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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발얼가니새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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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호

바람조차 한갓진 적도무풍대의 고요한 섬. 바다사자와 알바트로스가 서슴없이 사람 곁으로 다가오는 곳. 세상에 고립된 채 각자의 전설을 간직한 열아홉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상의 마지막 낙원,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에서 마침내 발견한 푸른발얼가니새.

오른쪽 눈썹, 초승달은 연인의 달이다. 초저녁 넌지시 떠올라 헤어지기에 아쉬워 꼭 잡은 깍짓손을 가만히 비춘다. 왼쪽 눈썹을 닮은 그믐달은 노동자의 달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 안전화의 끈을 묶는 핏대 선 팔뚝을 환하게 밝힌다. 서울의 달은 언제나 스물아홉 밤을 주기로 오른쪽에서 차올라 왼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평생을 쌓아온 달의 위상에 대한 귀납적 추론이 남반구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남미의 달 토끼는 거꾸로 서 있다. 달은 망월을 향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오른다. 심지어 적도의 달은 가로로 누워 수직으로 차오른다. 적도의 밤하늘에는 지남指南 남십자성과 지북指北 북두칠성이 모두 보인다. 하늘의 반은 카시오페이아나 오리온자리 같은 익숙한 별자리이고 나머지 절반은 켄타우로스나 물뱀자리 같은 처음 보는 별자리다.
위도 latitude 0° 00’ 00’’ 적도선이 지나는 에콰도르Ecuador는 나라의 이름 자체가 ‘적도Ecuator’라는 뜻이다. 에콰도르의 수도는 안데스 자락에 있는 고산 도시 키토Quito다. 이곳은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수도로 유명하다. 과학도에게 적도는 유체역학 교과서를 파괴하는 악몽 같은 곳이자 호기심의 천국이다. 전향력에 의해 물은 북반구에서는 반시계 방향, 남반구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돌며 내려가는데, 전향력이 없는 적도에서는 물이 수직으로 빠져나간다. 못 위에 달걀을 세울 수 있고, 편서풍이나 무역풍 같은 항상풍은 불지 않는다. 에콰도르 키토국제공항과 갈라파고스 제도의 관문인 벨트라섬의 갈라파고스 아일랜드국제공항은 같은 적도 선상에 있다. 가는 길에 코리올리 효과가 없으니 제트기의 비행은 부드러운 활강에 가깝다.


갈라파고스 싱글 오리진 커피

갈라파고스의 하늘을 가득 채운 익룡을 꼭 닮은 커다란 새는 큰군함조다. 선착장에서 만난 짐꾼은 묻지도 않은 새의 이름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섬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하늘에 정신이 팔린 땅사람은 길을 잃고 낙상하기 십상이란다. 길가의 나무 그늘에서 자이언트거북이 느긋하게 풀을 베어 먹는다. 150살도 더 먹은 녀석은 중간중간 피어 있는 꽃을 반찬 삼아 들판이 차린 만찬을 즐긴다. 해안가에는 낯선 동물들이 꽃잠을 자고 있다. 바다사자는 항구의 벤치를 차지하고 코까지 골며 단잠을 청한다. 커다란 펠리컨은 제집인 양 너무도 자연스럽게 뱃고물에 앉아 있다. 시내버스가 달리는 비포장도로에는 땅이구아나가 해바라기하고 있다.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썩 잘 어울리는 갈라파고스다.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군도의 수많은 영물 중 최고의 인기쟁이는 푸른발얼가니새다. 섬 여기저기에서 도안을 보고 캐릭터를 귀엽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새의 모습을 검색해보니 오히려 실제 모습이 도안보다 귀엽다.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마성의 외모다.
고립이 만든 진화의 별천지에 입도하면 며칠 동안 정신이 혼미하다. 흥분이 가라앉으면 비로소 하나둘 섬의 비밀이 보인다. 코끼리거북 옆에는 작은 사과나무가 서 있다. ‘만냐니오’라고 불리는 독사과다. 사람이 먹는다면 두어 시간 이내 모든 신경이 마비돼 죽음에 이르는 위험한 열매다. 거북은 독이 퍼지는 시간보다 천천히 사과를 소화한다. 그렇게 내성이 생긴 코끼리거북은 섬의 독사과를 모두 독차지한다. 해안의 얕은 석호에는 새끼 바다사자들이 보모의 동작을 따라 자맥질을 연습한다. 바다사자 유치원의 보모는 사람이라는 동물은 해가 없다고 가르친다. 모든 섬에는 각각 다른 얼굴을 한 핀치새가 날아다닌다. 찰스 다윈이 그 부리를 보고 자연선택이라는 사상을 생각하게 만든 갈라파고스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렇게 시작된 〈종의 기원〉의 마지막 문장은 “이 행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따라 회전하는 동안 이렇게 단순한 발단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경탄스러운 무한의 형태가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는 이 견해에서 장엄함을 느낀다”이다.

찰스 다윈 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생물학 연구소의 전경.

