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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호

어느 가을, 모녀는 함께 청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낯선 길을 따라 천천히 달리다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는 자연스레 차를 멈춰 섰고, 여행 전 열심히 찾아본 목적지에 가닿기도 했다. 엄마를 위해 차의 문을 열어주는 소리, 잘 마른 흙길을 밟는 소리, 테이블 위의 찻잔을 딸 앞으로 살포시 밀어주는 소리가 여행의 시간을 채운다. 엄마는 매일매일 사소한 일들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딸은 이번 여행이 엄마의 일기 속 행복한 추억으로 기록되기를 바랐다.

제네시스 청주에서 ELECTRIFIED G80 차량을 픽업한 후 로드트립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번 로드트립은 제네시스 전기차 플래그십 세단 ELECTRIFIED G80와 함께했다. 엄마 이정숙은 뒷좌석의 프라이빗하고 안락한 공간감 덕분에, 딸 방예은은 세련된 전동화 기술력 덕분에 여행의 즐거움이 한층 깊어졌다고 말한다.

제네시스 청주의 1층은 차량 시승과 인도를 위해 찾은 이들을 환대하는 공간이다.

각자의 풍경을 엮는 일
청주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단어들이 있다. 공예 그리고 대청호는 아마도 여행자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된 모습들 중 하나일 터. 여행의 시작점, 마치 허공에 수를 놓아 중첩된 산맥을 표현한 것 같은 아름다운 공예 작품 앞에 모녀가 나란히 앉았다. 작품을 감상 중인 이곳은 제네시스 청주.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 청주시한국공예관과 함께 기획한 전시 <차오르는 밤: Night in Motion>의 첫 번째 섹션이다. 정소윤 작가는 염색한 투명사와 재봉 작업을 통해 하나의 풍경을 완성했는데, 가느다란 실을 끊임없이 엮어가며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공간으로 확장하며 작가만의 풍경을 그려낸 것으로 해석된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만난 광대한 산의 능선은 작가를 위로하고, 이내 사색이 겹겹이 이어지며 삶의 산수가 되었을 터. ‘누군가 널 위하여’라는 작품명처럼 당신을 위한 마음으로 엮은 위안이자 평온의 풍경이다. 이는 서로를 향한 모녀의 마음과 닮았다. 그리고 이 풍경은 새벽녘 대청호 너머로 넘실대는 산맥의 실루엣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제네시스 청주가 위치한 비하동에서 남쪽으로 약 40여 분가량 달려 대청댐 전망대에 도착한다. 대청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의 거리는 27km 정도에 불과하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방예은길은 내내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져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덕분에 엄마와 딸은 둘만의 공간에서 앞으로의 여정에 관하여 기나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청댐 전망대에 서면 1974년부터 1980년까지 물을 가둔 6년의 시간과 그 이후 켜켜이 쌓인 45년의 세월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호수는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연결과 풍경을 품어왔다. 엄마와 딸에게도 이번 여행이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연결점이 되어줄 것임을 안다.

+BEHIND THE SCENE
“청주를 로드트립 하는 동안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소 중 하나는 대청호였어요. 날은 맑았고, 호수 위 윤슬은 반짝였으며,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죠. 그 순간만큼은 여행의 목적도, 시간도 잠시 잊고 풍경 속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로드트립은 목적지로 향하는 모든 과정도 여행이 된다는 사실을요.” - 로드트립 공모전 대상 방예은

(위부터) 대청호 너머 중첩된 산맥.
제네시스 청주에 전시된 정소윤 작가의 작품을 감상 중인 모녀.

SPOT 1. 제네시스 청주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여행자를 환대하는 장소이다. 청주 지역의 특색을 반영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품고, 제네시스의 철학을 더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제네시스가 큐레이션한 커피나 티를 즐기며 특별 전시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운지부터 차량에 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는 공간까지, 로드트립 여행자의 감각을 확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257

SPOT 2. 대청호
금강은 전북 장수에서 시작해 충북 옥천을 지나 대청댐에 흘러 들어온 뒤 서해로 빠져나간다. 장대한 물길을 잠시 품었다 흘려 보내는 대청호의 면적은 72.8km2. 인근 대청댐물문화관에서는 댐과 호수에 관한 다변화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소개하고 있어 호기심 많은 여행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가호리


