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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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호

가을볕이 부서지고 울긋불긋한 단풍에서 물기가 점차 빠지더니 계절의 색은 더 깊어졌다. GV60를 타고 영월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고개를 넘고 넘어 고요한 장소로 깊숙하게 들어가 보려는 참이었다. 그런 작정 덕분이었을까. 여행지에서의 모든 소리가 보통날과는 다른 데시벨과 감각으로 들려온다. 갈대밭 위를 지나는 바람을 보고,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통해 돌의 형태를 그려본다. 때로는 북적거리는 시장통에서 만나는 소란한 웃음이 아득히 멀어지는가 하면, 침묵으로 일관하는 갤러리에서는 숨소리도 공명이 되어 돌아온다. 투둑투둑, 근처 밤나무에서 잘 영근 밤이 떨어지는 소리에 겨울철 간식거리인 달콤한 군밤을 상상한다. 숙소로 돌아와 시장에서 구입한 소박하지만 싱싱한 재료들을 꺼내 평범한 저녁 한 끼를 준비하는 동안, 여행에서 수집한 영월의 소리를 떠올리며 어느새 다시 그 여행의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 짙은 빨강으로 물든 단풍나무 너머로 색 바랜 갈대가 바람에 넘실댄다. 그리고 이번 여정을 함께한 강보경이 타고 온 우유니 화이트 색상의 GV60 차량 위로 색색의 가을빛이 일렁인다.

여행의 시작
지난 10월, 제네시스 로드트립 ‘나의 여행 스토리 공모전’을 열었다. 여행 애호가들이 보내온 저마다의 여행 이야기는 1000여 편이 넘었다. 그중 여행에서 마주하는 인상적인 순간을 카메라와 소리로 담아내는 일을 좋아한다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소소하게 여행의 행복을 기록하며 여행 유튜버로 살아가는 강보경의 이야기는 공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영월로 소리 수집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고, 영월 로드트립은 시작되었다.

(왼쪽부터) 영월 섶다리에서 바라본 중첩된 산의 모양새. 곧게 뻗은 나무는 영월의 식생을 짐작하게 한다.

“평소 기록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여행지의
풍경과 감정을 담아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게 되었죠. 렌즈
너머 세상이 재미있게 느껴지고, 촬영한
장면들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었습니다. 그런 점이
유튜브에 삐룸이라는 공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 제네시스 로드트립 <나의 여행 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자 강보경

섶다리 위에서의 소리를 수집하고.

이 다리 위에서 ‘폭신폭신’은 의태어가 아니라, 의성어로 다가온다
영월을 관통하는 천변을 따라 달리는 사이 물길의 이름이 몇 번 바뀌었고, 어느새 평창강 부근에 다다랐다. 목적지인 판운리의 섶다리 주변을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눈으로 어렴풋하게 구분이 가능한 거리에는 곧게 뻗은 침엽수와 멋들어진 수형의 밤나무, 벚나무 등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마치 자연의 품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그리고 바로 곁에는 아직 나뭇잎이 남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한 그루와 계절의 묘미를 만끽하며 노지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눈에 띈다. 섶다리는 강물이 얕아지는 10월경 물에 강한 물푸레나무를 물속에 Y자로 쭉 이어 세워 지지대를 만들고 그 위에 잎나무, 풋나무 등 섶나무를 엮고 진흙을 덮어 완성한다. 밤나무가 많이 난다는 밤뒤마을과 그 건너 미다리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평창강 위에 놓인 다리는 눈이 녹아 비가 되는 우수 때까지 제 역할을 한다. 다리 위로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발아래 섶다리의 폭신한 표면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폭신한 소리를 들으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영월 섶다리 강원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섶다리를 건넌다.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며
이곳은 산의 중턱쯤 되겠다. 도로 옆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 위해 액셀을 한번 가볍게 밟는다. 이런 곳에 서점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쯤, 양지바른 곳에 단정한 모양으로 세워진 서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입간판 위에 써둔 ‘서점’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낯선 여행자에게 살랑살랑 다가오는 고양이의 안내를 따라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일자로 펼쳐진 내부 공간, 책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 공간에 왠지 딱 알맞은 수만큼 진열된 듯 보인다. 표지 색상에 따라 분류한 서가를 보고 있자니, 불쑥 생경한 분야의 도서를 꺼내 들게 된다. 이곳 주인장인 윤태원 작가는 단순히 심미적 측면에서 책을 색으로 구분해 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동안 서점을 운영하며 얻게 된 일종의 노하우로 배치한 거죠. 어떤 특징을 가지고 구분하면 건너뛰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자신이 모르는 작가 코너는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우연히라도 닿을 수 있게 해보자 싶었어요. 숨겨진 포인트가 하나 있긴 하지만, 그건 비밀이고요.” 그렇게 의도와 우연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만났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서점 밖 정원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도 좋다.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해 서점 밖 정원으로 향하는 여행자의 뒷모습.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 서점에는 고양이 두 마리(두부와 요리)가 있는데, 서가에서 정원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인디문학1호점은 영월에 단 하나뿐인 독립서점이다. 영월 시내에 서점을 열었다가 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동명의 독립출판사를 시작했고, 좋은 작품을 찾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출판사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서점은 오늘도 이곳을 찾는 이에게 마음의 안정감을 주며 책을 판다. 서점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향과 소리, 모든 동네 서점은 결국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인디문학1호점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785

