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SCOTLAND
Low & High 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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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호

 

“영국 여행에서 스코틀랜드는 늘 별개의 챕터로
분류되곤 한다.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섬
북쪽을 아우르는 스코틀랜드는 특유의 기질과 문화
그리고 경이로운 대자연이 펼쳐지는 곳이기에.
롤런드의 두 도시와 하일랜드 그리고 스카이섬을
넘나들며 스코틀랜드의 대지를 품어본다.”

 

에든버러 로열마일을 따라 늘어선 중세 건축물.

Low Lands

스코틀랜드의 관문 도시

한 나라를 향한 스테레오 타입이 막연한 환상을 심어준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선입견이 그곳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여행의 경험을 되레 좁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그려낸 이미지를 퍼즐 풀듯 발견하는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는 법. 이런 양면적인 여행의 속성을 앞에 두고 스코틀랜드의 관문이자 수도인 에든버러Edinburgh는 힌트를 제시한다. 고색창연한 중세 건축물과 호박빛이 감도는 스카치위스키, 킬트 복장을 차려입은 백파이프 연주자, 완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서점 등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이 다층적으로 집약된 이곳에선 그런 선입견도 여행의 충만한 요소가 될 테니까.

에든버러는 프린세스 스트리트Princes Street를 기준으로 북쪽의 뉴타운과 남쪽의 올드타운으로 나뉘는데, 뉴타운은 이름이 무색하게도 건물 연식이 200년을 훌쩍 넘는다. 14세기 이래 스코틀랜드 수도의 지위를 놓치지 않은 이 도시에서 새것에 대한 기준은 꽤 엄격한 셈이다. 올드타운을 한 바퀴 둘러보는 동안 스코틀랜드다운 장면이 수시로 펼쳐진다. 과거 왕이 행차하던 1.6km의 로열마일Royal Mile을 축으로 한두사람이 간신히 지나칠 법한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올드타운의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길 서쪽 끝에는 도시의 요새 역할을 하는 에든버러성Edinburgh Castle이 위풍당당하게 굽어보고, 반대편에는 영국 왕실의 별장이기도 한 고풍스러운 홀리루드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이 너른 녹지 위에 자리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동상 아래로 여행자들이 길을 따라 늘어선 기념품 상점이나 카페, 레스토랑을 찾아 분주하게 오간다. 로열마일을 걷다 보면 ‘클로즈Close’라고 표기된 이정표를 무수히 만나게 된다. 이는 과거 왕족과 귀족이 이용하던 로열마일을 피해 하층민이 이용하던 일종의 지하 골목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골목은 리얼 메리 킹스 클로즈The Real Mary Kingʼs Close. 도시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격리 장소로 쓰이던 이 으스스한 지하 골목은 오늘날 흥미진진한 고스트 투어의 무대로 쓰임을 바꿔 호기심 강한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옛 공동 주택은 말끔한 숙소로 신분 상승을 노리기도 한다. 리얼 메리 킹스 클로즈 곁에 있는 슈발 올드타운 체임버스Cheval Old Town Chambers가 그렇다. 아늑한 아파트먼트형 객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스코틀랜드에서의 첫 조식으로 스코티시 브렉퍼스트를 주문해본다. 두툼한 베이컨부터 레드빈, 구운 토마토와 버섯, 달걀프라이, 소시지 등 여느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차별화된 주인공이 있다. 바로 양의 내장을 다져 만든 블랙 푸딩의 일종인 해기스haggis. 스코틀랜드의 대다수 식당 메뉴판에서 볼 수 있는 해기스는 우리나라의 피순대와 닮았는데, 실제 식감과 맛 또한 흡사하다. 전날 올드타운 곳곳을 누비며 소진한 칼로리를 감안하면 스코티시 브렉퍼스트는 든든한 아침식사로 제격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에든버러의 옛 공동주택을 호텔로 개조한 슈발 올드타운 체임버스. 
로열마일에서 정기적으로 버스킹 공연을 하는 백파이프 연주자. 
1842년부터 독립 병입을 해온 위스키 숍, 카덴헤즈. 
온다인 레스토랑에서 맛본 홍합찜 요리. 

