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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의 흔적을 따라 만추로 가는 길, 운탄고도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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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untan 1330 - 173.2km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에서 시작해 정선, 태백을 지나 삼척으로 향하는 173.2km 길이의 운탄고도. 과거 석탄을 싣고 나르던 길이 이야기로 남아 사람들을 다정하게 맞이한다. 굽이굽이 이어진 운탄고도 길을 따라 달려보자. 구름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은 모험가들의 감각을 깨운다.

Caption(왼쪽부터)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아 돌구이를 자주 해 먹어 지지리골이라 불리는 곳에는 순백의 자작나무 숲이 보석처럼 숨어있다. 해발 1330m 만항재에서 함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에는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과거의 기억을 따라,
오르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와 화려한 탄광촌이었던 모운동 마을을 거닐다 보면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위에서부터) 나룻배를 타면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다다른다. 모운동에서는  영월의 능선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운탄고도1330 길은 1960~1980년대 우리나라 경제 부흥기에 큰 역할을 했던 탄광산업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장을 걸으며 미래를 모색하는 길이다.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 불리는 운탄고도1330 길은 영월에서 시작한다. 영월의 길은 특색 있는 마을과 자연, 시간이 빚어낸 풍경이 펼쳐져 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의 트레킹 코스로 꼽힌다. 1길은 운탄고도1330 통합안내센터에서 시작해 각고개 입구, 팔괴리 카누마을을 지나 각동리 입구까지 15.6km로 남한강의 물길과 태화산 자락을 통과한다.
특히 시작점인 통합안내센터 앞에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청령포가 있어 운탄고도1330 길에 어린 애잔함이 극대화되어 출발하게 된다. 청령포는 명승으로 지정된 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나지만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슬픈 역사를 떠올리며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룻배를 타고 청령포 안으로 들어가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해지는 노산대,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주는 단묘유지비와 어가가 있다. 청령포 전망대에 오르면 암벽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영월 각동리에서 모운동 벽화마을까지 이어지는 2길은 18.8km로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삿갓과 함께 걷는 길이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으로 1811년 순조 11년 조선의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가문의 자손이었지만 집안이 몰락한 후 어머니와 함께 영월 삼옥리에 정착, 20세기 무렵부터 방랑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김삿갓의 시를 벗 삼아 포도 향이 가득한 예밀촌마을과 장재터를 지나면 가파른 골짜기를 오르게 된다.

옥동리와 예밀리를 잇는 예밀교.

바로 구름이 모이는 마을이라는 뜻의 모운동 벽화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망경대산 자락으로 해발 700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현재는 30여 가구가 살고 있지만 과거 탄광산업이 부흥했을 때는 1만여 명의 주민이 이 산골 마을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1960~1970년대의 모운동은 서울 명동만큼 땅값이 비싼 동네였다니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은 급격히 쇠락했지만, 동화가 그려진 벽화와 TV 예능 프로그램 <운탄고도 마을호텔>에 나온 노란 건물이 랜드마크가 되어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산속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모운동 벽화마을의 산세와 어우러진 집.

운탄고도 3길은 영월 최대의 광산 도시 모운동에서 시작해 광부들의 흔적을 돌아보며 정선 예미역에 닿는다. 무연탄을 생산하던
옥동광업소와 폐갱도 안에서 흘러나오는 황금색 폭포, 석탄을 집결했던 석항역을 지나게 되며 거리는 총 16.83km이다.

 


능선을 따른 이야기길,
펼쳐지다
과거에 석탄을 나르던 아득한 산길을 따라 달린다. 발아래 펼쳐진 구름이 운탄고도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위에서부터) 가을철 민둥산 정상에서는 절정에 이른 억새가 반긴다. 만항재의 짙푸른 상록수.

운탄고도 4길은 정선 예미역에서 시작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였던 타임캡슐공원을 거쳐 백운산의 화절령까지 걷는 길이다. 총 거리 28.76km로 등산과 트레킹의 묘미를 즐기기에 최적화된 코스다. 특히 타임캡슐공원 인근에 고랭지 채소밭이 드넓게 펼쳐져 배추 수확 전에 가면 푸른 융단이 깔린 듯한 능선을 감상할 수 있다.
운탄고도를 가을에 가게 된다면 민둥산 억새꽃 축제에 들러보자. 20만 평에 달하는 민둥산 일대가 억새꽃으로 뒤덮여 절경을 이루며, 석회암이 녹아 만들어진 구덩이 형태의 돌리네 지형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 민둥산에 오르면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억새 사이로 붉게 물든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저 감동스럽다. 만약 등산로 초입부터 걷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거북이약수터쉼터까지 차로 이동하면 한 시간 내외의 짧은 등산이 가능하다. 다만 축제 기간 동안에는 오전 8시 이전에만 차량 출입이 가능하므로 서둘러 다녀와야 한다.
운탄고도 4길의 종착지이자 5길의 시작점인 화절령은 이전부터 꽃꺼끼재라 불렸다. 배고픈 시절 진달래를 비롯한 야생화를 꺾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고 해서 꽃꺼끼재라고. 여기서부터 함백산 소공원이 있는 만항재까지 이어진 산길은 탄광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로로 15.7km 거리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만항재.

