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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호

 

“이스탄불의 컬처 루트를 따라가다 만난 무슬림 여성 예술가들.”

 

보트를 타고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을 따라 이동하면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도시 경관을 마주할 수 있다.

이스탄불의 어느 수도원에서 흰색 치마를 입은 채 빙글빙글 회전하는 세마젠semazen 무리를 홀린 듯 바라본다. 이 남성들은 춤을 통해 신을 만나려는 수도자들로, 대나무 피리인 네이ney 소리에 맞춰 경건하게 움직인다. 쉼 없이 돌아야 하는 극한의 동작이 점차 속도를 높일수록 여행자들은 무대와 더 가까워지고 세마젠들은 신과 더욱 긴밀해진다. 신비로운 세마 공연이 마무리될 즈음, 히르카hırka라 부르는 검은색 망토를 걸친 이가 입구를 향해 손짓한다. 이윽고 비워진 무대 위로 터키의 민속 현악기인 바을라마bağlama를 든 악사들이 공손히 입장하고 그 뒤로 새하얀 히잡을 두른 여성 네 명이 조심스레 들어선다. 그들은 무대 중앙이 아닌 왼쪽 모퉁이에 둥글게 모여 서로를 바라보며 춤을 춘다. 압도적일 만큼 화려했던 세마와 달리 여성들의 몸짓과 시야는 작고 좁다 못해 비밀스럽다.

2006년, 터키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소설 <내 마음의 낯섦>에서 이슬람 문화권 아래 터키 여성들이 받고 있던 억압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용감한 아들 셋과 이스탄불을 정복할 꿈에 부풀었던 주인공은 딸만 셋이 태어나자 크게 낙심한다. 결국 이 좌절감은 불법낙태, 매매혼, 가정폭력 등으로 이어진다. 이곳의 여성들이 여타 이슬람 국가와 다른 길을 걷게 된 시기는 1923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재위한 후부터다. ‘터키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그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양성 중에서 한쪽만 생각한다면 다른 한쪽은 소외될 것이고, (중략) 여성을 지적・도덕적・사회적・경제적 삶에 있어서 남성의 동반자이자 친구로, 또 협력자로, 보호자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며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1925년에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다음 해에는 일부일처제를 확립했으며,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다소 어두웠던 수도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내리쬐는 5월의 햇빛이 한여름처럼 눈부시다. 평일 오전임에도 인파가 북적이는 대로는 이곳이 ‘베이욜루 컬처 루트 페스티벌’의 중심가임을 상기시킨다. 탁심 광장Taksim Meydanı 일대를 시작으로 베이욜루Beyoğlu 지구 전역에 흥미로운 여행 스폿 41곳이 펼쳐져 있다. 보름 동안 각 공간은 책, 그림, 조명, 사진, 애니메이션, 영화를 소재로 삼은 전시와 오케스트라 콘서트, 오페라 공연 등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나는 무려 8.66km2에 달하는 이 거리에서 자신만의 자리와 감각을 개척해낸 로컬 여성 예술가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무명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춘 메셔 미술관의 전시.

익명의 화가들

CULTURE ROUTE 1 — 이스티클랄 거리 211번지

 

리드미컬한 소리가 들리는 방향 끝에서 현지 젊은이들의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다.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드럼을 치자 금세 구경꾼이 몰려든다. 건너편에는 버스킹과 어울리지 않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 길게 늘어서있다. 이렇듯 이스티클랄 거리의 일부는 19세기 메트로폴리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곧이어 시간을 되감은 듯 빨간색 트램이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탑승자들이 손을 흔든다. 나는 마치 과거에서 온 사람들을 맞닥뜨린 것처럼 열렬히 호응한다. 거리 전체가 이런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쉴 새 없이 떠드는데, 211번지로 향하는 골목만은 유독 조용하다.

 

빨간색 트램이 수시로 오가는 이스티클랄 거리.

