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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ROAD TRIP @GANGJIN-HAE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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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6월호

땅끝 해남을 향해 가는 여정에는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꽃이 만개했다. 곧이어 강진의 야생 차밭은 연둣빛 새순이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며 시간의 흐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찻잎의 새순이 돋아나는 곡우와 입하 사이, 여린 잎을 채취해 차를 우릴 준비를 하듯 모든 자연에는 적당한 때와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목련이 화사하게 피었다가 처연하게 떨어지는 순간을 목도하며, 그 순환의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이해한다. 티 마스터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지난해 채집한 연꽃이 다구 속에서 화사하게 피었다. 그 완벽한 몰입과 아름다움의 절정을 향해 GV60가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6th"
24절기의 여섯 번째 시간, 곡우
봄비가 내려 곡식이 윤택해지는, 봄의 끝자락에 위치한 곡우.
차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차나무의 새순과 만나는 순간으로 해석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지나 하늘이 맑아지는 청명을 통과해 곡우를 기다리는 이유다.

새순이 돋은 차나무 향에 이끌려 GV60를 타고 차밭 사이로 들어선다. 오므오트 김혜진 티 마스터의 차茶를 위한 여정이 이곳 강진다원에서 시작된다. 월출산 자락엔 천 년 넘게 자생하는 야생 차나무들이 있었다. 조선시대 이곳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 선생에 의해 차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그리고 산의 남쪽 기슭에서는 일교차가 큰 날씨와 안개를 벗 삼아 강진다원이 향이 강한 차를 일구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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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태도,
땅이 포슬해지고 차나무가 단단해지는 시간에 관하여

두륜산에 둘러싸인 설아다원의 봄. 여행자는 차나무 사이를 산책하며 찻잎 채집을 경험한다.

“설아다원은 오근선, 마승미 두 선생님이 마치 정원을 가꾸듯 차밭을 일궈온 곳이에요. 아무것도 없던 땅을 일궈 차나무를 심고 키운 지 20년이 넘었죠.” (오므오트 김혜진 티 마스터) 월출산에서 남쪽으로 40km 남짓 달려 두륜산 자락의 설아다원에 도착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차밭의 풍경을 마주한 뒤에야, 티 마스터의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이곳 다원의 마승미 대표가 여행자를 반기며 녹차와 쑥차, 발효차와 목련꽃차까지 지금 이 계절에 즐기기 좋은 차를 내어준다. 계절을 닮아 밝고 화사하고, 가볍지만 진중한 맛이다. 보통의 다원과 달리 차밭 주위로 야생 꽃과 풀이 함께 자라고, 배롱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때때로 그늘을 만들고 있는 모습. 찻잎을 채집하러 오르는 길, 발아래 폭신한 감촉의 땅이 밟힌다. 살아있는 흙이다. 비료 사용 없이 오로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땅의 힘으로 키워낸 차나무는 맛 좋은 차의 재료를 내어준다. 채집한 찻잎은 다원 한쪽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제다의 과정을 거친다.
오근선 선생은 제다를 하기 전 찻잎을 선별하고, 중량을 잰 뒤 솥에 열을 가한다. 솥의 온도가 250°C에 도달하면 찻잎을 넣고 덖어 잎 속으로 빠른 시간 내에 열을 전달해 산화를 중단시킨다. 솥에서 찻잎을 덖는 동안 들려오는 소리 타닥타닥, 덖음을 마치고는 광목천 위에 찻잎을 펼쳐 놓고 유념의 과정을 거친다. 몇 번 더 이 과정을 반복하고 나서야 완성된 차는, 물에 우렸을 때 본래의 찻잎 모양으로 복원된다. 그것이 잘 만들어진 차의 요소 중 하나다. 온도, 습도 등 환경에 따라 단계별로 제다 시간이 달라지는데, 그러한 변수는 만드는 이의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해낸다.
NAVIGATOR. 설아다원 전남 해남군 북일면 삼성길 1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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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의 기억
200년 전 가르침을 상기하다

대흥사의 벚꽃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길. 탐스러운 목련과 함께 형형색색의 봄꽃이 만개하고 떨어진다.

