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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철도 대모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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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호

남쪽 해변부터 북쪽 차밭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인도의 광범위한 철도망은 여행자에게 새롭고 낯선 장소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모험심에 불씨를 지펴줄 인도. 지금 기차에 올라 완벽한 대모험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자.

라자스탄 티바리를 지나는 자이살메르행 기차 안에서 작가 모니샤 라제슈가 글을 쓴다

"1853년, 인도의 첫 여객 열차가 보리분데르Bori Bunder에서 타네Thane까지 34km 길이의 철로를 달리던 순간부터, 이 나라의 철도는 작가와 예술가, 사진가 그리고 영화감독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다즐링 주식회사〉와 〈슬럼독 밀리어네어〉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 요새 아래에 있는 마 즈왈라무키 데비Maa Jwalamukhi Devi 사원으로 이어진 벽을 따라 그려진 벽화.

총 6만4373km 길이로 이어진 철로는 국토 최남단의 타밀나두주Tamil Nadu부터 서쪽의 구자라트주Gujarat까지, 북쪽의 잠무Jammu와 카슈미르Kashmir부터 동쪽의 아삼주Assam에 이르기까지 마을을 지나 산과 해안가를 돌아 비행기로는 절대 갈수 없는 깊은 곳 숨은 틈으로 여행자를 실어 나른다. ‘나라의 생명선’이라는 별명을 가진 철도는 인도의 심장을 뛰게 하는 동맥이다. 130만 명을 고용하고, 매일 1만3000대의 기차로 2500만 명의 승객을 태운다. 초고속 샤탑디Shatabdi 열차와 장거리 전용 라즈다니Rajdhani 특급 열차, 여기에 화려한 관광객용 열차와 아직 구름 사이를 칙칙폭폭 달리는 옛 증기 열차 등 철로를 달리는 모든 기차는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중에서 조금 더 돋보이는 열차는 분명 있다. 
열차에 탑승하면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전형적인 열차칸은 하나의 사회적 소우주다. 한쪽엔 에어팟을 착용한 대학생들이, 다른 쪽엔 전통 의상을 입은 농부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차이 차이, 가람 차이”, “커피, 커피, 커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승객들은 위아래로 누워 잠을 청하고, 서로의 팔꿈치와 무릎을 부딪치면서 지나간다. 다른 승객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그들의 사생활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도 기차 특유의 기이한 조화가 존재한다.
2010년, 나는 기차표를 예매해 <기차 80대를 타고 떠난 인도 여행>이라는 책의 집필을 위한 조사를 하려고 4개월간 인도 전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밝히는데 인도에 도착했을 당시 난 기차에 큰 관심이 없었고, 우리 가족이 기차 여행을 즐기는 것도 아니었으며, 어린 시절 기차에 대한 추억도 없었다. 그저 기차표를 가지고 있으면 사회의 한 단면에 빠져들어서 인도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여행하는 동안 인도계 영국인으로서 나는 ‘영국인’들이 과거에 이 놀라운 철도를 건설했다는 점을 자주 상기했다. 많은 사람이 사실 철도 건설에 나선 영국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잘 모르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영국의 자애로운 통치가 아닌 더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자원을 약탈하는 방법이었다.
올해, 인도 철도는 개통 170주년을 맞았다. 나는 옛 추억을 떠올려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시 열차에 올랐다. 처음 철도에 마음을 빼앗기고 열린 문 앞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던 시절과 비교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여러 이야기와 실질적인 안내서가 증명하듯 철도만큼 인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복잡함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라자스탄주에서 온 여인이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 안에서 거울로 자기 모습을 보고 있다.

 

조드푸르에서 자이살메르까지
사막 열차
‘블루 시티Blue City’ 조드푸르에서 출발해 자이살메르로 향하는 길. 모험 가득한 철도 노선을 따라 왕들의 땅Land of Kings 더 깊숙한 곳으로 여정을 이어간다. 아름다운 사막을 배경으로 주변은 온통 금빛 가옥이 반짝인다.

오래된 시계탑인 간타 가르Ghanta Gar는 조드푸르 사다르 시장의 랜드마크다.