GV60를 타고 인디문학1호점에 도착한 오후.

“여행도 일상처럼 계획을 세우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처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유연하게 대처하며 그 흐름을 즐기고
배우는 편이에요.”
- 강보경

윤태원 작가는 꼭 자연을 향해 놓아둔 의자에 앉아서 잠시 머물다 가라고 한다.

침묵 속 시간
이른 아침, 한반도를 연상시키듯 삼면을 둘러싸고 강이 흐르는 청령포를 거쳐 영월 장릉으로 향할 계획을 세웠다.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거친 암벽으로 가로막혀 있고, 나머지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으니,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저 외로운 섬이라고 할 수밖에. 아주 작은 배를 타고 여름 장마로 잠길 위험에 처해 객사 관풍헌으로 옮기기 전까지 단종이 머물렀던 곳에 이른다. 그곳에서 울창한 송림을 거닐다 보면, 단종이 느꼈을 적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런 다음 단종의 능으로 향하고자 차를 타고 3분 남짓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한다. 영월 장릉에 도착해 입구에 있는 단종역사관부터 들러 단종과 관련된 문헌과 유물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살핀다. 그런 다음 길을 따라 단종릉으로 향한다. 사위는 고요하고,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시간은 흘러 그때의 일들은 이제 모두 역사 속 한 페이지가 되었다. 그것은 멈춰 있는 동시에 계속 변화하는 것임을 안다.

(왼쪽부터) 장릉을 에워싼 담벼락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다. 단종역사관을 지나 재실(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기거하던 곳) 맞은편 벤치에 앉아 여행의 기록을 살피는 중이다.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자 3년 만에 세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후 사육신의 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으며, 4개월 만에 사약을 받고 17세의 일기로 승하한다. 조선 제6대 단종의 능인 영월 장릉은 중종 1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숙종 24년에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칭하게 된다. 이러한 단종의 비극적인 삶은 소설가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등 여러 문학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영월 장릉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월의 가을에 채집한 곤드레(곤달비)는 향이 깊고 고소한 맛이 풍부하다. 맑은 물과 공기로 키워낸 영월의 맛을 재해석한 공간에서 시간의 풍미를 느껴본다.

+ LOCAL FLAVOR
갓 구운 빵을 기다리는 행복. 이곳엔 여행자도 현지인도 아침이면 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다. 기다리는 일은 귀찮기보다 행복감을 배가시켜주니 좋다. 순서가 가까워지고, 찜해두었던 소금빵을 종류별로 구입한 뒤 2층으로 올라가 조용하게 갓 구운 빵을 맛본다. 겉은 바사삭, 속은 촉촉한 궁극의 소금빵 맛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월에서 자란 곤드레나물을 활용해 만든 소금빵을 꿀에 찍어 먹는 영월곤드레 고르곤졸라 소금빵이나, 여름 한철에만 맛볼 수 있는 강원도 찰옥수수 소금빵도 별미다.
영월소금빵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월로 2097-2


