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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의 롤스로이스, 블루 도베르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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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가을의 오베르뉴 숲속에는
블루치즈의 밤꽃 향이 그윽하게 퍼진다.”

 

서양 배와 호두를 곁들인 블루치즈.
발효를 통한 독특한 풍미가 인상적이다.

요리사는 열을 이용한 변성을 포함하여 물리적・화학적 방법들을 총동원해 맛을 느끼기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잘라내고 분해하는 이화異化, catabolism 과정을 우리는 ‘익힌다’고 한다. 글리코겐 같은 고분자 탄수화물은 올리고당처럼 작은 분자로 분해되면서 비로소 단맛이 느껴진다. 밥을 오래 씹거나 양파를 천천히 볶을 때 만들어지는 달착지근한 맛이다.

단백질의 펩티드 결합은 열과 산에 의해 아미노산이 된다. 건건한 고기는 열을 만나 변성되어 입에 감기는 감미로운 감칠맛을 가진다. 지방산과 에스테르는 고온에서 분리되며 고소하고 달금한 특유의 풍미를 가진다. 방향족 유기물이 만들어진 결과다. 이 모든 조리의 일련은 영양소를 맛으로 느끼도록 적당한 크기의 분자로 잘라내는 과정이다.

‘익히다’가 타동사인 반면, ‘익는다’는 자동사다. 이는 잘라내고 분리하는 작용이 아니라 동화同化, anabolism작용의 원리가 이용되는 생합성 과정이다. 김치, 치즈, 술. 이들의 발효는 잘려나가고 작아지는 것이 아닌, 큰 분자가 만들어지고 구조가 더 복잡해지는 과정이다. 아무리 기술 좋고 힘센 요리사도 분자를 결합시킬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효소나 미생물만이 그 놀라운 일을 해낸다. 발효 과정에서는 숙성에 필요한 미생물이 잘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다음은 시간이 알아서 깊은 맛을 만들어간다. ‘익는다!’

 

클레르몽페랑의 일몰 무렵, 대성당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진 모습.

검은 집의 푸른 치즈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맛있다

블루치즈의 원산지 오베르뉴는 파리의 남서쪽, 프랑스의 한가운데 있는 화산지대다. 주도인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의 건물들은 무광의 먹색이다. 검은 화산석으로 벽을 삼고 지붕을 올렸다. 클레르몽페랑의 도심 한가운데 서 있는 노트르담 뒤 포르 바실리카 대성당Basilique Notre-Dame du Port은 멀리서 보면 건물의 그림자가 허공에 서 있는 듯하다. 가까이 다가서면 벽면을 수놓은 화려한 조각들의 음영이 수묵화처럼 드러난다. 문 앞에 서면 검은 건물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압도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검은색 화산암은 돌하르방을 만드는 현무암이다. 천천히 굳으며 기포가 생긴 검은 돌이다. 제주도가 천천히 완만하게 흐르는 용암이 만든 순상화산섬이기 때문이다. 

오베르뉴의 화산은 퓌-드-돔puy-de-dome이라 불리는 종상화산이다. 순식간에 폭발한 화산은 수직으로 멈춰 극적인 풍광을 만든다. 그대로 굳은 용암은 매끈한 검은 돌 반려암이 된다. 이 조립질 암석에 사람과 바람은 세밀한 부조 작품을 남길 수 있다.

검은색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두려움은 시간에 대한 믿음의 다름이다. 가을이 되면 숲속의 검은 집에서 치즈의 왕이라 불리는 블루치즈가 검은 숲의 밤꽃 향에 서서히 익어간다.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 프랑스 전 대통령은 오베르뉴의 블루치즈 블루 도베르뉴Bleu d’Auvergne를 일컬어 ‘치즈의 롤스로이스’라고 극찬했다. 블루의 매력은 숙성의 시간을 소리로 느끼는 데 있다.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에서는 맛있는 소리가 난다. 술독에서 누룩이 ‘타닥타닥’ 피는 소리, 장독에서 장이 ‘톡톡’ 익어가는 소리, 치즈의 사이사이에 ‘투두둑 ’ 공간이 생기면서 나는 소리. 비밀 이야기 같은 낮은 속삭임 속에서 맛이 생긴다. 질항아리에서 김치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맛있는 상상으로 침이 고이는 것처럼 블루치즈의 매력도 청각의 경험과 기다림의 맛에 있다.

