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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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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호

 

“짙푸른 바다를 건너 새하얀 섬으로 향한다. 외딴 절벽 동굴에 밀려와 부딪히는 파도부터 숲과 농장에서 지저귀는 새의 울림까지, 섬이 가진 본연의 리듬에 귀를 기울여보자. 환경보호 활동가와 셰프 그리고 모험심 강한 개척자들이 이비사섬을 찾는 여행자들의 관심을 자연으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이 섬의 전통적인 매력을 수호하는 중이다.” 

 

호텔 칸 하움 바이 오션 드라이브에서 즐기는 야외 조식.

약 3000년 전, 고대의 어느 신이 이비사에 축복을 내렸다. ‘베스Bes’라는 이름의 이 신은 악령의 적이자 아녀자의 수호신이며, 맨손으로 독사를 무찔렀다고 전해진다. 베스를 숭배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그의 원래 이름을 따서 다행스럽게도 뱀이 없던 이 섬을 이보심Ibosim이라고 불렀다. “베스는 와인, 음식, 음악, 춤 그리고 섹스를 사랑했어요!” 칼라도르Calad’Hort 해변을 뒤로한 채 카약을 타고 브루트 항구Port Brut를 출발하면서 가이드 마르티나 그리프Martina Greef가 큰 소리로 외친다. “그리고 몸매가 당신하고 비슷했죠!” 

일렁이는 파도 너머로 들려오는 이 말이 결코 칭찬은 아니다. 그동안 발굴된 조각상이나 부적을 통해 보았던 베스는 프렌치 불도그처럼 작고 땅딸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금전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 엘 카르멘El Carmen의 발코니에서 면과 해산물로 만든 파에야 스타일의 피데우아fideuá와 이 지역 말바시아Malvasia 포도로 짧게 숙성한 화이트 와인 피티Piti 한 병을 해치운 상태. 불룩 나온 배가 지금 이 카약의 바닥짐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포르멘테라Formentera섬을 향해 출항하는 대형 선박 옆을 지나다가 불현듯 우리는 지금 베스섬에서 잘 알려진 즐길 거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후!” 배가 수직으로 치솟아 오를 만큼 높은 파도를 만나자 마르티나가 신나게 소리친다. 그리고 배가 뒤집히더라도 당황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왼쪽부터)
올레오테카 세스 에스톨레스에서 재배하는 올리브.
재정비된 달트빌라로 마을로 이어진 옛 도시 성벽의 아치.

나는 해안에서 1.6km 떨어진 4000m 높이의 거대한 석회암석 에스베드라Es Vedrá 섬을 향해 뱃머리를 잡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한 이끌림과 위협을 동시에 느꼈다. 바위를 요리조리 피해 카약의 노를 저으며 주위를 돌다 보니 비틀리면서 위로 솟아오른 섬의 형상이 드러났다. 

이 외딴섬의 유일한 거주민은 19세기 중반 퇴마사에서 사회주의자를 거쳐 은둔자가 된 카르멜회 수도사 프란치스코 팔라우Francisco Palau다. 초기 신화에 따르면, 동굴에 살면서 선박을 파괴한 거인과 오디세우스에게 노래를 부른 치명적인 바다 요정도 이 섬에서 살았다고 한다. 에스베드라섬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낸 아틀란티스의 일부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외계 우주선을 위한 신호탑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섬 위로 기이한 불빛이 수도 없이 목격되다 보니 에서는 이곳을 ‘피라미드 형태의 에너지 가속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마르티나는 이 말에 코웃음을 치며 지역 역사와 지질학을 왜곡한 ‘요기와 사이비 주술사’들을 비난했다. 그녀는 50년 전 이비사에 흘러 들어온 히피들이 남긴 유산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한다고 여긴다. 그 히피 무리 중에는 그녀의 독일인 부모도 속해 있다. “1970년대에 히피들이 섬에 오기 시작했어요.” 마르티나가 잔잔한 바다를 향해 노를 저으며 이야기한다. 그녀가 10세 때 부모님은 이비사에서 오래도록 지낼 생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처음엔 1년 정도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결국 섬 주민이 됐다. “이비사가 저희를 놓아주지 않았죠.” 

재미있는 말이다. 섬의 가장 가파른 곳에서 바람이 불어 오는 지금 이곳의 바다는 잔잔하고 조용하다. 머리 위로 나무와 풀이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물속에서는 들판처럼 펼쳐진 이 섬의 유명한 해초가 빛나고 있다. 수면에 작은 거품이 일더니 몸집이 작은 은빛 물고기 떼가 높이 날아올랐다 다시 물속으로 뛰어든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카약이 서로 가까워지자, 마르티나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 살았던 숲속 집에는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처럼 그녀 또한 화가다. 휴대폰을 꺼내 바다 위 돛단배를 그린 거친 질감의 반추상화를 나에게 보여준다. 어린 마르티나는 섬의 나무, 바다, 새를 통해서 이비사와 가까워졌다. 

