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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캐 수교 60주년 명예대사 김연아와 함께한 에픽 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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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호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명예대사로 위촉된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오랜 기간 토론토에서 훈련해왔고,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캐나다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그녀가 이번에 새로운 여정에 나섰다. 여행자가 되어 캐나다의 대자연을 유람하며 삶의 새로운 기쁨을 발견한 그녀의 여정은 해피엔딩 동화처럼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열려 있다.

찬연한 은반 위에서

밴쿠버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0km 떨어져 있는 알버타 주의 레이크 루이스(마을의 지명이자 호수의 이름이다). 연평균 강설량이 약 3.9m에 이르는 곳인데 전날 역시 많은 눈이 쏟아졌다. 언 호수 위로 눈이 가득 쌓여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지 약간 걱정스러웠다. 아침에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Fairmont Chateau Lake Louise 객실에서 창문을 여니 파스텔 톤의 파란 하늘과 새하얀 설원이 환영한다. 빙하호수 레이크 루이스는 여름에는 청록의 에메랄드, 겨울에는 순백의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한 캐나다의 보석 같은 곳이다. 우리가 마주한 풍경은 호수가 단단히 얼어붙고 그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인 설백의 세상. 잠보니가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정빙을 하더니 어느새 호수의 일부 구역이 아이스링크가 된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스케이트를 타거나 아이스하키를 한다. 매끈한 빙질의 인공 빙상장에 비해 언호수에서는 스케이트 날을 통해 무수한 얼음 결정 모양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어느새 조금씩 눈이 나린다. 

자신의 스케이트로 갈아 신은 김연아 명예대사는 우아하게 레이크 루이스를 누빈다. 캐나디안 로키의 품 안에서 빅토리아 빙하에 안기듯이 나아간다. 빙글빙글 백스핀을 하며 어지러울 법도 한데 화사한 그녀의 미소에서 영은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스케이트를 탔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생 자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 스케이팅을 해왔지만, 선수의 길로 접어든 이후에는 즐기기 위한 스케이팅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늘 긴장된 상태에서 날마다 해내야만 하는 목표가 있었죠. 은퇴한 후 동료 선수가 캐나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꼭 스케이트를 타봐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어요.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고 ‘그래, 스케이터라면 언젠가 한 번쯤 저런 멋진 곳에서 스케이팅해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실현하게 되어 굉장히 기뻤습니다. 로키산맥과 빅토리아 빙하 그리고 레이크 루이스가 이루는 수려한 절경을 감상하며 흩날리는 눈 속에서 즐긴 스케이팅은 제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 중 하나가 되었어요.” (김연아 명예대사)

설원이 된 레이크 루이스와 보트 하우스.

대지를 걸으며

밴프 국립공원의 하이킹 명소 중 하나인 존스턴 캐년 아이스워크Johnston Canyon Icewalk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김연아 명예대사는 협곡의 비경 속을 걸으며 자연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디스커버 밴프 투어스Discover Banff Tours의 가이드 라이Rye가 이곳의 지질과 식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천 년 동안 계곡이 흐르며 석회암 침식으로 해발 2500m에 협곡이 형성되었어요.” 위를 바라보면 하늘 높이 뻗은 울창한 침엽수림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강Bow River으로 흘러가는 존스턴 크릭Johnston Creek이 얼어붙고 눈이 덮인 채 이따금 수면을 드러낸다. 약 1.1km 거리의 로어 폭포Lower Falls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30분 정도 걸렸다. 허리를 숙인 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천연 동굴의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 정교한 조각같이 아름답게 얼어붙은 로어 폭포와 오묘한 청록빛 웅덩이가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나타난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존스턴 캐년이 품은 절경.

낮과 밤의 경계에서

곤돌라를 타고 8분 만에 오른 설퍼산Sulphur Mountain. 전망대 옥상층에서는 어느 위치에 서든, 고개를 어디로 돌리든 웅대한 캐나디안 로키가 펼쳐진다. 오후 7시 15분, 일몰이 시작되는 무렵 선홍빛에서 분홍빛으로 물드는 로키산맥의 색조가 감성을 두드린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김연아 명예대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음악을 떠올리고 있을까. “영화 <조Zoe>를 보며 알게 된 베이욘Bayonne의 ‘Lates’를 즐겨 듣는데, 이곳에서 로키산맥을 바라볼 때도 생각났어요. 이번 여행 중에 자주 떠오른 노래예요.”

