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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대륙의 문화를 곤 생선 스튜, 부야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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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가장 프랑스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가장 프랑스적인 도시,
마르세유의 생선찌개 이야기.”

 

마르세유의 구 항구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알렉상드르 뒤마, 프랑수아즈 사강, 마르셀 프루스트, 조르주 상드, 알베르 카뮈, 샤를 보들레르, 기 드 모파상, 스탕달, 로맹 가리,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세계가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단연 빅토르 위고다. 프랑스 각지와 벨기에나 캐나다 같은 불어 문화권 국가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의 많은 도시에는 빅토르 위고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그의 역작 <레 미제라블>은 영화와 뮤지컬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 미제라블misérables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으로 프랑스혁명기 민중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이다대. 중에게는 장 발장의 에피소드가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65만 5778개 단어로 이루어진 역사상 가장 긴 소설 중 하나다. 초판본은 그 엄청난 두께 때문에 ‘벽돌’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클라이맥스는 삼색기를 흔들며 군중이 합창하는 노래 ‘라 마르세예즈’다. 이 노래는 마르세유 출신 의용병들이 파리로 입성할 때 부른 혁명가였다. 총 15절까지 있으니 노래가 참으로 길다. 이는 현재 프랑스의 국가國歌이기도 하다. 그렇게 프랑스 정신의 근간에는 마르세유가 있다.

한국 야구사에서 광주 타이거즈 선동렬과 부산 자이언츠 최동원의 선발 맞대결은 단순한 스포츠 라이벌전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스페인에는 유명한 축구 라이벌전 엘 클라시코가 있다. 스페인에서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는 카탈루냐 독립전쟁과 다름이 없는 엄청난 열기를 뿜어낸다. 프랑스에도 르 클라시크라는 라이벌 경기가 있다. 파리 생제르맹과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사이의 축구 경기다. 항구 도시 마르세유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아랍인들과 유대인, 러시아인,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에스파냐인, 아르메니아인 등 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한다. 특히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이 도시 전체 인구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유럽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모로코와 이집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아랍인을 마그레브maghreb라고 부른다. 명칭이 있다는 것은 구획이 있다는 의미다. 스포츠응원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들 사이의 경멸과 울분이 오묘하게 표출된다. 톨레랑스라고 불리는 프랑스적 관용과 포용이 들끓는 문화의 용광로가 넘치지 않게 근근이 지탱한다. 마르세유 생활의 근간에는 프랑스가 있다. 

 

바위로 둘러싸인 지중해의 작은 만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

삼색 문명의 실타래, 마르세예즈

마르세유는 파리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지중해에 연한 마르세유는 유럽 3대 항구이기도 하며, 프랑스 최대의 무역항이자 공업 도시다. 파리가 서울이라면 리옹이 광주, 마르세유가 부산이라고 생각하면 규모나 분위기가 얼추 비슷한 구석이 있다. 메트로폴리탄이라 불리는 광역도시는 주변 공간을 연담화하고 역사적 시간과 인문적 문화를 지배한다. 도시가 생활 공간의 개념을 넘어 그 도시만의 특별한 문명을 형성하게 되면 그 도시의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이 생겨난다. 뉴요커, 런더너, 파리지앵, 서울라이트 같은 말들이다. 이를 데모님demonym이라고 하는데, 마르세유 사람은 마르세예즈라고 부른다. 이들 단어는 지역의 사람들에 대한 호칭을 넘어 도시가 담지하는 문화와 그것에 대한 분위기를 전한다. 파리지앵이 시크한 낭만자, 뉴요커가 모던한 이방인, 서울라이트가 근면한 깍쟁이라면 마르세예즈는 엉켜 있는 문명의 실타래다. 

