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生風味
호주 태즈메이니아주의 차가운 바닷물이 굴, 전복, 성게 등 세계 최고의 해산물을 키워낸다. 이러한 짭조름한 식재료들이 원주민 셰프에 의해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영감받은 메뉴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수도 도심에서 10분만 벗어나면 눈 속이거나 폭포 아래에 설 수 있겠습니까?” 토마스 티엘Tomas Thiele 선장이 당트르카스토D’Entrecasteaux 해협을 따라 우리가 탄 카나리아빛 노란색 투어 보트를 운항하며 이야기한다.
짐작하건대 토마스는 분명 태즈메이니아Tasmania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당트르카스토를 발음할 수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여기서 여러 해 살았지만 아직 그 발음을 하지 못한다. 또한 그는 어디에 가면 아주 귀한 수출품 두 가지를 구할 수 있는지도 안다. 현지 성게 100g을 약 25만원에, 전복은 1kg당 약 41만원에 팔리기에 바로 잡아 올릴 만한 값어치가 있다.
오전 11시가 막 지나 우리를 태운 배가 태즈메이니아 주도인 호바트Hobart시에서 한 시간 떨어진 파트리지Partridge 섬에 정박한다. 페니코트 와일더니스 저니 여행사가 운영하는 해산물 투어에 참여하면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9월은 쌀쌀한 태즈메이니아 남부에서는 이른 봄과 같다. 얼음처럼 차갑고 영양이 풍부한 바닷물이 완벽한 해양 미기후를 만들어낸다.
“수온이 12도네요. 점점 더 따뜻해지고 있어요.” 토마스가 잠수복을 입으며 말한다. 나는 한 손을 수로에 담가본다. 내게는 훨씬 차갑게 느껴진다. 토마스가 프리다이빙을 하는 동안 나는 현지 스파클링와인에 넣고 끓인 퍼시픽 굴을 맛본다. 굴의 짭조로함에 술의 톡 쏘는 맛이 더해졌다. 퍼시픽 굴은 희귀한 토종 앙가시 굴의 대안으로 1940년대에 들여왔다. 빠르게 성장하며 살이 버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간간하다. 게다가 바다를 청소해준다.

30분쯤 지나서 토마스가 전복 두 개와 뾰족한 성게가 가득 든 그물 가방을 가지고 수면으로 올라온다. 자몽만 한 크기의 성게를 손에 쥐고 있으니 보라색 가시가 느릿느릿 흔들린다. 그때 토마스가 또 다른 성게의 바닥을 버터나이프로 ‘탁’ 치니 연한 속살이 흘러나온다. 내장 중에서 먹을 수 있는 부분인 생식기관이라고 알려준다. 토마스가 성게 속살을 바닷물에 재빨리 헹구어 우리에게 건넨다. 성게 맛은 달콤하면서도 풍부한 무기질의 향이 동시에 느껴지는데, 이 풍미는 몇 시간 안에 자연스럽게 옅어질 것이다.
그런 다음 전복의 입술과 껍질 사이에 칼을 밀어 넣고 칼날을 살살 움직여 근육을 풀어준다. “태즈메이니아에서는 이렇게 먹어요.” 그가 전복을 식품용 봉지에 넣고 망치로 두들겨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이대로 먹으면 자연스러운 풍미를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생전복 살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먹는다. 단단하고 약간 졸깃하고 약간 짜다. 버터와 마늘과 레몬으로 익혀 먹으면 오징어 맛이 난다.
우리가 전복을 먹는 동안 토마스가 남부 바위 랍스터 껍데기를 깬다. 오늘 아침 일찍 현지에 설치한 포획용 우리에서 꺼낸 녀석이다. 내 생각엔 제대로만 하면 훨씬 더 알차게 살을 발라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굴도 몇 개 까 먹는다. “레스토랑에 앉아서 먹는 것보다 여기가 더 좋은데요?” 일행 중 한 명이 웃으며 이야기한다.