+THE CONNECTION
청주 도심에서 청남대로 이어지는 도로는 계절마다 풍경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은행나무, 소나무, 벚나무는 한여름에 짙은 녹음 터널을 만들다가 가을이면 하루가 다르게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굽이치는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대청호가 시야를 활짝 열어주었다가 이내 숲이 다시 차창을 채우는 장면이 반복된다. 그 길목에서 대청호를 품은 작은 미술관 하나가 아담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늘 특별한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끄는데, 개관을 기념해 선보였던 <김환기와 편지>전부터 공예의 다양한 변주를 탐닉할 수 있었던 <2025 초대전, 잇다: 공예·전통·내일>까지 구성이 다양하다. 모녀는 잠시 숨을 고를 겸, 호수영미술관 부근을 천천히 산책해보기로 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호숫가에 다다랐고, 두 사람은 조금 전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들꽃이며 나무의 형태를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간다. 이렇듯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같은 풍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청남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청남대길 646


결에 관하여
무심천변을 따라 소담한 동네의 정취를 감상하며 한참을 달린다. 내비게이션 화면 속 지도가 점점 단조로워지더니,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넓은 정원을 품고 있는 에클로그의 첫인상은 어느 하나 주변 환경을 해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조화를 이룬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에클로그 이종호 대표는 비어 있는 이곳 땅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 이곳을 봤을 때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들판과 산의 능선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안정됐어요. 그래서 이 풍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건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선과 여백을 살린 건축이 완성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완성한 에클로그에서 인테리어를 하던 아내는 커피를 내리고, 목공예를 하는 남편은 지하 작업실에서 목공을 가르치며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한낮의 지하 목공방은 적당히 따뜻했고, 적당히 분주했으며, 적당히 소란했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섬세하게 모양을 만들어가는 각종 장비, 크기와 질감이 제각각인 목재들, 그리고 이종호 대표가 만들어둔 나무 소재 장난감 자동차며 도마, 필기구 등이 놓여 있다.
“놀라지 마세요, 소리가 좀 크거든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무가 단번에 잘려 나갔고, 곧바로 모녀를 위한 목공 수업이 시작되었다. 예은 씨는 엄마를 위해 평소 주방에 들이고 싶어 하던 나무 도마와 늘 뭔가를 기록해두는 취미에 필요한 샤프 하나를 만들기로 했다. 적당한 목재를 고르고,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표면을 다듬고,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모든 과정은 나무가 지닌 본연의 결을 드러내고, 그 결을 보다 아름답게 구현하는 일 같아 보인다. 오일을 묻힌 헝겊으로 도마의 표면을 살살 닦아내며 기름칠을 하고, 나무 틀에 심을 끼우고 마무리 손질을 하니 작은 필기구도 완성이다. 그것들을 자꾸만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에서 딸의 선물이 마음에 꼭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공 작업을 마친 뒤 모녀는 에클로그 2층으로 올라가 이곳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커피 오마카세를 즐겨보기로 한다. 바리스타가 준비한 핸드드립 커피 3종과 그에 어울리는 디저트 3종을 페어링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음미하다 보면 평소 지나쳤던 맛의 감각이 깨어나 커피의 숨겨진 풍미와 만나게 된다.

ELECTRIFIED G80의 브루클린 브라운 색상은 깊숙한 자연 속에서나 모던한 건축 앞에서나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위부터) 목공 수업을 통해 완성한 도마와 샤프. 에클로그 이종호 대표와 함께 섬세한 목공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SPOT 3. 에클로그
뒤로는 낮은 산이 둘러싸고 앞으로는 잔디밭과 청주 시내 일대가 펼쳐진다. 지하엔 목공방이 그리고 1층과 2층엔 카페 공간이 자리한다. 이곳 인테리어는 1층은 땅과 산, 2층은 하늘이라 해석하고 디테일을 완성해갔다. 그러니 여행자는 1층 평상 좌석에 앉아 정원을, 2층 테라스 좌석에서 하늘을 감상하며 자연이 주는 안온함에 깊이 빠져보기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덕길 26-84

(위부터) 커피 오마카세를 마친 후.
커피를 추출하며.