마르세유의 시가지는 언제나 분주하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수많은 인종이 풍기는 체취는 공간을 가득 채운다. 각자가 먹은 음식은 각자의 모공을 통해 각자의 향기를 남긴다. 마르세유의 특산품은 사봉이라 불리는 올리브유로 만드는 비누다. 비누 가게 사보너리 앞에 서 있으면 다양한 색과 향의 비누들이 각각의 사람들에게 하나씩 대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마늘 향이 진한 몸을 가진 주제에 미간을 찡그리는 것을 감추려 하는 오만이 부끄럽지만 내색을 감추기도 어렵다. 마르세유 시장에는 수많은 체취의 이유가 널려 있다. 노란 촉수, 대문짝 넙치 같은 지중해 생선들과 다테리노 토마토, 샬럿 양파 등 프로방스의 채소, 커민과 타라곤 같은 서아시아의 향신료, 민트와 캐모마일 같은 북아프리카의 허브들이 모꼬지된다. 중국, 이스라엘, 모로코, 이집트의 다양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각자의 단골집에서 다양한 언어로 흥정을 하고 다양한 맛의 장바구니를 만들며 돌아다닌다. 재래시장에서 사람들의 장바구니를 보면 그 도시의 음식 맛을 넌지시 이해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바게트와 난, 쿠스쿠스와 쌀이 모두 보인다.

 

지중해에서 잡아 올린 각종 생선과 채수를 넣고 푹 끓여낸 전통 부야베스.

마르세유의 생선찌개 부야베스

마르세유를 대표하는 음식은 부야베스bouillabaisse다. 부야베스는 지중해의 생선과 프로방스의 채소 그리고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향신료를 넣고 끓인 생선 스튜다. 부야베스는 남프랑스의 옛말인 오크어òc 부야바서bolhabaissa에서 유래했다. 팔팔 끓는다는 의미의 ‘부이boillir’와 낮은 불로 자작하게 끓인다는 의미인 ‘아베세abaisser’의 합성어다. 프랑스 속담에는 “수프가 끓으면 불을 줄여라quand ça bouille tu baisses”라는 말이 있는데 이 또한 부야베스라는 밑말을 가진다. 부야베스는 중국의 샥스핀, 태국의 똠얌꿍과 더불어 세계 3대 수프로 꼽힌다. 원래는 마르세유나 툴롱 등지의 가난한 어부들이 상품성 없는 물고기를 집에 가져와 가족과 함께 뭉근하게 끓여 먹었던 것이 시작이다. 쏨뱅이rascasse, 달고기saintpierre, 붕장어congre, 도미dorade, 대구merlan, 아구lotte, 성대grondin 등 지중해산 생선에 마늘, 토마토, 파프리카 등 프로방스의 채소로 육수를 내고, 사프란saffron과 아니스anise 같은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향신료들이 듬뿍 들어간다.

 

구 항구의 야외 직판장에서 판매하는 갓 잡은 지중해의 생선들.

 

부야베스의 맛은 고니를 잔뜩 넣은 생태탕과 비슷하며 그 향은 진득하게 오래 끓인 꽃게탕처럼 짙다. 먹는 순서가 우리와는 거꾸로다. 스튜 국물을 빵과 함께 먼저 먹고 이후 건져낸 생선을 접시에 올려 포크와 나이프로 살을 발라 먹는다. 국물을 먹을 때는 바게트를 바싹하게 구운 크루트criûte를 곁들인다. 크루트에 마르세유 특유의 루유rouille 소스를 듬뿍 찍은 뒤 스튜 국물에 적셔 부드럽게 토렴해 먹는다. 루유는 올리브오일과 마늘을 섞은 아이올리소스와 사프란이 들어간 마요네즈소스를 합쳐 만든다. 사프란이 들어가 짙은 오렌지색을 띠는데, 마치 녹슨 철처럼 붉다고 하여 녹rouille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향신료를 뿌려 구운 빵에 향신료를 넣은 소스를 찍어 향신료로 끓인 스튜에 담가 먹는다.

1980년 마르세유의 셰프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부야베스 위원회는 부야베스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네 가지 이상의 생선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들은 ‘부야베스 헌장’을 제정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맛도 문화도 서로의 향기를 겨루면서 어우러질 때 깊은 풍미를 가진다는 것을 그들은 역사를 통해서 체득했기에 그 전통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식탁을 압도하는 부야베스의 풍미는 이 모든 것이 잘 조율된 어우러짐이다. 물고기들이 바다에서 국경 없이 오가는 것처럼 마르세예즈들은 마르세유의 거리를 오간다.

 


정상원은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의 문화 총괄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 정상원SANG-WON JUNG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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