굴곡진 언덕길 아래로 내려가니 그제야 메셔Meşher 미술관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지도에 표기되었던 명칭을 반영한 ‘메셔’는 오스만 시대의 언어로 ‘전시 공간’을 뜻한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대화와 영감의 플랫폼이 되고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큐레이터, 기관 등과 협력하고 있다. 작년 10월부터는 이라는 전시를 진행 중이다. “0층에서 2층까지, 여성 예술가 117명의 작품 총 232점을 선보입니다. 185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터키에 거주하며 작업해온 이들은 각자만의 ‘세기century’를 보여주죠.” 도슨트인 야신Yasin이 설명한다. 0층은 ‘나’를 테마로 연필, 잉크, 오일 등을 사용해 그린 자화상과 거울이 배치되어 있다. 이 거울은 자신의 새로운 면면을 엿볼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자,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이름이 지워진 여성의 창의성을 지탱하는 매개체이다. ‘너’를 표현한 1층에서는 변화하는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여성의 누드화조차 남성을 모델로 삼아 상상을 덧입혀 완성해갔다. 터키 화가인 하리카 리피즈Harika Lifij의 1917년 유화에서 여성의 몸이 남성처럼 투박하고 굵은 선으로 묘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부채꼴 모양의 작품 또한 흥미롭다. 남성의 어깨, 팔, 다리가 여성의 신체로 변모하는 스케치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두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가자 내부를 가득 채운 액자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 <베스트 오퍼> 속 밀실 갤러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림이 빼곡한데, 다른 층과 달리 작품명이나 작가명이 없다. “이곳 ‘그들’이 있는 층은 타인의 시선으로 본 여성을 형상화한 까닭에 익명성을 추구합니다. 대부분 인물이 아니라 화병 속 꽃을 그렸어요. ‘장식적, 감정적, 가정적, 안정적, 우아한’ 같은 형용사를 빗댄 꽃만이 여성을 나타낼 수 있었거든요.”(야신) 평면적인 꽃들 사이로 얕게 파인 벽면에 자리한 입체적인 핸드백이 눈에 띈다. 과거 여성에게 집안일 외의 기술은 절대 가르치지 않았는데, 작가는 여러 소재를 조합한 가방을 만듦으로써 ‘여성들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상징적 행위 예술을 한 셈이다. 참고로, -1층은 해당 전시의 부록 같은 공간이다. 미감을 불러일으키는 고품질의 양장 제본 도록을 구입할 수 있다. I, You, They를 넘어 더이상 익명이 아닌 ‘We’의 자유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100여 페이지에 걸쳐 풀어낸다.

 

갓 짜낸 신선한 과일 음료를 파는 노천카페.

기네스북에 오른 배우

CULTURE ROUTE 2 — 이스티클랄 거리 131/A번지

 


이스티클랄 거리에 있는 은밀한 통로 하나를 치체크 파사즈Çiçek Pasajı, 일명 꽃길이라 칭한다. 1876년에 문을 연 이곳은 앤티크한 카페, 와인 하우스, 레스토랑이 즐비한 아케이드다. 나서는 출구에 따라 각종 먹거리를 파는 사네 거리Sahne Caddesi, 어시장인 발리크 파자르Balık Pazarı를 쉽게 오갈 수 있다. 치체크 파사즈는 오래전 나움 극장Naum Theatre의 터이기도 했다. 극장이 화재로 소실되기 전에는 오스만제국의 32대 술탄인 압둘라지즈Abdülaziz와 34대 술탄 압둘하미드 2세Abdülhamid II가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빈번하게 찾던 곳이었다고 한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튀르칸 쇼라이.

1844년에 나움 극장이 있었다면, 1948년에는 베이욜루에서 가장 큰 영화관인 아틀라스 시네마Atlas Sineması가 건립됐다. 당시 바닥과 발코니를 포함한 1860개의 좌석은 온통 호기심 많은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현재는 터키 영화의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인터랙티브 디지털 뮤지엄’ 섹션에서 증강현실로 재현된 명장면을 감상한 후 그린스크린 앞으로 향한다. “직접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원하는 배경지를 선택하고 지정된 스테이지에서 움직이면 짧은 클립이 완성되죠.” 관장 일크 누르 울루Ilknur Ulu가 간단히 시범을 보인다. 피부와 보색을 이루는 녹색 스크린이 피사체를 분리하기 좋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디바이스는 일종의 메모리 저장소. 데이터로 변환된 수많은 고전 영화 포스터가 내장되어 있다. 라 적힌 포스터에 손을 대자 이미지가 확대되면서 간략한 정보를 띄워준다. 1977년 작, 튀르칸 쇼라이Türkan Şoray 주연. 