공명하는 시간
이곳은 과거 술샘박물관이었던 공간을 재생해 새로운 역할로 재탄생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지역의 색과 정서를 반영해 설치한 다양한 작품이 여행자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젊은달와이파크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붉은 대나무로 구성된 입구 통로이다. 강원도 강릉의 오죽을 떠올리며 영월 주천과의 연결고리를 붉은색 감관(금속 파이프)으로 만든 최옥영 작가의 공간설치미술 작품이다. 영월이 가진 자연의 색상인 녹색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붉은색은 영월 재생 공간의 에너지를 담아낸 듯 보인다. 여기선 공간이 안내하는 대로 흘러가보자. 처음 도착한 공간은 목성. 강원도에 지천으로 널린 소나무에 주목했고, 소나무 장작을 엮어서 바구니를 엎어 놓은 듯한 형태로 완성한 이곳은 생명의 분화구 같은 빛과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로 인해 이 소나무 향기 품은 돔 안에서 대지를 한없이 느끼게 된다. 바깥에는 새가 둥지를 틀었는지, 짹짹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린다. 작가가 만든 공간은 이내 자연의 일부가 되었음을 그 소리로 알게 된다. 미술관이 안내하는 대로 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젊은달미술관 전시실 3곳을 거쳐 붉은 카펫이 깔린 것처럼 강렬한 바람의 길에 다다른다. 파이프 틈으로 영월의 산과 자연을 바라볼 수 있으며 그 사이로 바람과 공기를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왼쪽부터) 새롭게 영감을 받은 뒤 차에 오른다. 젊은달와이파크 입구의 설치작품.

영월 주천면에 자리한 젊은달와이파크는 조각가 최옥영의 공간 기획으로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 여러 박물관, 공방이 합쳐져 새롭게 탄생한 현대미술 공간이다. 붉은색을 사용하여 총 10개의 구역으로 나뉜 거대한 미술관이자 대지 미술 공간. 이곳에서는 채색 체험, 나무 공예, 목성에서의 요가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젊은달와이파크 강원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1467-9

+ TAKE A DRIVE
동강을 옆에 끼고 달리다 보면 계절에 따라 붉은 메밀밭을 지나가거나 계절에 상관없이 투명한 물빛의 어라연을 만나기도 한다. 맑은 날이라면 하늘빛을 그대로 반영해 투명한 강물은 푸른빛이 깊어진다. 뒤이어 해발 600m에 자리한 수라리재는 꼬불거리는 고개를 가속과 감속을 하며 오로지 주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끈다.
수라리재 강원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 산64-1

영월의 산길은 꼬불꼬불 이어져 역동적인 주행의 묘미를 끌어낸다.

“드라이브를 하는 내내 차 안에서
보는 풍경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거든요.
차창은 카메라의 뷰파인더와도
같아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풍경을
즐기는 행위가 드라이브의 가장
큰 묘미 아닐까 합니다.”
- 강보경

(왼쪽부터) 마치 붓으로 그려낸 듯 유려한 수라리재. GV60의 차창이 담아낸 영월.

땅의 모양이 그려지는 소리
세월이 빚어낸 자연물을 목도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수천 번 환생하는 시간 동안, 물줄기가 화강암반을 매만지고 다듬어 만들어낸 요선암 돌개구멍. 암반의 오목한 곳에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흐르는 와류 때문에 생긴다. 모래나 자갈이 물과 함께 만드는 움직임이 암반을 마모시켜 형성된 것이다. 자연의 힘과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이곳 요선암 돌개구멍은 그 크기와 형태가 매우 독특해 학술적 가치도 높다. 여행을 마치고 난 뒤, 강보경은 요선암 돌개구멍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잔잔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그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줬어요. 소리에 집중하니 그 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가 하면 영월 방절리 절벽에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갠 듯 수직으로 영월 선돌이 세워져 있는데 이 또한 오랜 세월 강물과 바람이 만들어낸 독특한 지질학적 형상이다. 그 위에 올라서니, 영월 청령포로 가는 길에 선돌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어 갔을 단종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동강이 산수화처럼 펼쳐지며, 순식간에 이곳의 지형과 시간을 거슬러 역사 속 어느 지점으로 여행자를 이끌어준다.

(왼쪽부터)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의 요선암 돌개구멍. 영월 선돌 위에서 바라본 영월.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문예가 봉래 양사언이 평창군수 시절, 이곳 풍광을 즐기며 암반 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돌개구멍(포트홀pot hole)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란 의미이며, 맑은 물에 반사된 구멍 주변의 풍경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선암 돌개구멍 강원 영월군 무릉법흥로 275-25

영월 선돌은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 있는 조선 누층군 와곡층으로 구성된 바위이다. 2011년 6월에 명승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약 70m 정도의 입석으로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불린다. 푸른 강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광을 완성한다. 특히 선돌은 일출과 일몰 때 더욱 장엄한 모습을 내보인다.
영월 선돌 강원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769-4

늦가을과 겨울 사이 영월은 다채로운 색으로 빛났고. GV60를 타고 하는 자동차 여행은 강보경을 의외의 장소에서 자꾸 멈춰 서게 했다.

