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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를 모험하다, 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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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호

필리핀에서 10번째로 큰 섬인 보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친절한 보홀라노족이 산다는 그곳이, 고대부터 스페인 식민 시대의 유산을 간직한 세부와 독특한 동식물종을 자랑하는 팔라완 그리고 화이트샌드 비치를 품은 천혜의 휴양지 보라카이를 각각 닮아 있다니. 보홀과 연결된 디지털 멀티버스를 헤매며 준비한 14일이 흐른 뒤, 우리는 새벽 비행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존재하나요

7641개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의 지도를 보며 중부에 위치하는 보홀Bohol을 짚어내는 어설픈 지리감에서부터 여정은 계획됐다. 필리핀에서 10번째로 큰 섬인 보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친절한 보홀라노족이 산다는 그곳이, 고대부터 스페인 식민 시대의 유산을 간직한 세부와 독특한 동식물종을 자랑하는 팔라완 그리고 화이트샌드 비치를 품은 천혜의 휴양지 보라카이를 각각 닮아 있다니. 보홀과 연결된 디지털 멀티버스를 헤매며 준비한 14일이 흐른 뒤, 우리는 새벽 비행에 몸을 맡겼다. 나는 예상과 달리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공기를 들이쉬며 팡라오공항에 들어섰다. 새벽 3시,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 폴Paul과 인사를 나눈 뒤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숙소로 향했다. “지금 보시는 곳이 번화가예요. 팡라오Panglao는 작은 지역입니다.” 폴이 이야기해준다. 보홀주의 주도 타그빌라란Tagbilaran 남쪽에 육로로 연결되어 있는 팡라오섬. 어둠 속에 불 밝힌 맥도날드 전광판이 보이고 개들은 도로 곳곳에 늘어져 있다. 우리는 알로나 비치Alona Beach 인근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밝아온 여명에 눈이 번쩍 떠진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알로나 비치가 빛나고 있을 거야.’ 나는 빠르게 조식을 해결했다. 초행자의 용기에 기대어 오토바이를 태워주겠다는 청년의 친절을 사양하고 그사이 높아진 햇볕을 기꺼이 받아내며 해변을 향해 걸었다. 7~8분쯤 지났을까. 길을 잃었나 싶은 순간 발견한 오솔길 옆 작은 풀숲을 지난다. 곧이어 늘씬한 키의 야자수가 해변을 굽어보며 늘어선 끝없는 백사장과 아늑한 만을 따라 그려지는 물결에 영롱한 빛이 반사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땀으로 흥건한 이마와 등을 식히며 괜한 고집을 피웠나 자책을 하려는데, 알로나 비치에 놀러 온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미소가 다정해서 나는 헤벌쭉 웃어버렸다. 이 아이가 친절한 보홀라노일까. 어른 두 명과 같이 온 아이들이 열 명은 되어 보인다. 낮은 파도가 이는 호수 같은 해변에 드러누운 아이, 모래놀이 하는 아이, 친구를 붙잡아 당기며 장난치는 아이의 모습이 새삼 경쾌하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다에서 헤엄치는 강아지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가 모래사장에 앉아 있다. 역시나 해변을 따라 늘어선 리조트와 음식점, 호핑투어 보트에서는 여행객과 주민들이 느린 속도로 오늘을 시작하고 있다. “시간이 존재하나요?”라고 묻고 있는 것처럼.

늦은 오후 알로나 비치.
주말 아침 가족과 함께 온 듯한 소년이 알로나비치로 뛰어든다. (사진. JAIME)

 


탐험가와 라스 이슬라스 필리피나스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세계 일주를 하던 도중 1521년, 필리핀에 상륙했다. 이후 스페인은 여러 차례 원정대를 보내 필리핀 제도를 조사했고 결국 필리핀을 정복, 지배하게 된다. 1543년, 스페인의 탐사대가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사마르와 레이테 섬을 스페인 국왕 필립 2세의 이름을 붙여 라스 이슬라스 필리피나스Las Islas Filipinas라고 지었고, 그 후 스페인 점령기에 전 섬을 필리핀이라 부르게 되었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가톨릭교도가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라고. 보홀 남서쪽에 위치한 바클레욘 성당Baclayon Church은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다. 1596년에 지어졌지만 화재 등으로 소실되었다가 1727년 재건됐다. 1595년부터 1946년까지 성당의 역사가 새겨진 기둥 앞에서 가이드인 듯한 여성이 방문객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월요일이라 성당 내부에 들어갈 순 없었지만, 달걀흰자와 산호 가루를 섞어 만든 코랄스톤으로 건축했다는 성당 외벽에 남은 그을음으로 지나온 시간을 가늠해본다. 성당 왼편으로 늘어진 커다란 반얀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쉬지 않고 빗자루로 쓸고 있는 사람, 성당 입구에서 방문객이 촛불 봉헌을 할 수 있도록 직접 만든 초를 파는 사람, 나무 아래 누워 휴대폰을 보던 아이들의 미소가 친절하다. 1565년, 보홀라노 족장 다투 시카투나Datu Sikatuna는 스페인 왕의 대리인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ópez de Legazpi와 피를 나눈 우호조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이를 기념하는 혈맹 성지가 바클레욘 성당 인근에 있다. 방문자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 탓인지 느닷없이 ‘오늘 하루 어땠나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들어 흠칫 놀랐다.