육지로 돌아오면 싱싱한 해산물이 중심을 이루는 호바트시가 우리를 맞아준다. 이곳은 식민지 시대부터 운영된 항구로, 더웬트강을 따라 늘어선 호텔, 바, 레스토랑 중 많은 곳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암 건물에 자리한다. 그리고 웰링턴산Mount Wellington, 즉 팔라와카니어palawa kani로는 쿠나니kunanyi로 알려진 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참고로 팔라와카니어는 태즈메이니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원주민 언어로, 사람 이름 말고는 대문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가리비 파이를 사냥 중이다. 가리비 파이는 카레 베샤멜소스에 익힌 가리비를 얇게 썬 페이스트리에 통째로 넣고 싸서 만든 태즈메이니아 특선 요리로, 소스의 근간이 되는 킨스 트래디셔널 커리 파우더Keen’s Traditional Curry Powder가 1860년대 초 이곳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1970년대부터 이 파이를 만들어온 하버 라이츠 카페Harbour Lights Cafe는 미션 투 시파러스라는 기독교단체와 선박용품점 사이에 있는 목조 건물에 자리한다. 웨이터가 21호주달러(한화 약 2만원)짜리 파이를 가져다주자 마치 일종의 의식처럼 파이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간 가리비 수를 세어본다. 네 개, 약간 부족하게 느껴졌다. 쉽게 부서지는 쇼트크러스트 페이스트리 역시 잘 만들었고 소스는 적당히 매콤하지만 이 지역의 또 다른 별미인 왈라비 파이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날 저녁에는 브룩 스트리트 피어Brooke Street Pier 부두에 있는 테이스팅 메뉴 전문 레스토랑 알뢰프트Aløft에서 혁신적인 해산물을 경험해보기로 한다.

알뢰프트 식당은 태즈메이니아 출신인 크리스천 라이언Christian Ryan이 셰프 겸 주인장이다.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항구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선박의 돛대에 달린 조명이 수면에 비쳐 반짝인다.
레스토랑의 위치에 걸맞게 해산물 중심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고, 크리스천의 오른쪽 팔뚝에 새긴 가재 문신도 분위기를 더한다. 알뢰프트에서 쓰는 재료는 현지산이지만, 요리는 태국, 일본, 중국 등 이민 역사의 풍미를 담고 있다. 사천 후추로 양념한 왈라비 타르타르로 시작해 매콤한 남짐Nam Jim 초록고추소스를 뿌린 스탠리베이산 생가리비가 나온다. 이어서 황새치 요리는 해바라기씨가 들어가 걸쭉하면서도 질감이 살아 있는 소스와 톡 쏘는 신맛의 그래니스미스 사과로 장식되어 있다.
크리스천의 수석 셰프 캐머런 브런튼Cameron Brunton이 브루니섬에서 자란 굴을 까는 동안 나는 더티 마티니를 마시느라 분주하다. “이건 겨울을 나며 여름을 간직하는 방법이에요.” 캐머런이 굴 위에 반짝이는 오렌지색 미뇨네트 소스를 끼얹으며 말한다. 이 소스는 말린 나스투르튬 꽃으로 만드는데, 그 맛의 조합은 하나의 맛이 다른 하나에 영향을 주는 공감각에 가깝다. 굴의 짭조름한 풍미가 혀를 자극한 다음 땅의 맛이 나는 걸쭉한 액체가 뒤따라온다. 내년이면 10주년이 되는 알뢰프트에서 그동안 여러 번 굴을 먹었는데 이런 맛을 경험한 적이 없다. “기본은 전통으로 시작해서 지역적인 것을 더하고, 그게 다른 곳에서는 백만 번쯤 먹어보지 못한 무언가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천이 말한다. 이런 태도라면 알뢰프트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살아 숨 쉬는 문화
다음 날 오후에는 호바트에서 차로 15분을 달려 자랑스러운 팔라와 여성 키타나 만셀Kitana Mansell을 만나러 간다. 스물네 살인 키타나는 리스돈코브곶에서 팔라와 키플리를 운영하는데, 원주민 음식 사업을 하며 원주민 스타일 부시터커 식문화 투어 등을 운영한다. 리스돈코브곶은 1803년 영국인이 처음 정착한 태즈메이니아의 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화해의 표시로 1995년 호주 정부에 의해 원주민 공동체에 반환되었다.
키타나에 따르면 토지 개간과 인근에 있는 아연 정유 공장이 생태계를 변화시키기 전까지 이 곶은 그녀의 조상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주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 더웬트강(팔라와어로 팀투밀리미냐)의 동쪽 기슭 작은 다리 위에 서 있다. 내 발아래 물속에는 전복과 앙가시 굴이 있다.