봄꽃이 한창이던 때,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선생이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두 번째 유배를 떠나온 곳이 이곳 강진이다. 처음 8여 년은 고성사의 보은산방과 제자의 집 등지에서 보내다가 1808년 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다. 이후 유배를 마친 1818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수백 권의 실학서를 집필했다. 다산 정약용은 당시 야생 차밭과 동백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종종 백련사로 향했다. 그렇게 찾은 사찰에서 혜장선사와 교류하며, 대흥사 초의선사와 차로 인연을 맺고 차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유배 시절 차에 관해 배우고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다산은 우리나라만의 새로운 제다법을 완성하게 되고, 그 기술은 오늘날의 차 문화에도 계승되고 있다. 그 시절 다산의 기록 속에 남아 있는 차떡은 오늘날 다산정차로 불리며 여행자를 몰입의 기쁨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학자의 삶에 함께했던 그 차는 김혜진 티 마스터에게 깊은 영감을 주어 지난해 오므오트에서 티 세리머니로 재현되기도 했다. 다시 찾은 늦봄의 다산초당. 붉은 동백이 지고 목련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여전히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소나무 뿌리가 땅 위로 불거져 나온 모습이 역동하는 생명력을 느끼게끔 한다.
NAVIGATOR. 다산초당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420g 제다
7분간의 덖음, 이어지는 유념. 두 과정의 반복된 수고로움. 700g의 파릇했던 찻잎은 덖는 과정을 통해 수분을 날리고 420g의 차로 완성된다. 찻잎의 세포막을 터뜨려 수분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유념의 과정은 지나치면 차의 색이 흐리고, 부족하면 건조 시간이 길어진다. 가장 적당한 수분만을 남기는 예민한 감각은 장인의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다.

전통 방법으로 빚어낸 설아다원의 떡차. 참고로 차떡은 잎을 떡처럼 찧어서 가루 형태로 만든 녹차, 떡차는 후산화발효차인 보이차로 분류할 수 있다. 떡차는 우렸을 때 찻잎이 그대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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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서서히 물들어가다

늦은 오후, 두륜산 국립공원의 자락을 따라 해가 지는 서쪽으로 이동한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열어둔 차창 틈으로 바다의 짠 내가 훅하고 밀려 들어온다. 목적지 중도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인근 송평해변과 학가항 등 바닷가의 삶이 펼쳐지는 장소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일몰을 감상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몸을 기댈 수 있는 의자와 GV60 V2L 커넥터에 연결해 물을 끓일 수 있는 전기포트, 그리고 테이블과 좋아하는 향의 찻잎을 꺼낸다. 금세 끓어오른 물을 한 김 식히는 사이 적당량의 찻잎을 덜어내고 기다린다. 그사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채비를 하며 주변을 생경한 색으로 물들인다. 보랏빛이었다가 오렌지빛으로, 그러다 열정적인 붉은색으로. 찻잎을 우려낸 물은 어느새 금빛이다. 자연의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로드트립을 이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혜진 티 마스터는 올해 처음 블렌딩 차를 만들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원물의 특성을 파악해 조화를 이루는 맛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저는 원물로만 블렌딩을 해요. 혹시 금목서라는 꽃을 아시나요? 남쪽 지역에서 단 1~2주만 피는 꽃인데, 복숭아, 모과, 살구 등의 달콤한 향이 나요. 이 꽃과 유자를 녹차에 블렌딩해 우려내면 맑은 연둣빛의 차로 완성이 돼요.”
NAVIGATOR. 중도 전남 해남군 송지면 학가리

 