기차가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슬리퍼 신은 잰걸음 소리와 바구니를 들고 있는 행상들의 들뜬 외침이 들린다. 기차에서 미리 내린 승객들은 출구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가는 반면, 기차에 남은 사람들은 기차 출입문 앞에서 올라타려는 사람들과 뒤엉킨다. 내가 인도 철도의 특이한 면을 접한 지 13년이 지났는데, 다시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반갑다. 파키스탄 국경 인근, 라자스탄주Rajasthan 서쪽에 있는 자이살메르Jaisalmer로 가는 사막 열차 모험을 떠나기 위해 자이푸르Jaipur에서 이곳 조드푸르Jodhpur로 왔다. 기차를 환승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푸른 벽의 도시를 구경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조드푸르에 왔을 때 나는 후추 꾸러미와 소금 덩어리를 구매하고, 카스 바그Khaas Bagh 호텔에 있는 중세풍 하벨리(인도 전통 건축물) 뜰에 앉아 계피 담배를 피웠다. 거대한 붉은 사암 탑이 도시를 압도하는 15세기 메헤랑가르성Mehrangarh Fort을 제외하고는 도시를 거의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베레모를 쓰고 조끼를 입고 허벅지는 헐렁하고 무릎 아래로는 조이는 검정 조드푸르 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가이드 마하비르 싱Mahaveer Singh과 함께 조드푸르를 더 깊이 파고들까 한다. 사원의 종소리와 스쿠터의 모터 소리가 뒤섞인 소음이 들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민트색 창틀이 눈길을 끄는 푸른 가옥이 자리한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을 걷고 있으니 아치형 입구에 앉은 살찐 비둘기들이 내는 구구구 소리만 들린다. 마하비르는 하늘보다 밝은색 집들이 줄지어 선 골목을 걷다가 코발트블루 색 페인트를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파란색의 독한 냄새가 모기를 물리치는 효과가 있거든요.” 파란 염료는 약초에서 얻은 것이라고 그가 설명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름에 튀긴 파라타paratha 빵 냄새만 난다.
반으로 잘라 물감을 칠해 화병으로 만든 콜라병들이 사암벽에 고정되어 있고, 분홍색 카네이션이 화병을 채우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 한 명이 그 옆에 뚫린 구멍 안에 보관된 비단으로 감싼 신 조각상을 닦는다.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브라만Brahman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이 지역은 공동체의식이 강하며, 열어둔 창문과 문 앞에 주민들이 함께 모여 앉아 있다. “예전에는 노인들이 함께 카드놀이도 하고 담소도 나누었어요. 서로 다 알았고 안전하게 느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 하지않았죠.” 마하비르가 설명한다. “자식들은 결혼해서 도시로 떠나지만 그들은 여기 남을 거예요. 저는 조드푸르 인근에서 태어나서 조드푸르를 떠난 적이 없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그래도 자이살메르가 아름답다는 건 알아요.” 그가 이어서 말한다.

간시암 가우라니는 조드푸르 사다르 시장에 있는 자신의 오믈렛 가게에서 매일 1000개 이상의 달걀을 깨뜨린다.

