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MANCHESTER REVOLUTION
맨체스터의 유쾌한 반란 - PART 1. 공존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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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호

고대 로마 시대에서 유래된 이름을 가진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인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현재는 그 산업 유산을 재해석한 공간에서 재미있는 일을 잔뜩 벌이고 있다. 산업혁명을 넘어 음악과 축구의 도시, 동시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난 맨체스터의 유쾌한 반란.

MANCHESTER REVOLUTION

아파트와 녹지 그리고 레스토랑과 카페, 바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주거단지 캄퍼스에서 파티를 즐기는 만쿠니안.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풍경화
맨체스터의 주요 역사를 따라가며 도시의 변화를 체감하다.

 

79년 - 도시의 탄생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랐다는 존 콘스터다인John Consterdine이 안내하는 택시 투어에 참여해 도시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전기차라서 과묵한 데다 영국 신사처럼 반듯한 블랙캡이 멈춰 선 곳은 맨체스터가 탄생한 장소라고 알려진 캐슬필드Castlefield의 마무시움Mamucium. 만쿠니움Mancunium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맨체스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만쿠니안Mancunian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곳은 79년에 세워진 고대 로마의 성채였다. “‘체스터chester’는 고대 로마의 요새를 뜻합니다. 영국의 도시 이름에 체스터가 붙은 경우가 여럿 있는데 모두 이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존이 설명한다. ‘마무시움’과 ‘체스터’가 합쳐져 이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맨체스터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캐슬필드 지역이 개발되어 철도와 운하가 생겨나자 과거의 유적이 무심히 훼손되거나 방치되었다. 이후 1980년 본격적인 유물 발굴이 이루어졌고 이곳은 1982년 영국 최초의 도시 유산 공원Urban Heritage Park으로 지정되었다. 직사각형의 성채는 네 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1984년 재건한 북문만이 내 앞에 서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요새 주위로 마을이 생겨났는데, 맨체스터에 사람이 정착했다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한다. 약 2000년 전에는 보병들이 지키던 성채였지만, 21세기의 현지인들은 남아 있는 초석에 앉아 한가로이 점심식사를 즐긴다. 나도 캐슬필드 도시 유산 공원에서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고대 로마의 마을(비쿠스vīcus)이었던 초석에서 귀여운 아이가 놀고 있다.
철도에서 공원으로 변모한 고가교, 캐슬필드 바이덕트의 푸르름.

1842년 - 산업현장에서 태어나 자연환경으로 돌아간 벌

맨체스터 어디서든 벌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 건물과 가로등, 심지어 쓰레기통에서까지. 문득 런던 유스턴역에서 기차를 타고 맨체스터 피카딜리역에 도착했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이 뜻밖에 벌이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맨체스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에 벌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알란 호텔The Alan Hotel에서 저녁식사 마무리 중에 등장한 벌꿀 디저트 덕분에 그 의문이 풀린다. “맨체스터의 상징이 벌이에요!” 마케팅 맨체스터의 시니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앤디 파킨슨Andy Parkinson이 이야기한다. 이는 맨체스터가 천연 자원이나 왕실의 후원으로 성장한 도시가 아닌 노동자들이 일군 도시임을 의미한다. 맨체스터의 상징인 벌은 산업혁명의 현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면 방직물 산업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면서 근면하게 일하는 동시에 단결하고 협업하는 벌이 맨체스터가 따라야 할 구심점이 된 것이다. 1842년 맨체스터는 일곱 마리의 벌이 지구 위를 나는 문양이 포함된 도시의 문장crest을 채택했다. 맨체스터에서 생산한 공산품이 수출돼 일곱 바다를 가로지르며(당시 영국에서는 지구의 바다를 일곱 구역으로 나누었다) 전 세계를 누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 벌은 지속 가능한 성장까지 함축하게 되었다. 꿀벌이 활발하게 서식하는 지역이 생태계가 건강한 곳이기 때문이다. 맨체스터에서 탄생한 롤스로이스 역시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양봉장을 운영 중이다. 롤스로이스의 양봉장은 영국의 다른 도시에 있지만, 맨체스터에도 양봉가가 존재한다. 맨체스터대성당Manchester Cathedral과 맨체스터미술관Manchester Art Gallery 등지에서는 야생 벌집이 발견되었다고도 한다.

맨체스터 곳곳에서 도시의 상징인 벌을 소재로 한 다채로운 기념품을 만날 수 있다.