MINI INTERVIEW. 에클로그 점장 박은환
에클로그의 커피 오마카세를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바리스타들이 고객에게 직접 추천하는 다양한 핸드드립 커피와 디저트를 페어링해 제공하는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커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곁들이며 소통하죠. 원두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모든 메뉴는 핸드드립 커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장소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나요?
첫날 이곳에 왔을 때 건축과 풍경, 그리고 이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까지 모두 멋지다는 인상이 깊게 남았습니다. 청주시 아름다운 건축물 대상을 받을 만큼 건물 자체의 매력도 충분한 곳이죠.
커피 오마카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고객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커피 오마카세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설명을 하고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 바리스타가 커피를 추출하는 순간, 커피를 잔에 따르고 그에 어울리는 디저트를 준비하는 일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그사이 침묵도 하나의 대화처럼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할머니의 고조리서가 손녀딸에게로
1913청주부엌으로 향하게 된 것은, 강신혜 대표가 고백하듯 자신의 책 <반찬등속> 서두에 쓴 이 문장 때문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음식 조리법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조상에게 물려받은 정신과 기술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일인 동시에 그들을 향한 무한한 축복이자 사랑이었다. 이렇게 할머니의 전통은 시작되었다.’
좁은 골목길을 향해 난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3개의 구옥이 합쳐져 완성된 오늘의 공간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시간을 겪어낸 공간은 강신혜 대표의 안목과 취향으로 재배열되어 1913청주부엌으로 재탄생했다. 입구 맞은편 커다란 무쇠솥이 자리하고 있는 바 공간과 그 너머의 부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향하는 짧은 동선에는 옻칠한 한지로 만든 문살과 윤기 나는 소반이, 그리고 테이블 위 양배추 형태의 펜던트 조명이, 그리고 창문 너머 구옥의 아름다운 타일 바닥이 시선을 끌어 시간이 지체된다. 그리고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조리서 <반찬등속>이 편찬된 1913년, 그로부터 112년이 흐른 지금 고조할머니의 한과를 현대의 부엌에서 다시 살려낸 고손녀의 여정이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강신혜 대표는 나무 도마 위에서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만든 달걀지단을 곱게 채 썰어 ‘화병’을 만들 준비 중이다. 이 메뉴 역시 <반찬등속>에 기록된 레시피를 온전히 구현한 것으로, 쫀득하게 치댄 인절미를 잘게 채 썬 달걀지단에 살살 굴려 묻히고, 실고추를 올려 마무리한다. 이어 가을 기운을 온전히 담아낸 곶감 단자와 밤양갱이 차례대로 테이블에 오른다. 오래된 조리서의 한 페이지가 눈앞에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연잎주 만드는 방법을 각색하여 연잎에 밥을 싸서 만든 연잎 식혜에서는 은근한 단맛이 뒤따라오고, 오미자 화채는 고운 빛깔 속 다채로운 맛이 미각을 일깨운다.
한줄한줄 써 내려간 고조할머니의 조리서 속 레시피를 곱씹듯 해석하고, 공부하고, 재현하는 과정은, 고손녀가 고조할머니를 사랑한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위부터 시계 방향) 구옥의 형태는 살리고 그 안엔 새로운 것들을 채워 완성한 1913청주부엌.
가을의 풍미를 담은 곶감 단자.
화병을 만들고 있는 강신혜 대표.

SPOT 4. 1913청주부엌
강신혜 대표는 25년간 잡지사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고조리서 <반찬등속>과 관련된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두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그 과정에서 옛 방식의 조리법을 연구하고 한과를 공부하고 만들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우암산로29번길 32

고조할머니의 고조리서 <반찬등속>의 음식들이 강신혜 대표의 손길로 재탄생되었다.

비담집 외관.

비우고 담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는 여행의 첫날, 모녀는 미호천을 따라 난 서정적인 길 끝에서 비담집을 만난다. 이 집은 일반적인 숙소가 아니다. 평소에는 주인이 살고, 때때로 여행자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운영 중인 스테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의 일상’이 조용히 남긴 온기와 ‘여행자를 위한 빈자리’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정성스레 가꾼 정원이 보이고, 거실의 커다란 통창 너머로는 시간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미호천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모습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집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왠지 이 집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이곳만의 루틴에 따라 느릿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목재와 흰 벽으로 정갈하게 잡아낸 건축의 결, 군더더기를 배제한 가구, 그리고 벽면 곳곳에서 느껴지는 주인장의 취향이 집 전체에 하나의 이야기를 부여한다. 여행자를 위한 공간이면서도 누군가의 삶이 이어져온 시간의 층위가 느껴져 비담집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일상과 여행의 중간 지점처럼 자리한다.
늦은 오후, 모녀는 짐을 풀고 부엌의 넓은 테이블 앞에 마주 앉는다. 에클로그에서 만든 결이 고운 나무 도마 위에, 1913청주부엌에서 사온 곶감 단자를 올리고, 가을에 잘 말려둔 메리골드 꽃차를 우리니 은은한 향이 집 안 가득 퍼진다. 딸은 천천히 곶감 단자를 자르며 창밖으로 흐르는 미호천의 느린 움직임을 바라보고, 엄마는 딸에게 선물 받은 나무 샤프를 꺼내 하루의 여정을 조용히 기록한다. 사각사각 종이에 적어 내려가는 소리가 참 좋다.
슬슬 테라스로 나서면 석양빛으로 물든 미호천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모녀는 내일의 여정을 계획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른 아침 가볼 추정리 메밀밭에 대한 기대감과 상당산성의 산책 코스가 엄마에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지 소소한 걱정을 나눠본다. 자연 속에서 고요히 머물러보고 싶었던 마음이 무척 흡족한 여정이다. 여행은 먼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두고 싶은 순간을 천천히 발견하는 일임을 깨닫도록 비담집은 조용히 여행자를 품어낸다.