산타크루즈섬의 다윈 연구소로 가는 길에는 1835라는 카페가 있다. 1835년은 다윈이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해다. 이곳의 명물은 산타크루즈산 원두로 내린 ‘다윈 에스프레소’다. 스태프들이 입은 티셔츠의 등판에는 ‘Life begins after coffee’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적혀 있다. 관사와 조사가 생략된 문장은 ‘하루의 삶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시작된다’ 혹은, ‘우리의 생명은 그 커피 이후 시작되었다’ 두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아무래도 인류를 무지의 잠에서 깨운 커피가 다윈이 마신 갈라파고스의 커피라는 것을 선언하는 의도적 비문으로 읽힌다. 사실 갈라파고스 군도에서는 각각의 섬을 방문할 때마다 다른 커피를 맛보는 재미가 있다. 동식물의 반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갈라파고스에서 씨앗의 일종인 커피 또한 반입할 수 없으므로 산타크루즈섬에서는 산타크루즈 싱글 오리진 커피를, 이사벨라섬에서는 이사벨라 싱글 오리진 커피를, 산크리스토발섬에서는 산크리스토발 싱글 오리진 커피를 마셔야 하는 호사를 강제로 경험할 수 있다.


푸른발얼가니새를 찾아서

푸른발얼가니새의 주 서식지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가장 동쪽에 있는 산크리스토발섬이다. 원주민들이 지도에 표시해준 좌표를 따라 조금씩 문명과 작별을 하며 얼가니새가 있을 법한 곳으로 깊이 들어간다. 며칠 새 날지 못하는 갈라파고스가마우지, 용암갈매기, 플로레니아 흉내지빠귀도 만났지만 푸른발얼가니새만큼은 쉽게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무턱대고 택시를 잡아타 푸른발얼가니새의 사진을 들이민다. “아저씨, 이 새 있는 데 내려주소.”
택시 드라이버의 친절한 설명에 찾아간 외딴 해안에도 볏을 잔뜩 세우고 볕을 쬐는 바다이구아나만 있을 뿐 찾는 새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정보는 식당에 모인다니 식당도 여러 곳 찾아간다. 갈라파고스에는 특별한 생태만큼이나 특별한 음식들이 있다. 국내에서 발견되었다면 〈월간 낚시〉의 표지를 장식했을 커다란 붉은 볼락을 통째로 구운 파릴라는 갈라파고스의 대표적인 로컬 메뉴다. 땅콩소스로 맛을 낸 해산물 덮밥 파네스카는 한국인 입맛에도 아주 잘 맞는다. 산크리스토발섬에서 잡은 해삼을 구워 준다니 이 또한 지나칠 수 없다. 다행히 먹는 동안에는 모든 잡념이 사라져 맛의 탐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배를 채우고 섬의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푸른발얼가니새만은 만날 수가 없었다.
탐험이란 그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찾는 과정, 혹은 떠나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 스스로 위안한다. 새는 움직이는 동물이니 원주민이 말해준 곳에 새가 없다고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진득하게 기다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새를 바보같이 쫓아다닌 것이 아닌가 자책도 한다. 그래도 숙소 주인이 아침마다 내준 산크리스토발섬 산딸기로 만든 모라 주스는 매일의 탐험을 위한 비타민이었다. 길에서 만난 다정한 탐험가들은 알바트로스와 고래상어를 만난 각자의 무용담 사이에 푸른발얼가니새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진심 어린 응원을 전했다. 섬사람들의 다감함 속에 푸른발얼가니새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이미 담겨 있었는지 모른다.

Caption

맹렬한 추격과 느긋한 도주

산크리스토발공항으로 떠나는 길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쉬움은 찾은 것 때문도, 찾지 못한 것 때문도 아니다. 갈라파고스섬에 찾아오지 않았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이곳에 대한 그리움이다. 못내 몇 번 뒤를 돌아본다. 일광욕하는 바다사자의 잔등은 여전히 매끄럽고, 먹이를 찾는 펠리컨의 부리는 여전히 시끄럽다. 저 멀리 옆구리까지 다갈색으로 그을린 맨발의 개구쟁이가 해변을 뛰어다니고 있다. 마지막 미련으로 소년에게 푸른발얼가니새의 행방을 묻는다. 소년은 아무 말도 없이 따라오라는 표정으로 앞서 뛰어간다. 홀린 듯 소년을 따라 뛰어간 산크리스토발 부두의 끝에 푸른발얼가니새가 앉아 있다. 어리둥절한 이방인을 바라보는 소년의 표정이 당차다.
소년의 말에 의하면 얼가니새는 이 시간이 되면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앉아 있는 녀석의 푸른 발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푸르스름할 줄 알았던 새 발이 바다보다 파랗고 하늘보다 푸르다. 옴팡진 얼굴은 순결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10여 분 정도 날개를 쉰 푸른발얼가니새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바다를 향해 사라진다. 새와 눈을 맞추고 서로를 바라본 시간이 꿈만 같다. 남들처럼 쉽게 푸른발얼가니새를 만났다면 이토록 반가웠을까? 소년을 10분 뒤에 만났다면 결국 새를 보지 못했을까? 아니면 녀석은 그 시간에 새가 있는 다른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을까? 새로운 질문과 함께 섬을 떠나는 공항 출입국 관리실에서 입도할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Seguir tus seuños será el viaje tu vida. 삶은 당신이 꿈꾸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만 번식하는 갈라파고스바다사자 뒤로 아름다운 일몰이 펼쳐진다.

정상원은 ‘맞는맛연구소’에서 요리와 문화를 연구한다. 프렌치 레스토랑 ‘다이닝룸 뒨니’의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 정상원SANG-WON JUNG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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