맨체스터 피카딜리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영국왕립원예협회 정원 브리지워터RHS Garden Bridgewater로 향한다. 영국의 현대사에 이르러 가장 큰 규모의 정원 가꾸기 프로젝트였던 이곳은 제인 오스틴 소설에 등장할 법한 미감으로 나를 설레게 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유리온실에 들어가자 고추와 토마토 등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적극 참여해 각종 채소와 허브를 재배 중이라고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내 마음을 달래준 것은 생각의 전환이다. “비가 와서 꽃은 행복할 거야. 꽃이 행복하면 벌도, 우리도 행복하지!”
맨체스터 도심에는 주황빛 벽돌로 만든 건축물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당시에는 검정 벽돌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다수였다고 한다. 게다가 공장의 매연으로 시커먼 때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가 폭격을 당하면서 그 어두컴컴한 풍경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암흑 같던 과거의 모습을 잠시나마 유추할 수 있었던 건 1892년 검정 벽돌을 쌓아 만든 고가교, 캐슬필드 바이덕트Castlefield Viaduct에 방문하면서다. 이곳은 기차가 지나던 교량을 재생한 공원이다. 그래서 다리 위에 오르면 방금 본 검정 벽돌을 금세 잊을 만큼 마냥 싱그럽다. 뉴욕의 하이 라인The High Line이나 서울의 서울로7017과 비슷한데 길이는 훨씬 짧다. 현재는 330m가량 걸어볼 수 있으나 지역사회와 협의를 통해 1km까지 개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차가 운행을 멈춘 1969년 이후, 흙과 여러 식물의 씨앗이 바람을 타고 선로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며 생장하기 시작했다. 정원을 가꾸고 산책로를 조성해 대중에게 공개한 지는 올해로 2년째인데, ‘Keep Wild’라는 표지판의 문구처럼 여전히 멋대로 자라나는 식생으로 알록달록 생동한다. 캐슬필드 바이덕트의 보존에 힘쓰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의 자원봉사자가 나를 초콜릿 코스모스로 안내한다. 초콜릿 색을 띠고 초콜릿 향이 나는 이 꽃에 홀딱 빠져 있는데, 벌이 내게 날아든다. 그러고는 이 꽃, 저 꽃 돌아다니며 수분 활동에 한창이다. 산업의 현장에서 자연의 환경으로, 맨체스터의 상징인 벌도 변화로 분주하다.

산업혁명 당시의 방직공장을 재현한 과학산업박물관의 전시실.

 

1894년 - 운하 활용법

“맨체스터에 운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는 여행자는 많지 않아요.” 캐슬필드 바이덕트에서 산책을 마치고 근처 운하를 따라 걷다 문득 택시 투어 가이드 존의 말이 떠오른다. 맨체스터와 아일랜드해를 잇는 이 운하의 탄생은 산업혁명과 연관되어 있다. 1894년에 완공된 운하는 원자재와 완제품을 수송하며 맨체스터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반면 리버풀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맨체스터에서 차로 약 50분 거리인 리버풀은 산업혁명 시기 무역항구로서 이 도시와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쉽게 말하자면 생산은 맨체스터, 유통은 리버풀이 담당하는 구조. 그러나 맨체스터에서 운송 속도는 높이고 비용은 줄이기 위해 직접 바다로 연결되는 운하를 건설하며 생산과 유통을 겸하자 리버풀의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렇게 둘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지역감정이 생긴 이유가 바로 이 운하 때문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산업이 쇠퇴하고 운하의 물이 흐르듯 세월이 흘러가며 부정적인 감정이 희석되었다. 내가 맨체스터에서 만난 현지인 중에 리버풀 출신이 꽤 있었는데, 만쿠니안으로 맨체스터에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로치데일 커낼 로크 92에서 운하의 수문을 수동으로 여는 풍경.

여러 지역에서 온 이들이 맨체스터를 이루며 더욱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내가 맨체스터를 여행하며 반복해 들었던 말은 이곳이 지금 영국에서 가장 젊고 역동적인 도시라는 것이다.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리버풀 FC의 축구 경기는 그들이 각각 레드 데블스The Red Devils와 레즈The Reds라고 불리는 것처럼, 라이벌 의식이 여전히 불같이 붉게 타오른다. 두 팀의 경기는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두 지역의 지리에서 비롯해 ‘노스웨스트 더비’라고 부른다.
나는 우연히 캐슬필드의 로치데일 커낼 로크 92Rochdale Canal Lock 92에서 운하의 수문을 여닫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옛 방식대로 수동으로 움직이는 점이 놀라웠다. 수위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과정을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는 명당자리는 운하 뷰를 가진 알버츠 셰드 레스토랑 맨체스터Albert's Shed Restaurant Manchester의 테라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홈구장에 가기 위해 탄다는 붉은 크루즈 역시 인상적인 풍경이다. 캐슬필드 지역에서 출발해 선상 바에서 먹고 마시며 30분 정도 운하를 떠다닌 끝에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 인근 부두에 닿는다. 교통체증이나 주차 고민 없이 구장을 오갈 수 있고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는 동지들과 어울리며 경기 전부터 둥둥 달아오른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이 느껴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맨체스터 시티FC의 엠블럼에는 모두 범선이 존재하는데, 바로 이 맨체스터 운하를 상징한다. 

중세 시대에 맨체스터대성당이 들어서며 그 주위로 도시가 확장되었고, 섐블스 광장에는 도심 유일의 튜더 양식 건축물이 남아 있다.

[NUMBERS] 세계사에 길이 남은 ‘첫 번째’ 도시
1803년
맨체스터대학교의 존 돌턴이 세계 최초로 원자설을 발표하며 근대 화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1830년
세계 최초의 여객용 기차가 개통하며 맨체스터-리버풀 구간을 운행했다.
1948년
세계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인 맨체스터 베이비Manchester Baby가 발명되었다.

 

 

 

 

 

 

 

글. 김민주
사진. 김현민, 영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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