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말이 모여 길이 준비되는 도시, 쿤밍.
차와 말이 오가며 길이 되는 도시, 리장.
그 길이 고원을 넘기 시작하는 도시, 중뎬(샹그릴라).
차마고도의 잔상
예로부터 중국 남서부의 윈난성은 차의 산지였다. 이곳에서 난 차를 말에 싣고 티베트고원을 향해 오르던 길, 그것이 차마고도(茶马古道)다. 차가 오르던 길을 따라 말은 다시 내려왔고, 그 등에는 물건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이역의 문명까지 실려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거꾸로, 샹그릴라에서 출발해 리장(丽江)과 다리(大理)를 거쳐 쿤밍(昆明)으로 향한다.
리장고성에서 북서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수허고진이 있다. ‘수허(束河)’는 지명이고, ‘고진(古镇)’은 상업과 교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오래된 마을을 뜻한다. 차마고도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고진들의 연쇄로 이루어진 길이었다. 수허고진은 그중에서도 차마고도의 실제적 출발 거점으로 꼽힌다.
마방(马帮, 말에 짐을 싣고 다니던 상인 집단)에 대한 안내문이 마을 중심부인 사방가(四方街) 광장에 세워져 있다. 수허고진은
리장고성보다 훨씬 먼저 형성된 마을로, 마방들이 장거리 여정 중 장비를 수선하고 말을 쉬게 하며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전 전열을 가다듬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말죽거리, 혹은 오늘날 고속도로의 만남의 광장을 떠올려도 좋다.
이제 과거의 영화를 직접 증언할 만한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말과 마부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들만이 옛 시절을 대신해 서 있다. 다만, 관광객을 태우기 위한 말과 마부들이 눈에 띈다. 차 대신 관광객인 셈이다. 모름지기 시장은 돈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윈난성은 보이차만 유명한 곳이 아니다. 1892년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커피는 보이차 가공 과정에서 축적된 발효·건조의 노하우가 적용되며 윈난의 또 다른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이후 보이차 가격의 폭락은 상당수 농가를 커피 재배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반드시 이곳 특유의 커피를 마셔야 한다.
상업화가 극심한 리장고성과 달리 수허고진은 난개발이 비교적 적어 옛 정취가 남아 있다. 그 때문인지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관심을 쏟고 있다. 관광객도 상대적으로 적어 마을 분위기 역시 차분하다. 성수동이나 군산의 근대 거리 조성과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번잡한 리장고성이 피곤한 이들에게 수허는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다.
‘티바’는 전통 가옥의 ‘기와(瓦)’와 산업을 상징하는 ‘철(鐵)’을 중국식 발음으로 결합한 이름이다. 티바디자인그룹이 고택을 재단장한 카페 ‘후야’에서 드립커피를 마셔본다. 커피 맛이야 말해 무엇 하랴. 티바의 로고 마크는 ‘TIVA’를 상형문자 혹은 한자 전서체처럼 구성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길의 차와 흙 내음을 향수로 만든 ‘토아수(Toasu)’라는 브랜드도 있었다. 그 쌉싸름한 향의 공기를 가져왔더라면.
카페도, 로고도 콘셉트가 뚜렷하다. 콘셉트란 무엇인가. 흔히 ‘개념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서사, 다시 말해 이야깃거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나는 어원이 어쨌든, 역사(history)란 ‘그의(his) 이야기(story)’들이 축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념 없는 디자인’이란 결국 역사적 의미와 맥락이 결여된 디자인일 것이다.
돌의 숲에서
서안의 비림(碑林)은 비석의 숲이고, 광시의 계림(桂林)은 계수나무의 숲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석림(石林)이라니? 쿤밍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을 달린다. 도착했나 싶으면 셔틀을 타고 또 이동해야 한다. 방문객센터에 이르러서야 표를 사고, QR코드를 찍고, 셔틀이나 케이블카를 타야 비로소 정문에 닿는다. 사람도 많고 땅덩이도 커서 그런가? 이동은 한 번 더 해야 하고, 수속 절차도 복잡하다.
쿤밍 남동쪽 약 90km 지점에 자리한 석림은 수억 년의 침식이 빚어낸 카르스트 지형, 말 그대로 거대한 ‘돌의 숲’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자연의 기이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자연 위에 소수민족의 삶과 전설이 겹겹이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사니족의 신화를 품은 석림은 풍경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지닌 장소에 가깝다.
돌이 숲처럼 끝없이 펼쳐진 공원. 모두 사람이 만든 걸까? 아니다. 본래 지형을 따라 길을 내고, 자연의 형상을 해치지 않는 최소한의 손길만 더했다.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 앞에서 넋을 놓고 서 있다가 문득 일본 사찰의 석정(石庭)이 떠올랐다. 돌과 모래로 산과 물을 상징하는, 극도로 절제된 미니어처 정원.
중국은 규모로 압도하고, 일본은 섬세함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한국은 어디쯤 서 있을까. 스케일도, 디테일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중국은 자연을 과시하고, 일본은 자연을 소유하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대할까. 우리는 자연을 배경으로 세워두지도, 애완하듯 소유하지도 않았다. 다만, 길들이지 않은 자연을 비워둔 그대로 곁에 두었던 듯하다.