지금 이 순간 도시의 일부만 봤을 뿐인 나도 조드푸르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하지만 1시간 후에 기차가 출발하기에 기차에서 먹을 과일과 간식을 사러 사다르 시장Sardar Market으로 향한다. 한쪽에는 슈리 미슈릴랄 호텔Shri Mishrilal Hotel에서 마카니야 라시makhaniya lassi(사프란과 장미수로 만든 향긋한 요거트 음료)를 주문하는 줄이 길게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믈렛 아저씨’ 간시암 가우라니Ghanshyam Gawlani가 마살라 크리미 치즈 오믈렛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다. 뜨거운 아물Amul 치즈가 가장자리로 흘러내리는 바삭한 네모난 빵이다. 기차에서 먹을 샌드위치 두 개를 포장해서 조드푸르 정션 기차역으로 돌아온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열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여행자들은 상자에 걸터앉거나 가방을 베고 승강장 바닥에 누워 휴대전화로 드라마를 시청한다. 디지털 전광판이 고장 나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서성였다. 그들 대부분은 기차를 타려는 승객이 아니고, 담소를 나누며 인도 특유의 ‘시간 때우기’를 하러 온 사람들이다. 기차가 곧 모습을 드러내자 승강장이 순식간에 살아난다. 사람들은 상자를 머리에 이고, 아이들을 허리춤에 들고, 움직임을 재촉하기 위해 앞에 있는 사람의 등을 손가락으로 정중하지만 힘 있게 찌른다.
사막의 열기 속에 내 좌석은 이미 뜨겁게 달궈졌고, 자리 쟁탈을 위한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그래도 몇 번의 손짓과 고개의 끄덕임으로 서로 조금씩 움직이며 자리를 만든다. 승객 한 명이 유튜브로 힌디어 영화를 보려고 위쪽 침상에 올라간 덕분에 나는 아래 침상을 넓게 사용하면서 가로막는 것 없이 창문 밖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때맞춰 일어난다. 차를 파는 사람인 차이왈라chaiwallah가 큰 통을 들고 외치면서 열차 칸에 들어오고, 뒤따른 다른 상인의 손에는 이어팟과 장난감 크리켓 세트와 중국산 땀 흡수 양말이 들려 있다. 기차 안에서 파는 싸구려 물건들을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땀에 절은 운동화 속 맨발을 깨닫고 기분 좋게 한 켤레 구매한다. 2분 뒤, 100루피(한화 약 1500원)를 지불한 나는 뽀송뽀송 마른 발을 올려 책상다리를 하고는 창문 옆에 편하게 앉는다.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흩날리는 색종이 조각처럼 날갯짓하는 노랑나비 떼를 지나 승강장에서 빠져나간다.

(왼쪽부터) 하모늄 연주자가 자이살메르의 가드시사르 호수Gadsisar Lake에 온 방문객을 위해 연주한다.
신선한 호박과 가지가 세척되어 판매될 준비를 마쳤다.

기차가 속도를 조금씩 높여 달린다. 머리카락과 옷 사이로 스미던 따뜻한 미풍이 뜨거운 바람으로 바뀌고 먼지가 눈으로 날아든다. 얼른 모자를 눌러쓰다가 저 멀리 있는 낙타와 빨랫줄에 걸린 알록달록한 속옷, 햇살에 반짝이는 코걸이를 한 여인들이 벽돌이 담긴 바구니를 옮기는 모습을 발견한다. 라자스탄주 서쪽 끝에 자리한 자이살메르는 지리적 위치상 왕들의 땅을 구경하기 위해 주로 들르는 우다이푸르Udaipur나 자이푸르, 조드푸르만큼 접근성이 좋은 곳은 아니다. 이 철도 구간은 빠르고 편리한 열차 서비스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여행이 신나는 도전이 된다. 기차 안에는 식당칸이 없고 행상인도 많지 않으며 승객도 적다. 하지만 6시간 동안 열린 창문을 통해서 염소를 돌보는 양치기, 문가에서 곡식을 체로 치는 부족 여인들, 꽃이 핀 수수밭을 보고 있으면 먼지와열기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만도레Mandore 마을을 지나니 바깥 풍경이 어느새 시골로 바뀌어 있다. 우기로 풀이 아이 키만큼 자라 우거진 풀숲 사이로 여인들이 긴 낫을 들고 나온다. 버섯 모양 오두막과 나무에 매달린 타이어를 타고 노는 아이들, 깃발이 걸린 작은 흰색 신전을 지난다. 전통 터번을 머리에 두른 노인이 승차하더니 현악기의 일종인 라반하타ravanhatha를 연주하면서 버스킹을 시작한다. 위쪽 침상에 있던 승객이 내려와서 노인에게 돈을 건넨다. 아요디아Ayodhya 출신의 24세 아비셰크 샤르마Abhishek Sharma는 팔로디Phalodi에 기지가 있는 인도 공군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의 일은 기밀이라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았는데, 부모님과 같이 사는 집에서 직장까지 기차를 타고 통근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기차를 타면 다른 시각, 다른 문화, 다른 음식이 있어요. 그리고 친구도 사귈 수 있죠.” 그가 인스타그램에서 나를 검색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면 서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관광객용 열차가 아니에요. 여행자들에게 이 열차는 너무 오래 걸리고, 심지어 너무 덥죠. 침대 열차라면 모르겠지만요.” 그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기차에 다른 여행자는 없고 외국인 여행자는 더더욱 없다. 승객 대부분은 공군에서 근무하는 이들로 카키색 바지와 군화 차림이다. 아비셰크가 창문으로 다가가더니 철로 옆에 피어있는 별 모양 보라색 꽃을 가리킨다. “정말 아름답죠. 고무나무와 비슷한데 시바Shiva 신에게 숭배할 때 사용해요. 하지만 액체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하게 돼요.” 나는 저 꽃을 절대 만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가족끼리 온 여행객들이 아침에 열리는 자이살메르의 청과물 시장을 둘러본다