 

오베르뉴에 찾아온 가을.

검은 타이어를 만드는
파란 회사의 붉은 가이드북

잘 만들어진 블루 도베르뉴는 크리미한 부드러움 속에 강렬함이 담겨 있고 은근하게 짭조름한 맛이 짜릿하게 느껴 진다. 최고의 블루치즈는 오베르뉴 숲에서 얻은 밤나무로 통을 만들고 그 안에서 치즈를 숙성시켜 밤나무 향을 입힌다. 숙성된 블루치즈는 쪽빛에 가까운 푸른색을 띤다. 항생제 페니실린을 만드는 균주인 푸른곰팡이로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이다. 푸른 대리석 무늬는 푸른곰팡이가 다른 균주에 앞서 우유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한 아름다운 흔적이다. 미생물은 자신의 생장을 위해 다른 균주가 살 수 없도록 특정 물질을 만들어 방출한다. 처음에 생존에 필요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푸른곰팡이는 전투를 통해 유해한 균주들을 물리치며 스스로 발효 과정을 이끌어간다.

오베르뉴를 대표하는 기업은 미식 가이드북으로 오히려 더 유명한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다. 오베르뉴는 화산지대이며 그 사이로 깊은 계곡이 흐르고 주변은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친 자연은 클레르몽페랑이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이유다. 천연의 요새는 역설적으로 교통의 불모지다. 전쟁의 시대가 지난 뒤 이동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튼튼한 타이어를 만드는 기술로 바뀌었다. 그들은 푸른곰팡이의 색을 따와 회사의 로고를 만들었다. 오베르뉴의 땅에 기준한 과도하게 튼튼한 타이어는 수명이 너무 길었다. 결국 식욕을 당기는 영롱한 붉은색이 매력적인 미식 가이드북 <미쉐린 가이드>를 나눠주며 타이어를 더 많이 구르게 하기에 이른다.

 

크리미한 텍스처에 강렬한 풍미를 지닌 블루치즈는 담백한 크래커와도 잘 어울린다.

치즈의 쪽빛을 기록한
농가의 일기장, 빈티지 차트

치즈는 사람의 노력과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다. 원칙과 신념을 지켜 만들고, 겸허하게 오랜 시간 기다려 그 결과를 확인한다. 오베르뉴 치즈 농가의 사람들은 이 전통에 대한 믿음을 건실한 생활을 통해 이어가고 있다. 매일 새벽이 되면 해가 뜨기 전 착유를 한다. 그날의 빛과 온도를 계산한다. 음지에 놓인 돌로 만든 통에서 우유를 달래 서서히 가라앉힌다. 치즈가 놓일 밤나무 선반은 소금으로 닦는다. 조금씩 소분한 푸른곰팡이 균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보로 여긴다. 그리고 언제나 펜을 들고 치즈의 향과 맛 속에 담긴 고소한 시간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치즈의 색이며 맛, 향과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빈티지 차트’라는 치즈의 일기장이 된다. 

와인이나 치즈가 만들어진 특정한 연도를 ‘빈티지’라 부른다. 우리가 그해 와인의 가격을 정하는 기준으로 여기는 빈티지는 포도 농부와 치즈 생산자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작황을 통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기록한 빈티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또 매년 새로 기록하여 후대에 넘겨주는 숙제다. 빈티지는 그해의 바람과 땅과 햇빛에 대해 적은 농부의 일기장이다. 재배자인 동시에 관측자인 치즈 농장 사람들은 선대의 빈티지를 통해 언제 수확을 할지, 얼마나 숙성시킬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록해 후대에 전달함으로써 다음 대의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도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도록 돕는다. 전통에 대한 믿음에 의존해 숙성되고 있는 치즈들은 그 오랜 시간이 가지는 이야기를 특유의 맛과 향에 담아 속삭인다. 치즈의 속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톡 쏘는 아이러니와 짭조름한 땀방울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향긋하고 고소하다.

 


※ 정상원은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의 문화 총괄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 정상원SANG-WON JUNG
사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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