 

바클레욘 성당. 성당 앞에서 촛불 봉헌을 하는 사람들.

 

 


눈을 감아도 괜찮아

숲이 뿜어내는 서늘한 공기가 더위에 지친 여행자의 열기를 식혀준다. 맨메이드포레스트Man Made Forest는 이름처럼 필리핀 정부가 홍수 방지를 위해 조성한 인공 산림지대다. 고개를 한껏 젖혀 하늘 높게 뻗은 마호가니 나무의 키를 눈으로 가늠해보거나 뿌리가 연결된 나무 앞에서 신혼여행 기념사진을 찍는 커플을 볼 수 있다. 도로를 쏜살같이 달리던 스왜그 넘치는 지프니Jeepny들도 이곳에서 잠시 멈춰 포토존임을 인증한다. 그런데 저 지프니들의 커스텀 디자인이 범상치 않다. 화려한 그라피티부터 디즈니 마블 캐릭터까지, 지프니뿐 아니라 오토바이를 변형한 트라이시클TVS도 화려하다. 환경 규제 속에서 설 자릴 찾고 있는 지프니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미군이 남기고 간 지프를 개조해 사용하게 되면서 지금의 필리핀 대중교통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맨메이드포레스트.
로복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점심식사를 즐길 수 있는 로복리버 크루즈. (사진. Seunghyun Sang)
안경원숭이라 불리는 타르시어.

지구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로 알려진 타르시어Tarsier 원숭이는 필리핀에서만 서식하는 보호종이다. 안경원숭이라 불리는 타르시어의 수많은 눈이 우리 일행을 쏘아보리라 예상했건만, 야행성인 이 녀석들은 무척 졸린 상태인 듯. 성인 남성 주먹 크기보다 작은 몸에 커다란 눈을 가진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밤중 사냥을 하기 위해 눈이 크게 진화했다는 타르시어는 영장류 가운데 유일한 육식동물이다. 심지어 올빼미처럼 머리를 180도 돌려서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단다. 잠깐 눈을 뜬 타르시어의 눈망울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나무에 매달린 지구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가 된 기분이다. 이곳 타르시어 보존 센터Tarsier Conservation Area에서는 타르시어 90여 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낮 동안에는 그중 10마리가량을 보호구역 곳곳에 옮겨와 방문객이 잠깐 타르시어와 조우할 수 있도록 한다.

 


여행의 기쁨과 기쁨을 위한 조언

타르시어 보호구역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 로복 에코투어리즘 어드벤처 파크Loboc Ecotourism Adventure Park에 도착했다. 로복강 위 120m 높이에서 약 500m 구간을 달리는 집라인. 몇 개의 고리로 고정한 널찍한 천에 배를 대고 엎드린 채 강을 날아 건널 수 있다. 우리는 안전모를 쓰고, 고리가 단단한지 확인했다. 아주 작지만 0보다는 클 불확실성에 뛰어들기 위한 모험심은 필요했다. 예상보다 1분은 길었고, 비행(?) 속도는 빨랐다. H감독이 사진과 영상 모델을 자청하며 두 팔을 쭉 펴고 날던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자동으로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여행의 기쁨을 포착한 순간이다. 보홀의 초콜릿힐Chocolate Hills Complex은 바다에 퇴적되어 있던 산호섬이 솟아올라 형성된 지형이다. 시선이 닿는 곳 저 너머까지 1270여 개 언덕이 보인다. 우리가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매직아워가 시작됐다. 낮고 짙은 빛과 그림자가 담채의 패턴을 만들어내다 천천히 사라진다. 따뜻한 건기를 지나 초콜릿힐이 갈색으로 변하고, 해 질 무렵 낮아진 빛을 받으면 거대한 키세스 초콜릿을 닮은 언덕을 볼 수 있다. 구글 검색에서 익히 본 사진처럼 압도적인 색감이 담긴 풍광을 목격하는 기쁨을 얻고 싶다면 가급적 5월 이후에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초콜릿힐은 따뜻한 건기(3~6월) 동안 갈색으로 변한다.
로복 에코 투어리즘 어드벤처 파크의 집라인. (사진. Seunghyun Sang)