승객들이 늦은 오후의 열기에 휩싸이면서 열차 안이 몇 시간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좌석 밖으로 튀어나온 승객들의 발뒤꿈치만 보인다. 사리sari로 머리를 덮고, 축 늘어진 팔이 통로쪽으로 흔들린다. 다행히 오믈렛 샌드위치가 아직 따뜻하다. 열린 문 앞의 계단에 앉아 스쳐 가는 황무지를 바라본다. 바람도 움직임도 없이 그저 모래와 햇살 그리고 고요함을 가로지르는 기차만이 있다. 무인 건널목 너머로 오토바이 운전자들과 발찌를 하고 눈화장을 한 아이들이 엄마에게 안겨 있다. 승객 한 명이 내 머리 위에서 전화 통화를 해서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목적지에 가까워졌고, 객차 안에 남은 사람은 여섯 명뿐이다.
밖은 구름 속의 눈처럼 소용돌이치는 해가 내려갈수록 땅이 황금색으로 변하고 선인장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도착이 임박함을 느낀 승객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기차가 사막을 가로지르며 마지막 속도를 낸다. 나비들이 요란하게 날갯짓을 하고 새들이 지저귄다. 공작새 몇 마리가 꼬리로 길게 자국을 남기며 모래언덕 위로 달려간다. 해 질 무렵, 기차 바퀴가 쿵쿵 소리를 내고 공기가 반짝이면서 저 멀리 자이살메르성의 윤곽이 보인다. 짧은 순간, 모래, 빛, 하늘, 모든 것이 황금색으로 물든다. 기차는 속도를 늦추고 ‘쉬익’ 소리를 내고는 자이살메르역에 들어서면서 멈춘다. 승객들은 기차에서 빠르게 내리고 아비셰크는 육교 위에서 나에게 손을 흔든다. 계단에서 뛰어내린 나는 다음 모험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여행 방법
맞춤형 전문 여행사인 헤이스 앤 자비스에서 1인당 약 114만원부터 시작하는 조드푸르의 로헷 하우스 호텔 2박, 기차 여행, 자이 살메르에서 2박, 그리고 두 도시에서 진행하는 워킹 투어가 포함된 상품을 제공한다. 이 단기 상품은 1인당 약 548만원부터 시작하는 15일 여정의 호화로운 라자스탄 투어 등 조금 더 긴 상품에 추가할 수 있는데, 라자스탄 투어 상품에는 릴라 팰리스 호텔 자이푸르 2박이 포함된다. 국제 항공편은 불포함. hayesandjarvis.co.uk

 

