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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ORD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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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8월호

강릉에 사는 그는 타지에서 여행 온 이들을 보며 종종 생각했다. ‘과연 이곳은 여행지로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그리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강릉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마주한 채 ELECTRIFIED GV70를 타고 로드트립을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 일상 속 평범한 장소들이 숨겨둔 새로운 얼굴을 내어 보이기 시작했다. 장소마다 새로운 수식어가 생기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심곡항에서 출발해 동해의 풍광을 곁에 두고 달리는 헌화로 드라이빙.
(오른쪽) 강릉의 시간을 탐구하고자 선교장에 들어선다.

DAY 1


여행의 출발점이 된 르꼬따쥬에서.

여행의 아침
차가 서서히 속도를 늦춰 낯선 마을로 들어선다. 이 마을은 강릉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고요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풍긴다. 키 작은 과일나무 몇 그루를 지나 적당한 장소에 주차를 하고, 첫 번째 목적지인 르꼬따쥬로 향한다.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 고택은, 주인장인 송지혜 대표(그녀는 스스로를 농부라 칭한다)와 그녀의 동생들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낡은 창틀을 사포질하고, 주춧돌이 드러난 오래된 나무 기둥이 썩지 않도록 땅을 파내고, 기존 골조는 살리되 덜어낼 부분은 과감히 덜어내면서 지금의 르꼬따쥬가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공간에는 선대가 지켜온 소박한 삶의 방식과 후대로 이어져온 삶의 철학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 정원엔 온갖 꽃과 과수를 심어 가꾸었으며, 여기에 오랫동안 자라온 야생화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어느 하나 고집부리는 일 없이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예쁘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가족과 함께 이번 로드트립 여정에 오른 오제민은 강릉에서 나고 자란 강릉 토박이이다. 강릉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딸 하담이가 생겼다. 평범한 가장의 삶은 평온했고, 아이는 올해 세 번째 여름을 맞이했다. 그는 매일같이 보는 풍경이 비슷하다고 느껴질 즈음,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생각해보면 강릉은 그에게 공기와도 같아서 장소에 관해 특별한 고찰 없이 지내왔다. 어쩌면 그사이 놓치고 지나간 소중하고 반짝이는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한 번쯤은 여행자가 되어 강릉을 경험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프라이빗한 팜크닉을 즐길 수 있는 르꼬따쥬에서 맞이한 여행의 아침엔 자연의 요소들이 명쾌하게 들어차 있었다. 흙과 식물, 세월의 더께가 곱게 내려앉은 나무 기둥, 방금 전 내린 비가 이슬처럼 맺힌 잔디 등등. 공간은 어른도 아이도 모두 자연을 더 가까이 느껴보라고 독려한다. 때때로 가드닝 프로그램이나 자연 친화적인 미술 활동 등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이유가 되겠다. 이 아침, 여행자를 위해 준비된 것은 물감을 얼려 만든 색색의 아이스크림과 여름 식물들이다. 새하얀 캔버스에 정원에서 따온 꽃을 몇 송이 올리고 노란색, 붉은색 물감 아이스크림을 녹여 채색한다. 물감이 마르면서 색이 짙어지는 과정을 보며 이번 여행에서 어떤 장면들을 마주하게 될지 상상해본다.

(위부터) 아빠 오제민, 엄마 김소리 그리고 딸 하담이가 함께 고택을 거닐며 삶의 방식을 체득한다.
정원에서 채집한 여름 식물들.
물감을 얼려 만든 아이스크림으로 색칠하고 여름 식물을 콜라주해 아이만의 작품을 완성했다.

+BEHIND THE SCENE
여정을 마치고 난 뒤 얼마 지나 송지혜 대표로부터 온 메일에는 르꼬따쥬의 시간이 마치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담겨 있었다. “이제 막 수국과 클레마티스 같은 꽃은 떨어졌고, 지금은 라임라이트, 양귀비, 도라지꽃, 해바라기 등이 꽃을 피웠어요. 정원 뒤편 모감주나무에는 노란 꽃이 가득합니다.”

