋은 시기가 아닐까?

컴브리아 그린헤드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방벽.

하드리아누스는 방벽이 세워지기 전 이 추운 언덕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야심 찬 로마 황제는 스페인 남부에서 태어났지만, 40대 중반에는 제국의 끝자락인 이 자리에 와서 후대에도 남을 건설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2세기 브리타니아에서는 지중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졌을 터. 황제는 구릉진 푸른 언덕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좀 더 두꺼운 코트를 입지 않은 걸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그에 대한 답을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지만, 그의 방문이 남긴 유산은 한때 지도를 동과 서로 구분했던 118km 길이의 방벽 일부로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견뎌냈다. 노섬벌랜드국립공원Northumberland National Park에 길게 뻗은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일부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종달새가 요란하게 지저귀고 탁 트인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온화한 봄날의 아침, 고대 건축물을 따라 거닐고 있는 나는 행운아다.
헥샴Hexham에 있는 더 실The Sill: 국립지형과학관National Landscape Discovery Centre을 나선 지 불과 1시간밖에 안 됐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이어진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내 다리는 이미 천근만근 지쳐가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 주변을 둘러본다. 남쪽으로 페나인산맥Pennines이 펼쳐진 이곳은 오늘날에도 외진 곳으로 느껴진다. 계곡을 오르고 언덕을 내려가는 방벽을 완공하는 데 적어도 6년이 걸렸다. 방벽을 짓기 위해 징집된 로마의 노동자들에게는 고난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방벽 1마일마다 마일캐슬을 세웠고 그 양옆으로 작은 탑을 지었다. 약 2000년이 흐른 뒤에도 고대 석조 건축물의 일부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방벽을 따라 걷는 것은 자연과 함께하는 최고의 하이킹이지만, 300년 넘게 이 땅을 지배했던 로마인들의 유일한 흔적은아니다. 이날 오후 나는 방벽 건설 약 40년 전부터 군사 마을 역할을 했던 인근의 빈돌란다Vindolanda 유적을 방문했다. 발굴을 마치고 건물의 토대를 그대로 남긴 유적에는 목욕탕과 장교 숙소, 주피터 신을 위한 신전 자리가 남았다. 유적지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가죽 신발과 무거운 항아리, 동물 발자국이 찍힌 타일 등을 볼 수 있다.
이 타일은 점토 위로 로마 시대 강아지가 지나가면서 문양을 만들어낸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살아 숨 쉬는 마을이었어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박물관 직원이 방문객에게 설명한다. 직원의 말은 박물관에서 가장 귀중한 유물인 일명 빈돌란다
목판Vindolanda Tablet에서도 엿볼 수 있다. 종이처럼 얇은 오크나무 껍질과 자작나무 껍질에 잉크로 문구를 적은 이 목판은 영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문서다. 1300여 개의 목판 대부분이 영국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일부는 이곳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라틴어로 적어 내려간 목판 중에는 이곳에 주둔했던 군인과 가족이 주고받은 개인 서신, 더 많은 군사와 물품을 요청하는 공식 문서도 있다. 이 모두가 로마제국의 변방 지역에서 살던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국립공원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언덕에 세워진 하우스테즈 로마 요새Housesteads Roman Fort도 그러하다. 오늘날 여행자들은 한때 800여 명의 군인이 주둔했던 이곳의 무너진 유적 사이를 천천히 거닐 수 있다. 로마 양식으로 지은 직사각형 요새는 유사한 유적지 중 가장 잘 보존된 곳. 돌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곡식 창고와 병원 등 웬만한 시설을 모두 갖추었을 뿐 아니라 고대 로마식 화장실도 구경할 수 있다.
요새의 한쪽 면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이어진다. 나는 석조 구조물 위로 올라가 솟아오른 지대를 따라 이어진 벽 위를 걷는다. 언덕 너머로 이른 오후의 바람이 불어오고 지는 해가 오래된 요새를 비춘다. 이처럼 역사적 유적지를 밟고 걸으면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서기 122년, 하드리아누스가 방벽을 세운 이유는 어떤 전기 작가의 주장처럼 로마인들을 야만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테지만, 지금 우리에게 놀라운 지형물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야생으로 돌아가는
다트무어

아웃도어 전문가 피 다비가 다트무어국립공원Dartmoor National Park의 가장 외진 곳들이 어떻게 황야 하이킹과 야생 캠핑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보여준다.