에든버러 올드타운에서 보낸 14시간

10AM - 고서점 탐방하기

에든버러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문학의 도시이자 오래된 것에 유독 애착을 보이는 도시다. 고서를 취급하는 중고 서점이 많은 이유도 그런 연유이다. 올드타운 남서쪽의 암체어 북스는 빈티지 고서의 전당 같은 곳. 천장 높이로 빽빽하게 늘어선 서가는 주제와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고지도와 엽서 같은 빈티지 소품도 판매한다. 서점을 천천히 둘러본 다음에는 근방에 있는 메리스 밀크 바Mary's Milk Bar에서 위스키 맛 젤라토를 맛보는 것도 잊지 말자. armchairbooks.co.uk


12PM - 위스키 익스피리언스

에든버러성에서 스코틀랜드인의 드높은 자긍심을 확인하며 도시 전경을 조망해보자. 위스키 애호가라면 성 바로 앞에 자리한 스카치위스키 익스피리언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투어를 신청하면 증강현실VR로 스카치위스키의 생산 과정을 알려주는 인터랙티브 전시를 관람하고, 스코틀랜드의 지역별 위스키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테이스팅 세션에 참여하게 된다. 지하 1층의 앰버 레스토랑Amber Restaurant에서는 스코틀랜드 로컬 푸드와 함께 위스키 페어링을 즐길 수 있다. scotchwhiskyexperience.co.uk


2PM - 로열마일 산책

점심식사 후에는 로열마일을 산책하며 에든버러의 정수를 하나씩 확인할 차례. 에든버러성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 1.6km 정도 이어진 길에는 유서 깊은 역사적인 건축물과 기념품 상점이 즐비해 발걸음이 거듭 지체된다. 오후 시간에는 킬트를 차려입은 백파이프 연주자를 비롯한 버스킹 공연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카덴헤즈Cadenhead’s 보틀숍이나 더 퍼지 하우스The Fudge House에서 독특한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도 로열마일 산책의 즐거움이다. 


5:30PM - 오이스터 타임

로열마일 부근의 온다인 레스토랑은 에든버러에서 손꼽히는 해산물 요리를 내놓는 곳이다. 스코틀랜드 각지에서 들여온 굴과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데, 토요일 점심에는 3코스 메뉴를 별도로 제공한다. 평일 저녁 5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하는 오이스터 해피아워 때는 최상급 굴을 1개당 2.5파운드에 맛볼 수 있어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ondinerestaurant.co.uk


8PM - 고스트 투어

올드타운 곳곳을 미로처럼 연결하는 각 클로즈마다 특색 있는 고스트 투어를 진행한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투어는 단연 리얼 메리 킹스 클로즈. 중세시대 흑사병 환자를 격리하던 지하실에서 시작하는 투어는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가이드가 실감 나는 이야기를 해주며 사람들을 1시간 동안 어두운 에든버러의 과거로 인도한다. 투어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15분 간격으로 진행하는데, 좀 더 극적인 분위기를 원한다면 저녁 타임을 추천한다. realmarykingsclose.com


10PM - 바 호핑

에든버러는 도시의 오랜 내력만큼이나 클래식한 바 문화도 간직하고 있다. 올드타운 남쪽의 베네츠 바Bennets Bar는 180년 전 빅토리아 양식의 인테리어를 고스란히 보존한 것은 물론, 100종 이상의 희귀 몰트위스키로 가득한 곳이다. 좀 더 캐주얼한 펍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웨스트 보West Bow 거리의 보 바Bow Bar로 자리를 옮기자. 에일 맥주부터 스코틀랜드 크래프트 진, 방대한 위스키 라인업까지 고루 갖춘 이곳에선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유쾌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글래스고의 중심가 역할을 하는 뷰캐넌 스트리트는 도시의 미감과 기질을 확인하기 좋은 거리다.