 

(왼쪽부터)
달트빌라 거리에 있는 식물과 그림자.
칸 도모의 총괄 셰프 루이스 카바예로.

때마침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을 향해 마르티나가 손을 흔든다. 엘레오노라매Eleonora’s falcon 한 마리가 멀리서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로 이동하기전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슴새Scopoli’s shearwater 한 마리는 해협의 수면 위로 낮게 날면서 파도로부터 운동에너지를 흡수한다. 마르티나가 가장 좋아하는 조류는 지치지 않는 바다제비stormy petrel다. 암컷은 단 한 개의 알을 낳기 위해 1년에 단 한 번 육지에 내려온다고 한다. 

올해 알에서 깬 새끼들이 이제는 스스로 날 수 있을 정도로 컸기 때문에 곧 별자리를 따라서 남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하지만 새끼의 섬세한 방향 기능은 이비사 해안 마을의 밝은 빛에 의해 오작동할 수 있다. 전에 마르티나가 세스타뇰S’Estanyol 해변에서 밤에 길을 잃은 새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바다를 향해 방향을 바로잡아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제 손바닥 위에서 날갯짓을 하더니 어느 순간 공기처럼 가벼워졌어요. 날아가다가 저를 이렇게 쳐다봤어요.” 그녀가 살짝 오만하게 고마움을 표현한 새의 표정을 따라하면서 말한다. “눈물이 났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추억을 회상한다. 

 

이비사 북동쪽에 있는 밭에서 트랙터를 운전하는 농부.
섬 내륙에 자란 아몬드와 캐러브 나무가 특징적이다.

새소리와 농어

멸종위기종인 슴새도 이곳 절벽에 둥지를 튼다. 이비사에서 사용하는 카탈로니아어로는 ‘비롯virot’이라고 부르는데, 이 특정 새의 알을 훔치고 먹는 행위를 뜻하는 ‘비로타르virotar’라는 동사가 있다. 이 행위는 이제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2002년에 인근 바다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로는 연구 목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에스베드라섬에 들어올 수 없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늘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비사를 둘러싼 40여 개의 작은 섬에 서식하는 동물들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모든 섬에 서식하는 벽도마뱀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아종으로 진화해 각기 다른 다양한 색을 띤다. 동식물 연구가들은 다윈의 시대부터 이 신비로운 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이비사를 찾았고, 환경보호활동가 조르디 세라피오Jordi Serapio는 벽도마뱀의 모든 색과 서식지를 촬영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았다.

“에스베드라섬에 사는 도마뱀은 푸른색을 띠고, 척추가 노란색 또는 초록이에요.” 육지로 돌아와 절벽 위에 서서 함께 발레아레스해Balearic Sea를 바라보던 조르디가 말한다. “서쪽 해안의 세스블레데스Ses Bledes 섬에 있는 도마뱀은 거의 검은색이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남쪽 끝에 서식하는 도마뱀은 가루받이 역할을 하는 분홍색 꽃 사이에서 그다지 위장이 되지 않는 갈색이 섞인 초록색이다. 섬에 뱀이 한 마리도 살지 않았던 지난 1000년 동안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무렵, 이비사 해안을 따라 건설 붐이 일면서 뱀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새로 지은 럭셔리 리조트와 저택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스페인 본토에서 올리브나무를 가지고 왔는데, 이 나무 속에 잠들어 있던 뱀까지 이비사에 온 것이다. 이제 뱀들은 베스 신의 고대 보호국을 거침없이 활보하고 다닌다.

“베스 신이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현대시대의 생물 보안 실패를 이교도 신의 탓으로 돌리는 건 아니지만 조르디는 이렇게 말한다. 주의 깊게 관리된 생태계가 개발과 보존의 균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요르카와는 다르게 이 섬은 다양한 동식물에도 불구하고 자연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다. 조르디는 어부와 밀수꾼들이 자주 사용하는 외진 동굴인 세스발란드레스Ses Balandres 위에서 출발해 내륙을 도는 자연 탐방로를 공식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칼라 도르트에 있는 전통 어촌 마을.