화절령에서 시작해 아내들이 광산으로 출근한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었던 도롱이 연못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까지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도로 능선을 따라 전경을 감상할 수 있어 드라이빙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운탄고도1330의 숫자는 만항재의 고도 1330m에서 가지고 왔다. 하늘과 맞닿은 듯한 고갯마루에 여름이면 아름다운 야생화가 피어 천상의 화원이라고도 불린다.

옛 탄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삼탄아트마인 레일바이 뮤지엄.

석탄을 채굴하던 탄광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면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삼탄아트마인에 방문해볼 것. 1964년부터 3000여 명의 광부가 석탄을 캐던 곳으로 2001년 문을 닫은 뒤 버려진 공간을 예술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석탄을 옮겼던 레일들과 지하 갱도에 공기를 불어넣었던 공기 중앙압축실과 샤워실, 수직갱을 움직이던 운전실 등을 실제로 볼 수 있으며 예술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장쾌한 풍경의 고갯마루,
어우러지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함백산과 고갯길 풍경은 계절마다 변모해 지루할 틈이 없다.

(위에서부터)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지지리골을 걷다 보면 자작나무 숲이 펼쳐진다.

운탄고도 6길은 만항재에서 함백산의 능선을 따라 내리막이 계속된다. 지지리골과 상장동 벽화마을을 지나 순직산업전사위령탑까지 16.79km 거리를 이동하는 코스로 비교적 완만하다. 함백산은 은근슬쩍 단풍이 들기 시작해 곧 만추가 다가올 것을 알린다. 내리막길을 달리다 보면 태백 시내를 조우할 수 있는 오투전망대가 나타난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으로 향한다.
지지리골 임도 입구를 지나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하얀 자작나무 숲에 다다른다.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에는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 좋다. 순백의 자작나무가 숲을 가득 메워 숨겨진 태백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은 함태탄광이
있던 자리로 폐탄광 산림훼손 복구 사업을 통해 20여년 만에 숲으로 재탄생했다. 6길의 도착지인 순직산업전사위령탑으로 향하다 보면 시내 한가운데 황지연못이 나타난다.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황지연못은 황부자의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 해서 황지라 부른다.

태백 시민들의 산책 코스인 황지연못.

운탄고도 7길은 태백의 순직산업전사위령탑에서 시작해 용정마을과 통리역을 지나 삼척의 미인폭포와 도계역에 다다르는 18.07km 거리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험준한 산길에서 석탄을 나르기 위해서는 기차가 꼭 필요했다. 탄광촌 주민들의 삶과 꿈을 연결했던 기찻길을 달리는 코스로 이곳을 수없이 오르내렸던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태백 통리는 탄광산업이 활황을 누리던 시절에 가장 번창했던 도시 중 하나다. 이 길을 걸으며 광부들이 매일 오갔던 갱도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통리탄탄파크에 방문해볼 것. 옛 한보탄광 부지와 폐갱도를 직접 걸어볼 수 있는 곳으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도 쓰였다. 폐갱도를 걸으며 다양한 작가들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며, 본관에는 증강현실 체험 포토존과 게임존이 마련되어 있다.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통리탄탄파크. 

 


간이역을 지나 바다로,
다다르다
철도를 따라 푸른 바다로 이어지는 길에 얽힌 소망의 여정을 만나본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계유리나라 보석방에 있는 유리 개미. 석회질 성분으로 신비로운 물빛을 내는 미인폭포. 해안선을 따라 이동할 수 있어 드라이브 명소로 꼽히는 새천년해안도로.

태백 통리를 지나 삼척으로 넘어오면 미인폭포를 만날 수 있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심포협곡에 위치한 폭포로 옥빛 물색이 아름다워 삼척의 필수 관광 코스로 꼽힌다. 미인폭포는 용이 미녀를 그리워하며 흘렸던 눈물이 승천 후에도 마르지 않아 생긴 폭포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운탄고도 7길을 지나다 보면 유리공예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도계유리나라를 지나가게 된다. 유리공예를 직접 체험헤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블로잉 기법을 매일 시연하여 이색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검은 석탄가루가 날린다 해서 까막동네로 불리는 도계역부터 이어지는 운탄고도 8길은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기차역인 고사리역, 하고사리역을 지나 신기역까지 17.73km 여정이다. 오래된 나무와 무성히 자란 풀들만이 이곳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삼척항에서 동해 방향으로 올라가면 추암촛대바위를 만날 수 있다.

운탄고도의 마지막 여정인 9길은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신기역에서 미로역, 삼척항을 지나 소망의탑까지 25.15km를 지나는 코스로 구불구불한 물길이 발걸음을 천천히 붙잡는다. 과거의 삶이 운탄고도를 통해 이어지는 것처럼 동해의 수평선은 끝없이 이어진다.

길. 아름다운 삼척의 바닷가.

기록의 기쁨,
운탄고도1330 통합안내센터

운탄고도 길을 걷고 싶다면 통합안내센터에 들러 안내 책자를 수령하자. 운탄고도의 교통정보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패스포트를 무료로 발급해 준다. 현재 운탄고도는 1~6길까지 오픈되어 있으며 스탬프를 모두 찍고 다시 통합안내센터에 방문하면 완주 인증서와 메달을 받을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26-3

글. 우수정
사진. 남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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