붉은 땅의 삶
쿤밍 시내에서 밴을 타고 남동쪽으로 세 시간을 달렸다. 계단식 경작지가 있다는 시골 마을이다. 계단식 농지라기에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풍경이 있었지만 막상 마주한 모습은 다소 의외다. 제대로 된 계단식 논을 보려면 베트남 국경 인근까지 가야 한다니 당일치기 일정으로는 욕심일 테다. 대신 붉은 흙으로 뒤덮인 들이 펼쳐진다. 농사를 위해 갈아엎은 밭, 철분이 많이 섞인 붉은 토양, 생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땅이다. 홍토지(紅土地). 하얀 감자꽃과 노란 유채꽃이 피는 계절이었다면 산천은 훨씬 알록달록했겠지만, 여행은 늘 제철을 비껴간다.
촌로 두 분이 양을 몰고 느릿느릿 걸어 나오더니 길가 의자에 걸터앉는다. 장죽을 입에 문 채 사진을 찍으라며 포즈를 취한다. 고맙다는 뜻으로 16위안(약 3600원)을 건네자 얼른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표정은 한층 느긋해지고 포즈도 더 자신만만해진다. 알고 보니 이 마을에서 가장 수입이 높은 ‘셀럽 할배’란다. 요즘 중국의 유적지마다 등장하는 전통의상 코스프레보다 양을 대동한 이 두 노인의 풍경이 훨씬 그럴듯하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다. 노점의 난롯가로 다가서자 주인아주머니가 플라스틱 의자를 내준다. 군고구마라도 사야 할 것 같아 값을 묻자 전대를 열어 돈을 헤아리더니 6위안을 보여준다. 서비스로 땅콩도 한 움큼 쥐여 준다. 고구마도, 땅콩도 별미다. 여행의 백미는 역시 현지의 군것질이다. 문득 아주머니의 전대 속 두툼한 돈뭉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삶도 관광객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느새 끼니를 때워야 할 시간. 운전기사가 어느 농가에 차를 세우더니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밥상이 차려진다. 감자볶음, 호박볶음, 당근볶음, 배추를 닮은 채소볶음, 양파와 말린 돼지고기볶음, 닭 육수에 버섯을 넣은 탕까지 곁들여진다. 향신료는 거의 쓰지 않았고 간도 슴슴하다. 재료 본연의 맛이다. 뜻밖에 윈난의 백반기행이 되어버렸다. 이제 보니 운전기사는 가이드이자 이 시골 밥상의 주방장이었다. 관광 상품이 아닌, 생활 그 자체를 맛본 것이다.
이 지역에서 흔한 식재료는 두부, 감자, 옥수수다. 버섯도 흔하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다. 도시 식당이든, 길거리 음식이든, 촌 밥상이든 대체로 실패가 없다. 재료는 모두 현지에서 난 것들이다. 단 하나, 이동 중 들르는 간이 휴게소 화장실만은 충격적이다. 상상 가능한 최대치의 난이도인 재래식 변소. 눈과 코를 동시에 저주하게 만든다. 입력은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마땅하지만 출력은 신토분리(身土分離)여야 한다. 이쯤 되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맛보고 싶었던 여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월에서 질서로
예전에는 윈난성 남쪽에서 난 차를 말에 싣고 다리와 리장, 중뎬(샹그릴라)을 넘어 티베트고원으로 향했다. 돌아올 때는 차 대신 고원의 생존 방식과 사유, 영성의 감각을 실어 왔다. 쿤밍은 그렇게 ‘고원의 생명력’과 ‘도회의 세련’이 정면으로 부딪치던 거대한 용광로였다.
윈난성에는 25개 소수민족이 공존한다. 그 다양성은 도시 안에서 하나의 질서로 정착된다. 이 압축된 풍경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운남민족촌이다. 북방의 만족에서 남방의 다이족에 이르기까지, 각 민족의 생활사가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웬만한 박람회장을 훌쩍 넘는 규모지만, 관리와 디테일은 꽤 정돈돼 있다. 중국이 지저분하다는 선입관은 이곳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시내 운남예술극원에서는 〈운남영상(Dynamic Yunnan)〉이 공연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무용가 양리핑이 총감독을 맡아 소수민족의 춤과 노래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출연진 대부분은 배우가 아니라 실제 소수민족 마을에서 선발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무대는 ‘재현’이라기보다 지금도 진행 중인 삶에 가깝다.
하이라이트는 양리핑의 수제자인 수석 무용수가 추는 공작춤이다. 포스터에 사용된 그녀의 실루엣이 공연의 정점이다. 족히 5cm는 되어 보이는 손톱으로 공작의 우아함을 그려낸다. 그 손톱을 지키기 위해 보험에 들고,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의 불편을 감수한다. 예술가의 신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교한 도구가 되고, 삶은 무대를 위해 복무한다. 예술이란 결국 몸 전체로 지불해야 하는 노동이다.
쿤밍이 차마고도의 허브였다는 기억은 이제 브랜드로만 남았다. 말은 사라졌고, 길의 자취도 희미하다. 영성의 세계와 문명의 세계가 정면으로 마주하던 옛 영화는 빛이 바랬다. 그러나 다민족을 기반으로 한 다양성과 역동성만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쿤밍은 지금도 서로 다른 정체성을 현대 도시의 문화로 번역하고 있다.
쿤밍은 ‘길을 모으는 도시’라고 하겠다. 미지의 에로틱함이 끝나는 자리, 욕망이 시스템으로 정제되는 공간, 여행자가 다시 현대인으로 돌아오는 지점. 오랜 세월이 흘러도 풍경은 거기에 남아 또 다른 문물들을 묵묵히 맞이하고 있다.
박현택은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했으며, 현재 연필뮤지엄 관장이다. 쓴 책으로 〈박물관에서 서성이다〉, 〈오래된 디자인〉, 〈보이지 않는 디자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