오늘은 8명이 모인다. 대부분 현지 주민이고 정원을 가꾼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핑크색 운동화를 신고, ‘단결할 때 주권이 선다’라고 쓴 티셔츠를 입은 키타나가 우리를 원주민 식료품 가게로 안내한다. 작은 녹색 구슬이 가득한 토종 체리나무 또는 린탈루말라는 그 열매가 익으면 처트니로 만들어 먹기에 딱이다. 면역체계에 좋다고 알려진 타임과 로즈메리 향이 나는 쿤제아 꽃도 살펴본다. “팔라와 키플리를 통해 돌려받은 땅에서 원주민들이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토종 식용 식물이 이 나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하고, 우리의 삶을 알리고, 우리가 여전히 여기 있고 번성하며 살아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키타나는 원주민과 연결되어 있는 땅을 언급하며 말해준다.
유칼립투스 나무 아래에서 훈제 왈라비와 와트시드로 만든 후무스를 먹으며, 나는 꼬리가 짧은 머튼버드 바닷새에 대해 묻는다. “우리의 전통 음식은 대부분 해산물이에요.” 키타나가 말한다. “머튼버드는 루트루위타(태즈메이니아)에서 가장 독특한 원주민 음식이고 지금도 여전히 수확을 하고 있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문화로 아주 훌륭합니다.” 나도 맛을 보고 싶었지만 여름에 고작 몇 주 동안만 먹을 수 있단다. “생선 같은 닭고기를 상상해보세요.” 키타나가 말한다. “저는 머튼버드를 쿤제아 꿀에 절여서 불에 구워요.”
다음에 가는 곳은 좀 덜 소박하다고 볼 수 있는, 인근에 있는 렉서스 자동차 전시장이다. 그 뒤편에 오모테나시Omotenashi 레스토랑이 숨어 있다. 래클런 콜윌Lachlan Colwill과 소피 포프Sophie Pope 셰프가 10인용 가이세키 요리를 선보이는데, 이를 염두에 두고 남호주에서 태즈메이니아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저희는 태즈메이니아와 일본이 아주 비슷한 농산물과 해산물을 생산한다고 생각합니다.”(래클런)
내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28분, 처음 보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이기까지 10분을 아주 요긴하게 썼다. 메뉴를 보여주는 대신에 식탁에서 더러운 스마트폰을 치우고 골동품 그릇을 살살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등 소피의 설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래클런과 소피는 2년에 한 번씩 일본을 여행한다. 그 경험에서 비롯된 거의 안무와도 같은 우아함으로 오픈 키친(돌 벤치, 싱크대, 찜기, 숯불 화로)을 분주히 오가며 일한다. 소피는 경험이 전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태즈메이니아를 떠나보지 않았다면 겨우 흉내 낸 걸 따라 했을 겁니다. ‘새로운 것’에 뛰어든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할 거예요.”
나는 정종에 찐 전복 한 조각에 간을 넣어 만든 크림치즈를 묻혀 입에 넣고는, 한입에 넣기 어려울 만큼 큰 굴을 먹는다. 래클런이 그 굴이 바로 존스리저브 굴이라고 말해준다.

해산물과 와인
루신다
바이오다이내믹 와인과 화학적 첨가제를 넣지 않은 내추럴 와인을 마셔본다. 와인 잔도 그때그때 바뀐다. 칠판에 적힌 소량의 메뉴는 가재나 애호박 같은 제철 재료로 힘을 준다. lucindawine.com
몰토
와인을 만드는 루비아나 가족이 운영하는 이 바 겸 와인 상점에는 이 가족이 만든 현지 와인 중에 상을 받은 톨푸들 샤르도네 와인이 있다. 스테파노 루비아나가 만든 스파클링 로제 와인은 특히 굴과 잘 어울린다. molto.wine
소니
2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이 와인 바는 줄을 서서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 칠판에 적힌 와인 목록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 단단한 금속성 맛이 나는 태즈메이니아산 리슬링 와인과 붉은빛을 띤 시칠리아산 로제 와인 그리고 간단하게 곁들이기 좋은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sonny.com.au
오지
노스 호바트에 자리한 이 세련된 비스트로는 오모테나시 레스토랑과 함께 존스리저브 굴을 맛볼 수 있는 귀한 곳이다. 우칭거, 애님 와인, 버브 앤 풀리 같은 현지의 다재다능한 와인을 내놓는다. ogeehobart.com.au
인스티튜트 폴레어
도메인 심하 양조장에서 만든 피노 누아, 샤르도네, 리슬링 와인을 보유한 바로, 모두 태즈메이니아산 주요 포도 품종을 환상적으로 해석한 와인이다. 바다가 만든 최고의 메뉴를 요리한다. institutpolaire.com.au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2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