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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적 스테이크, 피오렌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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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호

 

“음식의 간이 약해지면
재료에 담긴 작은 맛들이
고개를 내민다.
싱거워서 오히려 화려한
피렌체의 음식 이야기.”

 

이탈리아식 T본 스테이크, 비스테카 알라 피오넨티아.

 

아르노강을 관통하는 베키오 다리에는 공예품을 파는 작은 상점들과 카페가 줄지어 있다. 피렌체의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이탈리아 커피 한잔은 필수다. 처음 이탈리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부터 입맛에 맞는 연한 커피 주문은 실패를 거듭했다. 커피를 주문하면 기본으로 나오는 에스프레소는 쓰고 짜다. 그나마 이번에는 같이 나온 피렌체 빵이 상당히 싱거워 어느 정도 간이 맞았다. 마침 다리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가 강물 위로 잔잔히 흐르고 있다. 한 잔 더 쓴 커피를 감수할 만하다. 비운의 주인공은 단테와 베아트리체다.

 

“너는 다른 이들의 빵이 얼마나 짠지 알게 될 것이다.”
- 단테, <신곡> 중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곡>을 쓴다. 명망가 출신의 단테는 처음으로 고향인 피렌체를 떠나 여러 지역을 유랑한다. 남의 집 계단을 오르내리며 일감을 찾고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 빵을 베어 문 그는 의아했다. 눈물에 젖은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역의 빵은 정말로 맛이 짰다. 이탈리아를 남북으로 종주하면 중부 내륙 토스카나 지역을 통과할 때 음식의 간이 거짓말처럼 약해지는 걸 느낀다. 지금도 토스카나의 빵에는 소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단테에게 ‘눈물 젖은 빵’은 수사적 은유가 아닌, 소금을 넣지 않은 피렌체 음식에 대한 직접적인 그리움이다. 소설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한 일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또한 한 글자도 없다. 단테도 그랬다.

 

아르노강 위를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

 

예술가의 열정과 은행가의 냉정 사이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 내륙의 토스카나 지역의 주도다. 또한 중세의 야만으로부터 인간과 이성을 해방시킨 르네상스가 시작된 도시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시작부터 관습적 형식주의인 매너리즘 시기에 이를 때까지 근대를 깨운 서 유럽의 정신적인 중심지였다. 당시 피렌체를 비롯한 중세 도시국가에서 권력을 향한 암투와 영토 전쟁은 매일 일상처럼 벌어졌다. 위정자들이 만든 현실의 지옥도는 단테의 <신곡>에 고스란히 담긴다. <신곡>은 르네상스의 마중물이 되어 피렌체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르네상스 예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도 당시의 피렌체에서 그려졌다. ‘빈치’는 피렌체 옆 마을의 이름이고, 레오나르도가 태어난 고향이다. ‘모나mona’는 이탈리아어로 마담을 의미한다. 난데없이 세계적 모델이 된 마담 리자는 피렌체의 무역상 조콘다의 부인이다.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핀 데는 지금도 금융업으로 위세를 떨치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역할을 한다. 특히 메디치 가문의 젊은 둘째 아들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는 호방한 성품과 빼어난 외모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종종 그들의 모델을 자처했다. 미켈란젤로 앞에서 훌륭한 몸과 과감한 포즈로 다비드상의 모델을 섰다. 미대입시생들의 영원한 친구인 아그리파, 줄리앙, 비너스 중 줄리앙 석고상의 실제 모델도 바로 줄리아노 데 메디치다. 피렌체가 사랑한 이 청년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피렌체의 권좌를 놓고 싸우던 파치 가문과 인근 도시인 피사의 주교에 의해 암살된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에서 가리비를 타고 뭍으로 떠내려 온 그 시절의 비너스는 줄리아노와 1453년생 동갑내기인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다. 르네상스 모든 예술가의 뮤즈였던 그녀 또한 스물두 살에 피사 지역과의 분쟁으로 암살된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피사라는 도시가 있다. 갈릴레이의 낙하 실험으로 유명한 피사는 피렌체와 70여 km 떨어진 라구리아해 인근의 도시다. 토스카나 지역의 맹주 자리를 놓고 벌인 두 도시의 암투는 라구리아해 피사의 소금이 내륙 피렌체로 들어오는 데 엄청난 관세를 물리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르네상스는 모델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피렌체의 주방은 소금을 잃고 재료 탐닉에 빠진다.