설퍼산 전망대에서 샌슨스 피크Sanson's Peak로 향하는 트레일.
저녁 무렵 설퍼산에서 바라본 캐나디안 로키와 밴프 타운.

 

하늘을 날아서

다음 날 캔모어Canmore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캐나디안 로키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도 경이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먼저 탑승한 김연아 명예대사가 후발대에게 “선글라스를 쓰면 더욱 좋아요!”라는 조언을 전한다. 덕분에 빙하가 형성한 로키산맥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만년설 풍광을 한없이 응시할 수 있었다. 하늘을 비행하는 새의 시선으로 대자연의 진면목을 마주한다. 헤드셋에서 각 산봉우리와 주변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이라이트는 캐나디안 로키 남부에서 가장 높은 해발 3618m 아시니보인산Mount Assiniboine. 산봉우리가 알프스의 마터호른을 닮아 로키산맥의 마터호른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 부근에서 헬리콥터는 가파른 빙벽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데, 얼음층의 거친 결이 세세하게 느껴지고 햇빛이 투영돼 더없이 청아하다.

헬리콥터 안에서 웅장한 빙하에 열중하는 김연아 명예대사.

선주민을 존중하는 마음가짐

3일 동안 머물면 오로라를 볼 확률이 95%라는 노스웨스트 준주의 옐로나이프. 이곳은 오로라 오벌Aurora oval(지구의 두 극 주위에서 발견되는 후광 같은 고리로 오로라가 나타나는 지대) 중앙에 자리한다. 오후 9시, 선주민이 운영하는 오로라 빌리지로 향한다. 기후변화로 기상이변이 생기면서 이곳의 기온도 상승했다. 추운 날씨에는 대기 중에 수분이 적어져 구름이 생기지 않고 하늘이 맑은 편인데, 옐로나이프답지 않게 영하 15℃로 비교적 따뜻하고 구름이 몰려 있다. 선주민 전통 방식으로 지은 티피Teepee 안에서 장작불을 지피며 구름이 물러가길 기다리다 데네Dene족 알빈Arvin을 만난다. 그는 작은 북과 비슷한 전통 악기로 심신을 초롱초롱 일깨워주는 신성한 치유 의식을 보여준다. 머리와 등 뒤에서 악기를 영적으로 두드리는데, 마치 드럼 테라피 같기도 하다. 선수 시절 안 받아본 치료가 없다는 김연아 명예대사도 그 울림을 느껴본다. “말씀하신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이틀 동안 구름의 방해로 오로라는 희미한 흔적만을 남겼지만, 선주민과 진실한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시간 역시 소중하게 다가온다.

선주민의 전통 방식으로 지은 티피 앞에서 오로라를 기다린다.

마침내 환상의 오로라

마지막 날의 오로라 투어는 아늑한 현지인 집에 초대받은 것 같았다. 옐로나이프 다운타운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외딴 숲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 밖에는 크리스마스트리 몇 그루가 놓여 있고, 안에는 가이드 트레이시Tracy가 직접 모은 아기자기한 빈티지 소품으로 가득 차 있다. 트레이시가 주방에서 손수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이내 탁자에 양파와 옥수수, 셀러리 그리고 흰살생선 등을 듬뿍 넣어 요리한 피시차우더 수프와 갓 구운 스코틀랜드식 빵 배넉Bannock이 차려진다. 냄새를 맡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정말 맛있다. 트레이시는 ‘고맙습니다’를 뜻하는 선주민 데네족의 언어 “마싯초Mahsi cho!”를 알려주었다. 우리한테는 ‘맛있어!’처럼 들렸는데, 고맙고 맛있는 이 상황과 여러모로 딱 들어맞아 기억에 남는다.

트레이시가 직접 만든 갓 구운 배넉.