90℃ 우리다
물을 뜨겁게 끓인 뒤 잠시 식힌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한 김 식혀 100℃ 물이 90℃가 되면 마침내 차를 우려내기 적당한 온도에 도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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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S
489m 바위산 위에 쌓아 올린 작은 암자
달마산의 가장 높은 곳에 석축을 쌓아 올리고 평평하게 만든 터에 도솔암을 지었다. 이곳에 구름이 짙게 드리우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차량으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입구 주차장에 내려 남해까지 시야가 탁 트여 펼쳐지는 나무 데크에 서보자. 여기서 출발해 달마산의 기암괴석과 경이로운 풍광을 감상하며 800m 정도 걷다 보면 어느새 도솔암에 도착하게 된다. 거대한 두 개의 바위 사이로 작은 전각이 조용하게 자리하고, 그 앞에는 마찬가지로 작은 마당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이 아담한 공간은 일출과 일몰을 담고, 바위산 아래 자연을 포용하는 듯 보이며, 여행자의 완벽한 몰입을 돕는다.
NAVIGATOR. 도솔암 전남 해남군 송지면 마봉송종길 3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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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완벽한 공간이 아닐까.
디지털 사이드미러로 보는 여행지의 풍광, 더욱 깊숙하게 현지의 문화를 경험하는 움직임, GV60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새로운 여행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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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과 500년 된 은행나무 사이,
절제된 언어로 완성한 선비의 시

조선시대의 대표적 시조 시인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는 그가 효종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녹우당과 5대조인 어초은 윤효정의 묘와 사당, 그리고 고산사당과 추원당 등이 기와 담장을 따라 연결되어 있다. 마치 하나의 서사 구조처럼 긴밀하게. 이곳 녹우당의 사랑채는 특히 수많은 문인과 학자, 예술가가 오가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고 전해진다. 덕음산에 둘러싸여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보호수들의 기개 또한 인상적이다. 본채 뒤편의 비자나무 숲으로 향하면, ‘초록 비의 집’이라는 녹우당의 해석이 단번에 이해될 것이다.
NAVIGATOR. 녹우당 전남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어초은 사당의 외관. 어초은 윤효정은 이곳 백련동에 처음 터를 잡고 해남윤씨가를 중흥시킨 인물이다.

무한의 세계
작년에 채집한 연꽃을 급속 냉동해 시간을 멈추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한 겹 한 겹 꽃의 기운을 되살리는 사이 유선관 창밖으로 녹음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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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고택 속 오래된 균형감,
조화로움을 찾아가다

지난 100년간 대흥사 앞을 지키며 나그네와 수도승에게 쉴 공간을 제공해온 유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공간은 이제 재해석한 곳으로 탈바꿈하여 지친 여행자에게 잠시 머물렀다 가라 한다. 여정의 끝, 그렇게 다시 두륜산 아래로 향한다. 전통 가옥의 구조는 살리되 마감은 현대적으로, 그 안은 모던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을 골라 채웠다. 목화솜 누비 방석이, 명주솜 이불이 그렇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아침, 여행자를 깨우는 것은 새의 지저귐일 가능성이 크다. 딱딱한 부리와 주황색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호반새이다. 때때로 인근 계곡에 사는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김혜진 티 마스터는 지금까지 차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 왔다. 강진과 해남 역시 그중 한 곳이었고, 다시 이곳을 찾아 여행했던 시간 동안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고 한다.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어요.”
티 마스터는 카페 유선의 커다란 창 앞에 자리를 잡은 뒤 물을 끓이고, 다식을 준비하고, 끓인 물로 다기를 데운다. 그런 다음 연꽃에 한 김 식힌 물을 부어가며 다시 꽃을 피워내는 일련의 과정이 이어진다. 처음 진흙 속에 잠들어 있던 연꽃의 씨앗을 발견했던 이야기를 통해 ‘세상 모든 것에는 각자의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됐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사이 꽃 향이 화사하게 퍼져나가는 차가 완성되었다.
NAVIGATOR. 유선관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376

TEA CEREMONY 나를 향한 완벽한 몰입의 지점

김혜진 티 마스터의 공간 오므오트는 On My Own Time(온전히 나만의 시간), Out of Many, Our Tea(많은 차 중에 우리 차)라는 뜻을 가진다. 그곳에서 그녀는 전통 방법을 고수하는 차 재배 장인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것을 재해석해 기승전결이 있는 티 세리머니를 선보인다. 절기에 따라 변화하는 티 세리머니를 통해 응축된 시간을 펼쳐내 소통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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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60의 섬세한 주행감은 차와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죠.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공간 사이에 일종의 매개가 되어주는 차 문화와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여행자가 달려온 길 위에서의 시간은 여행 장소와 다양한 사람들의 철학이 점철되어 있었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그렇게 로드트립을 통한 깨달음의 여정은 계속된다.

글. 임보연BO-YEON L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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