인적이 드문 엘스아문트스Els Amunts 산악지대를 지나가는 트레일을 걸으면서 조르디는 이비사의 관광 인프라는 대부분 반대쪽 해변에 집중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비사의 해안 관광업이 오래도록 발달되어 왔기에 여행객들의 관심을 밤문화가 아닌 자연문화로 돌리게 하는 것은 마치 슈퍼클럽의 스피커에서 울리는 베이스 음악 너머로 새소리를 들으려는 것과 같다. 조르디는 영국 같은 곳에서 열리는 여행박람회에 참가할 때면 자신의 노력을 종종 이렇게 설명한다. 영국의 새 관찰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조르디는 희귀 조류 탐조가를 뜻하는 영국식 영어 단어 ‘트위처twitcher’를 특히 좋아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이비사로 더 많이 끌어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내가 평소 가졌던 새에 대한 관심은 매우 미미했던 터라 조르디의 열정이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왕립조류보호협회에서 구매한 칼새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조르디는 어린 시절 들었던 팝송 제목을 맞히듯 모든 새의 울음소리를 맞힌다. 

“저건 상모솔새firecrest 소리예요.” 숲을 걷다가 유럽에서 두 번째로 작은 새의 소리를 포착하면서 말한다. “저건 바다 지빠귀rock thrush가 우는 소리고요.” 마치 플루트 선율처럼 청아하다. “저건 멧비둘기turtle dove가 내는 소리죠.” 멧비둘기 두 마리가 구구구 울다가 우리가 다가오자 서둘러 날아간다. 지금은 EU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최근까지 멧비둘기 사냥이 가능했다. 그는 여행자뿐 아니라 자기 같은 섬 주민들이 이비사의 연약한 생태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여가를 즐기듯 자연을 즐기는 전통이 없어요. 스페인에서는 일반적으로 땅을 농업이나 경제활동 수단으로 여길 따름이니까요.” 

 

후안 카르도나의 농장에 있는 전통 농기구.

내륙 시골로 들어서자 해안에서 보이던 진한 녹색 소나무 대신 아몬드와 캐러브carob 나무들이 보인다. 이 아몬드나무들이 최근 ‘나무의 에볼라’로 불리는 포도피어슨병의 확산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캐러브 열매는 고급 아이스크림과 베이킹 재료로 각광받으면서 가치가 치솟고 있다. 캐러브 1kg당 약 1유로의 가격이 매겨지면서 캐러브 열매를 몰래 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는 물론 범죄이긴 하지만 매혹적임이 분명하다. 이외에는 1960년대 해변을 중심으로 한 리조트 산업이 개발되면서 이비사의 농업은 수익성이 거의 없었다. 

후안 카르도나Juan Cardona가 섬 중앙의 언덕진 땅을 처음 본 이후 이 농장은 관광 개발이 이뤄지기 전부터 대대로 그의 가족이 소유해 왔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정부는 새로운 아보카도나무와 농기계 그리고 벌통을 위한 지원금을 지원하면서 거칠고 메마른 땅을 되살리려 한다. 

안토니오 토우르-코스타Antonio Tour-Costa는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아들과 함께 자급자족형 농업을 자랑스럽게 일구고 있다. 감자와 곡물, 수박 같은 농작물을 윤작하고, 양털을 얻기 위해 양을 키우며,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집을 사겠다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부동산업자들이 매매 제안서를 들고 부유한 고객이 땅을 매입하고 싶어 한다며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얼마를 줘도 절대 땅을 팔지 않을 거라고 하니 내 말을 못 믿더라고요.” 아버지 안토니오가 말한다. 

 

올레오테카 세스 에스콜레스에 있는 레스토랑.

해안을 따라 건물이 다 올라가자 개발자들은 내륙으로 눈을 돌렸다. 요즘은 소박함이 트렌드라며 석회칠을 한 흰색 벽과 해초 지붕을 얹은 이비사 농가의 전통 건축양식을 참고한 리조트와 레스토랑이 하나둘 지어졌다. 

이번 여행 동안 내가 식사를 하고 잠을 잔 건물들은 인스타그램과 이 오래된 섬 문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듯하다. 내가 묵고 있는 칸 하움 바이 오션 드라이브Can Jaume by Ocean Drive는 드넓은 오렌지 과수원 부지에 지어진 19세기 낙농가를 개조한 호텔이다. 호텔에 속한 조용한 시골길 옆의 가든 레스토랑 칸 아라비Can Arabi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이곳은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워지기 때문에,저녁 식사만큼이나 기대가 되는 건 반짝이는 별을 보며 하는 산책이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농촌체험관광 사업체 칸 도모Can Domo를 향해 어둡고 깊은 숲 옆길을 따라 올라갈 때는 태풍이 몰아치는 밤이었다. 촛불과 나무에 걸린 작은 전등과 번개가 세련된 목장을 밝혔다. 이곳에서 셰프 파우 바르바Pau Barba는 텃밭에서 재배한 신선한 가지, 토마토, 허브를 크레페처럼 얇은 반죽에 올린 피자 같은 천천히 조리한 고급 요리를 선보인다. 칸 도모에서는 올리브유를 직접 짜서 사용하는데, 올리브유 생산자가 매우 적은 이비사에서는 일종의 소규모 부티크형 사업이다. 

