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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QUEST
사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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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호

 

“니체가 말했다.
삶의 여로를 걷는 우리는 여행자라고.”

 

삼국시대 6세기 후반에 제작된 금동반가사유상, 높이 81.5cm, 무게 37.6kg.

루브르 박물관에는 머리가 소실된 날개 달린 신상이 있다. 바로 ‘니케Nike of Samothrace’다. 이 대리석 조각상은 승전보를 알리는 여신의 강림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전쟁의 승리’를 상징했던 니케가 지금은 ‘문화의 승리’를 표방하는 루브르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는 1400여 년 전에 만든 불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손가락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지만 보는 이에게도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끔 고요한 심연으로 인도한다.

 

부처가 되길 미룬 보살

후각을 자극하는 붉은 벽! 적토에 계피와 편백 등이 섞여 있다. 천장을 향해 살짝 벌어진 벽에서 은은한 향기가 난다. 오래된 절이나 시골집 토담 옆에 서 있는 듯하다. 불상 두점을 전시하기 위해 길이가 25m쯤 되는 꽤 큰 방이 만들어졌다. 그동안은 각각 유리 장을 통해서 봐왔지만 이젠 어떤 방해물도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이다.

기울어진 바닥과 천장이 만드는 소실점을 뒤로한 채 반가사유상 두 점이 놓여 있다. 반면 바닥은 안쪽으로 가면서 넓어지는 역원근법적 구조이고 불상의 시선 또한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어서 관람객의 동선은 분방하다. 이들은 부처가 되기 이전 태자 시절의 싯타르타이자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잠시 보류한 보살의 모습이기도 하다. 석가모니가 어린 시절 씨 뿌리는 것을 보다가 보습에 찍혀 나오는 벌레가 새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에서 약육강식이란 현실세계의 고통을 깨닫고 깊이 명상에 잠겼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보살이란 무엇인가? 절집에 가보면 스님이나 수행자들을 위해 밥을 짓거나 군불을 때주는 아주머니들을 일컬어 ‘보살님’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말하는가? 보살이란 부처(如來,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부처가 되길 미루고 이 세상에 남아 자비심으로 실천행(實踐行)을 쌓는 이를 가리킨다. 절집의 ‘보살님’은 아마도 그들의 선행을 독려하기 위한 호칭이겠다.

반가사유상은 주로 6~7세기경 삼국시대에 제작되었는데, 재질은 석재도 있지만 대부분 금동(金銅)이다. 의자에 걸터앉아 한쪽 다리를 들어 반대쪽 무릎 위에 얹은 이른바 ‘반가(半跏, 책상다리의 한 가지 모습)’의 자세와 손가락 끝을 턱에 댐으로써 깊은 생각에 잠긴 ‘사유(思惟)’의 모습을 취하여 그렇게 이름 붙었다. 등 뒤에서 빛을 내던 광배는 언젠가 떨어져나갔고 연결 부위만 흉터처럼 남아 있다.

미륵불은 다음 세상에 나타날 미래의 부처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미륵 신앙이 발달했다. 특히 신라에서는 화랑 제도와 연관되어 미륵 신앙이 크게 유행함에 따라 미륵불의 화신으로 반가사유상의 의미가 부각되면서 많이 만들어졌다. 두 불상의 제작지가 한반도임은 명백하지만 신라인지, 백제인지, 고구려인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천년이 넘도록 책상다리를 한 채 손가락으로 얼굴을 떠받치고 무슨 생각을 하시는가? 보일 듯 말 듯한 저 미소는 또 무슨 까닭이고. 유려하게 아름답고 심오하다.

 

(왼쪽부터)
7세기 전반 삼국시대에 제작된 금동반가사유상, 높이 90.8cm, 무게 112.2kg.
반가사유상의 힘껏 젖혀진 엄지발가락.
학계에서는 당시의 승려들이 맨발로 흙길을 걸어 다니면서 생긴 발가락 기형의 표현이라는 가설도 제시한다.

발끝까지 흘러간 미소

엇비슷한 크기에 똑같은 자세의 불상이지만 외모는 대비된다.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이나 옷차림 등에서 왼쪽 불상(국보 78호)은 다소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오른쪽 불상(국보 83호)은 상체가 거의 반라의 모습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둘 다 미소년의 모습인 듯 잘록한 허리에 얼굴은 몸체에 비해 약간 커 보인다. 표정을 잘 담아내기 위해서였을까? 펑퍼짐한 얼굴이지만 길고 날렵한 콧날로 인해 반듯한 인상이다. 양 눈썹에서 콧마루로 내려가는 선의 흐름도 시원하다.

반쯤 감은 가냘픈 눈매와는 달리 눈꼬리는 바깥쪽으로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살짝 돌출된 작은 입, 양 입가에는 미소가 배어 있다. 가슴과 팔은 미끈하면서도 유약하지 않고, 작고 통통한 손과 손가락 끝에까지 기운이 스며든 듯하다. 들어 올린 오른쪽 발도 턱을 괸 오른손과 대응하며 생동한다. 두 불상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오른쪽 불상의 발가락이 압권이다. 힘껏 젖혀진 엄지발가락! 엑스터시, 깨달음의 순간일까? 입가의 미소가 마침내 발끝까지 흘러갔다.