충분히 유영하며 바라볼 것

다이버들은 보홀의 바다를 사랑한다. 공기 대신 바다로 채워진 세계는 깊고 아름답다. 가파른 해안 절벽에 정원을 이루는 산호초와 수많은 해양생물. 다이버는 물에 감싸여 부력과 중력 그리고 물의 압력 사이를 유영한다. 나는 세계 최고의 프리다이버 기욤 네리Guillaume Néry의 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보다가 언젠가 잃어버린 물갈퀴가 돋아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프리다이빙 한국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김동하 다이버. 보홀에 정착한 지 어느덧 12년이 되었다는 그가 운영하는 프리다이브팡라오센터 웹사이트를 발견한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찾았다! 보홀의 펀다이빙도 매력적이지만 한 번의 호흡으로 바다를 모험하는 프리다이버를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다니. 프리다이빙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 다큐멘터리 영상 속 PD의 질문에 그는 답을 못했었다. 이번 여정, 나의 다급한 취재 요청에 흔쾌히 답을 해온 그는 우리와 발리카삭 호핑투어에 동행하기로 했다. 새벽 6시, 프리다이브팡라오센터에서 김찬, 김혜미 다이버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발에 맞는 오리발을 신어보고 있다. 센터에서 차로 5분 거리의 팡라오 베이에서 방카 보트를 타고 발리카삭Balicasag 섬으로 출발했다. 보트가 달리며 수면에 닿아 이는 포말과 바닷빛에 나는 완전히 매혹됐다. 20분 정도 달렸을 때 누군가 돌고래가 있다며 소리쳤다. 멀리 올라온 돌고래 다섯 마리. 우리 배는 돌고래 가까이 가기보다 함께 바다를 달려보기로 한다. 발리카삭섬은 팡라오 남쪽 알로나 비치 인근에서 배를 타고 30분쯤 이동하면 도달할 수 있다. 발리카삭의 다이빙 포인트는 수중 절벽이 있는 다이버스헤븐과 마린생추어리, 카테드랄과 흑산호를 볼 수 있는 블랙포레스트와 터틀포인트가 유명하다. 돌고래와 함께 달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거북이들이 곳곳에서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있다. 터틀포인트다. 두 명의 다이버가 준비를 마치고 풍덩! 지느러미처럼 길어진 두 발로 헤엄치며 거북이와 유영한다. 모든 곳에 아콰마린 빛 바다와 거북이와 돌고래와 물고기가 된 다이버가 있다.

(위부터)
프리다이브팡라오센터의 김혜미, 김찬 다이버. (사진. Seunghyun Sang)
김혜미 다이버가 거북이를 만났다. (사진. 김찬)

터틀포인트를 지나 발리카삭섬이 보인다. 모래와 맹그로브 나무가 만든 동그란 섬. 섬에 거주하는 주민은 수십 명, 그곳엔 작지만 학교도 있다고 같이 배를 타고 온 호핑투어 가이드가 귀띔한다. 발리카삭의 다이빙 포인트들은 수중 생태가 잘 보존되어 거북이는 물론 1000여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잭피시와 파이프피시, 라이언피시, 니모까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물고기와 산호종을 만날 수 있다. 방카 보트는 발리카삭에서 팡라오 베이로 돌아오다 버진아일랜드에 잠시 정박한다. 오후 2시 전 썰물 때 이곳 인근에 다다르면 발목에서 정강이까지 차는 얕은 수심의 바다가 시작되고, 버진아일랜드는 기다란 부메랑 형태로 바다를 가르며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하늘과 바다 경계에 오롯이 서 있는 맹그로브 나무는 여행자의 인증샷 스폿이다.

발리카삭섬 둘레를 따라 방카 보트가 정박하고 있다. (사진. Seunghyun Sang)
버진아일랜드는 이온음료 CF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IN ONE BREATH
프리다이브팡라오센터 김동하 다이버

한 번의 호흡으로 순수를 모험하다.