다트무어국립공원에서 즐기는 야생 캠핑

사람들은 항상 다트무어를 설명할 때면 ‘야생’과 ‘황야’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이곳만의 독특한 느낌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드넓은 평야에 띄엄띄엄 놓인 바위산은 방향을 잡을 때 좋은 지표가 되기도 하지만 위압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돌벽과 환상열석, 돌무덤이 있는 이곳에는 고대의 기운이 서려 있는 듯싶다.
걸스카우트 시절 다트무어국립공원에서 첫 야생 캠핑을 해본 나는 선생님이 된 이후에도 캠핑을 하러 왔다. 처음으로 혼자 어린 학생들을 인솔해서 이곳에 왔을 때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과 험준한 지형에 대한 걱정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이곳을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나는 야생 캠핑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지만, 40대 초반 처음으로 혼자서 캠핑을 나섰을 때는 내게 필요한 모든 물건을 등에 짊어지는 느낌이 짜릿하게 다가왔다. 집에선 살고 있는 공간과 가족, 남편, 내 직업 그리고 거기에 딸려 오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야생에서 캠핑을 하고 있노라면 경치와 공허함, 무엇보다도 자족적인 상태가 좋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이다.

 


물을 따라 유유자적
로몬드 호수와 트로삭스

호수가 가득한 지역은 수영은 물론 카약, 웨이크보드, 스탠드업 패들보드, 유람선 투어 등 다채로운 수상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천연 놀이터다.

로몬드 호수에서 카약 타기.

스코틀랜드의 로몬드 호수&트로삭스국립공원Loch Lomond & The Trossachs National Park에는 수많은 호수가 있다. 무려 22개 호수가 자리한 1865㎢ 규모의 국립공원은 영국에서 최고의 아웃도어 여행지로 손꼽힌다. 로몬드 호수 자체가 물 위아래서 여러 액티비티를 즐기는 풍광 좋은 놀이터다. 멀리까지 나갈 수 있는 보트 투어를 통해 호수 남쪽에 흩어진 여러 무인도를 밟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영국에서 가장 큰 내륙 수역인 로몬드 호수는 높이 솟은 산에 둘러싸여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하지만 주변의 작은 호수도 지나칠 수 없다. 공원 안의 또 다른 고일Goil 호수에는 카약과 카누, 패들보드를 대여하는 전문점이, 언Earn 호수에는 웨이크보드 강습소가, 루브나그Lubnaig 호수는 자연 수영장으로 유명하다. 또 다른 추천 호수인 콘Chon 호수는 산봉우리와 숲 지대에 둘러싸여 있고, 카트린Katrine 호수는 월터 스콧 경의 유명한 시 〈호수의 여인〉의 영감이 된 곳이다. 이러니 국립공원 측에서 수상 안전을 강조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천연 수영장에서는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여행자들이 수영을 즐길 때는 전신 수영복을 착용하고, 날씨를 확인한 후에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무엇보다, 단독 입수는 절대 피해야 할 일. 이렇게 기억에 남을 만한 장소에서 누군가와 같이 수영의 추억을 공유하는 건 무척 근사할 것이다.

 


습지대 사파리
브로즈

이스트 앵글리아East Anglia 지방에 자리한 303km² 지대의 영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브로즈국립공원Broads National Park은 야생동물 관찰자에게 큰 선물을 선사하는 곳이다.

(위에서부터)
브로즈국립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과 흰색의 풍차. 브로즈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코닉Konik 조랑말.