SPOT 1. 르꼬따쥬
고택이 위치한 이 마을은 은진송씨의 집성촌. 약 200여 년 전 송지혜 대표의 선대가 대전에서 이주하여 이곳에 자리 잡아 대전동이라고 하며, 한밭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르꼬따쥬를 운영하기 전 다양한 나라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이 공간에 녹여내는 작업을 한다.
강릉시 한밭골길 50-11

 


전기차 특유의 간결한 디자인을 강조한 ELECTRIFIED GV70를 타고 해송길 위에서 고요한 주행을 시작한다. ©Seonghyun Sang

+A CHAPTER OF WANDER AND WONDER
강릉을 통과해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남대천을 따라 달려 어느새 해안가에 다다른다. 32km 길이에 달하는 이 남대천은 상류의 산지에서 하류의 해안으로 이르는 동안 긴 시간에 걸쳐 강릉을 발전시켜 왔다. 어느새 해송길에 들어섰고 그사이 해가 높아졌다. 소나무의 쭉 뻗은 그림자가 도로 위로 너울거리고 그 너머 순포해변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평소 보아왔던 풍경일 터인데, 소설 속 한 페이지를 자꾸만 떠올리게 만든다.
‘염원했던 대로, 해변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긴 길 중간의 솔숲에 조그만 빙수 가게를 열었다. 해변을 따라 소나무가 죽 이어지는 공원, 여름이면 가족들이 깔개를 들고 나와 나무 그늘에 펼쳐 놓고 바다로 수영을 하러 나가는 곳이었다. 솔방울이 사방에 떨어져 있고, 강렬한 햇살이 조금은 부드럽게 느껴지는 고요한 장소였다.’ –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 중에서
순포해변 해송길 강릉시 사천면 산대월리 산 1


(위부터) 
잔잔한 파도가 치는 사근진해변에서.
ELECTRIFIED GV70 전기차 전용 G-MATRIX 크레스트 그릴에 위치한 충전구에 캠핑 냉장고를 잇다.
아이시 블루와 글레이셔 화이트 투톤으로 구성된 내부 디자인.

오후의 바다
순포해변에 왔으니 근처 테라로사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한 잔 마셔볼 요량이다. 2002년 처음 문을 연 테라로사 본점은 여전히 커피 애호가와 여행자, 현지인이 뒤섞여 북적거렸다. 고심 끝에 주문한 커피 맛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좋다. 커피를 재배하는 산지가 없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라면 커피 맛을 좌우하는 것은 생두가 아닌 그것을 다루는 로스팅일 터. 결국 이 장소에서 마시고 있는 커피 맛을 결정하는 것은 ‘과정’이다. 잘 볶아 정성껏 내린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1만4000km 떨어져 있는 코스타리카 땅의 내음과 라즈베리의 새콤한 풍미를 느껴본다. 그 과정을 되짚어보니 여행의 면면과 닮았다.
코스타리카의 커피를 떠올리다 슬슬 강릉의 본질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에 이른다.
“날이 좋아서 며칠 전에도 바다에 나왔었죠.” (오제민)
동해를 구성하는 수많은 해변은 신기할 정도로 그 이름마다 바다의 빛깔이나 분위기 또한 모두 다르다. 짙은 녹색의 해송과 조화를 이루던 짙은 파랑의 순포해변을 출발해 흐린 파스텔 톤의 순긋해변을 지나 투명한 진청색에 가까운 사근진해변에 다다른다. 한여름 타지에서 온 피서 인파로 북적거리는 안목해변이나 경포대와는 달리, 이곳 사근진해변은 현지인들이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하담이는 이미 엄마와 함께 모래놀이를 시작했고 아빠는 피크닉을 준비 중이다. 먼저 차량 전면의 그릴에 위치한 충전구에 캠핑용 냉장고를 연결한 뒤 고운 모래사장 위에 피크닉 매트와 파라솔을 펼친다. 음료가 차가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파라솔 아래 앉아 길게 펼쳐진 수평선을 감상한다. 모래 알갱이의 촉감과 바다의 온도 등에 심취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 강릉을 좀 더 세심히 들여다본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져가는 오후엔 바다의 색도 서서히 그 빛을 달리해간다. 일상에서 벗어나 오른 여행길에선 매일 보던 바다가 다른 얼굴을 내어준다.

가족이 함께하는 해변 피크닉.

“강릉에 처음 정착한 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었어요. 광주에 살았던 제게 강릉은 아주 먼 곳이었죠.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소도시 특유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와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자연환경이 공존하더라고요.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강릉은 여전히 아름다워요. 젊고 세련되고 활기참과 동시에 투명하고 푸른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모습은 그대로거든요. 그 균형이 참 좋아요.”
- 김소리(오제민의 아내)

SPOT 2. 사근진해변
경포해변과 맞닿아 있는 아늑한 해변으로, 넓은 백사장과 거대한 암석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말이면 스냅사진을 촬영하러 오제민 역시 사근진해변을 종종 찾는다.
강릉시 해안로 604번길 16

 

(왼쪽부터)
선교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활래정과 연못.
ELECTRIFIED GV70를 타고 선교장에 들어선다.