초행자를 위한 가이드
기차로 떠나는 골든트라이앵글
무굴제국의 요새와 무덤, 하벨리, 궁전, 모스크, 사원 등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을 아우르는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루트는 델리와 아그라 그리고 자이푸르를 지나면서 인도의 역사와 장인정신 그리고 문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왼쪽부터) 자이푸르의 갈타지 사원Galtaji Temple에서 공양하는 방문객들.
타블라tabla 연주자가 자이푸르의 릴라 팰리스 호텔에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델리를 알다
수피 사원과 무굴 무덤의 잔해 위로 수차례 세워진 인도의 수도는 생과 사가 공존하는 도시다. 역동적인 고대 바자르와 부겐빌레아bougainvillea 덩굴 꽃이 드리워진 묘가 자리한 정글과 공원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올드 델리Old Delhi 심장부에 있는 19세기 저택을 개조한 부티크 호텔인 하벨리 다람푸라Haveli Dharampura에서 10분가량 걷다 보면 음식 천국인 마티아 마할 바자르Matia Mahal Bazar에서 고기 철판 요리인 카라히karahi를 조리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카림스Karim’s로 가면 양갈비로 만든 무통 부라 케밥mutton burra kebab과 빵의 일종인 부드러운 로티roti를 주문할 수 있다. 로디 가든스Lodhi Gardens는 이른 아침에는 조깅하는 사람들로, 저녁 무렵에는 산책을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해진다. 무려 40여 종의 나비가 붉은 봉황목과 연못, 화단 사이를 오가는 선더 너서리Sunder Nursery는 마치 국립공원과도 같다. 야시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딜리 하트Dilli Haat로 향하자. 미르자푸르Mirzapur에서 만든 러그와 낙타 털 담요, 화려한 문양의 이불과 아삼식 생선찜 요리 등 인도 전역에서 온 공예품과 간식을 구매할 수 있는 야외 시장이다.
havelidharampura.com, sundernursery.org, delhitourism.gov.in

아그라에 가면
인도에서 가장 빠른 열차인 가티만 익스프레스Gatimaan Express는 델리의 하즈라트니자무딘Hazrat Nizamuddin 역에서 매일 오전 8시에 출발한다. 넓고 안락한 좌석과 와이파이를 갖춘 이 열차를 타고 1시간 40분 만에 아그라칸톤먼트Agra Cantonment 역에 도착할 수 있다. 승객들은 우유를 넣은 커피와 닭튀김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하면서 BMW와 델리의 백화점들이 보이는 풍경이 소가 끄는 짐수레와 옥수수밭으로 변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아그라에 도착하면 야무나강Yamuna River이 내려다보이는 ‘베이비 타지Baby Taj’라는 별칭의 무굴제국의 묘지 이티마드우드다울라Itmad-ud-Daulah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정오의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메탑 바그Mehtab Bagh의 정원을 산책하자. 타지마할은 주로 동틀 무렵에 방문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묘지를 달빛 아래서 보는 것도 장관이다. 매달 닷새 동안(보름달이 뜨는 밤과 앞뒤로 이틀씩), 최대 50명으로 구성된 8개 팀이 저녁 8시 30분부터 새벽 12시 30분까지 입장할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방문객이 적은 이 시간, 고요함이 주변을 감싸고 타지마할은 푸른빛으로 빛난다.
tajmahal.gov.in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은 17세기에 샤 자한Shah Jahan 황제가 아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기리기 위해 건설했다.

이른 아침 자이푸르로
날이 밝을 때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비행기나 자동차로 이동했을 때는 보지 못했을 광경을 명당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침 6시 아그라에서 출발하는 아그라 성-아지메르 인터시티SF 익스프레스Agra Fort- Ajmer Intercity SF Express가 서쪽으로 향해 라자스탄주로 들어간다. 상점의 셔터가 올라가고, 차이왈라는 뜨거운 차를 컵에 따르고, 머리가 젖은 어린 학생들이 버스에서 손을 흔든다. 4시간 달려서 특급 열차가 자이푸르정션에 도착하면, 여기서부터 릭샤를 타고 성과 주택, 성벽이 사암으로 이루어져 도시 전체가 독특한 붉은색을 띠는 핑크시티Pink City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수공예 장신구와 전통 기법의 블록 날염, 선명한 푸른 도자기로 유명한 자이푸르는 쇼핑 애호가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5성급 릴라 팰리스Leela Palace 호텔을 숙소로 정하고 아메르 성Amer Fort을 살펴본 다음, 아메르 거리Amer Road에 있는 리디 시디 텍스타일에서 블록 날염된 누비 담요와 테이블 매트 그리고 파자마 등을 구입하자. 톡톡 튀는 셔츠와 바지, 모자 등을 원한다면 상점 주인의 조카인 사치 바다야를 찾자. 팬데믹 기간에 자신만의 부티크 매장을 열었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마지막으로, 람 고팔 블루 포터리로 가서 가리마 사이니Garima Saini와 그녀의 부친인 고팔이 직접 만든 가슴 높이의 항아리와 칫솔 컵, 컵 받침과 문고리 등을 구경하는 것도 놓치지 말 것. 인도의 기차 여행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매일 운행하는 라니크헤트 익스프레스Ranikhet Express를 타고 델리로 돌아가자. 오후 3시 30분경 출발하는 완행열차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안 침상에서 낮잠을 자거나 통로 계단에 앉아 늦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theleela.com

