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발원한 천은 호수로 흘러가거나 바다를 만나 습지를 이루고 생명의 터전이 되어준다. 땅과 바다 그리고 대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물의 움직임. 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경계를 넘나들고, 가상세계를 창조하는 예술가를 만나 시공을 초월한다. 제네시스 ELECTRIFIED G80라는 완벽한 고요에 기댄 여행자는 순천의 지형과 물의 흐름이 빚어낸 순환의 물길을 따라 생명의 근원을 사유하고, 자연과 동화하는 여정 속에서 가상을 오가며 여행의 경험을 확장한다.
SOUND
“현장에서 수집하는 소리에는 그 장소만의 고유한 공간감과 질감이 있습니다. 순천만습지의 거대한 갈대밭이 바람에 물결치는 소리, 와온해변에서 들리는 파도의 노래와 갯벌의 숨소리 등 그 시간대에만 존재했던 순천의 음률이 떠오릅니다. 그 시간성과 공간성을 담은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지속가능한 가상세계를 구현해보려고 합니다.”
– 룸톤 김동욱
초현실적 공간의 시작점 고동산
편백숲이 펼쳐진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임도林道를 따라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대지 아래에는 지구가 탄생한 약 45억 년 전부터 6억 년 전에 이르기까지의 가장 오랜 지질 시대를 뜻하는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이 숨 쉬고 있다. 고동산의 이름은 산고동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높은 산자락의 고목이 우거진 곳이나 바위나 돌이 많은 곳에서 산다는 산고동은 실재하지만 본 이는 별로 없어 마치 상상 속의 생명체처럼 여겨진다. 그 산고동은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산 정상 부근 비탈에서 마치 난을 예고하듯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 흐린 날 산고동이 울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산고동이 울었던 걸까. 무수한 빗방울이 떨어지고 능선을 타고 안개가 빠르게 밀려온다. 산 아래를 향해 전조등을 켠 G80의 세빌 실버 색상이 주변의 자연을 반영하며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짙은 안개에 잠긴 고동산의 서정적인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안개 너머 어딘가 초현실적인 공간이나 미지의 존재가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어요.” (룸톤)
여전히 안개 속이다. 일렁이는 가을의 억새, 곳곳에 피어난 야생화, 다람쥐가 모아놓은 듯한 도토리 그리고 봄에 만발할 산철쭉 등 안개는 보드랍게 뭇 생명을 품는다. 비가 그치고 물이 뿜어낸 안개가 바람을 타고 서서히 이동하며 걷힌다. 정상의 전망대에 서니 저 멀리 고흥반도와 남해 바다가 드러난다.
NAVIGATOR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산270번지
시각화된 시간의 경계 순천만습지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무진(霧津)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은 상상의 공간이지만, 순천만습지 내 대대포구에는 새벽녘 안개가 둘러싼 무진교가 실재한다. 무진교를 통해 동천을 건너니 거대한 바다처럼 펼쳐진 갈대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동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사천이 되어 동천과 만나는 지점, 갈대가 숲을 이루기 시작해 물길을 따라 순천만까지 30리에 걸쳐 펼쳐진다. 이렇듯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퇴적층이 쌓여 염습지가 생기면 갈대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게 되고 그 너머 갯벌엔 수많은 생물이 공존하며 살아간다.
순천만습지를 구성하는 시설물은 모두 철새의 눈높이를 고려해 설계되었다. 갈대의 북슬북슬한 씨앗 뭉치가 햇빛에 따라 잿빛, 은빛, 금빛으로 채색된다. 하얀 깃털을 단 갈대 씨앗은 곧 바람을 따라 먼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일렁이는 갈대 사이를 내려다보면 질펀한 개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게가 들락거리며 갈대의 뿌리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면, 갈대는 생태의 보금자리가 되어 공생한다. 사다리꼴의 갑각에 긴 눈자루가 있는 칠게는 양 집게발로 갯벌의 규조류를 먹는다. 봄과 가을에 순천만습지를 찾아오는 알락꼬리마도요는 부리가 아래로 길게 굽었는데, 갯벌 속 칠게를 잡아먹기 유리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흰 구름으로 덮인 창공에 먹물을 뿌리듯 물새가 높이 날아다닌다. 얼마 전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천만은 국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흑두루미의 월동지이다. 겨울을 잘 보내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정화해나가는 것이 바로 자연의 힘이다. 순천만습지를 탐방하는 사이, 전기차 충전소의 G80는 이미 새로운 여정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NAVIGATOR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만길 5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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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TAINABLE JOURNEYS
물길 따라 용머리 앞으로
용산전망대
갈대숲 탐방로를 지나면 해발 77m의 용산이 나타난다. 마치 용이 순천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한 용산의 등을 타고 올라 용산전망대에 도착한다. 나지막한 산 앞으로 드넓은 갯벌이 보인다. 강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을 순천만이라 부른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S자 모양의 갯골은 마치 탯줄 같은 생명의 물길이다. 이곳에서 생물들은 유기물을 공급받는다. 둥그렇게 형성된 갈대군락은 자연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바다와 가까운 갯벌 상부에 있는 붉은 꽃밭. 자줏빛 새싹이 자라 초록색 꽃을 피우고 가을이 오면 다시 자줏빛으로, 색깔이 일곱 번 변한다는 칠면초다. 순천만의 가을은 황금빛 갈대의 물결, 붉은 칠면초 군락의 왈츠, 검은 갯벌이 어우러진 신비의 세계가 열린다.