 

아틀라스 시네마에서 그녀의 출연작을 일부 상영한다.

‘시네마 히스토리 뮤지엄’ 섹션은 어워드 코너라는 부제에 걸맞게 칸, 베를린, 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쥔 현지 영화인들의 손때 묻은 노트와 배지 등이 진열되어 있다. 코너 뒤편 유리관에서 익숙한 얼굴을 다시 만났다. 쇼라이의 초상화와 그녀가 착용했던 화려한 드레스가 궁금증을 부추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스탄불 태생인 쇼라이는 14세 무렵 첫 배역을 맡고 약 5년 만에 안탈리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어요. 이후 유니세프 친선대사에 선정될 만큼 터키에서 큰 지지를 받았죠. 더는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2018년에 돌연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무려 222편의 영화에 출연해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울루) 나는 다작에 놀라기보다 그녀가 1960~1970년대 이슬람권 여성 배우로서 유일하게 감독을 겸했다는 대목에 주목한다. 쇼라이는 1972년 작인 <Return>을 기점으로 2015년까지 <Torment>, <The Judge of Bodrum>, <Kill the Snake>, <Far Away Search>를 디렉팅했다. 극적인 전환기를 맞이한 모습은 ‘아트 갤러리’ 섹션에서 접할 수 있다. 그녀가 터키 정통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 유젤 카크마클르Yücel Çakmaklı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을 지나친다. 그 옆으로는 쇼라이와 카메라 외에 모든 것이 블랙아웃 된 이미지 한 컷. 그녀의 밀도 높은 표정을 보는 순간, 사진의 제목이 자연스레 유추된다. 리턴! 그녀는 본래 자리로 되돌아간 모양이다. 

 

문명을 빚는 도예가

CULTURE ROUTE 3 — 갈라타포트 G블록

 

이튿날 아침, 통창 너머로 코스타 선박이 출항하는 것을 보며 쫀득한 카잔디비kazandibi 푸딩을 한 입 베어 문다. 나는 지금 카라쾨이 여객 터미널Karaköy Yolcu Terminali 위에 자리한 리만 레스토랑Liman Lokantasi에서 다음 일정을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갈라타포트에는 다양한 크루즈가 수시로 드나든다. 여권 심사와 수하물 처리 등은 모두 2만9000m2 규모의 지하 터미널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식당을 벗어나 부둣가를 천천히 거닐어본다. 갈라타포트가 여행자에게 산책로를 개방하는 데 약 2세기가 걸렸다. 얼마 전까지 이 유연한 해안선과 태양에 단련된 땅, 건강한 뭍사람들을 저 멀리 배 위에서만 볼 수 있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도자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예술가로 평가받는 후레야 코랄.
그녀가 새로 고안한 문양은 색감과 묘사가 탁월하다.

곧게 내리쬐는 빛줄기를 피하려 그늘을 찾다가 어느 저명한 예술가의 작업실을 엿보게 되었다. 아담한 공간엔 터키 최초의 여성 도예가인 후레야 코랄Füreya Koral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녀는 젠더보다 도자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아티스트로 평가되곤 한다. 1947년 결핵을 앓던 코랄은 숙모의 권유로 진흙의 촉감을 느껴본 뒤 독학하여 자신만의 도예 스타일을 구축한다. 그녀는 도자기 공예가 단순히 일상의 오브제를 만드는 기술에 그치는 데 답답함을 느끼고 이를 건축에 접목하기 시작한다. 백미로 회자되는 대형 세라믹 패널은 마치 멕시코의 고대 벽화처럼 웅장하고 견고하다. “코랄은 아즈텍과 마야 문명을 연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에 자주 갔어요. 그곳에서는 벽화에 대한 개념이 훨씬 분방하죠. 덕분에 그녀는 ‘예술이 박물관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가이드 알리 이흐산Ali İhsan) 또한 코랄은 전통 문양 대신 참신한 패턴을 고안해 더욱 호평을 받았다. 그녀의 패턴은 강렬한 원색의 조합으로 물고기, 새, 꽃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해 동양적이면서도 서구적인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코스타베네치아호가 출항을 알린다.

