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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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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호

인도네시아 발리섬은 해변과 정글과 다채로운 사원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열대 과일인 스타프루트를 곁들인 문어구이부터 진한 파당 스타일 카레 등 강렬하고 다양한 현지 음식도 함께한다.

뜨갈랄랑 지역의 계단식 논.

발리 음식에는 강력한 매력이 있다. 섬에 있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내 미뢰는 지금 당장 현지 요리를 맛보라며 아우성을 친다. 나는 곧장 섬의 수도인 덴파사르 동쪽 외곽으로 향한다. 이곳에 나의 최애 와룽(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노점이나 상점)인 나시 테코르Nasi Tekor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박한 장소는 1970년대 발리를 추억하게 해준다. 보통 쌀과 채소, 달걀, 고기나 생선을 함께 요리한 인도네시아의 기본 식사 메뉴가 나오는데, 배불리 먹은 뒤에는 늘 의문이 뒤따른다. 인도네시아와 발리 음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왜 이렇게 중독성이 강한 것인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하지만 풍부하고 다양한 음식의 기원이 원인의 일부라는 건 확실하다.
길거리 음식 요리로 꽤 유명한 윌 메이릭Will Meyrick은 “인도네시아 음식의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하면 무역과 말라카 해협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이주해 오늘날의 인도네시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윌은 발리 남서부 스미냑 해변에서 퓨전 요리점 마마 산 발리Mama San Bali를, 내륙 우붓 마을에서 후잔 로케일Hujan Locale이라는 트렌디한 인도네시아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이 지역 특유의 독특한 맛과 대부분의 요리법은 예멘의 하드라미 상인 같은 초기 아랍 상인이나 중국, 인도, 네덜란드 상인을 비롯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만들었죠”라고 그가 설명한다.

(왼쪽부터) 덴파사르 나시 테코르 스톨 소유주인 바팍 테코르와 이부 테코르 부부. 후잔 로케일에서 내놓는 찐 뱀부 쿠닝 생선.

윌은 2014년 후잔 로케일이라는 인도네시아 레스토랑을 열기 전에 트랜스 TV가 방영하는 <스트리트 푸드 셰프 쇼>에 출연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영감을 주는 요리법을 찾는데, 특히 수마트라 요리, 그중에서도 섬의 최북단에 위치한 아체Ache 지방 요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후잔 로케일에 갔을 때 가벼운 식사 메뉴 중에서 아체식 문어 숯불구이를 기꺼이 선택했다. 신맛이 나는 어린 스타프루트 열매와 카레 잎과 판단 잎, 여기에 녹색 고추와 오크라를 곁들여 부드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매콤함이 전해진다. 채식 메뉴이자 풍미가 깊은 파당 스타일 카레인 굴라이 파키gulai pakis와 테롱 발라도terong balado도 함께 맛보는데, 양치류 잎 부분과 가지와 달걀로 만들어 맛과 식감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이 음식은 수마트라섬 서부식으로 요리한 것이다.
후잔 로케일 레스토랑은 발리섬의 문화 중심지인 우붓 마을에 자리한다. 우붓 마을에 있는 전통 예술 공동체와 고대의 사원과 계단식 논과 정글로 뒤덮인 강의 협곡과 멀리 보이는 화산의 놀라운 절경 등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발리섬으로 이끄는 주된 요인이다. 하지만 윌은 우붓 대신 덴파사르의 생생한 심장부로 나를 데려가 길거리 음식 투어를 시켜주었다. 발리의 수도인 덴파사르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북적대는 분위기와 지역 문화 및 역사를 지닌 이 오래된 도시에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가장 정교한 벽돌로 지은 사원과 문들이 있다.
덴파사르에서 태어나고 자란 카덱 미하르자야Kadek Miharjaya는 지식형 가이드다. 우리는 먼저 발리에서 돼지고기 꼬치구이로 유명한 와룽 바비 굴링 판 아나Warung Babi Guling Pan Ana로 간다. 현지인들로 북적대는 이곳에서는 바삭바삭한 돼지 껍질과 라와르lawar(어린 잭프루트 열매와 강판에 간 신선한 코코넛과 돼지 피를 넣어 만든 음식), 쌀과 맛있는 속 재료 한 덩어리 등 8가지 이상의 곁들여 먹는 메뉴가 나온다.

아융 테라스는 우붓 인근에서 극적인 풍경으로 잘 알려진 아융강 협곡에 있다.

