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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야생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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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호

 

“파타고니아 고지대로 쏟아지는 바람은 세차고 건조하다. 안데스산맥 중턱에 모든 물방울을 흩뿌리고 정상을 거칠게 넘기에. 그 바람이 지나는 길은 엎드려 조아리는 생명체가 아니면 버티질 못한다. 건조함에 잎사귀를 잃어버린 식물은 거센 바람의 기세 탓에 땅에서 한 뼘 이상 자라기도 힘들다.”

 

사팔라Zapala에서 자유로운 말과 조우하다.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를 북에서 남으로 2000km 정도 지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감각은 그곳의 바람이었다. 여정의 한가운데, 리오피코Rio Pico에서 트레스라고스Tres Lagos를 지나는 동안 특히 바람이 심해 차 밖에서 세 걸음 이상 떼기 힘들 정도였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거센 바람과 가시를 피해 야영할 자리를 찾는 데 할애했다. 바람을 막아줄 바위나 도로의 배수로를 찾지 못한다면, 이내 텐트와 함께 몇십 미터를 구르고 낭떠러지에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코 문학적 과장이 아니다. 바람을 피해 머물 만한 절벽 등을 발견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 내려가 하룻밤을 지낼 준비를 했으니까 말이다. 나도 모르게 자다가 굴러 떨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어느 정도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채로 떨어지는 게 낫지 않은가. 한밤중에 퓨마와 30분간 눈싸움을 한 적도 있을 만큼 이곳은 거친 야생이었다.

여정 중 가끔 가우초의 작은 집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떠나며 버려진 것이 절반을 넘었다. 대부분의 땅은 황무지로 텅 비어 있었고, 하늘이 너무 가까운 나머지 석양을 만나 붉게 타오르는 민둥산은 흡사 화성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가끔 만나는 낙타의 일종인 과나코, 타조와 비슷하게 생긴 레아rhea, 홍학 같은 생명체들이 그나마 내가 아직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중 가장 반가운 존재는 말이었다.

 

아르헨티나 리오피코에서 만난 라파엘 이노스트로자.

라파엘 이노스트로자
그리고 자유의 말

파타고니아로 향하며 품은 목표 중 하나는 이곳을 지키는 가우초를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달 정도가 흘렀을 무렵 깨달았다. 가우초는 없다. 거의 없다. 운 좋게 만난 가우초 축제 현장을 제외하고는 길 위에서 겨우 네 명을 만났을 뿐이다. 이렇게 드넓은 대지 위에서 하필 내가 지나는 길목에 우연히 그들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다만, 인상 깊은 순간은 라파엘 이노스트로자와의 대화. 그는 젊었을 적에 치열하게 살다 문득 도시가 싫어져 무작정 파타고니아로 왔고, 대지주의 소와 말을 관리해주며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녀는 끝없는 지평선과 매일 먹는 소고기가 지겨워 바닷가로 떠났다고 한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무법자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설마 그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고백하진 않겠지 싶었다. 대신 그에게 파타고니아의 야생마에 대해 들었다.

아주 먼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도 말이 다수 살았지만 그들과 공존할 줄 몰랐던 인간은 그저 식량으로 다 소비해버렸고, 콜럼버스와 함께 온 침입자들이 이 땅에 말을 다시 풀어놓았다고 한다. 대다수의 야생마는 가축으로 길러지다 울타리를 넘어 도망간 말이 낳은 자손이며, 갈퀴와 발굽의 모양 등으로 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우연히 길 위에서 말을 만나더라도 대부분 주인이 있거나 있었으므로 함부로 타면 안 된다고도 조언했다(나를 과대평가한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자유를 되찾은 야생마는 가시 같은 풀을 뜯어 먹지만 건강해 보였고, 망아지도 주변에서 평화롭게 노닐었다.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너그러움일까. 경계하지만 공격하지 않았고, 천천히 다가가 진심을 전하면 곁을 내주기도 했다.

이들은 파타고니아 대자연의 일부를 이루는 동시에, 이곳의 본질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세찬 바람이 불지만 피할 곳을 내주고, 머물다 보면 이곳에서 견딜 방법을 알려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바람도 자정 무렵이 되면 어느새 잦아든다. 하늘에는 마치 또 다른 파타고니아 같은 화성과 금성이 박혀 있고 별똥별이 내린다.

 

아르헨티나 사르미엔토Sarmiento의 파란 석양.

※ 사진가 최남용은 프랑스 파리의 예술대학인 이카르 포토ICART PHOTO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하고 예술과 상업을 넘나들며 감각적인 세계를 포착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에서 가우초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사진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는 여전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과 영상을 남기고 있다. 

글. 최남용NAM-YONG CHOI
사진. 최남용NAM-YONG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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