 

빼어난 재료와 평범한 조리

다혈질 성격에 요리 또한 간이 세기로 유명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의 짠 음식에 길들여진 상태로 토스카나로 들어서면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간이 약해지면 재료에 담긴 작은 맛과 향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 시작한다. 소금의 감칠맛을 흉내 내기 위해 재료를 덧대고 진중하게 조리한다. 소금을 뿌리지 않은 토스카나의 빵스 치오코sciocco는 토마토, 올리브유, 마늘, 그리고 이탈리아의 여름 햇살을 머금은 바질과 어우러져 판자넬라panzanella 샐러드로 변신한다. 토스카나의 화이트 라구소스는 고기를 친절하게 대한다. 오랜 시간 맑게 우려낸 소고기 부이용bouillon은 오히려 고급진 천연 감미료다. 하늘하늘한 세이지로 향을 낸 봄날의 채소 라구ragoût de légumes à la printaière에 소금이 들어간다면 수줍은 향들은 이내 도망친다.

싱거워서 오히려 화려해진 피렌체 요리의 꽃은 비스테카 알라 피오넨티나bistecca alla fionentina다. 비스테카는 비프 스테이크란 뜻으로, 이탈리아식 T본 스테이크다. T자 모양의 뼈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안심과 등심이 모두 붙어 있다. 이탈리아산 소 중에서도 키안티 지역의 키아니니 품종만을 사용한다. 미리 상온에 꺼내둔 고기를 아무것도 뿌리지 않고 양쪽 면을 숯불 위에서 딱 5분씩만 굽는다. 다 구워진 스테이크는 뚜껑을 덮어 육즙과 향이 골고루 퍼지게 10분간 그대로 두어 레스팅한다. 마지막으로 올리브유와 후춧가루만 살짝 뿌려서 먹는다. 반드시 레어로 구워야 하며, 소스나 가니시는 없다. 소금도 뿌리지 않는다. 버터 향이 나는 키아니니 소고기의 특별한 육즙이 그대로 소스가 된다.

 

검은 수탉 문장이 새겨진 키안티 와인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는 육류 요리와 잘 어올린다.

 

싱거운 빵과 짭조름한 와인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에는 반드시 이 지역의 키안티 와인을 곁들여야 한다. 라벨에 검은색 닭 문양이 있다면 제대로 된 와인을 선택한 거다. 단테, 피노키오, 모나리자, 피사의 사탑 등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것들의 순위를 매겨보면 지역 와인 키안티는 한참 뒤에 나온다. 그러나 세계적 와인 산지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토스카나의 키안티 와인이다.

키안티는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있는 언덕이다. 두 도시 사이에는 긴 전쟁이 있었고 이에 지친 피렌체와 시에나 사람들은 수탉이 울자마자 각자의 성문을 열고 말을 달려 서로 만난 지점에 영토의 경계를 만들기로 한다. 그런데 잘 먹인 시에나의 커다란 흰 수탉은 늦잠을 자고, 피렌체의 비루먹은 듯한 검은 수탉은 새벽도 오기 전 배고픔에 울어댔다. 결국 피렌체의 기병은 시에나 성의 1.6km 앞까지 먼저 당도하여 키안티 언덕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지금도 모든 키안티 와인에는 검은 수탉을 표현한 문장이 있다.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에 빠진 소금간은 짭조름한 키안티 와인이 훌륭하게 메운다. 신선한 산지오베제 포도의 산도는 레어로 구운 안심의 속살에 소스 역할을 한다. 잘 숙성된 키안티의 견고한 구조는 올리브유에 바삭하게 시어링한 등심의 풍미를 배가시킨다.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피어난 꽃

화려한 싱거움의 아이러니는 익숙하지 않은 토스카나 창틀의 걸쇠와도 같다. 빗장을 어렵사리 풀고 창문을 열면 연분홍과 연둣빛 색채가 은은한 석조 주택이 펼쳐진 두오모가 내다보인다. 토스카나의 키안티에서 북쪽을 향하면 피에몬테의 바롤로에 닿는다. 예술가들의 열정을 담은 포도 산지오 베제sangiovese의 향이 가시며 진득한 농부들의 포도 네비올로nebbiolo 밭이 펼쳐진다.

싱거운 구간을 벗어나 만나는 첫 리스토란테ristorante. 모든 것이 적당하다. 식사 전부터 버터향이 주방 문턱을 넘는다. 소금을 친 소스는 흥미진진하고 각각의 맛은 짠맛의 지휘에 따라 제자리에 놓인다. 식사를 물리고 디저트를 뜻하는 돌체가 나온다. 이번에는 원하는 커피의 농도를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안주인으로 보이는 ‘모나mona’에게 손짓 발짓으로 그간의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그의 에스프레소에 대한 짙은 자존심과 생각보다 호된 핀잔,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다. 이번 커피가 제일 진하다. 토스카나 방언으로 쓰인 <신곡>의 원제는 <라 코메디아 디 단테La Commedia di Dante>다. 

 


정상원은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의 문화 총괄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 정상원SANG-WON JUNG
사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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