글래스고의 독창적 기질

에든버러의 웨이벌리Waverley 역에서 글래스고 퀸스트리트Glasgow Queen Street 역까지 기차로 단 1시간이면 닿을 만큼 두 도시는 가깝다. 역에서 나오면 조지 광장George Square 너머로 중심가가 펼쳐지는데, 에든버러와 상반된 분위기다. 모던한 현대 건축물이 스카이라인을 채우고 거리에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의 비중이 높은 반면 연령대는 낮아 보인다. 이는 글래스고 일대에 10개의 대학교가 위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글래스고 대학교부터 글래스고 예술학교 등에 다니는 각국의 유학생들이 오늘날 이곳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도시의 미감 역시 완고한 에든버러와 비교해보자면 한층 개성 강한 면모가 엿보인다. 글래스고 현대미술관GoMA 앞에는 주황색 트래픽콘을 머리에 쓴 웰링턴Wellington 공작의 기마상이 우스꽝스럽게 서 있는데, 사연은 이렇다. 약 30년 전 한 취객이 나폴레옹을 이긴 그를 기린다는 이유로 술김에 트래픽콘을 씌운 이후 공무원이 제거했지만 곧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반복되었고, 결국 오늘날 글래스고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위트 넘치는 글래스고인들의 기질은 도시 곳곳의 담장을 컬러풀하게 채운 그라피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래스고가 낳은 스타 중 찰스 레닌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를 빼놓을 수 없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매킨토시의 스타일은 글래스고의 미적 감각을 끌어올렸다. 도심 한복판을 남북으로 가르는 뷰캐넌 스트리트Buchanan Street 골목 한쪽에 자리한 라이트 하우스The Lighthouse부터 인근의 윌로 티 룸스The Willow Tea Rooms, 클라이드강River Clyde 남단의 스코틀랜드 스트리트 스쿨 박물관Scotland Street School Museum까지, 도시 구석구석 매킨토시의 흔적이 인장처럼 남아 있다. 매킨토시의 디자인은 고전적인 장식 요소에서 탈피해 아르누보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기능주의에 심취한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비롯해 과감한 장식을 차용하는 아르데코에도 영향을 끼쳤다. 윌로 티 룸스에 놓여 있는 높다란 하이 백 체어에 앉아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순간에도 그만의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글래스고의 미식 또한 역동적이면서 독창적인 이 도시의 기질을 다분히 반영하는 듯하다. 스코틀랜드 관광청의 미란다 램Miranda Lam이 내게 일러준 레스토랑 리스트만 봐도 그렇다. 북인도식 파인 다이닝부터 북유럽 분자 요리, 미국 극장을 테마로 꾸민 바비큐 레스토랑, 퓨전 한식당까지 저녁식사를 위한 식당을 고르는데 꽤 신중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렇게 택한 곳은 글래스고 서쪽 애슈턴 레인Ashton Lane 골목 한구석에 자리한 유비퀴토스 칩Ubiquitous Chip. 스코틀랜드산 식재료를 창의적인 타파스로 선보이는 식당으로, 오반Oban의 대구구이나 람세이Ramsay 농장의 베이컨을 맛보며 내추럴 와인 샘플러를 곁들일 수 있다. 2층 한쪽에 스탠딩 칵테일 바가 자리하고, 1층에 클래식한 위스키 펍도 갖춰 저녁식사 이후의 밤도 완벽하게 책임진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일랜드의 노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양.
포트윌리엄에서 스카이섬으로 향하는 A87 도로에 면한 엘리언도난성.
스카이섬 서부의 브리틀호Loch Brittle는 서핑 포인트로 꼽힌다.
스카이섬 동북부 해안에 자리한 킬트록 폭포.

High Lands

하일랜드의 대지를 달리다


글래스고에서 차를 렌트해 북쪽으로 이동한다. 본격적인 하일랜드 여행이 시작된 셈. 스코틀랜드는 크게 남부의 롤런드, 북부의 하일랜드로 나뉘는데, 에든버러와 글래스고 등 대다수 도시가 롤런드에 속한 반면 국토의 3분의 2가량을 아우르는 하일랜드는 인구밀도가 현격하게 낮다. 북쪽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이정표가 보이지 않더라도 하일랜드에 당도했음을 직감하게 된다. A82번 도로는 어느 순간 왕복 2차선으로 좁아지고 도시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낸다. 1시간쯤 지나 왼쪽으로는 숲이, 오른쪽으로는 너른 호수가 펼쳐지며 로몬드 호수Loch Lomond로 진입한다. 스코틀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이기도 한 이곳은 장대하게 이어지는 호수 너머로 나지막한 산봉우리가 감싸며 안온한 전경을 그려낸다.

