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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 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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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호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보다

매운 헝가리의 고춧가루 이야기.”

 

수프와 스튜 사이, 헝가리 전통 음식인 굴라시.

프란츠 리스트는 근대 피아노 기법을 창시한 헝가리의 작곡자이자 피아노 연주자다. 그의 연주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음형과 현란한 분산화음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그가 열다섯의 나이에 작곡한 초절기교 연습곡은 지금의 피아니스트들에게도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손꼽힌다. 리스트가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피아노 연주자들은 관객을 등지고 연주를 했었다. 그런데 리스트는 파격적으로 피아노를 90도 돌려 지금처럼 청중이 연주자의 옆모습을 볼 수 있게 배치했다. 스스로의 외모를 너무나 사랑한 그는 타인의 부러움 어린 시선을 즐겼다. 악보를 공중에 뿌리고 암주를 하는 퍼포먼스에 극장은 소란스러워졌다. 우레같이 흑건을 내려치거나 부드럽게 백건을 어루만지는 그의 긴 손가락과 잘생긴 옆얼굴에 한 시대가 열광했다.

리스트와 더불어 헝가리의 자랑거리는 고춧가루다. 헝가리의 고추 생산량은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소비량이 워낙 많아 다양한 국가에서 고춧가루를 수입한다. 헝가리 사람들은 헝가리 남부 대평원의 세게드szeged산과 컬로처kalocsa산 그리고 충청남도 칠갑산 자락의 청양산 고추를 최고로 친다. 헝가리에서는 고추를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햇볕에 말리고 곱게 빻아 고춧가루로 만들어 향신료로 쓴다. 과거 헝가리 고추는 매운 정도가 상당했다. 최근 들어서는 매운맛을 줄인 달콤한 고추가 인기를 끌고 있다. 헝가리 고추는 한국 고추와 달리 하늘을 향해 거꾸로 자란다.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헝가리는 유럽의 중앙 평원지대에 위치하며 폴란드를 비롯해 동유럽 7개 국가와 국경을 마주한다. 국토에 연하는 바다는 없다. 헝가리라는 이름도 평원이라는 밑말을 가진다. 수도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중심에 위치한다. 세계적인 야경을 자랑하는 다뉴브강Danube River을 중심으로 서쪽은 언덕이라는 뜻의 ‘부다’, 동쪽은 평지라는 의미의 ‘페스트’로 나뉜다. 부다페스트로 들어오는 관문은 리스트페렌츠 국제공항이다. 리스트페렌츠는 프란츠 리스트의 헝가리 이름으로 그들은 우리처럼 성을 이름 앞에 쓴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국제공항이 쇼팽 공항이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두 나라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리스트와 쇼팽은 한 살 터울로 리스트가 형이다. 쇼팽은 맘이 여린 숙맥이었다. 리스트는 쇼팽에게 당대의 팜므파탈인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를 소개해줬고 극과 극의 성격을 지닌 두 사람은 결국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 쇼팽의 아름다운 선율은 그의 뮤즈 상드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리스트는 알아서 연애를 잘했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유언으로 “여자를 멀리 하라”고 당부했는데, 그는 결국 그러지 않았다.

 

헝가리 전통 방식으로 만든 살라미.

헝가리 무곡

헝가리의 아침은 고추와 함께 시작된다. 헝가리식 페이스트리 빵 포가처pogácsa나 튀긴 빵 랑고스lángosd에 맵지 않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부드러운 스프레드를 바른다. 빵과 같이 먹는 콜바스kolbász는 고추 향을 입힌 헝가리식 소시지다. 헝가리식 조식이 펼쳐진 호텔 로비에서 젊은 연주자들의 즉흥 연주 플래시몹이 펼쳐진다. 전자 바이올린과 첼로로 연주하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흥겹다. 호소하는 듯한 멜로디 라수lassú 뒤에 빠르고 격정적인 프리스friss가 연결되는 헝가리 무곡은 전형적인 헝가리 집시 민요의 전개를 따른다. 이어서 리스트의 곡이 연주되기를 기다려보지만 결국 레퍼토리는 브람스로 끝을 맺는다. 

