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THE PARK
공원 속으로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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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스페인 여행가이자 정복자의 이름을 딴 발보아 공원은 2017년 개장 15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보스턴 커먼 공원 등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직접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를 고용하는 도시가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샌디에이고 오르간 연주자의 재능이 뛰어나다는건 쉽게 알 수 있다. 라울 프리에토 라미레스Raúl Prieto Ramírez는 밝은 빨간색 바지에 자홍색 셔츠 그리고 뒷굽이 높은 하얀 색 신발을 신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절대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다는 의미다.

40세의 스페인 출신 라미레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한다(그의 신발은 오르간의 수많은 페달을 밟기 위한 전용 신발이라고). 이 오르간은 발보아 공원을 빛나게 만드는 여러 경이로운 요소 중 하나로1, 00년도 더 된 공연장 스프레클스 오르간 파빌리온Spreckels Organ Pavilion 내에 안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 그는 다가올 무료 콘서트에서 어떤 특별한 연주를 선보일지 생각하고 있다. “비밀로 남겨둘게요.” 그가 웃으며 말한다.

 

라미레스에게 이곳은 최상의 선택이다

바르셀로나의 에너지를 가져온 그는 샌디에이고 예술계에 새로운 원동력을 부여했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그는 그의 머릿속에 저장된 한 시간가량의 연주를 선보인다. 17세기 클래식과 전설적인 밴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를 연주하고 난 뒤 그는 앉은 채로 의자 주변을 빙글 돌더니 벌떡 일어나서 800명 이상 되는 관중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의 바람은 관객들, 특히 젊은 샌디에이건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게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죠.” 그가 말한다.

스페인 여행가이자 정복자인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Vasco Núñez de Balboa의 이름을 딴 발보아 공원보다 라미레스에게 더 적절한 장소는 없을 것이다. 발보아 공원은 지난해 개장 150주년을 축하하며,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의 프레시디오P residio, 보스턴의 커먼Common 등 셀럽 공원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샌디에이고 인류 박물관의 7층 높이 건물 캘리포니아 타워(1941년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 <시민 케인> 속 재너두 저택보다 두 배나 높아졌다) 에 오르면 나란히 자리한 세 곳의 평평한 메사(일종의 언덕) 주변으로 퍼져 있는 공원 지대를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알아내고 싶은 게 있다.

원더우먼이 과연 미 서부 해안가에 있는 이 ‘센트럴파크’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알아볼 생각이다. 카브리요 브리지Cabrillo Bridge 옆 공원 부지로 들어가는 건 마치 옛 스페인 세비야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화려하게 장식된 탑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모자이크 돔 지붕, 아치 형태를 이루는 복도는 숨듯 자리한 무어식 정원Moorish garden으로 이끈다. 유명한 스페인식 스투코Stucco 양각 타일이 엘 프라도El Prado의 벽면을 길게 장식한다. 엘 프라도는 1915년 박람회를 목적으로 지은 10여 개의 건물이 이루는 단지 산책로로, 건물 중 몇몇은 임시로 지은 거였지만 시민들의 뜻에 따라 도시는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이것들을 보존해오고 있다.

엘 프라도 단지는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함께 공원 최고의 볼거리로 특히 선구적인 보호 프로그램이 호평받고 있다. 이곳에서 좀 더 나아가 가파른 언덕 골짜기, 하이킹 트레일, 정원, 애견 공원 등을 구석구석 둘러보니 난초, 야자수, 분재, 선인장 같은 6개 대륙에서 온 여러 식물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샌디에이고에서 어떤 식물이든 자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100년 넘게 지속해온 공원의 허세가 남긴 유기적 잔재다. 반짝이는 수영장과 경계를 이루는 잘 가꿔진 잔디밭 곳곳에서 가족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동안, 10대들은 스쿠터를 타고 화려한 분수대 옆을 쌩하고 지나간다.

 

다음 날 나는

공원의 중심과 동쪽 언덕 사이에 자리한 경사진 플로리다 캐니언Florida Canyon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 풍부한 초목으로 유명한 발보아 파크지만, 여기에서는 이 땅의 본래 모습, 해안성 산쑥 지대, 오크 관목 수풀로 가득한 지대를 바라볼 수 있다. 나는1 .5km정도 걸었다. 도마뱀이 지나가도록 선인장 꽃 앞에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어 엘 프라도 근처에 자리한 1930년대식으로 단장한 벽토 오두막 단지, 스패시니 빌리지 아트에 도착했다. 분홍 연어색에서 민트 그린색까지 여러 색 타일로 이뤄진 작은 광장 주변으로 가지런히 자리한 오두막에는37곳의 스튜디오와 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자카란다ja caranda 나무의 보랏빛 꽃잎들이 터질 듯 피어 있고,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아치를 이루는 입구 너머를 엿보고 있다.

나는 일요일의 공원을 안내해주기로 한 파크 레인저이자 샌디에이고 토박이인 킴 두클로Kim Duclo를 만나러 간다. 활짝 웃는 얼굴에 미소만큼이나 챙이 넓은 레인저 모자를 쓴 그는 비공식적 기록 보관소의 역할도 고 있는 그의 사무실을 자랑스레 안내해준다. 두클로는 자신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찾아낸 가죽으로 제본된 1905년대 공원 계획도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줬다. 두클로는 발보아 파크가 코믹콘과 함께 슈퍼히어로가 될 거라고 생각할까? 그건 당연하다고 그는 전망한다. “발보아 파크는 언제나 창이며, 거울이 돼왔어요.” 흐르는 세월과 함께 변하는 성질은 발보아 공원의 DNA에 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나는 이 같은 정신이 아프리카 드럼 음악, 만화책 속 영웅을 매개체로 새로운 세대와 연결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적어도 안개를 만들어내는 기계만큼은 그 역할을 확실히 해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글. 로버트 리드ROBERT REID
사진. 마이클 조지MICHAEL GEO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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