동양의 미술은 선이 강조되는데 이 불상에서도 그렇다. 옷 주름이나 손발의 동세, 팔과 다리, 몸체에 이르기까지 선의 흐름으로 일관한다. 인체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실제로 이런 자세를 취하면 좀 불편하다. 그런데 이들은 참으로 편안해 보인다. 허리나 다리, 팔과 목 등의 관절 부위에서 별다른 역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근육미도 없다. 그래서인지 여성인지 남성인지조차 구분이 안 된다. 보살의 사유는 고뇌로 가득한 번민이기보다는 적요한 명상이다. 그저 고요히 미소 지을 뿐이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은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보살의 미소에 어린아이의 웃음이 겹쳐진다.

머리가 소실된 루브르의 니케 여신상은 그 불완전함으로 인해 신의 모습만이 주목된다. 광배가 소실된 사유상 역시 조각상으로는 불완전하지만 그런 까닭에 인간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열반에 이르는 찰나이거나 그 직전, 속세의 번뇌를 헤쳐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이기에 더욱 친근하다.

 

지옥문 앞에서 생각하다

로댕의 〈지옥의 문〉은 단테의 <신곡>에서 감명을 받아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 죽음을 보여주는 인물
들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이들을 심판하는 절대자인 그리스도의 형상 대신 이러한 아수라장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사람을 문의 위쪽에 배치했는데, 이는 고뇌하는 시인 단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생각하는 싯타르타, 반가사유상이나 마찬가지다.

이후 <지옥의 문>에서 그 사람만을 독립시켜 실제 인물 크기보다 더 크게 제작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본래 <지옥의 문>에서 보여주었던 종교적인 맥락에서 벗어나면서 이 조각상은 관람자에게 ‘생각’에 관한 또 다른 접근과 해석을 가능케 했다.

오른쪽 팔꿈치를 왼쪽 허벅지 위로 교차시키기 위해 부자연스럽게 틀어진 쪼그린 자세와 근육이 강조된 인체 표현은 고 뇌에 빠진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잘 드러낸다. 잔뜩 구부린 상체와 교차된 팔 동작에 의해 조각상 안쪽으로 생기는 그늘이 인물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신앙심이나 제의적 본능은 삶의 안녕을 위한 인간의 자기 보호 프로그램일 것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종교가 출현했다. 그러나 종교가 정치와결 탁하면서 인간은 종교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권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발현시키려는 인간중심주의 사조가 등장했다.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이 부상하면서 영성(종교)의 자리를 이성이 대체해 나갔다.

이성이란 감각 능력에 상대하는 사유 능력으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본질적 특성이다. 이성은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생각은 의심과 질문을 낳는다. 17세기 들어 본격화된 이성 혁명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경구로 요약된다. 자각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중세의 암흑에서 깨어나 ‘의심하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그야말로 ‘호모사피엔스’가 되었다. 여기서 의심이란 대상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거나 얕잡아보는 게 아니다. 사건이나 대상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의 도적으로라도 부정하고 반역하는 것, 즉 ‘합리적인 의심’을 말한다. 바로 그 합리적 의심이 신을 밀치고 이성을 세운 것이다. 합리적 의심이란 자기 자신까지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상태여야 깨달음에 가까워진다.

로댕과 동시대를 보내며 근대의 정신을 탐구한 니체는 “삶의 여로를 걷는 우리는 여행자다. 비참한 여행자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인간이며, 위대한 여행자는 습득한 모든 지혜를 발휘하여 스스로 목적지를 선택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기존 체제에서 답을 구하지 않는다.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한 사람은 남이 만들어놓은 사상과 질서에 의존한다. 니체는 그런 수동적인 삶이야말로 비참한 여행, 초라한 인생에 불과하다고 했다. 생각하고 의심하며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라는 것이 로댕과 니체의 메시지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 ‘사유의 방’.

 

나를 찾아가는 길

‘생각하는 존재’를 통해 고대인들은 그들의 희구를 표출했으며, 근대인들은 자신들의 본질을 반추하려 했다. 전시장에 자리 잡은 사유상과 천장에 빛나는 무수한 별(조명)들 사이에서 나에게로 가는 길을 되짚어본다. 입구에서 전시품까지의 진입, 마침내 대상과의 조우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시공간적 체험이 가능하다. 잔뜩 보여주지 않으며 부지런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은은한 향기와 공간, 생각에 잠기는 체험 등 박물관의 전시 문법이 획기적이다.

‘사유의 방’(전시실 명칭이다)에 가면 뭔가 생각해야 할 듯하다. 관람객 대부분이 경건하고 심각한 표정이다. 음미하지 않는 음식은 별맛 없듯이 음미하지 않은 관람 또한 별 의미가 없다. 음미란 온전히 맛을 느끼고 마침내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음식 맛을 위해서 예민한 혀가 필요하듯 이 방에서는 순수한 영혼, 온전한 나 자신이 필요하다.

마음의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이곳에 가보라! 그곳에 앉아 있는 보살님은 말없이 말할 것이다. 생각에 잠겨 마음을 비우더라도 이내 그 마음엔 또 새로운 욕망이 들어선다. 다만 앞에서 지우려 했던 욕망과는 다르기를 소망한다. 나만의 생각이 나의 고유성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좀처럼 끊이지 않는 생각 속을 헤매다 문득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 질 수도 있다. 그 미소가 발끝까지 흘러가 마침내 엄지발가락이 힘껏 젖혀질지도 모른다.

 


박현택은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했으며, 현재 연필뮤지엄 관장이다. 쓴 책으로 <오래된 디자인>, <보이지 않는 디자인> 등이 있다.

글. 박현택HYUN-TEAK PARK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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