하일랜드에서는 로크loch(호수)를 비롯해 글렌glen(계곡), 벤ben(산봉우리) 같은 스코틀랜드게일어로 된 지명을 쉼없이 만날 수 있다. 하일랜드 지도 한복판에 위치한 글렌코Glencoe는 스코틀랜드 아웃도어의 성지로 유명한 곳. 영국 최고봉이기도 한 해발 1345m 벤네비스Ben Nevis를 포함해 트레킹으로 유명한 하일랜드의 산군이 이 일대에 모여 있다. 글렌코 부근에서 가장 큰 마을인 포트윌리엄Fort William이 아웃도어의 수도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리에는 커다란 배낭을 멘 하이커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활보한다.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하일랜드 북숍Highland Bookshop은 포트윌리엄의 관광안내소 역할을 대신한다. 1층은 다소 평범한 서점처럼 보이지만 2층으로 올라가면 트레킹, 자동차 여행, 사이클링, 낚시 등 스코틀랜드 전역을 아우르는 아웃도어 여행서와 가이드북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오래된 성을 주유소만큼이나 자주 마주친다는 얘기는 농담이 아니다. 문화유산 리스트에 등재된 고성의 수가 2000개가 넘으니까. 다만 상당수가 잉글랜드와 치른 전투로 인해 원형을 짐작하기 힘들 만큼 폐허가 되어버렸다. 하일랜드 서부의 엘리언도난성Eilean Donan Castle은 운명을 뒤바꾼 성 중 하나다. 13세기 맥켄지Mackenzie 가문의 소유였던 이 성은 18세기에 요새로 사용되다 정부군의 공격으로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20세기 초 제1차세계대전 이후 맥레MacRae 가문이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성을 복원했고 이후 콘크라 트러스트Conchra Trust 재단이 관리를 도맡으며 기사회생했다. 이런 뜻밖의 운명 덕분에 영화 <하이랜더>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수많은 여행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고풍스러운 타탄 카펫과 원목 가구가 보존된 성의 내부도 훌륭하지만, 다리를 건너 바라보는 성의 전경을 놓쳐선 안될 일. 호수 위로 처연하게 섬처럼 솟아오른 성의 망루와 잿빛 봉우리가 굽어보는 계곡의 모습은 하일랜드의 모든 요소를 두루 응축해놓은 듯 쓸쓸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스카이섬의 퀴라잉 전망대에서 협곡 너머 바다 위로 무지개가 맺히고 있다.

최후의 섬으로

하일랜드 서부 일대는 바다를 면한 만과 곶이 요동치며 피오르처럼 굴곡진 형상을 띤다. 해안을 따라 흩어진 크고 작은 200여 개의 섬은 헤브리디스Hebrides 제도를 이룬다. 육지와 가까운 이너 헤브리디스Inner Hebrides와 좀 더 먼 아우터 헤브리디스Outer Hebrides로 나뉘는데, 그중 스카이섬Isle of Skye이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다.

스카이섬은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카페리의 루트 또한 다양해 하일랜드 자동차 여행자에게 필수 코스로 꼽힌다. 2019년 한 해 동안 2억 파운드(약 3150억원) 이상의 관광 수입을 벌어들였다는 통계만 봐도 이 섬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제주도보다 살짝 작은 면적의 스카이섬을 내밀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최소 2박 이상 머물러야 한다. 드라마틱한 경관이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져 거듭 차를 세우는 유혹을 참지 못해 당초 계획했던 일정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섬 한복판에 옛 중세 돌다리가 보존되어 있는 슬리가찬Sligachan은 스카이 여행의 기착지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동쪽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아름다운 해안 마을 포트리Portree에 정차하고 식사를 하거나 느긋하게 애프터눈 티 타임을 즐길 수 있다. 포트리에 머물던 여행자들의 발길은 기암괴석이 신비롭게 솟아오른 올드맨 오브 스토르Old Man of Storr로 이어진다. 스코틀랜드 여행 가이드북의 표지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스펙터클한 풍광을 자아내는 이곳은 약 1시간 남짓 등반하면 기둥 바로 아래까지 닿을 수 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트레일을 걷기 위해선 고어텍스 트레킹화가 필수다. 섬의 매력적인 경관은 북쪽 방향으로 계속 펼쳐진다. 아찔하게 북해 바다를 향해 폭포수를 쏟아내는 킬트 록Kilt Rock, 곡예에 가까운 산악 커브 구간을 따라 올라가는 퀴라잉Quiraing 등 신이 빚어낸 듯한 태초의 절경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왼쪽부터)
차량 천장에 장착한 루프톱 텐트는 스코틀랜드 캠핑의 묘미를 선사한다.
오이스터 셰드에서 맛보는 생굴과 탈리스커 위스키의 조합.