발리카삭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김동하 다이버와 아내 김고은. (사진. 주원)

보홀에 거주하신 지 꽤 오래되셨네요. 12년 전, 당시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 지 궁금해요. 2009년이었어요. 원래는 한국에서 평범하게 회사에 다녔는데 그 생활에 염증이 나서 해외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죠. 물을 워낙 좋아해서 태국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프리다이빙을 알게 됐죠.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아마 제가 프리다이빙을 먼저 알았다면 이걸 먼저 시작했을 거예요. 불과 3~4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죠. 프리다이빙이 너무 좋아 보홀에 오게 됐어요. 9년 전 보홀에 왔을 때만 해도 여기에 프리다이버는 한 명도 없었어요. 제가 보홀의 첫 번째 프리다이버라고 말할 수 있죠. 환경이 잘 조성된 이집트 다합의 블루홀, 바하마 제도의 블루홀 등 프리다이빙 스폿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기엔 좀 멀어서 부담됐는데 보홀은 위치도 생태 환경도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전 세계 많은 다이버들이 보홀을 찾지 않나요? 굉장히 많이 와요. 보홀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좋은 다이빙 스폿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1년 내내 수온과 시야 그리고 조류의 조건이 좋은 편이고 거의 일정하니까요. 보홀의 팡라오섬 앞과 뒤의 바다 모두 다이빙 스폿으로 추천할 만해요. 보홀에서 제일 유명한 다이빙 스폿은 역시 발리카삭입니다. 거북이는 거의 100% 확률로 볼 수 있고, 잭피시라고 하는 전갱이 떼도 많죠. 수천 마리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큰 무리를 이룬 모습은 장관입니다. 엄청난 바라쿠타 떼를 만날 수도 있고요. 팡라오 남쪽에 발리카삭 포인트들이 있다면 북쪽에는 나파링Napaling 리프가 있습니다. 또 인근 파밀라칸Pamilacan이라는 섬과 카빌라오Cabilao 섬도 추천합니다. 보홀 본섬의 릴라lila에서는 세부 오슬롭에서 내려오는 고래상어도 만날 수 있습니다.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의 차이점이 뭔가요? 프리다이빙은 무호흡, 다시 말해 한 번의 호흡으로 다이빙을 합니다. 스쿠버다이빙은 호흡을 보조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내려가죠. 스쿠버다이빙은 레저라고 한다면, 프리다이빙은 스포츠적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프리다이빙을 하려면 자기관리가 필요하기도 하고, 운동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죠. 그러다 보니 프리다이버는 기록에 중점을 두고,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체력을 유지하고자 간단한 웨이트 운동을 하거나 달리기를 많이 합니다. 간혹 요가도 하고요. 또 요즘 위빠사나 명상에 관심이 생겨서 자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처음 프리다이빙에 관심이 생겼다면, 물에 익숙해지도록 수영을 추천합니다.

깊은 바닷속을 무호흡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두려움을 극복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사실 다이버들은 깊은 바다로 한 번에 들어가기보다 처음엔 5m, 그다음엔 10m, 20m 이렇게 점점 더 깊이 들어가요. 처음부터 내가 70m 아래까지 내려가거나 혹은 5~6분 동안 숨을 참겠다고 하지 않아요. 조금씩 자연스럽게 조금 더 깊고 넓은 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히려 처음 10m, 20m가 다이빙하는 과정 중 어렵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깊이가 중요한 건 아니죠.

프리다이빙의 장점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점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거죠. 프리다이빙 정점에 있는 선수들을 보면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이 많아요. 스포츠랑 다른 점이죠. 프리다이빙은 어느 정도의 피지컬도 필요하지만, 심리적인 부분이 훨씬 크게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수심 70~80m에서 무호흡 중에 집중력이 흔들리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거든요. 그런 까닭에 좀 더 나이가 많은 분에게 유리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프리다이브팡라오센터를 소개해주세요. 처음엔 스테판이라는 독일인 친구와 함께 오픈을 했어요. 지금은 혼자 운영하고 있고요.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굉장히 많이 찾아옵니다. 요즘은 유럽에서 아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왔다가 센터를 방문하기도 하고요. 보홀 물가가 저렴하고, 1년 내내 언제든 훈련할 수 있고, 펀다이빙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다이버가 아니더라도 3박 4일 일정으로 프리다이브팡라오센터에 머물며 펀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보홀 한 달 살기를 계획 중이라면 다이빙 강사 교육까지도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리다이빙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고 싶고, 또 하고 싶고. 단순해요. 그냥 재밌으니까.

 


보홀 바다를 탐닉하는 다이버가 추천하는 맛과 향

건강한 식사, 우베코

(왼쪽부터)
우베코 입구의 입간판. 페타치즈와 망고, 올리브, 샐러드 채소에 프렌치 드레싱 곁들인 그릭 망고 샐러드.