브로즈에 아침 해가 떠올랐다. 쾌청한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습지대는 살얼음으로 얇게 덮여 있다. 캔들 제방Candle Dyke의 갈대숲 사이를 걸어 물가에 있는 옛 장어잡이 헛간으로 향하던 우리 일행 세 명은 머리 위로 겨울새 한 무리가 나타나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머리털이 비쭉 솟아오른 100여 마리의 새가 남쪽 해안을 향해 날아간다. 동행하던 브로즈관리청 직원 에밀리Emily가 댕기물떼새lapwing라고 알려준다. 이어서 근처 밀짚 색깔의 수초 속에서 높은음으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밀리가 손가락 하나를 들고 웃으면서 속삭인다. “물총새kingfisher예요.”
브로즈는 영국에서 가장 작은 국립공원으로 면적이 303km² 정도이다(가장 큰 국립공원인 케언곰스국립공원Cairngorms National Park은4532㎢에 달한다). 하지만 크기가 매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거울처럼 잔잔한 물이 거의 비어 있고, 이 지역에 1년 내내 서식하는 새와 시베리아와 스칸디나비아에서 날아온 겨울새로 하늘이 북적이는 1월에 이곳을 찾았다. 노퍽주Norfolk의 히클링 브로드Hickling Broad가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지이지만, 브로즈는 서퍽주Suffolk의 경계선까지 넘어가니 ‘노퍽 브로즈Norfolk Broads’라는 지명은 잘못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새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어느새 우리는 주민들이 피크닉 보트라고 부르는 작은 배를 타고 물 위를 나아가고 있다. 앞쪽에는 차양이 달려 있고 뒤쪽은 개방된 배가 좁고 구불거리는 수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평평한 지대 위로 옛 배수 시설이 이따금 보이는 것 외에는 온통 갈대와 하늘뿐이다. 그러다 물가에 정박한 거주용 선박 한 채를 지나는데, 문이 열리고 털모자를 쓴 남자 한 명이 김이 오르는 머그컵을 들고 나오며 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는 우리와 오늘 마주친 유일한 사람이다.
앙상한 오리나무에 앉아 있다 날아오르는 이날의 첫 개구리매marsh harrier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1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쥐 같은 먹이를 찾기 위해 물 위로 날갯짓을 하는 십여 마리의 개구리매를 더 보았다. 표지석 위에 꼿꼿하게 서 있는 가마우지와 조류에 몸을 맡긴 채 수면에 둥둥 떠 있는 이집트기러기, 청록색 번개처럼 재빠르게 나는 물총새도 보인다. 브로즈 깊숙이 들어가자 어여쁜 알락오리gadwall 무리가 얕은 물에서 첨벙거리고 있다.
“저기! 두루미가 있어요!” 에밀리의 동료인 한나Hannah가 외친다. 하얗고 거대한 새 다섯 마리가 우리 위로 날갯짓을 한다. 머리는 붉은색이고 목은 홍학처럼 한껏 뻗어 있다. 이국적인 모습의 새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며 유유히 날아간다. 서 있으면 키가 무려 1.5m나 되는 이 새들은 한때 영국에서 멸종했지만 유럽에서 수입한 알로 다시 개체수를 늘렸다고 한다. 노퍽의 습지대로 돌아온 두루미는 보존 성공 사례가 됐다. 제비꼬리나비swallowtail butterfly, 수달, 펜오키드fen orchid 등 영국의 희귀 야생 동식물의 4분의 1 이상이 이곳 브로즈에서 발견된다.
조류만이 동식물학자의 발길을 이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가 우위를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다시 마른 육지로 돌아온 나는 인근의 스터브밀Stubb Mill에 있는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랩터 루스트Raptor Roost라고 불리는 전망대에 두꺼운 장갑을 낀 조류관찰자 여럿이 모여 있다. 축축하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의 사바나처럼 탁 트인 지대를 내려다보면서 더 많은 개구리매와 두루미 그리고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수컷 잿빛개구리매hen harrier를 발견한다. 겨울 해가 사라지자 고라니 두 마리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나의 야생동물 체험은 다음 날 이른 아침 국립공원 끝자락에 있는 호시 비치Horsey Beach에서 막을 내렸다. 모래언덕 위를 올라 해변을 따라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그리고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광경을 마주한다. 450여 마리의 애틀란틱 회색 물개Atlantic grey seal 번식지다. 북극곰처럼 새하얀 귀여운 새끼들이 거대한 점박이 수영선수인 부모 틈에 비집고 있다.
몇몇 수컷이 주변을 경계하며 물속에서 헤엄치며 짖고 있지만 대부분은 해변에서 낮잠을 자는 중이다. 아침식사 후 즐기는 달콤한 휴식일 것이다. 이스트 앵글리아의 물기 많은 이 땅이 나른해 보일지 몰라도, 이처럼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물 따라 바위 따라
펨브룩셔 해안

웨일스의 거친 절벽 해안선을 따라 짜릿한 코스티어링을 즐기자.

(왼쪽부터)
펨브룩셔의 캐슬마틴Castlemartin 인근에 있는 프레시워터 웨스트Freshwater West 해변. 펨브룩셔국립공원의 스코머섬SkomerIsland에 사는 물개.