FLOW
“가끔 자연 속에서 절경을 마주했을 때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머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순간 가상세계에 대한 영감을 얻곤 해요. 이를 사진과 영상, 스케치 등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이야기와 상상력을 더해 기록하죠. 이는 서사가 탄생하는 토대가 됩니다. 짙은 안개에 싸인 고동산과 이끼 낀 바위로 뒤덮인 선암사의 승선교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때의 감정이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기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 룸톤 전진경
미시와 거시의 공존 순천만국가정원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조성한 곳으로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이다. 향수와 감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으로 가꾸고 각종 예술품을 설치해 정원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완성했다. 그런 연유로, 정원은 자연과 인공이 결합된 일종의 예술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중심축인 순천호수정원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인 영국의 찰스 젱스Charles Jencks가 설계했다. 호수는 순천의 도심, 호수를 가로지르는 긴 나무다리는 동천, 우뚝 솟은 큰 언덕은 봉화산, 작은 언덕 5개는 순천 도심을 에워싸고 있는 난봉산, 인제산, 해룡산, 앵무산 그리고 순천만을 의미한다. “조경을 통해 아주 커다란 것과 매우 작은 것, 즉 대우주와 소우주 사이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조경가이기보다는 지형 디자이너로서 나의 정원은 자연과 생태 그리고 지구처럼 우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순천호수정원에도 자연의 근본적인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찰스 젱스)
원을 그리며 상승하는 길을 따라 봉화언덕을 오르는 룸톤의 세계관도 마찬가지. “작은 것과 큰 것이 맞닿아 있다는 점, 그러니까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세계가 연결된다는 서사를 작품에 자주 불어넣습니다. 그렇게 순환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룸톤)
NAVIGATOR 전라남도 순천시 국가정원1호길 47
달의 힘으로 순환하는 와온해변
순천만 주변에 자리한 작은 어촌, 와온. 약 3km의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접어든 길 끝에는 물양장이 자리한다. 차를 세우고 일몰을 기다린다. G80의 완전한 고요 덕분일까. 외부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갯벌의 생물은 어떠한 변화도 감지하지 못한 듯 분주히 활동을 지속한다. 낮은 곳에 깃든다는 뜻을 지닌 저서동물은 바닷가 주변 갯벌에 서식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짱뚱어가 팔딱거리고, 수많은 숨구멍에는 칠게와 농게가 꿈틀거린다. 갯벌 아래 세상에는 꼬막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갯벌은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품고 길러낸다. 저 멀리 물새의 발자국인지 사람이 뻘배를 민 자국인지 구분할 수 없는 흔적이 갯벌에 무수하다. 달의 인력에 따라 밀물 때가 되면 파도가 밀려와 그 흔적을 지우고, 썰물이 되면 다시 무늬가 그려질 것이다. 날이 개고 와온해변 앞바다에 있는 솔섬을 배경으로 해넘이가 시작된다. 갯벌이 태양을 품자 온 세상이 붉은 생명의 기운으로 물든다. 그 근원을 깊이 파고들 듯이.
NAVIGATOR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와온길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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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TUAL SPACE
원초적 감각의 확장
철새가 회귀하는 순천만에서, 역동하는 갯벌에서, 달의 힘으로 순환하는 와온해변에서, 생각한다. 탈것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가장 진화한 탈것은 자연과 호흡하는 유기적인 생명체라는 것. 우리가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어쩌면 본래의 것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치열함이겠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원시적 감각은 되살아납니다. 기술을 활용해 시각, 청각 등 오감을 고루 깨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관점에서 저희가 구축하는 가상현실은 미래를 향한 진보이자 원시로의 회귀가 아닐까요?” (룸톤)
“곧 공개할 작품 ʻ물의 여정(Journey of Water )ʼ은 작은 물방울에서 시작해 연못과 바다, 거대한 빙하, 하늘, 우주 등으로 점차 확장하며 순환합니다. 물은 형태만 바뀔 뿐 소멸하지 않습니다. 물이 가지고 있는 근원성과 생명성을 초현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지속가능한 여정은 가상세계에서도 이어집니다.”
━ 룸톤 전진경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만, 실제 자연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작품에 가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를 등장시키는데, 이번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자동차였습니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숨겨진 장소까지 도달해 자연과 나를 연결해주고 감각을 확장시켰습니다. ELECTRIFIED G80에 전기가 필요한 무그 키보드 같은 신시사이저를 연결해 여정 중에 스케치 작업을 할 수 있는 경험 또한 원시적이면서 미래적이었습니다.”
━ 룸톤 김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