강릉의 시간과 풍미
차창 밖으로 경포호가 지나치고 있다. 해가 뜨겁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일상의 공간. 강릉 사람들은 봄이 오면 벚꽃을 보러 경포호를 찾고, 여름 저녁이면 가벼운 차림으로 밤 산책을 나온다. 어떤 이에게는 세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갈아타던 시절을 추억하는 장소일 수도 있겠고, 과거의 시간을 만나러 가는 여행자에게는 드라이빙 코스가 될 수도 있겠다.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전통가옥이 지닌 원형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선교장에 도착한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는 때로는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숙소로, 또는 문화예술을 경험하는 체험 공간으로 변모한다. 입구를 통과해 제일 먼저 1816년에 지어진 활래정을 마주한다.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온다는 뜻을 지녔는데, 실제로 정자 앞 연못에는 인근 태장봉으로부터 맑은 물이 들어온다고.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감상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수많은 시인묵객이 머물고 교류하던 장이 되었던 선교장에는 덕분에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이하응 등 많은 유명인들의 휘호가 남아 있다. 활래정 역시 처마 곳곳에 편액과 주련이 가득 걸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이어 관동팔경 유랑에 나섰던 선비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행랑채를 지나 소나무로 둘러싸인 숲길에 이른다. 동선을 달리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내어주는 곳, 호기심 많은 여행자에게 적당한 장소다.
초저녁 무렵에 오제민은 아내와 함께 ATC를 찾는다. 신혼 초 와인을 마시고 싶은 날에 둘이 찾곤 했던 다이닝 공간인데 이날은 하담이도 함께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이는 김현경 대표다. 늘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에 대해 고민하고, 이 지역 산물을 최대한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강릉을 감각한다. 남편의 고향인 강릉의 매력에 반해 이 지역 식재료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고. 그녀의 추천으로 강릉의 풍미를 느껴볼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한다. 곧이어 강릉 찰옥수수 치킨 스튜와 버터에 구운 강릉 감자떡과 트러플 꿀, 강원도 한우 타르타르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소함을 담고 있는 강원도 들깨 가루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이 차례대로 테이블 위에 오른다.

(왼쪽부터)
가족과 함께하는 ATC에서의 식사.
ATC 강릉 찰옥수수 치킨 스튜.

Q&A
‘ATC’ 김현경 대표와의 다정한 대화
강릉의 식재료를 그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완성해 접시 위에 올리다.

ATC는 어떤 곳인가요? 그리고 왜 강릉이었나요?
강릉은 남편의 고향이에요.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강릉에서 시간을 보냈죠. 서서히 강릉의 매력에 빠져 이곳에 정착했어요.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그곳에 사는 친구가 있다면 꼭 좋은 공간이나 맛집 등을 물어보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를 반영한 이곳이 마치 투어리스트 센터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남편의 비즈니스 닉네임인 AARON을 써서 AARON’S TOURIST CENTER(ATC)로 이름을 지었죠. 여행자들이 ATC를 통해 강릉과 더 깊은 사랑에 빠졌으면 해요.

이번 로드트립 여정에서 내주셨던 음식에 관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흔히 아삭하고 달콤한 강릉 초당옥수수를 많이 알고 계시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찰옥수수의 쫄깃한 식감을 선호해요. 치킨 스튜와 함께 끓여내면 진한 닭 육수에 쫄깃한 찰옥수수 알갱이가 씹혀 매력적이에요. 그리고 생감자로 부침에 가까운 식감의 감자떡을 만들어 트러플 꿀과 함께 완성한 음식은 와인과 잘 어울려요. 로컬 파트너에게 신선한 강원도 한우 홍두깨살을 제공받아 한우 타르타르를 만들어요. 그리고 들깨 수확철이 끝난 다음 찾았던 지역 농산물 시장에서 갓 짜낸 들기름과 들깨 가루를 보며 아이스크림에 대한 영감을 얻었죠.

특히 애정을 갖는 강릉의 식재료가 있다면요?
감자요. 뻔하고 재미없는 답일 수 있을 텐데 여기 분들은 정말 다양한 조리법으로 감자 요리를 즐기시거든요. ATC 메뉴 중 하나인 버터에 구운 감자떡 역시 오랫동안 강릉의 식재료를 봐온 남편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거예요. 다양한 감자 요리를 찾아보는 일도 무척 흥미롭죠.