펨브룩셔해안국립공원Pembrokeshire Coast National Park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1952년, 지난해 70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념비적인 한 해를 보냈다. 사실 아웃도어 마니아들은 오래전부터 폭넓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웨일스 귀퉁이에 자리한 이곳을 즐겨 찾았다. 공원의 거친 해안선은 하이킹, 클라이밍, 야생동물 관찰을 하러 오는 여행자들에게 인기이고, 바다는 서핑을 즐기고 카누와 카약을 타러 오는 이들의 발길을 이끈다. 하지만 육지와 바다가 혼합된 액티비티로 수십 년 전부터 이곳의 이름을 알린 것이 있다. 바로 영국의 해안 곳곳에서 행해지는 코스티어링인데, 이 해안 지역이 그 중심지다. 세인트 데이비스St. David’s에 있는 TYF 어드벤처는 코스티어링이 처음 소개된 1986년부터 지금까지 20만 명이 넘는 여행자들에게 코스티어링 가이드를 제공해 오고 있다. 이 지역 해안지대의 빼어난 절경 못지않게 유명한 코스티어링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코스티어링의 인기는 짜릿함과 단순함에 있다. 현지에서 대여해주는 헬멧과 잠수복, 낡은 운동화 등 몇 개의 장비만으로 영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해안 절벽을 기어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물속을 탐험하는 등의 자유로움이 코스티어링만의 매력이다. 당연히 개개인의 능력과 담력에 맞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 낮은 지점에서 뛰어내리고 쉬운 바위를 기어오를 수도 있고, 가장 높은 절벽에서 몸을 내던질 수도 있다. 그게 어디든 분명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암벽등반가의 성지
피크 디스트릭트

클라이밍 가이드인 폴 루이스Paul Lewis가 영국 중부의 높은 암석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길을 찾는 법을 배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

피크 디스트릭트 스태니지 에지의 암벽등반가들.

나는 피크 디스트릭트 고원지대 바로 너머에 있는 스톡포트Stockport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이곳에 오기 시작한 나는 바위만 보면 기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시절 우리는 암벽등반에 대한 그 어떤 지식이나 기술도 없었다. 그저 모험에 대한 순수한 열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10살 무렵부터 밧줄을 이용한 등반에 나섰다. 훈련이나 가르침은 없었으나, 그저 살아남는 것을 통해 한 가지를 배우는 것이었다. 권할 만한 방법은 절대 아니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는 통했다. 우리는 암벽을 오르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배웠다. 나는 25년 전에 국립공원 안으로 이사를 왔다. 암벽을 오르는 자유와 자연과 함께하는 기분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좋다. 규칙에 따른 암벽등반은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이므로 그 자체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크다. 또 다른 요소는 유대관계다.
바위를 붙잡고 있으면 바위와 바위의 역사에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등반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이 오로지 등반에만 집중한다. 외롭고 감정이 풍요로워질 때도 있고, 사교성이 강해질 때도 있다. 당연히 성취감도 매우 높다. 오르는 순서를 정하다 어려워지면, 발을 놓는 위치나 바위를 잡는 손가락 모양을 바꾸면서 계속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법을 찾게 된다. 아직도 수년째 등반 해법을 못 찾은 피크 디스트릭트 지점이 몇 개 있는데, 언젠가는 그 답을 찾을 것이다.
여행 장소가 무궁무진하고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단 한 곳만을 고른다면 스태니지Stanage를 추천한다. 밧줄을 이용한 등반과 장비 없이 하는 볼더링 등 다양한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짜릿한 겨울 산행
스노도니아

웨일스 최고봉이 있는 스노도니아국립공원은 웨일스와 영국 내에서 가장 면적이 큰 고지대로, 등산객들은 80여 개에 이르는 높이 610m 이상의 산봉우리 정복에 도전할 수 있다.

(왼쪽부터)
스노도니아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란베리스 마을의 린 파드란 호수. 트라이판 봉우리가 보이는 오그웬 계곡에 서 있는 하이커.

