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NAT GEO
JOURNEYS
라스베이거스행 VS 무착륙 비행
2021년 06월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 사적 비행 기록 극과 극.


 

2020년 2월 23일

출장은 늘 쫓기듯이 갔다. 대부분 그달의 마감을 끝내자마자 피곤한 상태로 출발 당일 새벽까지 정신없이 짐을 싼다. 선잠에 들었다가 허둥지둥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별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한다. 

붐비는 공항에서 체크인하고 보안검색을 통과해 출국 심사까지 마치는 동안 대기의 연속이었다. 면세 구역이 나오자마자 곧장 탑승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게 면세점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에 불과하다. 급히 필요한 물건만 가끔 사는 편이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최종 목적지는 라스베이거스인데 경유를 하여 캐나다 밴쿠버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창가 자리지만 이륙할 때 잠깐 밖을 바라보고 자외선 차단을 위해 가리개를 내렸다. 잠들어 있다가도 기내식 시간에는 귀신같이 일어나 사전 준비를 완벽히 해놓는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연착이었는데, 밴쿠버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연결편도 취소다. ‘대체 비행편이 있겠지’ 싶어 동요하지 않고 환승 통로로 이동해 미국 사전입국심사를 받았다. 보안검색 담당자가 내 항공권에 찍힌 빨간 점을 보더니 무작위로 하는 기내 수하물 검사에 당첨되었다고 얘기해준다. 무거운 짐을 다시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 진이 다 빠졌다. 다음 라스베이거스행 티켓으로 교환한 후, 항공사에서 사과의 의미로 준 10캐나다달러 바우처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속 차린다. 밴쿠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륙 때 잠시 창밖을 봤다.

라스베이거스를 시작으로 미국 네바다주의 겨울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네바다 하면 보통 사막을 떠올리지만, 스페인어로 ‘눈으로 덮인, 눈이 쌓인’이라는 뜻의 네바다nevada가 어원이다. “작년 겨울, 10년 만에 라스베이거스에 눈이 내렸다니까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있는 고든 램지 스테이크에서 식사를 하던 중 들린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네바다주를 대표하는 도시 라스베이거스만 해도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탓에 겨울에 눈을 볼 일이 드물지만 근교의 찰스턴산은 겨우내 폭설이 내린다. 리캐니언 리조트에서 스키를 타고 눈길을 하이킹했다. 혹독한 무더위로 유명한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는 황량한 사막과 새하얀 소금평원, 장엄한 고원지대를 탐험했다. 지질 구조가 독특한 슬론 캐니언 국립보존지구에서 트레킹을 할 땐 나비가 날아다녔다. 불야성을 이루는 스트립에서 화려한 공연을 보며 여행을 마무리하니 여러 계절이 공존한 이전 여정이 마치 신기루처럼 다가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지금, 당시를 되돌아보니 더욱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1년 사이 지구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내가 방문했던 데스밸리 국립공원이 그해 여름 107년 만에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했다. 

 

2021년 4월 25일

1년 만의 국제선 탑승이다. 비행 전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깊은 잠에 들었다. 작은 가방에 여권만 챙겨 집을 나선다. 그런데 버스 배차 간격이 심상치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천공항에 가는 인원이 줄면서 생긴 일이다. 여러 정류장을 지나며 버스에 사람이 꽤 찼다. 이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문득 버스에 탄 이들은 어떤 이유로 공항에 가는 건지 궁금해졌다.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하자 기사님이 “제2여객터미널은 닫혔어요. 여기서 다 내리셔야 합니다”라고 공지한다. 고요한 공항이 익숙지 않다. 아트월에는 마스크를 낀 다양한 인종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마스크에 각 한 자씩 적힌 글자를 합치면 “다시 만나자”.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을 통과해 출국심사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유가 생기니 면세 혜택에 눈을 뜬다. ‘도대체 그동안 왜 면세점을 외면했을까?’ 기내에서는 한 칸씩 띄어 앉았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게다가 음료도 기내식도 존재하지 않는 비행이라니! 창밖에 집중하게 된다. 강릉 상공에서 마주한 동해 바다와 하늘은 그 경계가 사라져 서로를 분간할 수 없었다. 동해와 삼척, 포항과 부산을 지나 대한해협을 건넌다. “쓰시마섬과 후쿠오카 사이에 자리한 이키섬은 4개의 유인도와 1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장님이 마치 가이드처럼 우리가 지나는 곳을 설명해준다. 이 비행의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되돌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마지막 비행은 2020년 2월 2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고단한 출장 일정을 소화한 후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탄 여파로 기내에서 내내 기절해 있다가 뒤늦게 <기생충>을 보기 시작했다. 당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주요 상을 휩쓴 작품에 현지인들의 관심도 높았다. 결말까지 15분 정도 남았을 때 인천공항에 착륙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당시
비행을 떠올리면 <기생충>을 끝까지 보지 못한 아쉬움뿐이다. 그러나 이번 비행을 통해 창밖의 풍경이 기내 엔터테인먼트 못지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 2시간 비행에 촬영한 하늘 사진과 영상만 100개에 달한다. 자연이 영화보다 더 판타지 같다.

짐 찾는 곳의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지 않는다. 면세점에서 구매한 향수의 용량이 60ml를 초과해 관세를 신고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버스 배차 간격이 선사한 기나긴 시간에 텅 빈 공항을 구경한다. 꽤 자주 이곳에 왔지만 구석구석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해외입국자가 오가는 분리된 공간을 제외하고 천천히 둘러본다. 집으로 향하는 길, 머지않아 탑승할 거라는 믿음으로 다음 국제선 비행 풍경을 상상해본다. 지구에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글. 김민주MIN-JOO KIM
사진. 박로이ROI BAK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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