나도 투어를 같이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열정적으로 먹는다. 또 다른 와룽에서는 불길해 보이는 짙은 녹색의 디저트 음료가 나온다. 달루만daluman이라는 이름의 이 음료는 소용돌이 모양의 코코넛 밀크를 섞어 만든 허브 젤리에 액상 야자당을 이슬비처럼 뿌려서 만든다. 여기에 얼음을 넣어 한 모금 들이켜면 획기적으로 갈증이 해소된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파사르 바둥 중앙 시장을 걸어 다니며 긴 코일 모양의 뱀콩부터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망고스틴까지 다양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발리 요리에 톡 쏘는 풍미를 더해주는 강황, 생강, 레몬그라스, 바닐라, 계피, 갈랑갈, 그리고 다양한 10가지 현지 고추에 이르는 다채로운 향신료를 구경한다.
이 향신료들을 배합해볼 수 있는 요리학교가 있다. 1990년에 발리로 와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수석 셰프로 일한 적이 있는 스위스 출신 레스토랑 사업가 하인츠 폰 홀젠Heinz von Holzen이 운영하는 곳이다. 7년 뒤 하인츠는 발리 사람인 아내 푸지와 함께 누사두아 북쪽 만에 돌출된 반도로 위치한 탄중베노아에 붐부 발리 레스토랑 겸 요리학교를 열었다. 탄중베노아 끝에 있는 베노아 Benoa 마을은 한때 인도네시아 동부의 활기찬 무역항이었으며, 여전히 다수의 중국인 무역업자와 부기스족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하인츠는 말한다. “제게 발리 요리란 단지 놀라운 음식이 아니라 문화를 지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가로도 잘 알려진 그는 현지 요리를 탐구하는 책 열두 권을 냈고, 그의 아들 파비안과 함께 두 번째 레스토랑인 아트 카페 붐부 발리Art Cafe Bumbu Bali를 운영하고 있다. 두 곳 모두 발리식 향신료 배합과 반죽을 뜻하는 붐부 발리로 이름을 지었다. 발리에서는 방금 간 신선한 향신료를 혼합한 요리가 대표적이다. 이런 향신료 배합과 사용은 마을마다 요리마다 다르며, 음식에 활력과 깊이를 더해준다.
나는 지금 하인츠의 요리 수업에서 향신료를 빻고 있다. 화산석으로 만든 발리의 전통 절구인 울레칸 코벡에 신선한 마늘, 샬롯, 고추, 양강근, 생강, 강황을 넣고 힘들여 빻는다. 그 결과 흉내 낼 수 없는 발리만의 복합적이고 조화로운 향신료 조합이 탄생했다.
따뜻한 톤의 나무와 열대풍의 녹색으로 장식해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홈 레스토랑에서 발리 출신 와얀 크레스나 야사 셰프를 만난다. 와얀 셰프는 “여기서는 붐부 발리를 ‘어머니 소스’라고 부릅니다. 16가지 재료를 넣어 만들죠”라고 말한다. “붐부 발리는 만드는 데만 3시간이 걸리기도 해요. 모든 향신료의 감칠맛이 제대로 나오게 하려면 천천히 조리하고 적당히 캐러멜화해야 합니다. 발리 음식은 만들기가 쉽지는 않은데, 모든 게 붐부에서 시작하죠.”
홈HOME은 발리에서 가장 힙한 창구 마을 인근에 있는 페레레난Pererenan 해변 마을에 있다. 반면에 와얀은 발리 남동쪽에 자리한 아름다운 석회암 해안 절벽으로 둘러싸인 누사 페니다Nusa Penida 섬에서 자랐다. 와얀은 낚시를 하고 배를 몰고 해초를 재배하면서도 항상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 시카고와 뉴욕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한 뒤에 발리로 돌아와 포테이토 헤드라는 해변의 클럽에서 주방을 이끌었다. 그는 말한다. “7년 뒤에 새롭게 인도네시아 요리를 하고 싶어서 이 일을 그만뒀습니다. 현대적이면서 발리 특유의 강한 개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법으로요.”


메라 푸티에서 내놓는 망고 머랭 디저트.

발리의 맛

메라 푸티
바깥에서 보면 야자수, 약 9m 높이의 반투명 지붕, 빗물의 통로 역할을 하는 아르데코식 성당에서 영감받은 걸작들로 꾸민 내부를 상상하기 어렵다. 공심채와 부추, 카피르 라임을 곁들인 롬복섬 스타일로 만든 스프링 치킨 요리인 아얌 탈리왕이나 카사바 잎과 부추와 고추를 곁들인 오리고기 요리인 베벡 칼리오 같은 고급 정찬 메뉴를 내놓는다. 메인 요리는 약 1만3000원부터.
merahputihbali.com

와룽 글로리아
이 노점에서는 수마트라섬 서부식 소고기 렌당 스튜, 퍼케델 감자 케이크, 참깨를 묻혀 바싹 튀긴 템페, 다양한 쌀 요리 등 40가지
이상의 메뉴를 내놓는다. 약 4500원부터. 주소는 잘란, 라야 케담팡, 케로보칸 케로드, 바둥