‘티티TT’라는 별명을 가진 표 검수원.

 

뭄바이에서 마드가온까지
만도비 익스프레스
12시간 이동하는 만도비 익스프레스Madovi Express는 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를 출발해 도시의 이모저모를 스쳐, 열대지역의 목가적인 해안 도시 고아Goa를 향해 남쪽으로 달려간다.

뭄바이의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종착역은 빅토리아 시대 고딕 건축물의 표본이며 도시의 상징이다.

결혼식 날 느꼈던 행복을 상기하며 주방에서 나오는 치킨 커리 접시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나는 이미 기대감에 부풀어 소매를 걷어 올리는 중이다. 정확히는 치킨 마살라 구이다. 진한 소스에 푹 적신 닭다리 구이에 고수를 올리고 채 썬 양파와 레몬 조각, 초록 고추를 곁들인 요리다. 나는 뭄바이의 콜라바Colaba 지구에 1918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온 올림피아 커피 하우스Olympia Coffee House에 10년째 오고 있다. 사실, 오랜 비행으로 인한 피로와 아침을 먹고 싶은 마음에 이곳의 키마 파브 커리khemma pav curry를 주문하려고 왔건만, 오전 10시에는 이미 매진되고 없었다. 다행히 내가 주문한 음식은 훌륭한 대안이 되었다. 접시에 남은 소스를 버터 풍미 강한 로티로 닦아 먹다 보니 어느새 손가락은 강황의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다. 200루피(한화 약 3500원)도 채 안 되는 음식값을 지불하고 콜라바 코즈웨이Colaba Causeway를 걷다가 고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입을 도티 바지를 사기 위해 파빈디아Fabindia 의류점에 들른다.
누구에게는 봄베이Bombay고 누구에게는 뭄바이인 일곱 개의 정글 섬으로 이뤄진 도시는 수천 개의 도시가 하나로 이뤄진 곳인 듯하다. 반얀 나무의 뿌리가 아르데코풍 건물을 감싸고 이끼가 복합상영관 건물에 자란다. 그리고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은 음양의 조화처럼 도시에서 공존한다. 라이브 재즈 음악과 문학 축제, 오래된 주점, 비치 클럽, 고급 의류점, 어촌 마을, 도비 왈라(세탁공)와 다바 왈라(도시락 배달부), 그리고 저택과 빈민가가 있는 기이하고 국제적인 이 도시는 이곳의 열기를 처음 피부로 느꼈던 순간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나는 이 도시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뭄바이에 머무는 시간이 매우 짧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액티비티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커리를 먹고 나서 옷을 산 다음, 트리시나Trishna에서 갈릭 페퍼 크랩을 주문한다. 그다음 칼라 고다Kala Ghoda의 갤러리를 구경하고, 유명한 타지마할 팰리스Taj Mahal Palace 호텔 뒤에 있는 바데미야Bademiya에서 간식으로 치킨 빵을 먹는다. 