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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ROAD TRIP @NAMHAE
CAPTURING THE SPACE OF ID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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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호

CAPTURING
THE SPACE OF IDEAS

선과 면이 유려하게 남해의 자연을 휘감아 도는 건축물이 여행자의 시선을 환기시키고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세심한 시선으로 해석하며, 건축가의 숨은 의도를 포착해 내는 호기심 가득한 건축 전문 사진작가 김용관. 그와 함께 남해 로드트립 여정에 올랐다. 익숙한 여행지는 그의 프레임 안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재구성될 것인가.

 

STOP 1. 공간의 정체성을 포착하다,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으면, 산등성이로 해무가 밀려 올라왔고,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다가도 대교 하나 건너는 순간 거센 돌풍이 불어오기도 했다. 아마도 남해 지형이 가진 극적인 대비가 만들어낸 변화겠지. 삼천포대교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달려 창선면에 위치한 사우스케이프로 향하는 길이다. 30분쯤 달렸을까, 내비게이션 화면으로는 사방이 높고 낮은 언덕과 바다뿐인데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음성이 나온다. 그렇게 자연의 일부가 된 것처럼 남쪽 곶에 고요하게 자리한 사우스케이프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도착한 곳은 공간의 유일성으로 건축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클럽하우스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노출 콘크리트,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한 남해의 자연을 품고 있다. 수평선과 같은 높이에 위치한 직사각형의 수반엔 중정을 통해 보이는 하늘이 그대로 반영되는 광경이 인상적. 김용관 작가가 삼각대 세팅을 마치자, 중정으로 내리는 비가 거세지면서 잔잔하던 수반이 패턴을 만들며 또 하나의 미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클럽하우스가 남해의 자연 풍광을 건축 안에 흡수했다면, 비평가들로 하여금 “거칢 속의 세련, 세련 속의 무심함”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건축가 조병수는 오로지 직선으로 연속성 있는 리니어 스위트를 지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자연을 들였다. 49개의 객실은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각자의 방향에서 모두 남해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거실 통창을 통해 펼쳐지는 은빛 바다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취향으로 컬렉팅한 가구들이 한층 한층 오를 때마다 공간에 새로운 표정을 더한다. 그렇게 완성해 간 공간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스며들었다. 정체성이란, 이런 거다.

NAVIGATOR.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 249/ www.southcape.co.kr

 

STOP 2. 시간을 재구성하다, 상주은모래비치와 몽돌해변


이곳 남해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굴곡이 심한 302km의 긴 해안선을 따라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감을 뽐내는 갯벌을 품은 바다도, 곱게 부서진 모래사장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바다도, 파도에 오랜 세월 동글동글 다듬어진 돌멩이가 해안가를 이룬 바다도 존재한다. 그리고 바다에 흩어져 있는 3개의 유인섬(조도, 호도, 노도)과 79개의 무인도는 각자의 자연과 역사를 보듬어 품고 있다.

더, 더, 남쪽으로 내려간다.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잇는 창선교를 지나 해안가를 달리는 사이 저 멀리 노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 작은 섬은 <구운몽>을 집필한 소설문학의 선구자인 서포 김만중 선생의 유배지다.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목적지인 상주은모래비치에 도착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은빛의 고운 모래사장은 반달 모양으로 2km에 달한다. 솔숲은 쪽빛으로 짙어지는 바다를 곱게 품고 있다.

맑은 바다는 파도가 잔잔해 멀리서 보면 호수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바다에 몸을 둥둥 띄운 채 고요한 늦여름을 보내는가 하면, 모래사장의 꼬마는 고운 모래로 성을 쌓아 다지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제 일몰을 보기 위해 몽돌해변으로 간다. 선구마을과 향촌마을 사이 움푹 파인 프라이빗한 위치에 펼쳐진 해안가. 이곳에서 여행자는 돌이 붉은빛으로 물들고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저녁 파도의 리듬을 타는 일몰의 순간을 기다린다.

NAVIGATOR. 상주은모래비치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로/ 몽돌해변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1103번길

 

STOP 3. 로컬 산물을 큐레이팅하다, 앵강마켓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10분 거리, 남면의 해안도로와 근접한 작은 마을엔 ‘앵강마켓’이라는 사랑스러운 작은 상점이 하나 있다. 남해의 산물과 전통 식품을 소개하는 상점으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앵강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어울리는 한자어가 뭘까 고심하다 마침내 밝을 앵(奣), 강 강(江) 두 글자를 선택했다고. 주인 부부는 남해를 여행하다 이곳의 자연에 반해 6년 전 정착한 후, 여행사에 다니던 아내와 건축 관련 일을 하던 남편, 두 사람의 감각으로 이곳을 완성했다.