코랄의 바람대로 갈라타포트의 예술은 장소의 제약을 벗어났다. 내륙으로 이동하면 공원 한편에서 월성기를 흔드는 토파네 시계탑Tophane Saat Kulesi을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쌓아 올린 이 탑은 상부의 무게와 지면의 이동으로 인해 바다 쪽으로 12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천장의 시계는 잦은 고장에 시달렸으나 궁전의 시계 장인이었던 레제프 구르겐Recep Gürgen이 완벽히 수리를 마쳤다. 정오를 알리는 시계탑 앞으로는 야외 콘서트홀과 수백 석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짧은 리허설에 이어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이 항구에 울려 퍼진다. 행인들도 하나둘 멈춰 서서 느긋하게 리듬을 탄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시계탑과 언뜻 보이는 네스레티예 모스크Nusretiye Camii, 그리고 예술을 만끽하는 관람객들. 도시 전체가 생동하는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라시베르트 레스토랑.

 

백야의 프리마돈나

CULTURE ROUTE 4 — 메테 거리 2번지

 

“터키 사람들은 잠이 없나?” 어스름한 이스탄불의 전경을 담고자 새벽 4시에 택시를 탄 사진가의 물음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임에도 도심은 이미 한낮처럼 번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해가 막 기운 저녁 7시, 탁심 광장은 한결같이 분주하다. 버스, 지하철, 트램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대중교통의 중심지인 까닭에 바삐 퇴근하는 직장인이 한몫을 차지하고, 모임을 즐기는 현지인과 랜드마크를 섭렵하려는 여행자가 대다수다. 심지어 터키의 독립 5주년을 기리며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공화국 기념비마저 정치인과 군인이 여럿 등장한다. 

 

음질을 보존하기 위해 곡선으로 설계한 튀르크 텔레콤 오페라 홀.

길 건너편에는 작년 10월 리모델링을 마친 아타튀르크 문화센터Atatürk Kültür Merkezi가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이곳은 10만m2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매일 다채로운 이벤트를 진행한다. 뮤직 플랫폼에서는 터키의 음악적 유산을 공유한다.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교차하는 지리적 위치에서 ‘소리’는 과연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위구르의 두타르dutar, 카자흐스탄의 돔브라dombra, 아나톨리아의 바을라마 등 전통악기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그 역사와 지형을 추측해본다.

 

오스만제국의 번영을 과시하는 오페라 가수들의 화려한 의상.

8시가 될 즈음, 뛰어난 음질을 유지하고자 말굽 모양으로 설계된 튀르크 텔레콤 오페라 홀로 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불이 꺼지고 화려한 커튼이 내려오며 오페라 의 개막을 알린다. 오스만제국의 전성기가 배경인 이 작품은 건축가 시난과 10대 술탄인 쉴레이만 1세Suleiman I, 그리고 제국 최초의 황귀비인 록셀라나Roxelana가 쉴레이마니예 모스크Süleymaniye Camii를 지으며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담아냈다. 록셀라나의 풍부한 음색이 관중을 사로잡는 극 중반 즈음 가수들의 의상도 호화로움의 극치에 달했다. 당대의 여성들은 밝은색 원단으로 베일을 한 쌍 만들고 부피가 큰 속옷인 살바şalvar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고믈렉gomlek, 긴 로브인 엔타리entari와 카프탄kaftan 등을 겹쳐 입었다. 그중 살바는 한때 ‘해방’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과거 한 영국 대사가 오스만제국을 여행하던 중 “오스만 여성이 서구 여성의 권리를 능가하는 법적 재산권과 보호를 소유하고 있다”는 서한을 남긴다. 그녀는 이곳에서 남녀 모두 살바를 착용하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의복이 명확히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영국 여성들은 성적 차이를 거부하는 의미로 살바를 입곤 했다고 한다.