카르네드다피드Carnedd Dafydd와 스노돈Snowdon 최정상의 높이 차이는 고작 41m. 하지만 두 산의 차이점은 그 수치보다 훨씬 더 크다. 한 봉우리에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 관광용 철길이 있고 성수기가 되면 퇴근길의 런던 지하철에 버금가는 긴 줄이 늘어서는 반면, 다른 봉우리는 사람은 없지만 바위가 듬성듬성한 고원과 심장을 녹이는 절경이 있다. “이 모든 것을 눈에 담으세요.” 스노도니아 어드벤처의 가이드인 마크Mark가 웃으면서 말한다. 이제 막 카르네드다피드 정상에 도착한 다섯 명으로 이뤄진 우리 일행은 앵글시Anglesey와 아이리시해가 보이는 절경을 숨죽이고 감상한다.
스노도니아국립공원Snowdonia National Park에는 피해 갈 수 없는 산봉우리가 위엄 있게 자리한다. 웨일스어로 우르 위드바Yr Wydffa로 불리는 스노돈산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곳. 하지만 2132㎢에 달하는 면적을 단숨에 오르는 것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인 이 땅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셈이다. 610m 높이 이상의 80여 개 봉우리가 있는 국립공원은 연중 내내 개방되어 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공원 구석구석을 탐방했지만, 카르네다이Carneddau 산맥을, 그것도 겨울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마크가 필요한 것이다.
“카-르네다이라고 발음하면 돼요.” 이른 아침, 반짝이는 오그웬Ogwen 호숫가에서 만난 마크가 알려준다. 맑고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는 파란 하늘 아래 북쪽으로 쭉 뻗은 산맥을 바라본다. “웨일스와 영국을 통틀어 가장 넓은 면적의 고지대입니다. 오늘 등반하면서 산봉우리 세 개를 오르고, 바위도 조금 기어오르고, 겨울 산행에 대해서 배울 거예요. 전체적으로 6시간 정도 예상됩니다. 길 찾기는 저에게 맡기시고, 그저 즐겁게 등반하세요.”
우리는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로이르Lloer 강 옆을 따라 길을 나선다. 햇살이 마침 언덕 아래 측면을 비춘다. 1년 내내 스노도니아의 여러 구역을 탐험할 수 있는 이런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코스 선택이나 위험에 대한 대처, 급격한 날씨 변화에 따른 빠른 의사 결정 등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가이드가 대처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마크는 몇 십 년의 산악 경험을 가진 전문가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정된 속도로 언덕을 오른다. 1월의 맑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산을 오르는 상쾌함을 만끽한다. 30분쯤 지났을까, 마크가 잠시 멈춰 쉬어 가자고 한다. 뒤를 돌아보니, 하얀 구름 덩어리가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랑골렌Llangollen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매우 극적인 광경이다. “기온 역전에 의한 현상입니다. 윗부분의 따뜻한 공기가 아래의 찬 공기를 가둔 거예요.”(마크)
오늘은 날씨가 온화하지만, 스노도니아는 예부터 기후가 변덕스러워서 갑자기 추워져 눈이 몇 미터씩 쌓이다가 날씨가 좋아지고, 그다음 주에 다시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고. 마크가 며칠 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는데 마치 알프스 스키장 같았다. 마크는 우리를 이끌고 북쪽으로 향한 도랑을 건너 펜어르올레웬Pen yr Ole Wen의 둥근 봉우리를 오른다. 그리고 이어서 카르네드파크Carnedd Fach 산에 있는 돌무덤을 보기 위해 산등성을 따라 한참 걸은 다음, 1044m 높이의 카르네드다피드 정상을 밟는다. 걷는 내내 힘을 아끼고, 발 디딜 곳을 찾고, 안전하게 등반하는 방법에 대해서 들었다. 산 위에 있는 퍼논Ffynnon 호수에 다다른 후에는 천천히 하산하면서 9.7km 등반을 완주한다. 억센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야생 카데나우 조랑말이 보인다. 그 뒤로 스노도니아 중부의 산봉우리가 환상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트러반Tryfan 산의 피라미드 같은 웅장함, 글라이더포르Glyder Fawr와 글라이더파크Glyder Fach의 뾰족한 산 능선 그리고 멀리 보이는 스노돈의 봉우리 세 개. 이곳의 풍광 한가운데에 있노라면 산의 기운이 나를 감싸는 듯한 짜릿한 전율이 절로 느껴진다. 한가로이 산악 카페에 앉아 있을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최고의 황홀경이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산책
엑스무어

영국에서 가장 높은 해안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엑스무어국립공원의 북쪽 해안선은 구릉진 언덕과 숲을 거닐 수 있는 하이킹 명소다.

엑스무어국립공원의 바위 계곡.

