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SUSPENDED BETWEEN SEA & SKY
스발바르 항해기
FOLLOW US :
2025년 03월호

한여름 쇄빙선을 타고 북극권의 노르아우스트라네섬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톱날같이 삐죽삐죽한 봉우리와 청록색 빙하, 운이 좋다면 칠흑 같은 심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북극곰을 볼 수 있다.

노르아우스트라네섬 앞바다의 드넓은 빙하 지대에 어미 북극곰과 새끼 북극곰 두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북극곰이 빙하 위에 잠시 멈춰 서서
킁킁거리며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러고는 시각과 후각을 통해 낯선 우리의 존재를 파악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편안해 보인다. 이내 유빙 위를 태연하게 걸어간다. 르코멍당샤르코호Le Commandant Charcot의 갑판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급히 카메라 셔터를 누를 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때 얼음덩어리 뒤에서 포근한 크림색의 북극곰 새끼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미를 따라 재빨리 달려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드레날린이 절로 솟구치는 기분이다. 다른 유빙으로 가기 위해 칠흑 같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어미 북극곰의 등에 새끼가 올라탄다. 물에서 나온 곰들이 몸을 흔들며 물기를 털어내더니 새하얀 세상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내 안에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친다. 감격에 겨운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나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쇄빙선인 르코멍당샤르코를 타고 북극을 탐험하고 있다. 2021년에 첫 출항한 이 배는 극지방 탐험에 최적화된 하이브리드 배터리로 가동된다. 프랑스의 크루즈 회사인 포낭Fonant이 운용하는 이 배는 20세기 초 프랑스 극지과학자이자 탐험가이던 장-바티스트 샤르코Jean-Baptiste Charcot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강화된 선체 덕분에 다른 탐험선보다 더 깊은 유빙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이 쇄빙선은 이미 여러 번 북극 여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여름에 떠나온 이번 탐험에서는 노르웨이에서 북쪽으로 725km 떨어진 곳으로 향한다. 황량하고 아름다우며 바람이 가득한 스발바르제도, 그중에서도 북동쪽 끝에 있는 노르아우스트라네Nordaustlandet 섬을 탐험한다. 대부분의 배는 스발바르제도에서 잘 알려진 서피츠베르겐섬 주변에서 톱날 같은 검은 봉우리와 움푹 들어간 피오르식 해안선을 따라 항해한다. 노르아우스트라네는 전혀 다르다. 섬 전체가 영구적인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그 너머의 바다도 얼어붙어 웬만한 선박으로는 통과할 수 없다.
나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롱이어비엔Longyearbyen 마을에서 배를 탄다. 스발바르제도의 주요 도시인 이곳 항구를 둘러싼 산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르코멍당샤르코호는 위압적인 존재다. 탐험을 위한 고무보트와 유빙에 들어가 있는 동안 정찰을 해줄 헬리콥터를 갖추고 있다. 두 개의 연구실도 있어 항해할 때마다 최대 네 명의 학자들이 연구를 위해서 자리를 신청하기도 한다. 반면 승객들은 크림색과 회색, 사슴을 연상시키는 황갈색, 바다색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차분하게 꾸며진 실내에 머문다. 메인 레스토랑인 누나Nuna는 프랑스 출신의 슈퍼스타 셰프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가 책임지고 있다.

포낭사가 소유한 이 원정선은 강화된 선체 덕분에 빙하 깊숙이 들어간다.

 

오렌지색 탐험용 파카와 패딩 처리되어 일반 부츠보다 튼튼하고 따뜻한 신발을 착용하고 나서야 해안에 내린다. 중무장한 이유는 금세 알 수 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이트레노르스코야는 제도 북쪽에 위치한 언덕이 많은 섬으로, 17세기에 네덜란드의 고래잡이 기지로 사용되었다. 고무보트에서 내려 종아리 깊이의 늪지 속으로 뛰어든다. 하얀 하늘 아래,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단색이다. 바다는 강철 같은 회색이고, 산은 검은 색을 띤다. 보이는 색은 오직 얼음이 덮인 가파른 능선을 올라가는 승객들의 오렌지색 외투뿐이다.
고래잡이들은 이트레노르스코야섬에서 잘 살지 못했다. 대다수가 괴혈병으로 사망했고, 이곳에 묻혔다. 군데군데 영구 동토층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얼음 위로 올라온 색이 바래고 부서진 관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에서 하얀 두개골이 엿보인다. 이곳에서의 잔혹한 삶과 외로웠을 마지막을 상상해본다. 이 소름 돋는 장면과 삭막한 풍경이 포근한 누에고치 같은 르코멍당샤르코호의 호화로움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하루의 하이킹은 생각보다 힘들다.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에 럼을 섞어 마시며 따뜻한 실내 수영장에 들어가 뭉친 근육을 이완한다. 저녁은 신기할 정도로 격식이 차려져 있다. 환영 만찬에서는 뵈브 클리코 샴페인을 따르고, 송로버섯을 곁들인 기니 닭요리와 바닷가재, 초콜릿 무스가 나온다. 승객의 약 80%가 프랑스인이며, 그중 몇몇은 검은색 보타이를 착용한 채로 식사를 즐긴다.