김찬, 김혜미 다이버가 입을 모아 추천한 오리엔탈 퓨전 레스토랑 우베코. 우리는 순수한 보홀의 감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곳의 공간과 분위기에 감탄했다. 샐러드 채소와 볶은 견과류와 라이스에 스리라차마요소스와 오리엔탈 드레싱을 곁들인 그린포케 볼은 다이버의 체력을 책임지는 건강식이다. 홈메이드 라구소스로 만든 라구 볼로네제 파스타와 쉬림프 오일 파스타의 풍미를 맛본다면 파스타 맛집이라고 외칠 것이다. 에스프레소를 넣은 코코넛 스무디인 코코넛 커피와 망고 스무디의 향긋한 달콤함으로 식사를 마무리해보자. ubeco-bohol.com

 

로컬 커피 로스터리, 커먼크루커피 로스터스 앤 브루어스

(왼쪽부터)
랠래인 리Lalaine Li는 남편과 함께 커먼크루커피 로스터스 앤 브루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콜드브루와 브라우니.

로컬 공동체 문화와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뭉쳤다. 이곳에서는 필리핀 스페셜티 커피 로스팅의 독특한 풍미를 경험할 수 있다. 커먼크루커피는 릭엘니도LICK El Nido의 로스터이자 2회 연속 필리핀 내셔널 바리스타 챔피언을 거머쥔 슬리 사몬테Sly Samonte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1층은 카페, 2층은 코워킹 스페이스로, 자연 채광과 자연 환기 방식을 극대화했다. 보홀의 자연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공간에서 단순하고도 행복한 분위기를 누려보자. 우리는 에스프레소 커피와 브루잉 커피, 콜드브루를 음미했고 다음 날 한 번 더 방문했다. 직접 제조한 콤부차도 있으니 맛을 보시길. commoncrewbohol.com

 


알로나 비치 일몰 속으로

늦은 오후 알로나 비치에는 마사지를 받거나 시원한 맥주를 홀짝이는 사람, 노천카페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사람 등이 모여들어 제법 북적거리지만 산책을 방해할 만큼은 아니다. 시간을 내어 해변을 걸어보자.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 팡라오 곳곳에 있는 과일을 파는 노점에서 열대과일의 여왕 망고스틴과 망고, 바나나를 잔뜩 사서 보홀의 과일 향에 한껏 취해보는 것도 좋다. 간혹 발견할 수 있는 한국어 간판을 건 음식점에서 대패삼겹살이나 보홀 스타일 부대찌개를 맛보는 것도 괜찮다. 여럿이 여행한다면 넓고 시원한 밴을 주로 이용하겠지만, 반나절 정도 스왜그 넘치는 트라이시클이나 지프니를 타고 시내를 돌며 자연 바람을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 알로나 비치 인근에서 매일 저녁 열리는 이색적인 불쇼를 보며 노천카페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불멍을 즐길 수도 있다. 불쇼가 열리는 조그만 무대 옆에 위치한 독도카페(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망고셰이크 맛집이다. 무엇보다, 어느 곳이나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환대 문화가 있다지만, 보홀에서 마주한 순수한 미소는 오랜 기억의 장소에 저장하도록 하자. 

보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프니와 트라이시클.

 

일정의 마지막 날 숙소에 서 바라본 알로나 비치의 일몰.

일정의 마지막 날, 밤 비행기를 예약해둔 우리는 리조트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10여 분 전 수평선 너머로 넘어갔던 해가 그제야 하늘과 구름을 물들인다. 숙소에서 조망하는 모든 공간이 코랄핑크와 펀치핑크, 인디고퍼플로 물들고 있다. 보홀에서는 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시간과 장소를 남겨두자. 서울에 돌아온 후 우연히 보게 된 쇼츠 영상에서 누군가 ‘여행은 행복이 아닌 쾌락’이라 말했다. ‘쾌락’이라는 단어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종종 생각한다. 낯설거나 익숙한 장소에서,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모험하고, 맛과 향을 즐기거나 편안하고 쾌적하게 머물고, 자연을 충분히 느끼고, 친절과 우정을 나누는 여정. 늘 변화하는 현실에서 크고 작은 불확실성에 도전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보거나, 주변 환경과 호흡하며 찾아가는 단순한 일상의 행복. 이런 여정과 일상의 감각이 모두 여행을 하는 이유에 깃들어 있는 건 아닐런지. 나는 ‘여행은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글. 박선영SUN-YOUNG PARK
사진. 한희섭HS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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