미식의 경계를 넘어 지역과 여행을 잇는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신데요.
ATC 오픈 준비를 하며 독일 베를린을 방문했던 적이 있어요. JAJA라는 와인 바에 갔는데, 가게 오너가 저희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는 직접 배추를 재배해서 담근 김치를 내어주셨어요. 그 김치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ATC 키친 팝업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파리를 기반으로 서점과 문화 공간을 제안하는 OFR PARIS의 협업도 기억에 남아요. 8월에는 정식으로 OFR GANGNEUNG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곳 이름이 여행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여행은 늘 인생에 새로운 활력을 주죠.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집 근처 다른 동네에 가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어요. 그 지역에 사는 타인의 일상을 엿보며 충분한 영감을 받을 수 있죠. 여행을 하며 ATC를 그려보게 되었으니, 여행은 저를 이끄는 원동력 아닐까 싶어요.

SPOT 3. 강릉 선교장
이 지방 명문으로 알려진 이내번이 살던 곳이 후손들의 거처로 이어졌다. 선교장은 노송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어 주변 풍광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강릉시 운정길 63SPOT

4. ATC Aaron’s Tourist Center
ATC는 일상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이닝에서는 여행의 설렘을 상기시켜줄 음식을 준비하고, 스브니어SOUVENIR에서는 기분 좋은 기념품을 만든다.
강릉시 율곡로 2802 2층

자근숩에 도착한 오후.

하루의 끝, 다시 여행
여행의 첫날 일정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신기하게도 웅지천을 가로지르는 마재교를 통과하니 집에 도착이라도 한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기서부터 자근숩까지는 200m 남짓, 저 멀리 낮은 언덕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숙소로 향하는 길 양옆으로는 이름 모를 하얀 들꽃이 가득 피었다. 마주한 숙소는 반듯하게 재단된 새하얀 벽면이 포개어져 모던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모습이다. 문을 삐걱 열고 들어서니 잘 가꿔진 잔디밭과 그네가 아이의 시선을 끈다. 전동 미니카를 타고 폴리싱 트랙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나면 낯선 공간에 어색하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진다. 통유리창 너머로 수영장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쌓을 하룻밤의 추억이 얼마나 다양할지 기대감이 채워진달까.
거실을 중심으로 모든 공간이 열려 있는 실내, 높은 층고와 정원으로 난 통창 덕분에 시야가 확 트인다. 계단 위 작은 다락방과 거실 곳곳에 아이를 위한 장난감이 놓여 있어 가족이 함께 놀이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무엇보다 수영장에서 참방참방 물놀이를 하며, 여행의 감상을 나누고, 내일의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간다.

(위부터) 이번 여정을 함께한 ELECTRIFIED GV70.
숙소 거실에서 바라본 정원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SPOT 5. 자근숩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여 자근숩이라 이름 붙였다. 새싹동과 열매동, 두 곳을 운영 중이며, 아이와 동반한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다.
강릉시 안현로 244번길 61


DAY 2


여행의 둘째 날은 하평교를 따라 달리며 시작되었다. ©Seonghyun Sang

+CLOSE TO NATURE
강릉 사천면 한가운데를 지나는 하천인 사천천은 사기막을 지나 미노리 하구 후리둔지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위에서 내려다본 사천천의 풍광은 날것의 자연 같기도, 캔버스 위에 의도를 가지고 그려낸 아름다운 풍경화 같기도 하다. 바닷바람을 느끼려 활짝 열어둔 창문을 닫는 순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진공 상태가 된 듯 일순 고요함이 밀려온다. 소리가 차단된 풍경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
하평교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숲속을 산책하며.
계절에 맞게 꽃을 피운 아스틸베의 모습.
고래책방의 2층 서가는 생애주기를 따라 구성되어 있다.