그리고 콜라바에 있는 몇 안 되는 부티크 호텔 중 하나인 아보데Abode 호텔에서 하루를 마무리한 다음, 아침 7시에 황금빛 해안선으로 유명한 고아로 향하는 만도비 익스프레스 열차에 오른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승객들은 뭄바이에서 고아에 있는 마드가온까지 가는 만도비 익스프레스를 타고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오로지 떠나기 위해 도시에 오는 것은 이상할 수 있지만, 해안을 따라 달리는 만도비 익스프레스는 음식과 매력, 전망과 역사가 모두 있는 인도 철도의 상징으로 열차 자체가 모험이다. 뭄바이에서 망갈로르Magalore까지 740km를 달리는 콘칸 철도Konkan Railway는 영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계획을 구상하고 완성한 인도 엔지니어들에 의해 전적으로 건설된 인도 철도의 한 부분이다. 강을 건너고 산을 지나, 산사태를 뚫고 뱀과 호랑이를 막아내며 2000개의 다리와 92개의 터널을 건설해 가장 환상적인 지형을 가로지르는 노선을 완성했다. 무엇보다도 전체 철도망 중에서 치킨 롤리팝chicken lollipop, 바삭한 부침개 파코라pakora, 치킨 비리야니chicken biryani 등을 만들어내는 최고로 훌륭한 식당칸이 있어 콜카타부터 넬로르에 이르기까지 여러 열차 애호가의 인기를 받는다.
여느 기차역보다 고풍스러운 웅장함을 뽐내는 뭄바이의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종착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이미 플랫폼에 도착해 있고, 객차 번호를 확인한 다음 침대칸으로 오른다. 갑자기 쏟아진 비로 흙과 꽃 냄새가 올라오고, 역에 들어서는 다른 기차에서 승객들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열린 문밖으로 뛰어내린다. 내가 탄 열차가 선로를 바꾸고 역을 벗어난다. 12시간 여정의 기차 여행을 기분 좋게 시작하며 미소를 짓는다.
인도 열차는 승객에게 숨기는 것이 없고, 이 기차 또한 적나라하게 본색을 드러낸 뭄바이를 가로지른다. 안테나와 에어컨 실외기가 초고층 아파트 외벽에 그을린 것처럼 새까맣게 걸려 있고, 전보다 더 많이 보이는 인도 국기는 고조되는 민족주의를 보여준다. 앞가르마를 한 물소가 사만자귀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고, 분홍색 연꽃이 진흙 사이에서 피어오른다. 어쩐지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도시가 깨끗해진 것 같다.
그러다 열차가 시골을 향해 달려가면서 족쇄를 벗어 던지듯 도시가 사라진다. 열린 문을 통해 바람이 강하게 분다. 나는 뒤로 기대고 앉아 자유를 느낀다. 통로는 이미 음식을 파는 행상들로 교통체증이 생겼다. 오이를 얇게 벗겨서 고추와 소금으로 간하고, 채소튀김 샌드위치를 담은 쟁반을 들고 옮긴다. 그리고 마늘, 고추, 고수와 함께 으깬 감자를 부침개처럼 튀겨서 밥bap 빵 사이에 끼워 향신료를 뿌린 뭄바이의 전형적인 간식 바다파브vada pav를 빼놓을 수 없다. 두 개에 100루피(한화 약 1500원)도 안 되는 바다파브는 완벽한 오전 간식이다. 뜨겁고 매콤하고 바삭한 녀석을 한 입 먹고 나니 통로 끝에서 노랫소리와 박수 소리, 탬버린 연주가 들려온다. 곧이어 주로 기차 안에서 공연하면서 돈을 버는 인도의 제3의 성인 히즈라hijra 세 명이 나타난다. 내가 그들의 화려한 사리sari와 장신구를 눈여겨보자 한 명이 윙크를 하고 손을 흔든다. 그러고는 승객 한 명이 건네는 지폐를 빠른 손놀림으로 받는다.

행상이 신선한 오이를 길게 잘라 고추, 소금을 뿌려 승객들에게 판매한다.