부다페스트 중심가에 위치한 리스트가 거주했던 집은 지금 박물관 겸 공연장으로 운영 중이다. 1000원 정도면 수준급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일요일에는 마실 나온 주민들로 연주장이 가득 찬다. 오늘은 베토벤의 피아노 4중주가 연주된다. 베토벤의 현악기 실내악의 음색은 현학적이다. 리스트 곡을 듣지 못한 아쉬움을 헝가리의 전통 음식인 굴라시로 달랜다. 다뉴브 강변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굴라시 식당들이 들어차 있다. 굴라시는 수프도 아니고 스튜도 아닌 그 중간 정도의 음식으로 당근, 양파, 토마토, 피망, 소고기를 넣고 끓인 요리다. 감자, 국수 혹은 빵과 같이 먹는다. 치페트케Csipetke라는 전통적인 헝가리 국수를 넣은 굴라시는 세게드 굴라시라고 한다. 굴라시는 원래 목동이라는 말이었으나 그들이 먹었던 스튜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헝가리 사람들은 헝가리 고춧가루를 ‘굴라시의 영혼’이라 부른다.

 

글루미 선데이

부다페스트의 레스토랑들은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결을 같이한다. 많은 레스토랑이 리스트의 작업처럼 헝가리 전통 메뉴들을 보편적인 코스의 리듬 위에 얹는다. 자신들만의 전통적인 맛을 유지하면서 어느 나라 사람이 먹어도 불편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풀어낸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악단은 첼로나 바이올린 같은 클래식 악기들과 헝가리 전통 민요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들로 협연을 한다. 실로폰과 비슷한 쳄발로cymbalo와 헝가리 집시의 기타 델치메르delcimer는 이국적이면서 익숙한 편안함을 선사하여 식사 자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헝가리 미식의 중심에는 1894년부터 운영해온 레스토랑 군델gundel이 있다. 이곳은 헝가리 전통 음식을 재해석해 코스 요리로 선보인다. 오래된 악단이 연주하는 차르다시csárdás 음악은 그들의 스튜와 잘 어울리며 식사의 몰입도를 높인다. 군델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모은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된 식당이다. 1999년 개봉한 슈벨 감독의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를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다. 1933년 발표된 레스 소 세라스의 노래 ‘Gloomy Sunday’는 한국에서도 여러 가수가 번안하여 불렀다. 마지막 디저트는 이곳의 명물인 고추 아이스크림이다. 식후주인 체리나 자두 같은 과실로 담근 팔린카palinka라는 브랜디도 유명하다.

 

부다페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세체니 다리는 부다와 페스타를 잇는 최초의 교량이다.

Liszt: Hungarian Rhapsody,
S244 – No.2 in C # minor

다뉴브강 세체니 다리Széchenyi Lánchíd에서 시내 방향으로 택시를 탄다. 세체니 다리는 세체니 온천과 더불어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다. 세체니라는 명칭은 부다와 페스트를 부다페스트로 통합한 세체니 백작의 이름을 따왔다. 택시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헝가리어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신기하게도 말하는 사람의 감정은 어느 정도 전달된다. 헝가리 말에서 계속 느껴지는 낯섦에 대한 이질감이다. 다른 유럽어와는 달리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헝가리어는 어순이나 발음에 우리말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이 그 이유일 테다. 택시가 세체니 다리를 건너는 동안 뒷좌석에서 부다페스트에서 고추는 정말 많이 먹었는데 리스트 한 번 만나기 힘들다는 푸념을 한다. 택시 드라이버가 룸미러로 뒷자리의 동양인을 바라보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다. 이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헝가리 광시곡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2번 올림다단조다. 기사님의 표정은 이제 됐냐는 투다. 저쪽도 어느 정도 알아듣는 모양이다. 연주가 한 곡 끝나고 난 뒤 목적지에 당도한다. 9분 30초 동안의 프라이빗한 연주회의 값으로 700포린트, 한화로 2230원을 내고 택시에서 내린다. 라디오 아나운서의 마지막 멘트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들린다.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피아니스트 임윤찬.” 

 


정상원은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의 문화 총괄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 정상원SANG-WON JUNG
사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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