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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ESSIONS: MINNESOTA
설국을 활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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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호

미국 중북부에 있는 미네소타주 북부는 겨울철이면 매서운 추위가 극성을 부리지만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만들어낸다. 수정 같은 맑은 눈이 발아래에서 뽀드득거린다. 머나먼 태양이 벌거벗은 자작나무를 환히 비추고 고요한 세상은 온통 흰색에 파묻혀 있다.

최상의 날씨라고 여기는 영하의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이면, 한 가지 분명한 목표가 생긴다. 최대한 빨리 멀리까지 노르딕 스키를 타는 것이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한 노르딕 스키는 스키 부츠의 앞쪽은 바인딩에 고정되어 있고 뒤꿈치는 스키에서 떨어지는 형태의 스키로 순간적인 스피드보다는 먼 거리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온화한 기후에 사는 사람들은 10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철 내내 노르딕 스키의 일종인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우리 같은 북유럽 사람들을 정신나간 마조히스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스키를 타면서 칼로리를 소모하고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믿고 싶다.

집안이 모두 스웨덴 이민자 출신인 나는 북아메리카의 오대호 중 가장 큰 호수인 슈피리어 호수Lake Superior 서쪽 끝 숲이 우거진 언덕에 자리한 미네소타주의 항구도시 덜루스Duluth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겨울이면 매주 토요일마다 부모님은 우리 다섯 남매를 스노모빌 슈트, 할머니의 니트 모자와 스카프로 완전무장시키곤 했다. 그러고선 우리는 산의 막다른 꼭대기에 자리한 80만 평 규모의 하틀리 공원Hatley Park을 향해 발을 질질 끌며 아버지를 뒤따라 걷곤 했다.

우리 다섯 남매가 아침 나들이를 무사히 마치면, 엄마와 아빠는 동네 작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사주곤 했다. 이후 여동생은 고등학교 시절 실력 있는 노르딕 스키 주자로 떠오르더니, 결국에는 미국 최대 규모의 장거리 스키 마라톤 대회 ‘아메리칸 비르케바이너American Birkebeiner’ 50km 부문의 엘리트 참가자가 되었다.

한편 나는 1995년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날아가 뉴멕시코주의 산타페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나에겐 북유럽 특유의 치유가 필요했다. 짧은 길이로 변형한 스케이트 스키를 타기에 알맞은 트레일 가운데 가장 가까운 곳은 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인챈티드 포레스트Enchanted Forest’에 있었다. 오리건주 세일럼Salem 외곽에 자리한 인챈티드 포레스트 대부분의 트레일에는 썰매개나 눈에 빠지지 않도록 신에 덧댈 수 있는 설피는 물론 설상차도 없었다. 거미 다리처럼 길게 뻗은 길이32 km의 이 스키 트레일은 높이 치솟은 폰데로사소나무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데, 최고 높이가 해발 3000m에 이른다.

스키 트레일까지의 장거리 운전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뉴멕시코주의 에스파뇰라Española에 있는 길가 노점 엘 파라솔El Parasol에 잠시 들러 초록색 고추를 곁들인 브렉퍼스트 부리토breakfast burrito를 주문한다. 자동차에 다시 올라타 스위스의 정취가 물씬한 텍사스의 소도시 레드 리버를 지나 북쪽으로 향하다가 눈이 햇볕에 녹아 웅덩이로 바뀔 때까지 스키를 탄다.

 

 

힘들긴 하지만 노르딕 스키를 타고 고요한 숲을 헤치며 나아가다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내게 익숙한 환희의 감정들이 다시금 일어난다. 겨울철에 여행을 할 때면 일부러 스키 트레일에 근접한 곳으로 행선지를 선택해 그런 기쁨을 만끽한다. 나는 미국중서부에서 위스콘신주 헤이워드Hayward와 케이블Cable 사이에 자리한 노르딕 스키 트레일로 향한다. 완만하게 경사진 길이 100km의 트레일에서 최고의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 내 여동생이 그랬듯 해마다 2월이면 1만명이 넘는 스키어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어 ‘눈 위에서 펼쳐지는 지상 최대의 쇼’라 불리는 스키 마라톤 대회 비르케바이너에 참가한다. 1월 중순이 되면 주중에 그 구간을 혼자 독점할 수도 있는데, 나는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주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 두랑고Durango를 선호한다. 엔지니어 마운틴Engineer Mountain이 보이는 곳에 퍼거토리 노르딕 센터Purgatory Nordic Center가 둥지를 튼 곳이다. 퍼거토리 리조트Purgatory Resort 입구 건너편에 있는 이 센터에는2 740m 고지에 20km 길이의 노르딕 스키 트레일 구간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스키를 탄다는 건 숨이 벅찰 만큼 힘겨운 도전과도 같지만, 그 고통을 무디게 해줄 정도로 주변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다.

한편으로는 몬태나주의 론 마운틴 랜치Lone Mountain Ranch만큼이나 노르딕 스키를 타는 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론 마운틴 랜치는 1915년에 만들어져 100년 넘게 목장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유니크로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 유서 깊은 목장은 마치 스노볼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처럼 특유의 소박한 멋을 유지하면서도, 전통적인 스키와 스케이트 스키를 탈 수 있는 길이80 m가 넘는 트레일을 갖춰 노르딕 스키어들을 위한 세계적인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뉴멕시코주에서 20년 정도 살다가, 나는 1월 평균 기온이 5℃를 맴도는 덜루스로 되돌아왔다. 내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지난겨울에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나에게 노르딕 스키를 탄다는 건 구원의 은총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40년 전 물고기 비늘로 만든 아버지의 튼튼한 스키를 사용한다. 고요한 트레일 위를 활주하면서, 아버지가 가르쳐준 교훈을 떠올린다. 북부 미네소타주의 혹독한 겨울 동안 온 힘을 다해 기쁨을 이끌어내며 살아가는 지혜를 말이다.

글. 스테파니 피어슨Stephanie Pearson
사진. 카를로스 피나CARLOS PINA, 스테픈 마테라STEPHEN MA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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