(왼쪽부터) 비담집의 테라스에 앉아 미호천 풍광을 감상하던 딸의 모습.
부엌의 테이블에서 여행을 기록하던 엄마의 모습.

“엄마와 종종 여행을 떠나요. 다양한 나라와 국내 곳곳을 함께 여행했는데, 청주는 처음이었어요. 차분한 분위기와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 덕분에 기억에 오래 남을 여행이 되었어요. 아마도 비담집에서 보았던 노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딸 방예은

SPOT 5. 비담집
비담집은 ‘비우고 담는 집’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그래서 비어 있는 집에 필요한 것만 채워 넣으며 공간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단순한 일자형 구조에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고자 했고, 주변 풍광도 이 집의 요소가 되도록 설계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INTO THE QUIET
모녀의 드라이브는 청주 중심을 지나 수영교 부근 뚝방길로 이어진다. 강을 따라 유연하게 휘어지고, 낮게 깔린 수풀 너머로 물빛이 찰랑이며 드러나는 이 뚝방길은 청주에서도 가장 조용한 주행이 가능한 길로 꼽힌다. 도로 옆으로는 무심천이 잔잔하게 흐르고, 강가를 따라 서 있는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몸을 흔든다. 봄이면 연둣빛이 옅은 물막을 씌우듯 퍼지고, 여름엔 싱그러운 초록이 길 전체를 감싼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과 황금빛 갈대가 물가를 따라 내려앉는다.
수영교 충북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


순환의 여정
이른 아침 계획대로 청주 낭성면 깊은 산자락을 따라 펼쳐지는 추정리 메밀밭으로 향한다. 가을이면 능선을 따라 하얀 눈꽃이 내려앉은 듯한 풍경이 펼쳐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려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이 풍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메밀꽃 사이로 날아드는 수많은 벌떼다. 본래 약 1만 평 규모의 밭은 관광용이 아닌, 토종벌의 먹이를 마련하기 위해 꾸준히 조성해온 밀원 농장이었다. 봄엔 유채, 가을엔 메밀을 심어 벌이 계절마다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생태적 순환 공간이다. 이곳을 일구어온 김대립 대표는 3대째 토종벌을 기르는 국내 1호 토종벌 명인으로 ‘벌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사람에게도 좋은 곳’이라는 믿음으로 매년 메밀을 심어왔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계절마다 반복되었고, 어느 해부터인가 ‘사람들이 먼저 찾아오는’ 풍경이 된 것이다.
능선에 서서 내려다보면 산허리를 따라 흐르는 흰 물결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밭 아래에서는 메밀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꽃의 골짜기를 만든다. 사방으로 산이 거대한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어 종종 인터넷이나 전화가 먹통이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오히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에 온전히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모녀는 메밀꽃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점점 더 깊숙한 야생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본다. 손끝에 스치는 꽃잎의 촉감을 느껴보고 미세한 향을 맡으며 깊게 숨을 들이쉰다. 때때로 여문 메밀이 꽃대 끝에 보이면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즐겁다.
“엄마, 여기 한번 서봐요. 사진 찍어줄게요.”
“아휴, 좋다. 참 좋아.”
누군가의 딸이었던 엄마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시간이 딸이 찍은 엄마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긴다.