탐험대의 리더 아리안누가 스발바르제도에 있는 호른순트 피오르만에서 고무보트를 운항하고 있다.
녹아내리는 빙하에서 폭포가 쏟아진다.

노르아우스트라네섬의 해안을 따라가던 중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를 보며 경외감을 느낀다. 오스트폰나Austfonna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빙하의 가장자리 길이가 약 180km에 달한다. 우리는 브라스벨브렌Bråsvellbreen 구역을 맴돌며 거대하고 새하얀 벽에서 폭포가 거품을 일으키며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물에서 떼를 지어 나온 수컷 바다코끼리들이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엄니로 찔러대고, 솜털오리 무리는 완벽한 V자 대형으로 유리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 위를 훑고 지나간다.
육지에서 가까운 곳에 머무는 동안 매일 하이킹을 하고, 고무보트를 타고 탐사를 한다. 나는 고래를 연구하는 자연주의자 마릴리아 올리오Marilia Olio와 함께 나선다. 비록 고래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귀로는 들을 수 있었다. 마릴리아가 수중용 마이크를 물속으로 넣자 놀랍게도 높은 음조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이곳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꾼다. 그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대왕고래예요. 9.5km 반경 이내에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준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비현실적으로 떨리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란다. “저건 수염물범의 소리죠.” 마릴리아가 웃으며 말한다. 물속에서부터 울리는 소리는 물 위의 차가운 얼음 풍경을 더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세상으로 만들었다.

르코멍당샤르코호의 갑판에서 북부 스발바르의 험준하고 검은 산이 보인다.

얼음 속으로
북동쪽으로 더 나아가던 중 메아리치는 낯선 굉음에 잠에서 깨어난다. 극지 탐험 베테랑인 패트릭 마르케소Patrick Marchesseau 선장이 선내 안내 방송으로 모두를 깨운다. “모두 얼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나요?” 그가 기쁜 목소리로 묻는다. 갑판으로 달려 나가 보니 숨 막히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짙은 남색 하늘과 반짝이는 검은색 물, 무한히 펼쳐지는 얼음이 수평선까지 이어져 있다. 굉음은 배가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밀어내는 소리다. 배가 나아가는 힘에 의해 얼음판에 균열이 생기며 깨지는 모습이 파괴적으로 느껴진다. 육지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빙하가 보호받는 것과는 달리 바다 위 얼음은 깨면서 지나가는 것이 허용된다. 배는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물길을 남기며 지나가지만, 얼음은 금세 다시 이어지고 우리의 흔적은 사라진다.
노르아우스트라네섬을 완전히 지나온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얼음 바다뿐이다. 얼음들은 서로 달라붙어 단단하고 거대한 원을 이룬다. 얼음덩어리들은 배에 닿을 때마다 뒤집혀 사파이어블루 색의 밑면을 드러낸다. 갑자기 앞쪽 갑판의 출입구가 열리더니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헬리콥터가 등장한다. 마치 전시장에 진열된 자동차처럼 반짝이는 광택을 뽐낸다. 아쉽게도 이 헬리콥터는 관광을 위한 것이 아닌, 배보다 앞서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비행한다. 이제 곧 북위 81도 선을 넘는다. 탐험대장 얀 라시드Yann Rashid는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을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배 위쪽 조타실에서 담당자들이 얼음 레이더를 살펴보고, 탐험대장이 쌍안경으로 북극곰을 관찰하는 동안 고요한 공기가 감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온다. 모두가 흥분한 채 갑판으로 달려간다. 사냥에 성공한 북극곰이 발견된 것이다. 두 번째 동물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흥분은 더욱 고조된다. 가이드는 두 마리 중 어린 곰이 바다표범을 죽였고, 그 후 나이 든 곰이 도착해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두 곰 모두 얼굴이 선홍색 피로 얼룩져 있다. 큰 곰이 얼음 위에 앉아 개구리처럼 뒷다리를 벌린 채 사체 속에 얼굴을 묻고 파먹는 동안 호기심 많은 어린 곰은 얼음판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점점 배 가까이 온다. 그러다가 얼음 속에 멈춰 선 채로 끊임없이 공기 냄새를 맡으며 우리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스발바르에서 발견된 북극여우.