든든하고 따스하게 배를 채우고 새벽의 여신, 오로라의 출현을 염원하며 오두막 밖으로 나간다. 마당의 눈밭에 누워 하늘을 무수히 수놓은 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수많은 별 사이를 무언가 빠르게 통과하며 반짝인다. 선을 그리며 사라지는 별똥별은 아니다. 한두 개의 움직임이 아니었기에 정체에 대해서 설왕설래하며 한바탕 UFO 소동까지 벌어진 끝에, 지구 주위를 도는 여러 인공위성임이 밝혀졌다. 그중 하나는 국제우주정거장이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어제와 그저께와 달리 별이 아주 선명한 맑은 하늘이었기 때문에 기다림은 더욱 간절해졌다.
드디어 고대하던 오로라가 나타나며 별 박힌 까만 어둠을 하얀색, 초록색, 보라색 등으로 물들인다. 무대의 장막처럼 스르르 움직이며 우리 주위를 감싸기도, 천천히 부드럽게 너울거리기도, 회오리치듯이 춤을 추기도 한다. 매 순간 각양각색으로 변모하니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극적이고 초현실적인 광경은 우리를 무아지경으로 몰아간다. 김연아 명예대사도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묘한 기분에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오로라의 과학적 정의는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가 지구에 진입하면서 대기와 반응해 빛을 내는 현상이다. 그러나 모두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자연이 영롱한 마법을 부린다는 표현이 더 와닿는다. 우리는 무려 1시간 30분 동안 오로라의 몽환적인 쇼를 지켜봤다. “저희와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캐나다관광청의 이영숙 대표가 건넨 말에 김연아 명예대사는 날갯짓하는 백조처럼 양팔을 귀엽게 파닥이며 화답한다. “제가 더 감사하죠”. 백조 형상의 오로라도 보았는데, 빛과 사랑을 상징하는 우아한 존재라서 더욱 신비로웠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말처럼, 삶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방금 본 오로라같이 오래도록 피어올랐다.

별이 가득 반짝이는 밤하늘에 나타난 신비로운 오로라.

“끝없이 펼쳐지는 장엄한 캐나디안 로키와 옐로나이프의
황홀한 오로라 등 캐나다에서 대자연을 마주할 때마다
신비로움과 동시에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인간이 지구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어요.”
-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 명예대사 김연아

열린 희열

토론토에서 오랜 기간 훈련을 해왔던 김연아 명예대사에게 캐나다는 익숙한 나라이고 두 번째 집과 같다. 기나긴 세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피겨스케이터의 삶에 매진한 만큼, 행복한 일뿐만 아니라 지치고 힘들었던 선수로서의 여정이 이곳에 스며 있다. “선수 시절 수도 없이 캐나다를 오가며 비행기에서 로키산맥을 내려다봤을 거예요. 당시에는 무슨 산인지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이번 여행을 통해 같은 풍경을 보고도 전혀 다르게 느낀다는 걸 경험하고는 그때 제가 얼마나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지 깨달았죠. 지금은 경쟁에서 벗어나 보다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이번 여정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캐나다의 면면을 깊이 알아갈 수 있었어요. 한층 더 마음이 열린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 명예대사) 전설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아닌, 여정을 즐기고 기쁘게 누리는 평범한 여행자 김연아로의 변화가 흐뭇하다. 여정의 모든 순간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 명예대사로서의 영예도, 앞으로의 삶의 여정도 열렬히 응원한다.

옐로나이프의 호수가 얼면 새로운 길이 된다.

행복의 지도

캐나다관광청이 이번 여정을 기획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 김연아 명예대사가 그저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됩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앞으로 이 여정을 함께할 여행자의 행복을 빌어주는 말을 남겼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광활한 캐나다 지도 위에 써 내려간 이야기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살면서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한 특별한 경험이 많았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꼭 한 번 캐나다의 대자연 속으로 떠나보셨으면 해요. 여정을 통해 좋은 영감을 채운 다음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행복한 삶을 계속 이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의 360° 돔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김연아 명예대사.

 

 

글. 김민주MIN-JOO KIM
사진. 유운상UN-SANG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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