SPOT 6. 추정리 메밀밭
가을이면 산허리를 따라 순백의 메밀꽃이 물결처럼 번져서 ‘10월에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 메밀밭은 청주 토종벌 생태를 복원하기 위해 조성된 약 1만 평 규모의 밀원 농장으로, 3대째 토종벌을 기르는 김대립 대표가 운영한다. 메밀꽃이 만개하는 계절이면 한시적으로 축제를 열어 토종꿀 시식과 작은 장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 작은 존재가 청주를 또 다른 방식으로 순환시키는 셈이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 339-2

흰 바위가 언덕 아래로 포개진 자리, 백석정.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
미호천 지류의 작은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숲이 잠시 열리며 조용한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처럼 흰 바위가 언덕 아래로 포개진 자리, 바로 청주 백석정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글을 쓰고 풍류를 즐기던 정자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탁 트인 계류와 나지막한 산세, 계절 따라 달라지는 숲의 모습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청주의 산수는 예로부터 문인들 사이에서 이름이 높았고, 그중 백석정 일대는 풍경의 절제미와 고요함으로 ‘정좌(靜坐)하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 정자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과 바위, 숲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내는 정적의 아름다움이다. 바람이 멈추면 물빛이 거울처럼 고요해지고, 발아래 펼쳐지는 너럭바위는 계절마다 흙빛, 회색빛, 푸른빛을 달리 띤다.
현대를 사는 여행자의 눈에도 백석정은 특별한 고요를 건네는 곳이다. 정자에 걸터앉아 계류 위로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소리가 사라지고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변 산세와 작은 골짜기들은 도시와 닿아 있으면서도 외부의 소란이 전혀 닿지 않는 별개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맥락으로 청주시 동쪽에 우뚝 선 상당산은 예로부터 청주의 중심을 지켜온 산이다. 이 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진 ‘상당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확장과 보수를 거쳐 청주의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고구려의 산성 축조 방식에서 비롯된 견고한 기단과 조선 시대에 이르러 완성된 석축이 한데 어우러져 시대마다 다른 돌의 결이 층층이 쌓여 있다.
약 4.2km의 산성을 따라 걷다 보면 청주의 내력과 산의 숨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역사적 의미가 두텁지만 상당산성은 지역 주민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아침이면 산책하기 위해 오르는 어르신들,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올라오는 가족들, 능선을 따라 천천히 달리는 러너들까지. 거대한 산성과 성곽길이 청주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여행의 이튿날, 유난히 맑았던 오후에 모녀는 성곽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성벽 아래 난 작은 흙길을 따라 걸으며 엄마는 오랜 세월을 버텨낸 돌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고, 딸은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흔들리는 빛에 시선을 멈춘다. 걷는 속도가 느려지면 발아래 작은 풀꽃이, 성벽 틈에 자리 잡은 이끼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상당산성의 성곽길을 따라 산책 중인 모녀.

SPOT 7. 청주 백석정
미호천 지류의 작은 계곡에 자리한 조선시대 정자로, 언덕 아래 포개진 흰 바위에서 이름을 얻었다. 청주의 대표적인 ‘정자 문화 풍류지’로, 선비들이 글을 짓고 묵향을 즐겼던 장소이자 산천을 벗 삼아 풍류를 나누던 곳이다. 도시에서 가까우면서도 고요가 깊어 한적하게 머무르기 좋은 장소이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산34-1

SPOT 8. 상당산성
청주의 동쪽을 지키는 산줄기인 상당산 정상부에 자리한 산성으로, 고구려 산성에서 기원한 단단한 기단부와 조선시대의 석축이 층층이 이어져 시대별 축성 기술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성곽길은 완만한 구간과 능선길이 적절히 어우러져 산책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과거에는 청주를 수호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현재는 시민들이 아침·주말마다 찾는 ‘생활 산책길’로 자리 잡아 청주의 일상과 역사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이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 70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일몰이 가까워지는 시각, 정북동 토성은 여전히 고요하지만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목도하고자 찾은 이들로 적당히 소란하다. 아이와 함께 피크닉을 나온 가족, 반려견과 산책 중인 학생, 어떤 커플은 웨딩 사진을 찍기 위해 새하얀 드레스와 멋스런 정장 차림으로 이곳을 찾았다.
청주 로드트립의 여행자인 두 모녀 역시 손을 꼭 잡고 정북동 토성에 올라 여행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행복이 뭐 별거인가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엄마가 딸에게 해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여행의 끝, 지나온 시간은 충분히 행복했다.

 

글. 임보연BO-YEON L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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