주황색 헤나로 염색한 키 작은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표정으로 내 앞에 앉는다. 뭄바이 외곽에 사는 수바시 데사이Subash Desai는 인사팀에서 일한다. 그는 10년째 이 기차를 타고 아내의 집이 있는 북부 고아의 페르넴Pernem으로 오간다고 한다. 수바시에게 왜 더 빠른 잔샤타디Jan Shatabdi 열차를 타지 않는지 물어보자 그가 손을 흔들며 말한다. “몇 번 타본 적이 있는데, 너무 이른 아침에 출발해요. 새벽 5시 45분에 출발해서 오후 3시 고아에 도착하고, 밤에 뭄바이로 돌아와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엇보다 푯값이 비싸죠.” 그가 잠들어 있는 다른 승객을 가리키며 덧붙인다. “거기엔 침상도 없어서 누워서 자지 못하고 계속 앉아 있어야 해요.”
그때 은박지에 감싼 용기에 담긴 점심식사가 도착한다. 뚜껑을 열고 방금 만든 치킨 비라야니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이 열차의 음식이 아주 맛있어요.” 크게 웃은 수바시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밥을 먹는다. 잠시 후 숲과 노란빛이 감도는 초록색 초원 그리고 강이 흐르는 경관이 펼쳐진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저것이 바시슈티강Vashishti River이에요. 웨스턴가트Western Ghats 산맥에서 시작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강 중 하나죠. 악어도 많아요.” 그동안 이 노선을 따라 여러 번 여행하면서 평화로워 보이는 강 속에 악어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기차가 안자니Anjani 마을을 지나간 후 나는 문가에 잠시 서서 철도 옆에 모여 있는 수백마리의 잠자리를 바라본다. 철로 옆 종려나무는 손에 닿을 것 같고, 물이 채워진 논은 햇빛에 반짝인다. 우거진 열대림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폭포가 꺾인 나뭇가지 위로 쏟아지고, 물보라가 기차 문까지 들어온다. 정글 사이로 흐르는 강이 굽이굽이 꺾일 때마다 넓어진다. 멀리 있는 산이 파랗게 보이고 산봉우리가 구름에 닿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차가 3시간 연착됐지만, 화물열차가 우선적으로 운행하고 산사태나 홍수로 속도가 늦춰지는 이 노선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승객들은 연착에 무관심한 듯 카드를 돌리고, 마살라 땅콩 봉지와 과일을 함께 나눈다. 나는 고아에서 보낼 앞으로의 며칠을 생각해본다. 고아의 도시 판짐Panjim에 있는 파스텔 색감의 라틴 지구인 폰타나Fontainhas를 둘러보는 워킹투어를 예약해 놨다. 바로 이곳에서 글레타 마스카렌하스Gletta Mascarenhas라는 여인이 운영하는 초소형 베이커리인 콘피타리아 31 데자네이루를 처음 발견했다. 카운터에 다섯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베이커리는 뒤에 있는 장작 오븐으로 달콤하고 매콤한 고아식 돼지고기 빵과 새우 엠파지냐empadinha 그리고 바삭한 버섯 페이스트리를 만들어낸다. 내륙에 있는 찬도르Chandor 마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이곳을 방문해 옛 포르투갈 성당과 오래된 가옥을 수다쟁이 판카즈Pankaj와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나를 얼른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오후 내내 왓츠앱으로 말을 걸어오고 있다. 물론 해안 마을 마조르다Majorda의 황금빛 모래에 발을 파묻고 한두 시간쯤 즐길 생각이다.

고아 서부에 있는 여러 조용한 어촌 마을 중 하나인 아곤다Agonda의 일몰.

고아에 가까워질수록 정글 사이로 성당이 한두 개씩 보이고 어느새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가방 지퍼 여닫는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신발을 찾고, 휴대전화 충전기를 챙기는 걸 보니 도착이 임박했음을 안다. 밖에는 야자수가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연분홍색 주택 안의 가족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드가온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고 그 기차가 다시 출발하는 것을 지켜본다. 내일 최종 목적지인 망갈로르에서 행상들이 기차에 올라타고, 승객들이 차를 마시고, 카드를 돌리고, 곡을 연주하고, 정치 논쟁을 벌이면서 새로운 세계가 객차 안에서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만도비 익스프레스가 삐걱거리며 해안을 따라 여정을 이어간다.

 

여행 방법
인천공항에서 뭄바이까지 1회 이상 경유해 갈 수 있다. 캐세이퍼시픽항공은 홍콩 경유 노선으로 12시가 40분 걸리며, 베트남항공 이용 시 호찌민을 경유해 14시간 50분 소요된다.
cathaypacific.com, vietnamairlines.com/kr/ko

 

 

 

글. 모니샤 라제슈MONISHA RAJESH
사진. 마크 세티MARC SET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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