 

멀리 에스베드라섬이 보이는 칼라도르트에 있는 이비사 카약의 마르티나 그리프.

바다에서

다음 날, 100년 된 학교 건물을 개조한 팜 투 테이블 레스토랑이자 이런 올리브유 공장 중 하나인 올레오테카 세스 에스콜레스Oleoteca Ses Escoles에 들렀다. 가슈Gausch 가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는 피쿠알picual과 아르베키나arbequina 올리브 품종 열매로 매년 1‘00% 생태학적’ 방법으로 3500L 정도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가 생산된다고 공장을 안내한 세스카 가슈Xesca Gausch가 설명한다. 12년 넘게 생산된, 세스카의 아버지 이름을 붙인 칸 미켈 가슈Can Miquel Gausch 브랜드 올리브유는 이제 를레 앤 샤토Relais & Châteaux 같은 글로벌 호텔 그룹에 납품되고 있다. 최근에 섬의 공식 제품으로 판매되기 위해서 EU 인증을 받은 이비사산 올리브유에는 원산지를 뜻하는 ‘Aceite de Ibiza’ 인증 스티커가 병에 붙어 있다. 

세스카의 말에 의하면 지명 자체가 가치를 부여한다고. “사람들은 이곳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어도 ‘이비사’라는 단어는 특별하게 들릴 거예요. 여러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죠.” 

그것이 비키니나 모터보트, DJ 부스일지언정, 그런 이미지들이 미식과 지속가능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다행스럽게도 여행자들이 이비사는 해변과 디스코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섬 주민들도 이곳에 대해 관광객들을 위한 홍보만 할 게 아니라 땅을 더 가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죠.” 

물론 바다도 중요하다. 지금 와 있는 포트 데 산 미켈 Port de Sant Miquel 항구가 매우 조용하다. 늦여름이기도 하지만 코로나로 여행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스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또 다른 장소인 해산물 레스토랑 포트 발란사트Port Balansat는 점심시간이면 항상 북적인다. 이 레스토랑은 건너편 절벽 해안가에 거대한 호텔을 짓기 위해 개발자들이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 1971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인 기사도 데 페스카도guisado de pescado(쌀과 생선을 크리미한 육수와 기름진 육즙에 익힌 요리)를 든든하게 먹은 뒤 부카네로호Bucanero에 승선하기 위해 작은 모터보트에 몸을 실었다. 

 

산타 율랄리아에서 전통 고기잡이배 리웃을 타고 감상하는 일출.

오늘 오후에는 앞바다에서 불어온 바람과 끊임없이 오가는 선박들이 일으킨 파도로 바다가 일렁이고 있다. 머리가 덥수룩한 부카네로호의 젊은 선장 페페 보네트Pepe Bonet가 이 지역 해안을 감싸는 변덕스러운 바람과 해류 그리고 슈퍼요트를 타는 부유한 소유주들의 형편없는 항해 실력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준다. 그래도 지금은 닻과 키로 해초를 훼손하면 벌금을 물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페페가 스왈로 브리지Swallow Bridge로 불리는 암반 형상과 섬을 영영 떠난 것으로 믿어졌던 물수리 한 쌍이 최근에 둥지를 튼 정교한 층암절벽 같은 특이한 바위로 방향을 튼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에도 희망이 보인다. 요즘 같은 때에 누구든 희망을 찾고 있지 않은가? 

세스 마르갈리데스Ses Margalides에 있는 해식 아치 아래를 지나, 최근 레드불 챌린지 대회에 출전한 국제 암벽 다이버들이 ‘정복한’ 케이브 오브 라이트Cave of Light 외벽을 돌아간다. 

그들은 섬 끝에서 뛰어내려 좁은 석회암 통로를 통과해 햇살이 반사되어 빛나는 물속으로 빠졌을 것이다. 부카네로 호 갑판에서 나사메나 베이Na Xamena Bay 물속으로 고작 몇 미터 뛰어내린 내가 다이버들의 심정을 짐작하기란 어렵겠다. 하지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해초의 군청색 바다는 페니키아 사람들이 이 바다를 항해했던 시절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물속에 또 다른 하늘이 있는 것만 같다. 이곳은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영원히 죽지 않는 곳이다. 

 

글. 스티븐 펠란STEPHEN PHELAN
사진. 캣 앨런CAT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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