엑스무어라고 하면 다부진 조랑말이 뛰놀고 19세기 로맨스 소설의 배경인 둥근 언덕과 푸른 계곡을 먼저 떠올리곤 하지만, 세계적인 해안선으로도 유명하다. 엑스무어국립공원의 북쪽 경계선을 따라 이어진 55km 길이의 해안선은 영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해안 절벽이 있는 곳. 최고봉이 무려 244m에 달한다. 성수기에 린머스Lynmouth에서 마인헤드Minehead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관광버스로 꼽힌다.
하지만 이 지역을 꼭 거추장스럽고 느린 차를 타고 지나가야 할까? 엑스무어 끝자락에 위치한 마인헤드의 서머싯 리조트에서 환상적인 사우스웨스트 코스트 패스가 시작된다. 마을에 모래놀이 하기 좋은 해변도 있지만, 두 개의 거대한 손이 지도를 펼친 모습의 조각상이 있는 산책로를 걸어보자. 지도에 데번주Devon와 콘월주Cornwall 전체를 돌아 도싯Dorset의 풀 항구Poole Harbour가 있는 남쪽 해안에서 끝나는 1014km 길이의 아름다운 해변 산책로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코스를 완주하는 데 7~8주 정도 걸린다고. 그래도 엑스무어 북쪽에 있는 이 구간은 비교적 짧은 길이의 입문자 트레일에 속한다. 적당한 속도로 동쪽의 마인헤드부터 서쪽의 콤마틴Combe Martin까지 엑스무어 해안을 따라 걸으면 사흘 정도 소요된다.
폴록위어Porlock Weir와 린머스에 하룻밤씩 머문다면 일정이 맞다. 하이킹하면서 볼 수 있는 절경은 아름다운 숲과 브리스틀 해협이 펼쳐진 경치, 바위 계곡Valley of the Rocks으로도 알려진 높이 솟아오른 암석 무리를 꼽을 수 있다. 19세기의 영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가 아편에 취한 채로 〈쿠블라 칸Kubla Khan〉을 썼던 농가도 지나간다. 하지만 엑스무어가 대체로 그렇듯, 이곳 해안의 매력은 눈에 보이는 풍광이 아니라 분위기와 주변의 마법에 있다. 맑은 날, 이곳에 버금가는 다른 장소를 영국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크스카이 관광으로 유명한
요크셔데일스

클라이밍 가이드 폴 루이스가 영국 중부의 높은 암석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길을 찾는 법을 배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

요크셔데일스국립공원의 물푸레나무 한 그루 뒤로 펼쳐진 은하수.

2020년, 국제 다크스카이 보호구역으로 공식 지정된 요크셔데일스는 영국에서 반짝이는 별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 중 한곳이다. 경사진 들판과 얼기설기 쌓아 올린 돌담, 양 떼와 갈색 토끼, 낮은 언덕과 투명한 개울까지, 낮에 본 요크셔데일스는 동화책 속 그림 같은 영국 시골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여행자들이 이 지방을 끊임없이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산길을 달리는 펠-러닝fell-running이나 고급 티룸tearoom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즐거움이 기다린다. 또한 해가 지고 나면 데일스는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내기도 한다.
지역 주민들이 합심해서 넓은 지역에 걸쳐 빛을 소등한 결과, 요크셔데일스국립공원은 2020년 국제 다크스카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호스Hawes와 멜햄Malham에 있는 방문자센터, 벅덴Buckden에 있는 주차장, 영국 최고지대에 있는 펍인 탄 힐 인Tan Hill Inn 등 네 곳이 다크스카이 디스커버리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별 관찰 명소는 공원 서쪽의 리벨헤드 구름다리Ribblehead Viaduct 주변 지역이다.
천문학 관련 관광업은 최근 들어 매우 주목받는 분야다. 캠핑과 글램핑장, 비앤비 숙소와 호텔 등 ‘다크스카이 친화’ 업체로 선정된 공원 주변의 20개 이상 사업체에서는 장비와 별 관찰 팁을 제공할 뿐 아니라, 빛공해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데일스의 반짝이는 하늘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면, 매년 2월과 3월경에 열리는 다크스카이 축제에 맞춰 방문하자. 2주 동안 진행되는 축제 기간 동안 사진 촬영 워크숍과 그룹 펠-러닝, 야간 야생동물 트레일 걷기와 카누 타기 등 다양한 야간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글. 벤 러윌BEN LERWILL
사진. 알라미, 로몬드 호수&트로삭스국립공원, 게티, 슈퍼스톡, 매튜 윌리엄스-엘레스, 제레미 플린트 포토그래피, 닉 워너
RELATED
TRAVEL WITH PASSION AND PURP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