아융 테라스, 포시즌스 발리 사얀
우붓 마을 근처, 정글로 둘러싸인 강 협곡에 위치한 아융 테라스에서는 발리식 꼬치구이 사테이와 천연 삼발과 공심채를 곁들인 구운 새우 요리인 우당 바카르 등의 별미를 선보인다. 2만5000원부터.
fourseasons.com

로카보어 넥스트
2023년 10월에 문을 닫은 로카보어의 리뉴얼 버전. 로카보어는 5년 연속 아시아 50대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보다 지속 가능하게 설계하여 환생한 로카보어 넥스트는 2023년 12월 우붓 마을 근처에 문을 열었다. 옥상 정원과 숲에서 토종 과일과 채소를 재배해 식재료로 쓴다고. 20개 코스로 나오는 테이스팅 메뉴가 약 16만원.
locavorenext.com


발리 아슬리에서는 숯불로 요리한다.

와얀이 요리하는 발리 및 인도네시아 가정식 중에서 약 30%는 비건식이다. 일부는 그가 태어난 누사 페니다섬으로부터 왔다. 옥수수, 카사바, 콩 등 제철 농작물로 만드는 맛있는 레독 누사 죽은 레몬 바질로 마무리를 해 달콤한 향을 더한다. 그중에서도 채소 등을 굽는 방식으로 요리하고 아삭아삭한 어린 양배추를 곁들여 내놓는 템페 요리 케시위스keciwis는 내가 맛 본 인도네시아 요리 중에서도 최고다.
1930년대부터 여러 세대를 거치며 외국인과 창작자들을 발리로 모여들었다. 다니러 왔다가 머무르는 곳이 되었다. 그중에는 2007년에 알릴라 망기스 리조트의 총주방장으로 발리에 온 호주 출신의 페니 윌리엄스도 있다. 그녀는 4년 뒤에 발리에서 가장 높은 화산으로 알려진 아궁산이 보이는 동쪽에 발리 아슬리 레스토랑을 열었다.
페니는 그간의 경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놀라운 여정이었죠. 아궁산만큼이나 가파르게 배울 수 있었어요. 전통적인 발리 요리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발리섬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데도 요리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장작불로 음식을 익히고, 절구 등을 써서 손으로 만들고, 주변에 있는 동부 지역의 요리만 만들어요. 이처럼 모든 걸 전통식으로 만드는 발리 아슬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슬리에서 쓰는 식재료는 대부분 현지에서 얻는다. 그런 까닭에 론타르야자 잎에 적힌 메뉴는 거의 매일 바뀐다. 점심에는 간 코코넛을 곁들인 큰새발고사리 잎이나 바나나 잎 꾸러미에 넣어 찐 매콤한 생선 요리처럼 직접 채집한 재료로 만드는 특선 메뉴가 나온다. 한편 바깥에서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고, 아궁산과 논과 산기슭에 패치워크처럼 펼쳐진 열대 우림이 보여 축복받은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페니는 내 시선을 따라가며 설명한다. “여기서는 하루하루 가슴이 뛰어요.”


발리의 다섯 가지 음식

페페스 이칸 PEPES IKAN
향긋하고 매콤한 생선을 바나나 잎으로 싸서 찐 다음 코코넛 껍질을 태운 불에 구워낸다. 불 향과 함께 바나나 잎 안에 고인 재료들의 촉촉한 즙이 폭발한다.

바비 굴링 BABI GULING
발리를 대표하는 돼지고기 꼬치 요리로 향긋한 잎, 양파, 마늘, 붐부 발리로 속을 채우고 으깬 강황을 발라 굽는다. 향신료를 넣어 다진 고기와 야채로 만드는 라와르가 곁들여 나온다.

가도-가도 GADO-GADO
데치거나 찐 야채, 두부, 떡, 완숙 계란으로 구성된 따뜻한 샐러드에 달콤하고 매콤한 땅콩 소스가 곁들여진다.

클레폰 KLEPON
쌀가루를 작은 공 모양으로 빚어 삶은 요리. 판단 잎 추출물이 들어가 녹색을 띤다. 팜 슈가를 속에 채우고 잘게 썬 코코넛에 굴려 내놓는데, 한입 베어 먹으면 입안에서 달달한 액체가 터진다.

부부인진 BUBUH INJIN
코코넛 밀크와 판단 잎으로 맛을 내고 코코넛 설탕으로 단맛을 더한 끈적끈적한 흑미 푸딩.

메라 푸티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페페스 이칸.

 

글. 레이철 러브록RACHEL LOVELOCK
사진. 게티, 하인츠 폰 홀젠, 메라 푸티, 마타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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