박수갈채와 함께 오페라가 막을 내리고 다시 탁심 광장의 인파에 섞여든다. 자정이 가까워졌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에 앉아 새에게 먹이를 주고 비눗방울을 불어댄다. 나는 2주간 열리는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생긴다. 과연 보름 뒤, 이스탄불의 축제는 끝이 날까?

 

앙카라성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이 현대와 과거를 아우른다.

NEARBY CITY

앙카라

해발고도 850m에 이르는 아나톨리아 고원에 건립된
수도에서 터키 여성의 뿌리를 발견하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앙카라성Ankara Kalesi 남부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Anadolu Medeniyetleri Müzesi은 구석기 시대부터 히타이트, 프리지안, 우라르티안,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 시대를 아우르는 연대별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기원전 5750년, 당대 원주민들은 여성을 생명과 연관된 영적 존재로 여겨 그 형상을 석상으로 만들어 섬겼다. 근엄한 자세로 표범 두 마리를 거느린 초기 여신상을 살펴본다. 다리 사이에 새겨진 둥근 모양은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 혹은 조상의 두개골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느트카비르

터키공화국의 창립자인 아타튀르크의 영묘이며, 반대편에는 두 번째 대통령인 이스멧 이뇌뉘Ismet İnönü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아느트카비르Anıtkabir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터키 지폐의 한 면을 차지하기도 했다. 1960년에는 내부에 아타튀르크 박물관을 마련하고 그의 소장품과 옷장 등을 전시했다. 동굴처럼 깊은 박물관 한편에 아타튀르크가 여성의 인권을 고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기록한 아치형 공간도 자리한다. 1925년 복장 개혁을 통해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체조하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대국민 의회당

입구에 ‘터키 대국민 의회Türkiye Büyük Millet Meclisi’라는 글귀를 내건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아타튀르크는 구 오스만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공화국을 세울 목적으로 여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국민들에게 주권을 상기시킨 것도 이 시기와 맞물린다. 2층에서 최초로 의회에 출입한 여성 의원들의 사진과 이력을 열람해보자. 아타튀르크가 탁월한 국회의원이라 언급했던 하티 치르판Hatı Çırpan은 고향인 앙카라 북서부 카흐라만카잔Kahramankazan에 있는 생가가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제르모던

2010년, 옛 철도 공장 자리에 개관한 제르모던Cermodern은 작은 테마파크와도 같다. 인근에 있는 대관람차와 분수 등이 특유의 판타지적 감성을 고조시킨다. 제르모던에서는 터키를 포함해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핀란드, 스페인 등 8개국의 여성 아티스트가 ‘전통 짜기, 미래 짜기’라는 주제로 섬유 예술을 선보인다. 그간 섬유는 뜨개질, 재봉, 자수 같은 여성의 일감으로 격하되어 왔으나 인간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의’를 이루는 근원적 직물이기도 하다. 작가들이 한 땀 한 땀 직조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숨겨진 의도를 탐구해보자. 


CSO 콘서트홀

‘프레지덴셜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독특한 삼각형 외관과 최대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콘서트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4월에는 해당 교향악단에서 첫 여성 지휘자가 탄생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시벨 아이한 바이어Sibel Ayhan Bayer는 플루트를 전공했으며 2년 동안 부르사 지역에서 지휘 연습을 해왔다고 한다. CSO 콘서트홀에서는 관현악 연주 외에도 스페인이나 그리스를 비롯한 다국적 가수들의 재즈 공연 등 광범위한 장르를 접할 수 있다. 

 

히잡을 두르고 옷을 갖춰 입은 여성들이 아타튀르크 박물관 앞을 지나고 있다.
글. 김호경HO-KYUNG KIM
사진. 조성준SEONG-JOO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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