잘 다듬은 나무로 마무리된 유리 미닫이문에 조로록 매달려 있는 하얀색 리넨 커튼을 젖히고 상점 안으로 들어가면, 반듯한 나무 선반 위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산물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흐트러짐 없이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죽방멸치부터 미역과 다시마, 돌김과 같은 해조류, 남해 땅에서 재배한 쌀과 친환경 농법으로 기른 우리 밀로 만든 국수까지 주인장은 로컬의 산물을 수집해 여행자에게 소개한다. 뒷마당이 내다보이는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행지의 계절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여유는 앵강마켓이 전하는 또 하나의 선물이지 싶다.

NAVIGATOR. 상주은모래비치 경남 남해군 남면 남서대로 772/ @ain_river

 

STOP 4. 본질에 다가서다, 보리암


일출과 일몰, 두 개의 시간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보리암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인 금산에 위치하고 있다. 683년 원효가 초당을 짓고 도를 닦은 곳으로, 처음 이름은 보광사였다. 이후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 후 조선을 창건했고, 감사하는 의미로 나라의 원당으로 삼았다고. 그때 보리암과 금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리암에서 10분가량 더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면 산의 기암괴석과 멀리 남해 바다와 크고 작은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포개진 능선 사이로, 해무가 올라오기라도 하면, 한 폭의 수묵화가 촤르륵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관세음보살상. 고요하고 무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짙은 안개 너머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을 살피라고 말하는 듯싶다.

NAVIGATOR. 경남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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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FLAVOR
죽방멸치

명승 71호로 지정된 남해 지족해협의 죽방렴. 대나무로 만든 부채꼴 모양의 말뚝을 세워, 빠른 유속에 자연스럽게 죽방렴으로 멸치가 흘러들게끔 해 뜰채로 아주 조심스럽게 건져 올린다. 덕분에 형태가 온전하고, 은빛 비늘 또한 손상이 없다. 죽방렴을 설치하는 것과 어장 면허를 철저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어획하는 양이 많지 않고, 고영양의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아 고급 멸치로 통한다. 도시 사람들에겐 잘 말린 멸치로 국물 내는 일이 다이겠으나, 남해에선 멸치쌈밥이나 멸치회무침 등으로 특색 있게 즐길 수 있다.

 

STOP 5. 땅의 모양을 해석하다, 거제 지평집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다. 남해 로드트립이 시작된 사우스케이프에서 조우한 건축가 조병수의 지평집을 만나기 위해 거제로 향했다. ‘땅을 깎고, 스스로를 낮추며, 지평선 속으로 스며드는 공간’을 만나기 위해서다. 남해에서 고성과 통영을 지나 신거제대교를 통과하고 나면 거제도다. 어쩐지 바다의 사위가 조금 사나워졌다. 물빛은 짙은 코발트색을 띤다. 해안길을 따라 가조도 북쪽으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길, 주위가 점차 한산해진다 싶은 순간, 땅속에서 따뜻한 온기 같은 것이 새어 나오는 느낌이 들어 잠시 차를 세웠다. 바로 여기다. 건축가가 지어준 이름, 지평집의 의미가 절로 마음에 와닿는다. 낮은 언덕 아래로 들어서 여행자를 맞이하는 카페 공간에서는 멀리 바다가, 그리고 바다를 향해 요새처럼 땅속에 자리한 객실이 내다보인다. 그곳에 김용관 작가와 건축주인 박정 대표는 마주 앉아 오래도록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김용관 작가는 건축가의 의도를 온전히 받아들인 건축주의 마음이 지평집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여름의 녹음이 사라지기 전, 작가는 지평집을 다시 찾아 건축 사진을 남길 예정이다.

조병수 건축가의 감각과 감성을 발견하고, 건축과 함께 포착하기 위해서 말이다. 완전히 고립된 여행을 꿈꾸고 있는 건축주인 박정 대표는 자연과 깊이 연결된 고요한 공간에서 여행자들이 정적인 휴식의 시간을 거쳐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땅 아래 카페 공간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NAVIGATOR. 경남 거제시 사등면 가조로 9175/ www.jipyung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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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A DRIVE: END OF LANDS
덕월리 방파제

아난티 남해에서 500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덕월리 방파제. 빨간색 등대와 하얀색 등대가 마주하고 있는데, 바다 위의 작은 섬과 저 멀리 여수 풍경과 어우러진 정경이 한적한 남쪽 풍경을 형상화해 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여행자는 낚시는 하기 위해, 또 어떤 여행자는 남쪽 끝의 일몰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빛과 선이 만나는 찰나, 남해 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작가는 오묘하게 색상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는 이번 로드트립에서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 포착해 냈을까. G90 SE의 투톤을 경계로 각각의 면에 하늘과 바다를 투영하고 있는 모습을 뒤로한 채 건축사진가의 프레임으로 재구성한 로드트립을 마친다.

NAVIGATOR. 경남 남해군 남면 덕월리


 

건물을 짓기 전, 아무것도 없는 땅을 보며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늘 보아왔을 가조도의 바다와 자연을, 건축이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건축주는 그 말을 깊이 공감하고 받아들였고, 지평집 건축의 기본이 됐다.

글. 임보연BO-YEON L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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