강렬했던 먹이사슬의 장면은 이후 또 다른 모습으로 여러 차례 반복된다. 강연을 들은 나는 라운지에서 열정적으로 캐비어를 맛있게 먹어 치우는 승객들을 바라본다. 또 다른 날에는 파스텔색 마카롱이 산처럼 쌓여 있는가 하면, 어느 점심엔 갑판에서 랍스터가 지글지글 구워진다. 북극 탐험이 이렇게 풍족할 줄 누가 알았을까?
안타깝게도 얼음이 아주 단단하지 않아서 착륙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얼어붙은 세상을 꿈결처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강의를 듣고, 갑판에 있는 온수 풀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보낸다. 저녁에는 9번 갑판에 있는 조명이 화려한 실라Sila 뷔페에 간다. 얼음이 무한한 풍경을 바라보며 프랑스 브르타뉴의 치즈 장인 장-이브 보르디에의 치즈와 샐러드, 생선, 초밥을 먹는다. 뷔페의 모든 음식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짭짤한 프랑스산 버터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포장한다. 르코멍당샤르코호 모양의 미니어처 초콜릿 무스는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 부족함 없이 따라 주는 와인은 당연히 프랑스산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극지방의 여름에 익숙해지는 데 실패했다. 선실에 효과 좋은 암막 커튼이 있음에도 생체 시간은 엉망진창이다. 이곳엔 일출과 일몰이 없기에 빙하가 분홍색으로 물들 일도 없다. 태양은 단지 머리 위로 작은 원을 그리며 움직일 뿐, 자정이고 대낮이고 에너지와 아드레날린이 항상 가득 차 있어 잠들기 어렵다.
수평선 너머로 스발바르 북부의 들쭉날쭉한 검정 산맥이 눈에 보이는 육지로 들어설 때 상실감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티나이레북타만의 전망대까지 걸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있던 얼음에 비하면 이곳은 총천연색 세상이 선명하다. 분홍색, 초록색,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흩어져 있고, 절벽은 적갈색과 짙은 초록색으로 줄무늬가 그어져 있다.
북극해의 얼음 같은 아름다움을 지나 이곳에 오니 모든 생명이 풍성해 보인다. 하지만 그건 가당치도 않다. 여전히 나는 지구에서 가장 척박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북위 81도의 단순함을 그리워할 것이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떠 있는 이 경이로운 느낌, 부서지기 쉽고 파괴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세상에 나 홀로 있는 순간이.

시번벤처호 선상에 있는 라운지 공간.
전채요리를 준비하는 시닉이클립스호의 헤드 셰프.

북극을 항해하는 세 가지 방법
노르아우스트라네섬과 얀마옌섬
노르웨이 롱위에아르뷔엔 자치구에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까지 13박 14일간 럭셔리한 탐험선 실버 엔데버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노르아우스트라네섬과 스피츠베르겐 북쪽의 섬과 스발바르제도의 남쪽 끝을 탐험한 뒤에, 혹등고래의 주요 서식지인 얀마옌 화산섬으로 건너간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면 걷고, 래프팅하고, 탐사용 고무보트를 타고 해안을 탐험한다.
1인당 약 3600만원부터. silversea.com
스발바르 심층 탐험
호화로운 시번벤처호를 타면 10박 11일 동안 얼음이 덮인 스발바르 해안선을 탐험할 수 있다. 정해진 일정이 없다는 것이 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항해하며 얼음을 바라보다가 운이 좋으면 북극곰을 만날 수 있다. 카약을 타고, 가이드와 함께 걷고(곰이 활동하는 시기에는 가이드가 소총으로 무장을 한다), 고무보트를 타고 탐험한다. 1인당 약 2200만원부터. seabourn.com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와 개기일식
2026년 8월에 시닉이클립스호를 타고 14박 일정으로 탐험하게 되면 추가 혜택이 있다. 이 시기엔 스발바르제도에서 며칠을 보내는 것은 물론, 그린란드 동부 해안을 탐험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으로, 대성당 크기만 한 빙산과 우뚝 솟은 절벽, 끝없는 피오르가 펼쳐진다. 배는 스코어스비순드 피오르만 남쪽에 있는 블로세빌 코스트에 머무는 동안 모든 것을 멈추고 개기일식을 관찰할 예정이다. 극적인 자연환경에서 펼쳐지는 이 장관은 굉장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1인당 약 3000만원부터. scenic.co.uk

스발바르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크로네브린 빙하.

 

글. 수 브라이언트SUE BRYANT
사진. 게티, 오필리 블런번, AWL이미지스, 이안 도슨, 올리비에 코레, 시번, 시닉 럭셔리 크루시스 앤드 투어스
RELATED
TRAVEL WITH PASSION AND PURP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