스코틀랜드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런 극적인 풍경에 일조하는 듯하다. 스카이섬에서는 그 변화가 한층 극명해진다. 성인 남성을 움직이게 할 만큼 혹독한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일순간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대지 위로 무지개가 선명하게 맺히기도 한다. 바다 한복판에 비를 몰고 이동하는 구름은 초현실적인 장면을 목격한 도로 위의 모든 운전자들을 잠시 멈춰 서게 한다.

위스키 애호가가 아니라도 빼어난 경관 덕분에 탈리스커Talisker 증류소는 스카이섬의 인기 여행 코스 중 하나다. 코로나19로 인해 당분간 증류소 투어는 운영하지 않지만, 입구에서 가볍게 시음을 즐기는 테이스팅 부스와 기프트 숍이 마련되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증류소 인근에는 굴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을 즉석에서 조리해주는 오이스터 셰드Oyster Shed가 자리하는데, 이를 함께 방문하는 게 일종의 코스처럼 자리 잡았다. ‘바다가 만들어낸 위스키’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탈리스커는 스모키한 풍미로 유명하고, 무엇보다 굴과의 조합이 훌륭하니까. 껍데기 속에 든 생굴 위로 위스키를 쪼르륵 끼얹어 맛보면 탈리스커의 슬로건을 저절로 수긍할 것이다.

스카이섬의 대자연을 누리는 방법 중 캠핑도 빼놓을 수 없다. 슬리가찬으로 다시 돌아와 섬 남서쪽으로 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섬 남서부의 외딴 해안에 자리한 글렌브리틀 캠프사이트&카페Glenbrittle Campsite&Cafe는 영국 최고의 캠핑장 리스트에서 늘 빠지지 않는 곳이다. 웅장한 컬린Cuillin의 산봉우리가 굽어보는 해안 들판에 자리한 천연 캠핑장. 예약없이 선착순으로 이용 가능한 이곳은 캠프 사이트가 나뉘어 있지 않아 다른 사람들과 적당히 간격을 떨어트리면 된다. 밤 10시가 넘도록 해가 지지 않는 백야 시즌의 캠핑장은 놀랍도록 고요하다. 파도를 기다리는 몇몇 서퍼를 제외하면 현지인들은 자신의 텐트나 캠핑카에 들어가 매서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차분하게 밤을 보낸다. 거친 황야와 가파른 능선을 이루는 산, 하늘을 낮게 부유하는 구름과 불시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 어쩌면 이토록 단순한 행위가 스카이 섬의 경이로운 자연에 가장 정직하게 다가서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글렌코에서 마주한 대자연의 한 장면. 계곡, 호수, 산군 그리고 변화무쌍한 날씨는 하일랜드 여행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요소다.

 

 TRAVEL WISE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에든버러공항까지 가려면 1회 경유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면 런던을 경유해 에든버러에 도착하며, 약 18시간 소요된다. KLM네덜란드항공은 암스테르담을 거쳐 19시간 35분 걸린다.


현지 교통

에든버러와 글래스고 도심은 도보로 돌아보기 좋다. 두 도시 간 이동은 기차로 약 1시간 걸린다. scotrail.co.uk
하일랜드는 여행사의 그룹 투어를 이용할 수 있지만, 내밀한 여행을 원한다면 렌터카를 추천한다. 1일 15만원부터. rentalcars.com

 

방문 최적기

가장 좋은 여행 시기는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줄어드는 5~6월 혹은 9월이다. 특히 6월은 밤 11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백야 시즌의 절정. 성수기인 7~8월이 날씨가 가장 온화하지만 숙소 예약이 어렵고, 비수기인 11~3월에는 하일랜드 지역의 숙소와 식당이 문을 닫는 곳이 많다.

 

잠잘 곳

슈발 컬렉션 올드타운 체임버스, 에든버러 위치. 아파트먼트 37만원부터.
chevalcollection.com/cheval-old-town-chambers
글렌브리틀 캠프 사이트&카페, 스카이섬 위치. 캠핑 1인 1만7000원.
dunvegancastle.com/glenbrittle/campsite

 

현지 여행하기

스코틀랜드 관광청은 웹사이트에 코로나19 정책을 비롯한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별 추천 장소는 물론 최신 여행 이슈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다. visitscotland.com

 

 

글. 고현HYUN KO
사진. 오충석OZ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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