일상적 소음
몽상가의정원 편채원 대표는 이곳을 지을 때 딱 두 가지를 지키자 마음먹었다. 집의 본질에 충실할 것, 그리고 토지의 특색을 최대한 살릴 것.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되고자 생각했고, 덕분에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집이 되었다. 몽상가의정원으로 향하는 길, 토지의 경사가 무척 심한데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가 무려 10m에 달한다. 그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재미 요소로 느껴졌고, 땅의 모양을 살릴 이유로 충분했다. 그래서 언덕을 오르는 사이 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묘한 설렘을 안겨주는 것만 같다.
주인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한 채로, 하루 머물다 가기로 했다. 고요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걸 경험해보는 일. 그녀의 말에 따라 자연의 소리 외에 그 어떤 소음도 없는 이곳에서 새카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마주하고, 밍밍한 차를 마시고, 호스트가 차려준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뒤, 정갈하게 마련해준 이부자리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이 단순하고도 담백한 일련의 일을 해내고 나면, 비로소 진짜 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밤, 편채원 대표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여행자 강보경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노라 고백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저 역시 저만의 방식을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행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어주나 봅니다.”

경사로를 올라 이색의 낮과 사색의 밤, 그 사이에 멈춰 선 GV60.

이 공간의 기능을 ‘숙소’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아서 몽상가의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행자가 머무는 공간은 두 곳, 이색의 낮과 사색의 밤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제일 안쪽에는 주인 부부가 머무는 곳이 함께한다. 몽상가의정원은 여전히 그만의 정체성을 다져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주인의 의도와 철학이 고스란히 담기며 나날이 깊어지는 중이랄까. 그러니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여행자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최적의 장소일 수 있다.
몽상가의정원 강원 영월군 주천면 신흥동길 206

 

“여행의 루틴이 있죠. 숙소 주변
산책하기, 방명록 살펴보기, 그
지역 마트나 시장에 들르기 같은
것들입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시장에서 구입한 소박하지만
싱싱한 재료들을 꺼내 숙소에서
평범한 저녁 한 끼를 준비하는 사이
영월에서 수집한 다양한 소리를
떠올립니다. 그렇게 차려낸 식탁
앞에서 이곳의 계절과 풍미를
곱씹어봅니다.”
- 강보경

+ THE SHAPE OF SOUND
점차 갈대밭 한가운데로 차를 몰고 깊숙하게 들어간다. 마침내 길이 없는 곳에 도달한다. 차를 세워 두고, 카메라를 꺼내 삼각대에 고정하고, 기울어가는 빛을 받아내는 갈대의 모습을 기록한다. 그러고는 작은 녹음기를 꺼내 바람의 모양이 그려지는 갈대밭 소리를 담아낸다. 이 모든 기록이 재생될 때 과연 영월을 어떤 기억으로 떠올리게 될지 궁금할 뿐이다.
서강 갈대밭 강원 영월군 남면 북쌍리 1004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순간, 갈대밭 위로 다채로운 금빛 물결이 넘실댄다.
(왼쪽부터) 삐룸의 영상에서라면 엔딩에 이곳에서 포착한 여행자의 뒷모습을 길게 담아 여운을 남길 것이라고. 차창은 일종의 뷰파인더와도 같다.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한정되어 있던 시야를 넓혀주는 경험이다. 나는 스스로 경험주의자라고 말하곤 하는데,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행은 새로운 공간,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영감을 주고, 동시에 공감의 폭 또한 넓혀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이 동해 첫발을 내딛고,
다른 곳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일깨우는 장소에서 걸음을 잠시 멈춘다.
계절의 끝, 자연은 아름답게 변주하는 색감과 소리가 되어 온몸을 감싸오고,
멈춰 선 곳에서 잠시 여행의 시작과 끝에 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여행은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로드트립 중 우연히 발견한 영월 남면 북쌍리의 광활한 갈대밭.(c)상승현

 

글. 임보연BO-YEON L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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