나무의 말
차를 타고 점점 숲으로 향한다. 길은 어느새 숲길로 접어들고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선 바다 냄새 대신 싱그러운 녹지의 냄새가 짙어지고 있다. 목적지는 금강소나무 원시림이 보존된 칠성산 자락 용소골에 자리한 솔향수목원이다. 여행자 오제민은 작년 여름 하담이를 데리고 수목원에 왔었다고 운을 뗀다. 그때는 아빠 품에 꼭 안겨서 수목원 초입을 산책한 것이 다였으나, 한 해 사이 아이는 훌쩍 자라 잰걸음으로 수목원 곳곳을 탐험하느라 바쁘다.
약 78만m2 거대한 규모의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향유할 수 있도록 야생화 등을 보강해 이곳 수목원으로 조성했다.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장 안쪽에 위치한 전시온실에 하차해 내려오며 자연을 관찰하기로 한다. 그에 앞서 숲속놀이터에서 나무로 만든 미끄럼틀과 그네 등을 타다가 피나물, 산마늘 등 42종의 약과 식물이 전시된 약용식물원을 지나 암석원과 향기원을 통과해 숲생태관찰로를 산책한다. 그리고 수목원 초입 계곡에서 한낮의 더위를 식히며 짧은 물놀이를 즐긴다. 생경한 식물의 이름을 되뇌며 여행에서 아이는 새로운 단어들을 수집한다. 나무에 말을 걸고 나무의 말을 듣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 의미 있다는 걸 어른들은 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이에게 좀 더 확장된 세계를 열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터라 옥천동에 있는 고래책방을 가보기로 한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모두 서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층 어린이 서가가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화 체험이 열악한 우리 지역에서 가족 나들이가 가능하도록 어린이 신간 및 그림책 베스트를 매월 새롭게 선보이고 있어요. 이 공간에서는 계절별로 다채로운 활동이 이뤄지기도 하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호기심과 책방 방문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래의 제안이라고나 할까요?” (고래책방 김선희 대표)

강릉솔향수목원으로 가는 길.

SPOT 6. 강릉솔향수목원
자생 수종인 금강송이 곧게 뻗은 천년숨결 치유의 길 등 수목원을 대표하는 산책로가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꽃향기와 솔향기를 맡으며 자연에 동화되는 것은 물론,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야생화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강릉시 구정면 수목원길 156

SPOT 7. 고래책방
2018년 12월 처음 문을 연 고래책방은 ‘다시RE 가자GO’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릉, 삶 그리고 여행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큐레이션을 진행하며, 지하 공간은 강릉의 문화와 강릉 출신 문인들의 작품을 담았고, 1층은 인생을 표현한 문학소설, 에세이류 및 여행을 주제로, 2층은 생애주기를 따른 서가로 구성했다. 3층은 북토크를 비롯한 각종 세미나 및 리셉션 장소로, 4층은 갤러리로 운영 중이다.
강릉시 율곡로 2848

재개관의 여정을 마친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예술은 조용히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공간과 대화하다
소나무 숲을 병풍처럼 두른 교동 7공원 안, 새하얀 직육면체 구조물이 빛을 머금고 있다.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한국의 첫 공공미술관으로, 강릉의 자연과 현대 건축이 정제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하는 생각에 미루다 보니 이번 로드트립을 통해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고 오제민은 말한다. 차는 그렇게 여행자가 꿈꾸던 공간으로 불현듯 데려다 놓는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엄격하게 정돈된 직선과 면, 여백의 미학에서 비롯된다. 백색 외벽과 간결한 공간 구성은 마이어 특유의 건축 철학을 반영하며, 자연광이 내부 깊숙이 스며들도록 설계된 갤러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 속에서 작품과 공간, 관람객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중정은 빛과 시선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공간 안팎을 유연하게 연결해 건축과 자연을 하나로 엮는다. ‘소나무 많은 고을’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미술관은 숲과 공원, 백두대간 능선이 시각적으로 맞물린다. 재개관의 여정을 마친 이곳에서 예술은 조용히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특별전을 시작으로, 곧 생태주의를 주제로 한 다중 작가 기획전 <생태주의: 이미지의 연대>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층고 높은 로비의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 아래, 아이가 설레는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전시실에서는 예술을 어렵게 느끼기보다 작품의 형태와 색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언어로 감상을 풀어낸다. 강릉에 살고 있는 이들 가족에게 이 공간은 다채로운 언어로 빚어낸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SPOT 8.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강릉의 자연환경과 현대적 미학이 어우러진 상징적 공간이다. 여행자는 사람, 자연, 미술, 건축이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이곳에서 자연 속 예술을 체험하고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강릉시 원대로 45


 

햇살 좋은 여름날, 어느 낯선 고택의 정원에 앉아 가족 여행을 계획한다.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곳 강릉을 낯설게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때로는 엄마를 위한, 때로는 아이를 위한, 때로는 아빠를 위한 장소를 탐닉하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마치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닮아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난 뒤 일상에서 종종 여행의 흔적을 찾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 장면에 다양한 웃음소리가 오버랩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강릉에 살고 여행하는 중이다.

 

글. 임보연BO-YEON L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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